▲ 마블러스디자이너 이용준 개발이사

게임 내에서는 사실 큰 생각 없이 장착하는 '가상 의상'은 생각보다 많은 영역에서 사용되고 있다. 패션 업체들이 가상 의상을 통해 디자인을 미리 확인하기도 하며, 게임과 영화에서는 등장인물들이 착용하는 의복들의 CG 등을 미리 제작하여 게임에 활용하기도 한다. 가상 의상의 사용처는 계속해서 확대되고 있고, 현재 다양한 회사들이 기술을 접목해 사용하고 있는 상태다.

그렇다면 현재 가상 의상이라는 분야에서 몸담은 마블러스디자이너의 이용준 개발이사는 게임과 가상 의상의 협업, 그리고 미래를 어떻게 내다보고 있을까. 강연자는 이번 NDC 2018을 통해 상 의상을 '세컨드라이프 산사'에 적용하기까지의 과정, 그리고 협상을 진행하며 꿈과 목표 사이에서 고민했던 과정을 전달하기 위해 연단에 섰다.

'가상 의상'은 말 그대로 가상의 캐릭터나 인물이 착용하는 옷을 의미한다. 의류는 프로그램을 통해 제작하며, 실제 의상과 혼동을 일으킬 정도로 세밀한 묘사를 자랑한다. 의상이라는 것에서 일반적으로 패션 업계만을 예상하기 쉽지만, 게임과 영화 부문에서도 이 가상 의상 기술을 이용하여 캐릭터를 제작하기도 한다. 강연자가 속한 클로(CLO)는 패션업계에서 가상의상을 적용하며, 영화와 게임에서는 마블러스 디자이너라는 제품을 콘텐츠 제작에 이용하고 있다.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캐릭터에옷을 입히는 마블러스 디자이너는 세컨드 라이프의 후속작, '세컨드 라이프 산사'에 사용하여 가상 의상이라는 존재에 새로운 활용도를 제시하기도 했다. 세컨드 라이프는 이전부터 가상 의상에 주목하고 있었다. 전작인 세컨드 라이프에서는 10년간 세컨드 라이프 내에서 쇼핑한 모든 가상 제품의 가격이 32억 달러에 이르는 수익을 거두었기 때문이다.

이는 게임 내 재화인 '린든달러'가 실제 달러와 연동하여 가격이 책정되기 때문에 게임 내의 소비를 현실의 가격으로 환산할 수 있었던 것이다. 여기서 10년간 유저들의 소비는 주로 의류에 많이 이루어졌다. 옷이나 헤어스타일 외에도 가장 많이 팔린 것이 의류 부분이었다.


세컨드라이프의 제작사인 '린든 랩(Linden Lab)'은 유저들의 주요 소비가 옷에서 이루어지는 것으로 보고 후속작인 세컨드 라이프 산사에서 의상을 팔기로 했다. 후속작에서 전작의 강점을 강화하고 몰입감과 쇼핑 활성화를 노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마블러스 디자이너를 이용하여 게임 내에서 이용할 수 있는 가상 의상을 제작하고자 했다.

린든 랩이 당시 요구한 조건은 다음과 같았다. '옷을 쉽게 만들 수 있어야 한다.', '옷만의 포맷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사실감을 위해 옷이 움직일 수 있어야 한다.' 등 보다 실제적인 느낌을 주며 자신들의 정체성에 맞는 형태로 제작을 요구했다.

린든 랩과 마블러스 디자이너와의 협업은 2014년 5월부터 시작됐다. 린든 랩이 가지고 있던 목표(꿈)과 현실의 제한들을 조율하는 과정이 이어졌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무언가를 조율하는 데에는 많은 시간과 노력이 들어간다. 이 과정에서 중요한 것은 상대방의 요구를 파악하는 것이다. 린든 랩과의 조율과 협상은 '그래서 게임과 호환이 됩니까?'라는 질문 하나로 마무리가 됐다.

이 말은 결국에는 핵심적인 부분이기도 했다. 그리고 장기적인 서비스를 고려하고 있는 개발사에는 불가능해서는 안 되는 부문에 질문을 던진 것이다. 그래서 기존 의상 데이터를 게임 엔진과 호환시켜 보는 작업에 착수했다. 약 2개월간의 시간이 지나서 프로토타입을 선보였다. 일부 의상이 찢어지는 것과 같은 모습이 있기는 했지만, 린든 랩 측의 긍정적인 반응을 얻을 수 있었다. 모두 린든 랩이 가지고 있는 본질적인 의도. 이상에 대한 의도에 맞는 제안과 결과물을 제시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계약 전에 벽에 부딪히기도 했다. 먼저, 린든 랩 측의 게임 개발이 늦춰졌다. 또한, 강연자의 회사인 CLO가 망하지는 않을까란 걱정을 린든 랩 측이 하기도 했다. 세컨드라이프는 15년간 서비스된 게임이다. 전작과 마찬가지로 장기 서비스를 예정하고 있는 만큼, 기술 협력을 제공한 회사가 그 전에 망해서 피해를 주면 곤란했다. 마지막으로 린든 랩 측의 엔지니어가 게임 엔진 상에서 구동되지 않을 것 같다는 피드백이 있기도 했다.

CLO 측은 이 과정에서 린든 랩에게 자신들의 결과물을 증명할 필요가 있었다. 그래서 실제로 실시간으로 의상시뮬레이션이 가능하다는 점을 증명할 필요가 있었다. 재검증으로 게임 엔진 위에서 실시간 의상 시뮬레이션을 선보였고, 게임과 얼마든지 호환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했다. 몇 번의 재검증과 노력 끝에 CLO는 린든 랩과의 계약은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이는 현실과 꿈 사이의 지향점, 노력에서 현실의 검증을 꼼꼼하게 한 결과다. 검증이 빈틈없이 진행되면서 실제 개발에 걸리는 시간은 줄어들 수 있었다. 게다가 검증을 위하여 의견 교환을 무조건 결과물로만 진행한 것도 개발 기간이 줄어드는 효과를 낳았다. 언어가 달라 의사소통에 한계가 있었지만, 결과물로 대화하는 것은 진행 속도는 물론이고 서로의 오해도 줄일 수 있었다.

그렇게 만들어진 결과물은 2017년 12월 발표됐다. 가상 의상은 유저들이 외부 프로그램에서 작업한 뒤, 게임 내 파일 로딩을 통해 게임 속에 구현할 수 있었다. 만든 의상은 웹페이지로 유저들끼리 거래하는 것도 가능했다. 이외에도 피팅을 직접 유저가 조절하는 기능들도 게임 내에 구현됐다.


CLO가 린든 랩과 함께 만들어낸 결과물, 그리고 현실을 아직도 확장 중이다. 게임 서비스 이후 4개월간 400개의 아이템이 등록되었지만, 마블러스 디자이너를 이용한 프로그램을 시작한 이후에는 3개월간 2,600개의 상품이 등록될 정도로 큰 폭의 상승을 보였다. 현재 마블러스 디자이너는 기능적으로도 계속해서 발전해 나가고 있다.

현재 게임 내에서 지퍼를 조절하거나 단추를 만드는 기능을 통해서 유저들이 직접 옷의 모양새를 자유롭게 조절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기능이 포함될 예정이다. 또한, 궁극적으로는 패션 / 게임 및 영화로 나뉜 가상 의상 시장을 한 시장으로 통합하려는 계획도 세우고 있다. 아직은 두 분야 간에 약간의 구멍만이 뚫어진 상태다. 하지만 길게 본다면 나이키의 옷들을 게임에서 쓸 수 있고, 패션과 게임이 하나의 의상 생태계를 구성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고 밝히며 강연을 마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