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16일부터 3일간 영상으로 공개되는 '2020 GAME-TACT'행사에서 서강대학교 게임교육원 최삼하 교수가 연단에 올랐다. '게임 인사이드, 히[He's]스토리'라는 주제로 진행된 이번 강연은 최삼하 교수 개인의 경험과 역사적 사실을 인용해 게임의 전체적 역사를 조명하는 형태로 이뤄졌다.

최삼하 교수는 "게임은 저에게 역사입니다"라는 말로 강연을 시작했다. 어린 시절 최삼하 교수는 굉장히 불우한 환경에 처해 있었다. 단칸방에서 동생과 둘만 남아 시간을 보내야 했던 그에게 희망을 준 게임이 바로 보드게임인 '부루마불'. 그는 부루마불 속 세계를 돌아다니는 상상을 하며 어린 날 절망이 아닌, 희망을 갖게 되었다고 말했다.


누군가에겐 게임이 그저 장난감이고, 다른 누군가에겐 중독의 대상이며, 또 몇몇 게이머는 게임을 생계의 수단으로 삼지만 게임을 통해 삶의 의미를 얻고 게임 덕분에 삶을 살아가는 이들도 분명 있다는 것. 그리고 최삼하 교수 본인 또한 이렇게 삶의 의미를 얻은 이라는 사실이 이번 강연의 배경이었다.

본격적인 강연의 시작에서, 최삼하 교수는 '유발 하라리'의 말을 인용했다. "호모 사피엔스가 여러 인류 중 살아남을 수 있었던 힘의 원천은 '거짓말'이다"라는 말. 인류는 자신이 처한 현실과 다른, 그 이상을 표현하고 생각할 수 있는 존재였으며, 이 거짓말을 현실로 구현하는 과정을 통해 발전해왔다. 그리고, 그 정점에 '게임'이 있다.


인류 최초의 비디오 게임인 '테니스 포 투'는 둥근 오실로스코프 화면에서 구현된 간단한 아날로그 게임이다. '테니스 포 투'를 개발한 '윌리엄 히긴보섬(William Higinbotham' 박사가 게임을 개발한 동기는 '인류의 행복'이었다. 오늘날 게임이 사회 전반에 영향을 주면서 게임에 대한 부정적 인식도 늘어나고
있지만, 어디까지나 게임의 최초 개발 동기는 단순히 인류의 행복에 있었다.

'윌리엄 히긴보섬' 박사는 맨해튼 프로젝트의 일원으로, 원자폭탄 개발에 참여했다. 이후, 일본에 투하된 두 발의 원자폭탄에 어마어마한 인명 피해가 나는 것을 본 히긴보섬 박사는 인류의 행복을 위해 자신의 지식을 활용하기로 마음먹었고, 이 결과물이 최초의 게임인 '테니스 포 투'였다.

▲ '테니스 포 투'를 개발한 윌리엄 히긴보섬 박사

이후, 컴퓨터와 게임은 급격하게 발달했다. 1942년, '애니악'이 개발되면서 아날로그에 머물러 있던 시대의 초침이 디지털로 급격히 넘어갔고, 20년 후엔 최초의 컴퓨터 게임인 '스페이스 워'가 개발되었다. 그리고 20년이 더 지난 1982년에 이르러, 인류는 수많은 게임들을 만들어냈고, 이런 게임들은 흔히 '오락실'이라 부르는 아케이드에 배치되었다.

그 와중 '마그나복스 오디세이'라는 최초의 콘솔이 등장하면서, 게임의 헤게모니는 아케이드가 아닌 가정, 즉 집 안으로 옮겨지게 되고, 이후 20년이 더 지나 '인터넷' 기술이 본격적으로 도입되기 시작하면서 게임은 오늘날과 가까운 형태로 바뀌어 갔다.

▲ 최초의 상용화 콘솔인 '마그나복스 오디세이'

인터넷이 한국에 상륙하던 시기 만들어진 상징적인 게임이 1994년 서비스를 시작한 '단군의 땅'. 텍스트 기반의 머드(MUD, Multi User Dungeon)게임이었다. 그리고 여기서 한 단계 더 나아가, 그래픽 비주얼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만든 게임이 오늘날도 서비스되고 있는 '바람의 나라'다.

'바람의 나라'는 최초의 그래픽 온라인 게임은 아니다. 그보다 5년 앞선 '네버윈터 나이츠'가 최초이기 때문. 하지만 바람의 나라의 의미는 굉장히 큰데, 바람의 나라 덕분에 국내 IT산업의 서버 기술은 엄청난 속도로 발전했다. 우리나라가 한동안 '온라인 게임 강국'이 된 이유는 그래픽이나 게임 시스템 때문이 아닌 '서버 기술' 덕분인 셈이다.

▲ 바람의 나라와 리니지 개발 과정에서 국내 개발자들은 높은 수준의 '서버 기술'을 구축하게 되었다.

이와 동시에 그래픽 분야에서는 '이드소프트(Id Soft)'의 '존 카맥'이 실시간으로 기술 단계를 끌어올리고 있었다. 1992년, '울펜슈타인 3D'로 세상을 놀라게 한 존 카맥은 이후 '둠', '둠2', '퀘이크'를 연달아 개발하며 2D와 아이소메트릭에 머물던 당시의 게임 그래픽을 3차원으로 옮겼다.

그 끝이라 할 수 있는 오늘날의 엔진 기술로 만든 비주얼은 실사와 구별이 어려운 수준에 이른다. 여기서 한 걸음 더 나간 것이 'VR' 기술. 아직은 개발의 여지가 많이 남아 있지만, 오늘날의 VR게임은 충분히 충격을 안겨줄 정도의 수준에 이르렀다.

▲ 게임 씬에서 누구나 인정하는 천재인 '존 카맥'

게임의 역사에 대한 강연을 끝낸 최삼하 교수는 '미래'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했다. 4차 산업혁명, AI와 5G 기술의 발달, 그리고 그 이후에는 무엇이 있을까? 최삼하 교수는 이를 '메타버스'라는 단어로 정의했다. 최삼하 교수는 얼마 전, 페이스북의 CEO인 마크 저커버그가 발표한 '호라이즌'을 통해 메타버스의 개념을 설명했다. 단말기에 의존하는 네트워크를 넘어, 각 개인이 가상의 세계 속 일원이 되어 살아가는 세상이 '메타버스'의 개념이다.


최삼하 교수는 강연의 마지막에 한 번 더 게임의 정의를 정리했다. 강연 초입에 말했던 '거짓'을 현실로 만들기 위한 과정이 곧 '게임'이라는 것. 최삼하 교수는 이를 한 번 더 강조하며, 강연을 마무리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