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병헌 전 청와대 정무수석비서관(전 한국e스포츠협회 명예회장)에 대한 2심 공판이 서울고등법원 제1형사부(정준영 재판장)에서 13일 진행됐다. 전병헌 전 수석은 지난 1심에서 징역 5년, 벌금 3.5억 원, 추징금 2,500만 원을 선고받았다. 전병헌 전 수석과 검찰 모두 항소했다.

이번 공판에서는 전병헌 전 수석이 기획재정부를 압박해 케스파에 예산 20억 원을 배정했다는 혐의가 주로 다뤄졌다. 증인으로는 문화체육관광부 게임콘텐츠산업과 A 공무원이 출석했다. A 공무원은 당시 문체부에서 e스포츠 산업 진흥을 주 업무로 맡았다.

검찰 심문과 전병헌 측 변호인 심문, 증인 답변을 종합하면 A씨가 e스포츠 산업 관련 예산을 편성할 때 전병헌 전 수석은 연관이 없었다. A씨는 e스포츠 아마추어 생태계 조성사업 5억 원을 기재부에 제시했지만, 기재부 담당자는 "게임은 민간에서 알아서 잘 크는데, 정부에서 민간 부분까지 차려야 하나? 결국 이 사업은 PC방을 살린다는 거 아니냐"라는 의견을 전하며 거절했다고 한다.

e스포츠 아마추어 생태계 조성사업 관련해 A씨는 "당시 한국e스포츠협회 김철학 국장과 논의한 사실이 있다"고 증언했다. 이 과정에서 케스파 김철학 국장이 A씨에게 압박한 사실은 없다. A씨에 따르면 김철학 국장은 사업 필요성을 이야기했고, 정책 담당자인 A씨는 사업이 필요하다는 것을 스스로 인지하고 추진했다.

검사는 "김철학 국장이 필요성을 이야기할 때 전병헌 전 수석이 어느 정도 영향력을 발휘했다고 생각하나?"라고 물었으나 A씨는 자신이 알 수 없는 부분이라고 답했다.

A씨 입장에서는 거절당한 사업 예산이 어느 날 기재부에서 10+10억 원 예산으로 총 20억 원 증액해 다시 올려달라는 요청이 왔다. e스포츠 아마추어 생태계 조성사업 10억 원과 e스포츠 신한류 사업 예산 10억 원이다. A씨는 기재부 내부에서 어떤 과정을 거쳐 다시 증액 요청이 왔는지 알지 못한다고 밝혔다.

A씨는 "기재부의 변화가 의아했으나, 정책 담당자로서 고무적으로 받아들였다"고 기억했다.

이 예산은 전병헌 전 수석 문제가 불거지자 국회에서 전액 삭감됐다. 그런데, 공판에서 최근 문체부가 추진하고 있는 지역 e스포츠 경기장 건립 사업과 PC방 100곳을 문화시설로 지정하는 사업이 당시의 e스포츠 아마추어 생태계 조성사업과 연관된다는 취지의 증언이 나왔다.

A씨는 최근 문체부 사업이 e스포츠 아마추어 생태계 조성사업과 일맥상통하냐는 변호사 물음에 "상호보완적으로 연결된 사업이라고 볼 수 있다"며 "아무래도 PC방 산업이 활성화가 돼야 아레나(지역 e스포츠 경기장)가 활성화되는 거라 여겼다"고 말했다.

변호사가 "현재 문체부가 케스파를 통해 PC방 100곳을 문화시설로 지정하는 사업이 2018년도에 문제 되는 예산과 사실상 동일하냐"고 묻자 A씨는 "맞다"고 답했다. 또한, 당시 문제가 된 예산 증액이 개인의 사액추구로 보기 어렵지 않겠냐는 변호사 물음에 A씨는 "예"라고 답했다.

▲ 1심 선고 직후 전병헌 전 수석

이어 전병헌 전 수석이 피고인 심문을 받았다. 기재부 직권남용 혐의에 대해 전병헌 전 수석은 "대통령 국정철학과 공약을 반영한 예산이었다"라며 "새 정부는 이전 정부들과 다르게 게임과 e스포츠에 관심이 많다는 것을 알려야 했다"고 배경으로 먼저 설명했다.

이 과정에서 셧다운제에 대한 이야기도 나왔다. 전병헌 전 수석은 "2011년도 민주당 여성 위원 중심으로 이명박 정부가 셧다운제를 도입했다"며 "1년이 지나고 셧다운제 효과 측정을 여성가족부가 했는데, 효과가 1% 미만으로 거의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전했다. 전병헌 전 수석은 "민주당 내에서 게임을 부정적으로 보다가, 이제는 프로게이머 출신이 공천위원(황희두)으로까지 기용된 게 새롭다"고도 덧붙였다.

전병헌 전 수석은 "당시 기재부는 게임산업과 e스포츠를 미래성장동력이라 칭하면서도 학부모가 싫어한다는 이유로 부정적으로 대하는 이율배반적인 모습이 있었다"며 "기재부가 그런 모습을 보이니 내가 오기가 생겨 '기성세대 누구(전병헌)는 게임을 좋게 본다'라는 정책적 일관성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했다.

이 배경에서 전병헌 전 수석은 "기재부 공무원들이 게임과 e스포츠를 이해하지 못하는 열악한 상황에서 문재인 대통령의 공약설명과 정책적 설명을 한 것이다"라며 "(정무수석 지위를 남용해) 특정 예산을 편성하라고 한 것이 아니다"고 강조했다.

전병헌 전 수석은 지난 정부 문체부 게임과 공무원을 언급하며 "당시 담당 사무관 말이 자기가 게임에 빠져 행정고시를 늦게 치러, 게임은 중독이다라는 인식을 갖고 있을 정도"라며 "이명박 정부, 박근혜 정부와 문재인 정부의 게임정책 인식은 완전히 다르다는 걸 설명할 나름의 책임감과 소명의식이 있었다"고 설명했다.

특히 기재부 예산담당 공무원에게 말한 것에 대해 전병헌 전 수석은 "내가 굳이 예산을 편성하려면 당시 김동연 장관하고 15년 인연인데, 장관에게 직접 이야기하지 그 밑에 전화해서 예산이 필요한 이유를 설명했겠나?"라고 되물었다.

전병헌 전 수석은 당시 예산실장에 내정될 가능성이 있던 구윤철 예산총괄심의관(현 기재부 2차관)에게 예산 필요성을 설명했다. 전병헌 전 수석은 "앞으로 2~3년은 실무를 맡을 구윤철 심의관이 문재인 정부의 게임정책을 이해할 필요가 있었고, 게임에 대한 기재부의 고리타분한 인식을 개선하려고 설명했다"고 말했다.

즉, 전병헌 전 수석은 기재부에 전화를 건 것이 케스파에 힘을 싣어주려는 것이 아니라, 문재인 대통령의 게임공약과 기조를 설명하기 위한 선의였다고 강조했다. 전병헌 전 수석은 "꼭 구인철 심의관이 아니더라도, 당시 기재부가 게임산업에 대한 배타적이고 몰이해적인 부분이 있어 설명해야 했다"고 덧붙였다.

전병헌 전 수석은 "e스포츠 아마추어 생태계 조성 사업을 축구로 비유하면, 상암 월드컵 경기장을 가득 채우기 위해 유소년 축구-아마추어 리그-조기축구 등 뿌리부터 키워 결실을 맺게하는 것"이라며 "A씨도 그런 취지로 증언한 것으로 알고, 현재 문체부도 문제가 없으니 시행하고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전병헌 전 수석, 보좌관 문제에 대해서는 "송구스럽다"

전병헌 전 수석은 윤 모 비서관이 뇌물을 받았다는 사실에 "나는 윤씨는 말수가 적고 내성적이고 착한 사람으로 알았고, e스포츠에 대한 열정으로 일하는 사람인 줄 알았다"며 "어찌 됐든 윤씨가 인센티브던 리베이트가 됐던 돈을 가져간 일은 있어선 안될 일이라 생각한다"고 밝혔다.

전병헌 전 수석은 "윤씨는 자신을 배제한 채 롯데홈쇼핑 대표가 나와 약속을 잡았다는 것에 대해 화를 냈다고 하는데, 이 또한 내가 아는 윤씨 모습이 아니다"라고 덧붙였다.

아울러 전병헌 전 수석은 구설에 오른 롯데홈쇼핑으로부터 후원을 따낸 윤씨에게 "정무적인 판단이 너무 어리고 부족한 것에 내가 짜증을 냈다"고 전했다. 그는 "만약 윤씨가 내게 롯데홈쇼핑 후원을 추진 중이라고 보고했다면, 나는 '우리가 e스포츠 산업을 좋게 만들려고 얼마나 노력했는데 그런 기업이 대회를 후원하게 하느냐'라고 거절했을 것이다"고도 전했다.

전병헌 전 수석은 "의원으로서 비서관의 잘못에 대해 송구스러운 마음이 있다"고 말했다.

스포티비와의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에 대해 전병헌 전 수석은 "당시 케스파 사무총장으로부터 대기업 CJ 계열인 OGN의 독점 횡포가 심하다 보고받은 상황이었고, 그래서 바람직한 경쟁을 위해 새로운 매체가 나타나는 게 좋다고 여겼다"며 "이런 상황에서 내가 스포티비에게 고마워해야 하지, 스포티비가 내게 감사할 상황은 아니었다"고 반박했다.

이어 전병헌 전 수석은 "스포티비 홍원의 대표는 1심 결과에 항소하지 않고, 검찰도 낮은 형량에 항소하지 않은 것에 나는 '강한 의구심'을 품고 있다"고 강조했다.

한편, 전병헌 전 수석 2심 재판은 5월 중 최종변론만을 남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