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은 언제나 새롭고, 신선하다. 프로게이머에게 첫 경기, 첫 우승은 경력 내내 평생 잊을 수 없는 순간일 것이다. 지난 9월 8일 한 선수가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 숱하게 우승을 해 본 선수도 아니었고, 갓 데뷔한 신예의 감격도 아니었다. 주인공은 '스코어' 고동빈이었다. 2012년에 데뷔한 7년 차 프로게이머가 처음으로 LCK 정상에 오른 순간이었다.

'스코어'의 일대기는 굴곡이 많다. 탑, 원거리 딜러, 정글러 등 무려 네 번이나 포지션을 변경했고, 매번 준우승에 멈춰 섰다. 그리고 드라마 같은 순간에 늘 조연의 역할을 도맡았다. 특히, 롤드컵 진출에 실패한 2017년은 '스코어' 인생에 가장 힘든 순간이었다. 비로소 2018년에 염원하던 우승을 이뤘지만, '스코어'는 또 다른 목적지인 롤드컵까지 앞만 보고 가겠다고 말했다.

이런 '스코어'를 두고 국내 및 해외 감독, 코치들은 "'스코어'는 오랜 경력을 자랑하면서도 신선함을 느끼게 하는 선수다"라고 평가한다. 아마 지금부터 들려줄 '스코어'의 이야기는 팬들에게 새로운 감정을 느끼게 할 것이다. 처음으로 속내를 털어놓은 자리니 말이다.



'스코어'가 가장 염원하던 우승이 가리키는 숫자는 1이다. 정상의 의미이며, 접근하기 무척 어려운 곳이다. 2012년에 데뷔해 2018년이 돼서야 그 감격을 맛봤으니 여운이 오래 갔을 법 하다.

'스코어'는 당장 앞에 있는 롤드컵이 걱정과 기대가 되지만, 지금은 무척 행복하다고 했다. 2017년 이맘때는 그야말로 지옥과도 같았으니 말이다. 당시 kt 롤스터는 스프링 스플릿 준우승, 롤드컵 진출 세 번의 기회 어느 하나 낚아채지 못했다. '슈퍼팀'이라는 타이틀이 산산조각 났다. 삽시간에 재계약이 힘들 거라는 소문도 돌았다.

"단순하게 생각하면 다전제에 대한 압박감이 줄었다. 롤드컵에 직행한 순간 다전제를 벗어났다는 거로 마음이 편해진다. 어떤 감동이나 깊은 뜻을 지닌 대답을 원할지 모르겠지만, 우리는 밥 먹고 게임 하는 사람들이다. 1년 농사의 결실을 보았으니 그걸로 된 거다. 어느 정도 여유가 생기니까 우리에게 아픔을 줬던 젠지 e스포츠에게 복수하고 싶다는 생각도 든다. 이왕이면 결승전에서 만나야 꺾는 의미가 더 클 것 같다.

지난해까지만 하더라도 나는 늘 패자의 입장이었으니 이런 생각들 자체가 행복한 일상이다. 졌으면 또 부정적인 이야기가 쉴새 없이 나왔을 텐데, 팀원들끼리도 일상처럼 대화를 나눈다. 어쩌면 내 선수 생활 중에 가장 특별할 일 없이 평범하고, 평화로운 순간일지도 모른다"




말 그대로 '스코어'는 늘 불행한 연말을 보냈다. 스포트라이트와 떨어진 곳에서 주인공들의 모습을 지켜봐야 하는 세월이 길었다. 냉정하게 프로씬에서 2위와 10위는 똑같은 패자로 간주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우승을 달성하지 못 한 팀들은 대개 불화에 시달린다. 서로의 신뢰가 무너졌으니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트러블이라고 말하기는 애매하다. 우리는 서로의 색깔이 짙다 보니 의견 충돌이 잦았다. 그래서 단합을 위해 노력했고, 이번 스프링 스플릿부터 서로 많은 부분을 양보했다. 당장 좋은 성적을 내지 못했지만, 스프링 스플릿 때 서로의 의지를 확인할 수 있었다. 천천히, 서로에 대한 신뢰가 회복되는 기간이었다.

그 노력이란 게 엄청 색다르지 않다. 연습이 끝나면 같이 운동을 한다거나 사우나를 가는 정도다. 휴가 때는 다른 게임을 함께 즐겼다. '함께'가 포인트다. 섬머 스플릿에는 본의 아니게 내가 다리를 다치면서 진심으로 누군가 챙겨주고, 고마움을 느꼈으니까 서로에 대한 소중함을 배운 시간이었다고 볼 수 있다"


신기했다. 늦깎이 우승자 '스코어'의 나이는 벌써 27세다. 일반적인 프로게이머의 전성기 나이를 훌쩍 지났다. 일반 스포츠에서는 전성기를 지난 선수가 나이가 차면 노련함으로 극복한다. 간절함만으로는 어렵다. '스코어'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어떤 노력을 했는지 궁금했다.

"우승하지 못했으니 당연히 간절했다.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다. 밖에서 이렇게 웃지만, 속앓이도 많이 했다. 우승을 못 한 것만큼 힘든 게 어디있을까 생각해봤지만, 달리 없다. 그래서 게임을 손에서 놓은 적이 없다. 휴가 때도 팀 연습을 쉰다는 생각이었지 개인 연습까지 쉬겠다는 생각을 안 했다. 심지어 커피를 마실 때도 게임과 관련된 생각이 났다. 억지로 떠올린 게 아니라 우승 때문에 저절로 생각이 났다. 직업병일 수 있는데, 지금 이렇게 대화하는 순간조차 게임 생각이 든다. 아직 롤드컵 우승을 못 했으니까.

나이가 늘어난다고 해서 불가능한 게 아니다. 나는 무슨 일이 닥치기 전까지 그 일에 대해 생각하지 않는다. 당장 집 장만을 해야 하는 상황도 아니고, 입대 문제도 아직 시간이 남았다. 그러면 18세 게이머나 27세인 나나 생각할 수 있는 게 게임뿐이지 않나. 우선순위가 게임이니 똑같은 입장이다. 그래서 '이제 나이가 많아졌으니...'라고 내 실수의 무게가 가벼워져서는 안 된다. 그리고 나 또한 승부욕을 부릴 때는 어린 게이머들과 비슷해진다. 물론, 주변에서 그걸 받아주니까 가능한 이야기다"




여기까지 참으로 아름다운 이야기다. 위기를 극복한 영웅담 같기도 하고, 어쩌면 약간의 허세 섞인 무용담 같을 수 있다. 그런데 이제부터 들려줄 '스코어'의 고백은 먹먹하게 만든다. 힘들었고, 포기하고 싶었고, 떠나야겠다는 생각도 많았다. 그저 자신감과 자존심으로 버틴 설움의 세월이었다.

"매번 중요한 순간에 무너질 때마다 포기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는 한 살이라도 더 어릴 때라 자신감으로 버텨봤다. 포기가 떠오를 때마다 함께 하는 팀원들을 믿었다. 별다른 방도가 없다. 예를 들어 스프링 때 제 기량을 못 펼친 팀원들이 있다. 어차피 이 친구들이 아무리 짧아도 1년 계약을 했으니 함께 보내야 한다. 결국 내 동료를 믿을 수 있는 사람은 나다. 나를 믿어줄 사람도 팀원들뿐이다. 딱 이 두 가지로 포기하고 싶다는 마음을 꾹꾹 눌렀다.

팀을 떠나고 싶은 순간도 있었다. 아마 2014년이었을 텐데, 원거리 딜러로 마지막 대회를 치른 시기다. 정말 힘들었다. 확신이 없는데도 새롭게 다시 시작해야 한다는 마음으로 나가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코칭스태프와 대화를 나눴는데, 당시 코치였던 오창종 감독님이 붙잡아주셨다.

이후 2016년에도 떠날 시기라고 생각했다. 기존 팀원들은 다 떠난 뒤였다. 나도 다른 팀에서 도전해야겠다는 마음이었다. 한계라는 표현이 맞을지 모르겠지만, 다른 환경과 시스템을 경험하면서 발전해야겠다는 욕심 때문이었다. 결과적으로 팀원 전체가 바뀌면서 의도치 않게 새로운 환경이 조성됐다. 여러 곳에서 프로 생활을 해봤던 친구들이 합류했고, 우승 경험들도 있었다. 내가 배울 수 있는 분위기가 만들어졌다.

버틸 수 있었던 마지막 이유는 자존심이다. 2015년 이후 부담감을 느낀 적은 많았지만, 내 경기력이 부족해서 프로게이머 생활을 접을 수준이라고 생각한 적은 없다. 방출될 거라는 위기의식도 없었다.

2017년에는 프로게이머 경력 처음으로 화가 나서 못 참았다. 롤드컵 선발전에서 삼성 갤럭시에 세트 스코어 0:3으로 패했는데, 어찌나 분한지 온몸이 떨렸다. 아마 그때 정말 미치도록 술을 마셨을 거다. 비도 많이 왔는데, 필름이 끊겼다. 울기도 그렇게 울어 본 적이 없다. 살면서 그렇게 힘들었던 순간이 있었나 싶다"




원래 '스코어'의 성격은 이렇게 부드럽거나 밝지 않았다. 본인 말에 의하면 그저 소심한 성격에 게임을 좋아하는 친구였다. 역시나 승부욕이 지금의 '스코어'를 만들었다. 앞서 말한 대로 자존심과 자신감도 변화를 주는데 한몫했다.

"처음에는 완전 소심했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자연스럽게 팀의 맏형이 되더라. 팀원들과 소통도 해야 하고, 팀 분위기를 조성해야 하는 입장이 되니까 활발해질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팀을 대표해서 해야 하는 촬영, 인터뷰 등에도 책임감을 느꼈다.

성격뿐만 아니라 게임에 임하는 태도도 과거랑 많이 달라졌다. 프로게이머라면 잘하기 위해 극단적인 노력을 해봤을 것이다. 나는 스타테일 시절에 그랬다. 연습실과 숙소가 같은 건물에 있어서 자기 직전까지 게임을 했다. 그때는 쉬는 날도 없었다. 하루에 4~5시간만 자고 날마다 게임을 붙잡았다. 그런데 딱 거기까지더라. kt 롤스터에 와서야 나에게 맞는 연습 방식을 찾았다. 나는 잠이 많이 필요한 사람이고, 패턴도 자연스럽게 변했다.

그래서 가끔 많은 걸 포기해야 하고, 바뀌어야 하는 게 고달프지 않냐는 질문을 받는다. 막무가내로 포지션 변경을 했을 때는 카오스에서 올라운더를 경험했기 때문에 자신이 있었다. 그런 일들은 내 무언가를 포기한다는 거랑 다른 개념이다. 그리고 개인 시간이 없는 부분도 프로게이머라면 누구나 같은 환경이다. 그래서 후회해 본 적이 없다. 평범한 20대의 삶이 궁금한 적은 있어도 나에게 프로게이머란 그런 모든 걸 누리지 못해도 좋을 만큼 소중한 일이다"




달라진 '스코어'의 성격과 마음만큼이나 e스포츠의 환경도 많이 변했다. 2018 아시안게임에 시범 종목으로 채택되는 등 그 어느 때보다 e스포츠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 오랜 경력의 '스코어'에게는 감개무량한 일이기도 하다. 그래서 '스코어'는 마지막이 아니라 도전을 이어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미 내가 우승한 게 신선하지 않나 싶다. 나나 팬들에게 처음인 일이니까. 여유가 없을 때는 '스졸렬', '무관의 제왕'을 비롯해 2와 관련된 농담을 들으면 짜증이 날 때도 있었다. 어쨌든 못했기 때문에 생긴 이야기들이니 마냥 좋아할 수는 없었다. 평소에는 여유롭게 받아넘기지만, 패배한 직후에는 단순 농담으로 이해하기가 참 힘들었다. 상대가 재미있는 대답을 원하더라도 매년 반복되는 일이니까 뭐라 해줄 말이 없었다.

그래서 2018 아시안게임 차출 요청을 받았을 때도 고사했다. 마지막 도전일 수도 있는 상황에서 팀과 나를 우선으로 생각했다. 국가대표가 정말 명예로운 자리지만, 나는 마지막 결승전이라는 생각으로 LCK를 준비하고 있었다. 그런데 재차 제의를 받았고, 팀에서 많이 지원해준 덕분에 막차에 탑승할 수 있었다.

e스포츠가 계속 성장하고 있으니 이 업계의 일원으로 정말 기쁘다. 그래서 드디어 우승을 해봤다고 안주하지 않게 된다. 정말 진지하게 아직 돌이켜볼만한 상황도 아니다. 2등을 하면 그 좌절감이 있다. 지금은 그 좌절감이 없을 뿐, 평소와 똑같다. 아직 롤드컵이 남아있다. LCK 우승은 값진 성과지만, 최종 평가는 롤드컵이라고 생각한다. 이렇게 말하니 팬분들이랑 같이 즐기지 않는 것 같아서 미안하다. 워낙 말을 잘하는 편이 아니라 우승에 대한 기쁨보다 아직은 앞만 보고 싶다"




꽤 긴 이야기를 나눴다. '스코어'는 밖에서 본 것과 많이 달랐다. 부드러운 성격과 인상 탓에 아직은 아이 같은 면이 있을 거라고 착각했다. 그런데 마지막까지 자신은 남들이 원하는 대답을 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말도 못 하고, 표현력도 떨어진다는 이유로 말이다. 대신 그 어떤 때보다 솔직하게 말하고 싶다는 마음이었다고 한다. 그래서 우리가 알고 있던 '스코어'의 모습과 많이 다른 느낌이었다.

"내 성격이 좀 이상하다. 무뚝뚝하면서도 활발하다. 아마 자리나 상황에 따라 달라지는 것 같다. 먼저 살갑게 다가가는 성격은 아니다. 성격만큼이나 게임 스타일도 종종 다른 모습이 보이는 이유도 같다고 생각한다. 여자친구도 원체 티를 많이 안 내는 성격이라 우승하고 난 뒤에야 서로 기쁜 마음을 표현했다.

살면서 이렇게 축하를 많이 받아 본 적은 처음이었다. 결승전 현장에서 많은 팬이 내 아이디와 이름을 연호해주는데, 프로게이머 인생을 살아가길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승 인터뷰에서 말했던 것처럼 이전 팀원들이 정말 다 생각났다. 같이 살면서 싸우고, 다투고 함께 울고 웃었던 친구들이다. 이지훈 단장님도 그랬고. 학창 시절이 떠오르듯 한 명, 한 명 얼굴들이 지나갔다. 학우들, 선생님들처럼 말이다.

아무래도 오랫동안 건강 관리를 하지 않다 보니 이제 매년 한 번씩 감기 때문에 고생한다. 그래도 최대한 선수 생활을 오래 하고 싶다. 군대 가기 전까지는 꽉 채울 예정이다. 사실 체감이 되지는 않는다. 아까 말한 대로 당장 눈앞에 있는 대회가 더 중요하다.

프로게이머를 그만두면 백수의 삶을 살아보고 싶다. 아직 그렇게 편히 쉬어 본 적이 없어서 진지하게 1년 정도는 마음 편히 아무것도 하지 않고 쉬면 어떨까 하는 막연한 생각이 든다. 이제는 매 대회가 나에게 마지막이 될 수 있다. 지금이야 여전히 자신감이 있지만, 나중에는 또 모를 일이니까.

e스포츠가 많은 관심을 받고, 발전하면서 의욕을 가지려 노력 중이다. 앞으로 이 업계에 있는 모든 사람이 행복하게 살았으면 좋겠고, 더 좋은 대우를 받았으면 한다. 그리고 모두에게 사랑받고, 인정받는 e스포츠가 됐으면 좋겠다. 내가 기억될 즈음에는 e스포츠 발전에 조금이라도 이바지했다는 평가를 받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