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e스포츠에 인생과 열정을 투자한 남자 김동준

대한민국에 e스포츠 시대가 열린지도 어느덧 십 수년이 흘렀다. 그동안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시간과 열정이 게임 속에 담겼던 것일까. 수많은 프로게이머 선수들과 관계자들, 그리고 팬들 덕분에 우리는 새로운 문화를 만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한편에는 e스포츠의 맛깔 나는 양념과도 같은 존재, '게임 중계진'들이 있었다.


자타 공인 최상위 하드코어 게이머. 스타크래프트 프로게이머 출신. MBC게임 스타리그 및 워크래프트3 전문 해설자. 명쾌한 말솜씨와 핵심을 짚어내는 게임 분석력이 일품. 잘생긴 외모는 덤. 김동준 해설위원하면 늘상 따라다니는 수식어들이다. 그리고 이 수식어들에는 e스포츠인 김동준의 인생과 열정이 담겨 있다. 더불어 그가 게임계 명 해설자로 회자되는 이유가 숨어 있기도 하다. 인생의 크고 작은 진통을 이겨내며 그는 10년이란 세월을 묵묵히 게임 방송과 함께해 왔다.






절기상으로 입춘이 훌쩍 지났는데도 수은주가 좀처럼 올라가지 않던 3월의 어느 날. 평소 꼭 한번 대면하고 싶었던 그를 서울 강남역에서 만났다. 베이지색 마이에 타이트한 스키니 진를 입은 그가 카페로 들어온 순간 상쾌한 봄기운이 느껴졌다. 제2의 게임 해설 커리어를 맞이하는 기대감, 기분 좋은 설렘이 추위에 잠깐 길 잃은 봄을 함께 데려온 모양이다.


인벤과의 정식 인터뷰는 처음이었던 김동준 해설위원. MBC 게임에서 온게임넷으로 소속을 옮긴 이후 수개월 만이다. 인터뷰 시작 전부터 화려한 입담을 선보였던 그는 '부담없이 편한 대화를 나누고 싶다'고 했다. 그리고는 살아온 인생의 발자취를 묻는 기자의 질문에 '김동준의 과거 타임 머신' 속으로 꺼리낌 없이 기자를 초대했다.




▲ 서울 강남역 모 카페에서 만난 온게임넷 김동준 해설위원




#2 김동준의 과거 속으로 - 게임과 더불어 살아온 31년 인생

"어린 시절 게임 관련 직업을 갖게 되리라고는 전혀 생각지 못했어요. 학창 시절 학업 성적도 좋은 편이었기에 카리스마 있는 사업가가 막연한 꿈이었죠. 게임을 좋아했지만 게임은 어디까지나 즐거운 취미활동이었을 뿐, 훗날 프로게이머가 및 해설자가 될 줄은 몰랐습니다."


어린 시절 게임이 직업이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는 김동준 해설. 아케이드 대전게임으로 시작된 그의 게임 인생은 '삼국지3'와 '대항해시대'를 계기로 PC 쪽으로 전환기를 맞게 된다. 나아가 하이텔 모플리, 게오동 동호회에 가입하면서 미래 진로가 본격적으로 달라지기 시작했다. 당시 유명세를 떨치던 하이텔 모플리와 게오동에서 실력을 인정받았고, 스스로도 게임에 재능이 있다는 확신을 하게 되었다.


"하이텔 동호회에 가입하게 된 계기는 당시 유행하던 RTS 게임 '워크래프트2' 때문이었어요. 워크래프트2를 통해 멀티플레이에 본격적으로 눈을 뜨게 되었죠. 다양한 동호회 멤버들과 멀티플레이를 즐기며 RTS의 묘미에 푹 빠졌습니다."




▲ 지금은 빛바랜 추억이 되어버린 게임 워크래프트2.
그러나 김동준 해설의 게임 인생에 있어서 이 게임은 빼놓을 수 없다.



전화선 모뎀을 연결해 멀티플레이를 즐기던 그 시절. 워크래프트2 덕분에 김동준 해설의 집으로는 매달 수십만원의 전화비가 청구되었다. 격분하신 아버지는 컴퓨터를 강제로 압수하는 특단의 조치를 취하기에 이른다. 나아가 "앞으로 게임 하지마라"는 어명이 떨어지기도 했다.


"이 사건을 계기로 부모님께 앞으로 게임을 하지 않겠다고 선언했어요. 하지만 그로부터 열흘 뒤 PC를 재구입 했습니다. 제 인생에서 게임은 뗄래야 뗄 수 없는 존재인가봐요." (웃음)


게임을 두고 부모님과의 갈등이 극에 달했던 시기. 그러나 그는 결코 게임을 손에서 놓지 않았다. 오히려 게임을 통해 자신의 재능을 살려보겠다는 결심을 하기에 이른다.




#3 스타크래프트 프로게이머로 데뷔, e스포츠에 본격적으로 합류하다.





때는 바야흐로 1998년 3월. 국내 e스포츠계의 조상이자 PC방 문화의 아버지로 칭송받는 스타크래프트가 출시되었다. 게임 마니아였던 김동준에게 스타크래프트의 등장은 신선한 충격 그 자체였다. 당시 한양대학교 근처 모 PC방을 즐겨 찾던 그는 매일 밤 스타크래프트 삼매경에 빠져들었다. 아케이드 게임 시절부터 친분을 쌓았던 형들과 줄곧 밤을 세우는 건 예삿일.


투자한 시간과 노력에 비례해 그의 스타크래프트 실력은 진일보를 거듭해 나갔다. 각종 스타크래프트 대회에서 수차례 입상 경력을 올리며 승승장구했고, 스스로도 불타는 자신감에 휩싸여 있었다. 한 마디로 질풍노도의 시기였던 것이다.


"지금까지 인생을 살면서 그 시절이 가장 행복했던 것 같아요. 당시 하이텔에서 KPGL이라는 스타크래프트 대회가 성행했는데 1등 상금이 50만원, 부상으로 3박 4일 싱가폴 여행권이 주어졌었어요. 2회 대회 때 준우승을, 4회 때 우승을 거머쥐었는데 이것을 계기로 부모님이 저를 보는 시선이 달라지셨습니다. '아 얘가 단순히 오락이나 하는게 아니라 돈을 벌어오는구나'라며 신기하게 생각하셨죠."


KPGL 리그 우승을 계기로 그의 부모님께서는 아들의 미래에 대해 전폭적인 후원을 아끼지 않았다. 기성 세대들이 흔히 가지고 있는 게임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버리고 기꺼이 그를 지지하기로 결심하신 것이다.


이후 프로게이머 김동준의 행보는 거침없었다. GO팀 소속 (현 CJ 엔투스), [=N2=]Rookie라는 아이디를 사용하며 공격적인 경기 운영으로 '세계 최고의 공격수'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 공식 대회 입상 경력 다수, 1999년 개최된 '제 1회 데이콤 보라넷배 프로게이머 올스타전'에서는 당당히 우승컵을 거머쥐는 영광을 누리기도 했다.






"가장 기억에 남는 대회가 바로 데이콤 보라넷배 올스타전입니다. 당시 우승 상금이 500만원 가량이었던 걸로 기억해요. 이 대회에서 1위를 차지했었는데 당시 교제했던 여자친구도 곁에서 든든한 힘이 되주었으니 정말 남부러울 것이 없었죠. 프로 선수로서 우승이라는 영광도 누렸고 사랑도 쟁취했으니까요. '세상아 다 덤벼라'라고 겁없이 외치고 다녔을만큼 자신감이 넘치던 시기였습니다. (웃음)"


스타크래프트 실력이 초절정에 달했을 때, 그는 세상을 다 가진 듯 행복했다. 당시 김동준 해설의 나이는 19세. 그는 학교와 학원을 오가며 평범하게 살던 또래들과는 확연히 다른 인생을 살고 있었다. 어린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하고 싶은 일을 찾아나서 성공을 거머쥔 것. 그러나 한편으로는 그 시절 훌훌 털어놓지 못했던 고민도 많았다고 했다.


"스타크래프트 실력이 최고조에 이르렀을 때, 다른 게임으로 눈을 돌렸습니다. 게임을 워낙 좋아하다보니 장르 가리지 않고 섭렵하는 편이었거든요. 당시 아케이드 센터에서 유행하던 리듬 액션 게임들. 이를테면 DDR과 펌프, EZ2DJ 같은 게임들도 마니아 수준으로 즐겼습니다. 뒤늦게 버추어파이터에도 흥미가 붙어 삼매경에 빠지기도 했고요."


"아마도 그 때부터였을겁니다. 다양한 게임을 즐기다보니 선수 본연으로서의 기량은 점차 떨어지기 시작했죠."

"아쉬웠던 대회라 한다면 '99 코리아 오픈'입니다. 당시 국기봉 선수에게 패배해서 탈락했는데 대진표 상 국기봉 선수만 꺾으면 결승까지 갈 가능성이 충분했습니다. 로스트템플 6시 저주에 걸리지만 않았더라면! (웃음) 연습한만큼 기량을 펼치지 못해 굉장히 아쉬웠던 대회였어요."





▲ 이제는 추억이 되어버린 99 프로게이머 코리아 오픈.
김동준 해설은 이 대회가 가장 아쉬웠다고 회상했다.



선수로서의 기량이 하락되고 있음을 피부로 느낀 그는 극심한 슬럼프에 빠지게 된다. 프로게이머들의 공통된 애환인 성적에 대한 부담감, 자신감 상실에서 비롯된 극도의 정신적 스트레스에 시달렸다. 스스로를 깨지기 쉬운 유리와도 같은 존재, 섬세하고 예민한 스타일이라 평했던 그는 '한 번 무너지면 주체하지 못하는 스타일'이라고 고백했다. 그래서 프로게이머로서의 기량이 저하되어가던 이 시기가 가장 힘들었다고.




#4 프로게이머에서 게임 해설자로, 제 2의 인생을 맞이한 김동준

스타크래프트가 뜨거운 붐을 일으킬 당시. 그 시절 하이텔에서는 전략 전술에 대한 토론이 유행이었다. 김동준 해설은 해외 유명 고수들과의 경기를 치른 뒤 소감 및 후기 작성하기를 즐겼는데, 그 때 그가 작성한 글을 관심있게 지켜보던 이가 있었으니 바로 MBC 게임 장재혁 PD다.


"온게임넷에서 모 게임 해설을 맡던 시절, MBC게임 장재혁 PD님에게 스카웃 제의가 왔습니다. MBC 스타리그 해설을 맡아보지 않겠느냐고. 스타크래프트 프로게이머로 살아온 인생, 방송쪽에도 관심이 있었기에 흔쾌히 수락했죠."


MBC게임과 인연이 닿은 김동준은 그렇게 프로게이머에서 게임 방송인으로 전직을(?) 하게 된다. 이후 새롭게 맞이하게 된 제 2의 전성기. 그는 이승원 해설, 김철민 캐스터와 더불어 MBC게임 스타리그 간판 해설자로 무한한 활약을 펼친다.




▲ 한 시대를 풍미했던 MBC게임 중계진 3인방
(좌측부터 김동준 해설, 김철민 캐스터, 이승원 해설)



한편 김동준이 MBC게임 스타리그 해설자로 한창 주가를 올리던 즈음. 워크래프트2의 정식 후속작인 워크래프트3 가 출시되어 e스포츠계에 새로운 바람을 불러일으켰다. 그리고 스타리그를 통해 능력을 검증받은 그는 스타리그와 더불어 워크래프트3 프라임 리그라는 새로운 기회를 움켜쥐게 된다.


"개인적으로 워크래프트3 해설 당시가 해설자로서의 역량이 절정에 이르렀을 때가 아닌가 싶어요. 다수의 워크래프트3 프로게이머들로 구성된 rex클랜에서 활동하며 선수들 못지않게 게임도 정말 많이 했습니다. 재영이형과 (장재영 해설) 현주 누나 (이현주 캐스터) 와도 호흡이 잘 맞았고요."


"이후에는 다들 아시겠지만 맵조작이라는 불미스러운 사건이 벌어졌습니다. 그 결과로 리그가 갑작스레 종료되었죠. 워크래프트3에 깊은 애정을 가지고 있던 게이머로서 상당히 안타까웠지만 어쩔수 없었어요. 그 사건을 계기로 워크래프트3는 그만두게 되었습니다. 더 이상 하고 싶지도 않았고요."






오랜 시간이 흘러 2009년이 되었고 김동준 해설에게는 절체절명의 위기가(?) 찾아온다. 대한민국 남자라면 피할 수 없는 숙명. 게임 해설자로서의 활동을 접고 군대에 입대해야 하는 순간을 직면하게 된 것. 군대 시절을 조용히 회상하던 김동준 해설은 순간 얼굴에서 웃음기가 사라졌다. 그리고 한참을 들여 당시 MBC게임과 얽혔던 트러블에 대한 정황을 솔직하게 밝혔다.


"본래 10월쯤 군대에 입대할 계획이었습니다. 제가 군복무로 자리를 비우게 되면 프로게이머 강민 선수가 제 자리를 대신할 예정이었죠. 문제는 군복무가 연기되면서 발생했어요. MBC게임 측에서는 강민이라는 좋은 커리어를 지닌 선수(해설자)를 어떻게든 영입할 계획이었고, 입대가 연기된 저는 허공에 붕 뜨게 된거죠. 저도 사람인지라 당시 MBC게임측과 강민 선수에게 섭섭했습니다. 실망감도 조금 들었고요."


10년 가까이 일해온 일터에 대한 허무함이 가슴을 죄어오는 순간이었다. 이후 김동준 해설에게는 군입대 전까지 6개월 가량의 공백이 있었다.


"그 때는 몰랐었는데 지금 돌이켜보면 그 당시 한 가지 실수를 했어요. 내 일터, 내 직장에서 좀 더 현명하게 대처하지 못했다는 점이죠. 사회생활 할 때 상당히 중요한 부분인데 말이에요. 스스로를 좀 더 어필하고, 내 편이 되어줄 수 있는 사람들과 보다 밀접한 관계를 맺었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습니다. 그냥 순수하게 게임이 좋아서 선택한 직업이었을 뿐, 사회의 쓴 맛? 이런 것들은 잘 몰랐던 나이였으니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e스포츠계는 그에 대한 애정을 버리지 않았다. 전역 후 곰티비와 온게임넷, MBC게임 세 방송사가 김동준 해설에게 러브콜을 보냈다. 물론 그의 선택은 고향과도 같은 MBC게임. 그러나 오랜 공백기 이후의 방송 적응은 생각처럼 녹록치 않았으니.


"2년 4개월 가량 공백이 있다보니 전역 후 방송일에 적응하기가 쉽지 않더라고요. 해설자로서의 게임 분석력과 전반적인 기량도 많이 떨어진 상태였어요. 일부에서는 '김동준 군대 갔다 오더니 한물 갔네'라는 소리도 들리더군요. 사실 저에게는 그 말이 크나큰 상처로 다가왔고 정신적으로 많이 지쳤던 시기였습니다."




#5 MBC게임 스타 해설자에서 온게임넷 LoL 해설자로의 여정




청천벽력과도 같은 소식이었다. 2001년 Gembc라는 이름으로 개국했던 MBC 게임이 폐지된 것은. 2011년 11월 e스포츠 메이저 방송사였던 MBC게임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고 MBC 뮤직이 그 자리를 대신하게 되었다. 한 순간에 몸과 마음의 안식처를 잃은 MBC게임 관계자들은 혼돈의 소용돌이 속으로 빠져들게 된다.

"설마...설마...했는데 그런 일이 실제로 일어났죠."

"소문은 있었지만 PD님들도 설마 했었어요. '앞으로 우린 잘 해 나갈 수 있다'는 신념도 충만했었구요. 몸을 던져 탑승한 열차는 절벽으로 향했고 그 끝에는 낭떠러지가 있었죠. 군대 전역 후 저에게 주어진 6개월의 시한부 인생. 말로 표현 못 할 정도로 착잡했어요. 오죽했으면 작년 한 해 동안 마신 술이 31년 인생 살면서 마신 술보다 더 많을 겁니다."


"게임 해설자로 활동하며 저만의 꿈이 있었습니다. 나이 먹어서 40살, 50살이 되어도 선수들과 술잔 기울이며 그 속에 게임 추억을 담아보고 싶다는 소망. '아 그 때 그 게임, 그 경기 정말 재미있었지'라며 게이머들 및 선수들과 웃음꽃을 피울 수 있는 그런 이상적인 모습 말이에요. 게임 해설자로서 늘 그런 환상을 가슴 속에 간직하고 있었는데, 쓰디쓴 현실에 부딪히게 된거죠. '이제 달콤한 꿈은 그만 꾸고 세상에 눈을 떠라'라고 말해줬던 현실이 바로 MBC 게임의 폐지였습니다."




▲ 당시 김동준 해설이 자신의 트위터에 남겼던 글. 안타까움이 녹아들어있다.



MBC게임 폐지 이후 김동준 해설은 선뜻 향후 거처를 정하지 못했다. 세 곳의 스카웃 제의 중 다른 두 방송사를 거절하고 주저없이 MBC게임을 택했던 그이기에 심경이 편치 않았을 터. 솔직히 밝히자면 MBC게임 폐지되었으니 이제와서 받아달라고 하는 것도 구차해 보였다고.


"원체 성격이 먼저 가서 비비고 아쉬운 소리 잘 못하고 그래요. 그래도 다행이었던 것은 온게임넷측에서 저를 필요로 했다는 점이죠. 덕분에 지금은 온게임넷 LoL 리그 해설을 맡아 즐겁게 일하고 있습니다."


온게임넷 이직 후 제 2의 전성기를 펼치고 싶다던 김동준 해설. 그는 LoL 리그를 함께 진행하는 엄재경 해설과 전용준 캐스터에 대한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말이 나왔으니 하는 말인데 형들에게 진심으로 감사한 점이 있어요. 너 요즘 정말 잘하고 있다고 매번 격려를 아끼지 않으십니다. 사실 그동안 잦은 실수도 많았었는데 말이죠. (웃음) 김동준이란 캐릭터는 자신감으로 먹고사는 캐릭터. 두 형님들께서 저에게 풍부한 자신감을 불어넣어 주셨습니다. 덕분에 온게임넷에서 무사히 적응할 수 있었다고 봐요."


사실 그는 엄재경 해설과 전용준 캐스터에 대한 막연한 동경심도 가지고 있었다. 언젠가는 그들과 나란히 앉아 게임 해설을 해보고 싶다는 염원. 그리고 그런 바람이 현실로 이루어진 지금, 그 어느 때보다도 만족스럽고 행복하다고 했다.




▲ 엄재경 해설, 전용준 캐스터와 호흡을 맞추게 된 김동준 해설.
그는 어느 때보다도 만족스럽고 행복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



한편 인터뷰 과정에서 훈훈한 이야기만 공개되어서는 식상한 법.(?) 선뜻 답변하지 못할 것 같은 질문을 던진 뒤 김동준 해설의 반응을 살폈다. 온게임넷 이직 후 겪었던 애로 사항이나 회사에 대해 말 못할 불만 등은 없었느냐고. 매체와의 공식 인터뷰이기에 당연히 '없다'라고 말할 줄 알았건만 김동준 특유의 유쾌하면서도 솔직담백한 답변이 이어진다.

"MBC게임 시절보다 방송량이 적다보니 수입이 많이 줄었습니다. "(웃음)

"농담이구요. (웃음) 온게임넷 이직 후 놀랐던 것이 하나 있어요. 온게임넷 관계자들은 e스포츠에 대한 애정과 책임감이 투철해 보였다는 것. 솔직히 말하자면 MBC게임 시절에는 그런 분 절반, 그렇지 않은 분 절반이었거든요. e스포츠에 열정도 애정도 없는 모 관계자를 보고 충격 받았던 적도 있습니다. 물론 저와 함께 일했던 분들은 지칭하는건 절대 아니고요 (웃음)"





#6 이제는 스타크래프트가 아닌 LoL이다! 도전의 기로에 선 김동준

김동준 해설은 최근 개최된 온게임넷 LoL 정규리그 해설을 맡았다. 스타리그에서 LoL로의 중요한 전환점에 선 그이기에 수많은 고민이 뇌리를 스쳐간다고. 스스로 선택한 LoL, 고심 끝의 결정인만큼 그에게 있어 LoL은 새로운 도전이다.


"LoL 중계를 맡으며 '무모한 선택을 하는 것은 아닌지' 불안감이 엄습해 오기도 했습니다. 저에게 있어 LoL은 새로운 도전이라고 생각해요. 동접이 얼마이고 e스포츠 흥행 가능성은 어느 정도이고 이런건 중요치 않습니다. 개인적으로 재미있게 했던 게임이고, 재미있게 즐긴 게임을 해설할 수 있는 기회가 왔기에 잡은 것이죠."


재미있게 즐긴 게임은 꼭 한번 해설을 해봐야 직성이 풀린다는 김동준 해설. 그는 LoL 해설자로 거듭나게 된 소감을 밝히며 월드오브워크래프트에 대한 언급도 빼놓지 않았다. 와우는 기존 MMO와 차별화된 매력을 갖추었음에도 불구하고 MMO 자체를 폐인게임으로 몰아가는 세태가 안타깝다고. 그래서 와우를 열정적으로 플레이하던 시절 팬들에게 혼이 나기도 했단다.


"사실 와우를 언급했던 것은 LoL 해설을 결심하게 된 배경에 와우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개인적으로 열정을 가지고 했던 게임들은 모두 해설해 본 경험이 있는데, 유일하게 와우만 못해봤거든요. 이같은 아쉬움을 두 번 느끼고 싶지 않았어요. 그래서 LoL 해설 제의가 왔을 때 OK를 한 것이고요. 기회를 잡은만큼 앞으로 잘해야겠다는 책임감을 가지고 있습니다."






김동준 해설은 어떤 게임이던지 한 번 빠지면 끝을 보는 성격이다. 그의 사전에 대충 플레이하다 적당히 그만둔 게임은 없다. 스타크래프트와 워크래프트 시리즈를 거쳐 와우에 이르기까지. 모든 게임에서 최상위권을 유지했을 정도로 하드코어 게이머인 그가 LoL에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는 무엇이엇을까.


"본래 주된 관심사는 스타크래프트2였습니다. LoL보다는 스타크래프트2를 더 좋아했죠. 다만 기대와 관심 속에서 출시된 스타크래프트2가 예상외로 삐걱되다보니 시선이 자연스럽게 LoL 로 가더라고요. 평소 LoL에 대한 입소문을 많이 들었던 상태였으니까요. 게임 관계자들 사이에서 서로가 서로에게 추천해주는 분위기였어요. 정말 재미있으니 꼭 한 번 해보라고. 처음에는 안 해! 안 해! 고집 피웠는데 (웃음) 직접 해보니 너무 재미있었습니다. 순간 몰입해서 푹 빠지게 되었죠."


소환사의 협곡에 첫 발을 내딛었던 바로 그 순간. 김동준 해설 내면에 잠들어 있던 특유의 승부 근성과 게이머로서의 열정이 재가동되기 시작했다. 그 때부터 그는 LoL 유명 플레이어들의 영상을 탐독하고 , 다양한 챔피온들을 철저히 연구하기에 이른다. LoL 해설을 염두에 둔 것이 아닌 순수하게 재미있었기에 스스로 자행한 일. 그러나 한편으로 이제는 LoL 유저이기에 앞서 해설자인만큼 게임보다는 해설에 집중할 것이라는 말을 덧붙였다.


"사실 LoL 유저라면 누구나 랭크 게임에서 높은 점수에 오르고 싶은 욕심이 있을 겁니다. 저 역시 마찬가지였고요. 하지만 게임을 즐기던 어느 순간. 불현듯 LoL 실력이 해설 능력과 직결되는 것은 아니라는 결론이 섰습니다. 스타크래프트같은 RTS 장르는 해설자 본인이 게임을 제대로 이해해야 깊이있는 해설이 가능했지만, LoL은 장르가 다릅니다. 앞으로 게임 플레이 시간보다는 선수들과 많은 대화를 나누는데 치중할 계획이에요. 질 높은 해설 보여드릴 것을 약속드립니다."




#7 게임을 사랑하는 남자 김동준의 LoL 이야기 속으로





김동준 해설의 과거 발자취를 경청한 지 약 1시간이 흘렀을까. 그의 거침없는 말솜씨에 감탄을 자아냈던 기자는 그제서야 준비해온 LoL관련 QA를 꺼내들었다. 자타 공인 열혈 게이머에게서 LoL 게임 이야기를 들어보지 않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평소 기자 역시 LoL을 꾸준히 즐겨왔던 터. 역시나 가장 먼저 묻고 싶었던 것은 선호하는 챔피언, 나아가 김동준 해설의 LoL 실력이었다.


"팀 파이트 위주의 캐릭터보다는 베인, 리븐, 피오라 등 솔로 랭크형 캐릭터를 좋아해요. 가장 많이 플레이했던 챔피언은 베인이죠. 거듭되는 너프를 맞보았기에 최근에는 노말에서만 하는 중이구요. (웃음)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베인 같은 캐릭터가 떠야 한다고 보는데, 조금 강하다 싶으면 바로 칼질을 당하니 무척이나 안타까워요."


"사실 최근 열렸던 온게임넷 이벤트전에서도 베인을 픽하고 싶었어요. 헌데 관계자들끼리는 서로의 주력 챔피언을 다 알고 있는 상황, 엄재경 해설이 즐겨하는 애쉬가 밴 당하자 베인도 가차없이 잘려나가더군요. (웃음) 어쩔 수 없이 그레이브즈를 선택했는데 게임이 잘 풀려서 즐겁게 임할 수 있었습니다."

"아 맞다! 베인도 베인이지만 미스 포츈도 좋아합니다. 이유요? 그녀의 마피아 복장을 외면할 수 없었죠." (웃음)





▲ 스킨 덕분에 미스 포츈을 플레이한다던 김동준 해설 - 남자들은 공감 되는(?)



"한편 랭크 점수 같은 경우는 평균 1600점 정도 유지하고 있어요. 최대 1700점까지 올라가봤는데 이후 점수가 오르락내리락 하다 현재는 고정 상태이죠. 최근에는 랭크 게임을 플레이하지 않았고, 한창 일 때는 서포터 캐릭터를 즐겼습니다."


김동준 해설은 선수들과 심도있는 대화를 나누는 해설자로도 알려져 있다. LoL 해설자로서 챔피언 상성 관계 파악은 기본 중에 기본, 다만 선수들마다 의견이 다를 때가 많아 결론에 도달하기 어려울 때가 많았다고 했다.


"선수들과 만나면 챔피언에 대한 대화가 주를 이루죠. LoL에는 100명에 육박하는 챔피언이 존재하는데 깊이 있는 해설을 위해서는 모든 챔피언을 완벽하게 알고 있어야 하니까요. 다만 선수들 개개인 플레이 성향에 따라 의견이 엇갈리는 경우도 종종 있어 헷갈리기도 합니다." (웃음)


"챔피언 뿐만 아니라 전략이나 운영에 대한 선수들의 의견도 새겨 듣습니다. 이를테면 화제로 떠오른 M5 팀이 이런 전략을 선보였는데 직접 보니 어떻더라 라는 이야기들. 평소 MIG, 나진 선수들과 많은 이야기를 나눠요. 특히 나진의 막눈 선수와는 친분이 있는 사이라 1시간 가까이 전화 통화를 한 적도 두어번 있어요.


무슨 이야기 나눴냐고요? 국가대표 선발전 및 e스포츠 업계에 대한 고민, 개인적인 하소연 등이었죠. 통화하다 보니 서로 말이 많아지더라고요. (웃음) '왜 라인이 밀리면 불리한가'에 대해 심도있는 토론을 나눴던 기억도 문득 생각납니다."





▲ 나진의 에이스 윤하운 (막눈) 선수. (오른쪽) 지난 지스타 당시의 모습



한편 유저들은 무한한 궁금증을 가지고 있기도 하다. 김동준 해설을 포함해 게임 해설자들은 과연 어느 정도의 LoL 실력을 갖추고 있을까 하는 의구심(?). 동료 관계자들 중 최강의 LoL 실력을 자랑하는 해설자는 누구인지, 반대로 게임 센스가 부족하다고 느껴지는 이는 누구인지에 대한 질문도 던져보았다. "음..."이라는 말과 더불어 고민에 빠진 김동준 해설. 이윽고 얼굴에 미소를 머금은 채 답변을 이었다.


"성춘이 형 (임성춘 해설)이 가장 잘해요. 어마어마한 판수를 자랑하는데 아마 2천판 이상 하지 않았나 싶네요. 경험이 많은만큼 랭크 점수도 높은 편이고 주위에서도 잘한다는 평을 듣고 있습니다. 반면 잘 못하는 해설자를 꼽자면 오성균 해설입니다. (웃음) 랭크 1800이라데 도저히 믿기 힘들고 이제는 그냥 솔직한 점수를 공개했으면 좋겠습니다. (웃음)


뜨거운 스포트 라이트 속에서 개최된 '온게임넷 리그오브레전드 챔피언 2012'. e스포츠 아버지격인 스타크래프트 이후 차세대 성장 동력으로 손꼽힌 LoL이기에 관계자들과 팬들의 기대도 크다. LoL 정규리그의 첫 출발선을 돌파한 이번 리그는 지난 21일 첫 방송을 시작으로 5월 19일까지 두 달간의 여정이 펼쳐질 계획. 리그 정식 중계를 맡은 김동준 해설을 통해 이번 리그의 관전 포인트를 물어보았다.


"MIG와 나진의 라이벌 구도에 집중해 경기를 시청하면 재미있을 거에요. 개인적으로도 두 팀의 성적표에 관심이 많거든요. 두 번째로는 기존 e스포츠계에서 이름이 널리 알려진 분들 중 감독으로 전향한 이도 있죠. 선수 출신 감독의 팀이 과연 어디까지 치고 올라갈 수 있을지, 감독으로서의 역량을 지켜보는 것도 흥미로울 것입니다."


" 그리고 어제였던가요. 모 유명 선수에게서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이번 리그 출전 팀 중 누군가 M5 스타일의 기상천외한 전략을 들고 나왔으면 한다는 것이었죠. 그 선수가 말하길, 상대가 M5라도 철저히 깨부술 자신이 있다고 했습니다. 물론 허풍인지 실력인지는 결과를 지켜봐야겠지만요. (웃음) 그 선수가 속한 팀에 큰 기대를 걸고 있습니다.




▲ 매 경기 독특한 전략을 들고나와 완성도 높은 운영을 보여준 러시아의 M5 팀



더불어 그는 아마추어 리그나 하위 리그가 꾸준히 개최되야 LoL이 e스포츠로서 성장세를 지속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아마추어 리그나 하위 리그는 긍정적으로 바라보고 있습니다. 이런 대회들이 꾸준히 오픈되야 아마추어 고수들의 도전 기회가 열리니까요. 그들이 프로가 되어 팬들을 환호하게 만들수 있다면 그것보다 좋은 것이 어디 또 있을까요? 아마추어 분들 중에서도 출중한 실력을 지닌 게이머들이 많아요. 이런 고수들이 적극적으로 대회에 출전해 화제 거리를 만들어줬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평소 국내 LoL 리그뿐만이 아닌 해외 리그도 빠짐없이 챙겨본다는 김동준 해설은 아마추어 리그에 대해서도 많은 관심을 보였다. 게임을 포괄적으로 이해하고 해설자로서 역량을 키우는데는 방송 시청만한 것이 없었다고. 최근 화제로 떠오른 러시아 M5 플레이 영상을 10번 이상 반복 시청했던 그는 "다음 시즌 M5가 한국 리그에 정식 초청되는 짜릿한 상상도 해봤어요" 라며 천진난만한 미소를 짓기도 했다.




▲ M5가 한국에 방문하는 그 날을 고대한다는 김동준 해설.
(기자의 불찰로 훤칠한 실물에 비해 사진이 조금 못 나온 점이 아쉽다.)



김동준 해설의 청산유수와도 같은 말솜씨 덕분에 불꽃 타이핑을 멈추지 않아야 했던 인벤팀, 인터뷰가 막바지에 이르자 준비했던 마지막 질문을 꺼내들기로 했다. "LoL 해설을 진행하며 선수들에게 특별히 바라는 점은 없는지."


"선수들에게 바라는 점이 있다면 프로 의식입니다. 현재 LoL에는 입이 거친 유저들도 많은 것 같아요.

예전에 한창 랭크 게임을 즐길 때 만난 어떤 유저는, 게임이 시작되자마자 거친 언어를 사용하는 모습을 보이더라고요. 깜짝 놀랐죠. 경기에서 패배했다고 멘탈 붕괴를 일으키는 모습은 전혀 멋져 보이지 않거든요. 적어도 이런 모습을 선수들에게서는 보지 않았으면 합니다.

게임 해설자는 보조적인 역할일 뿐, 어디까지나 e스포츠의 주인공은 선수들입니다. '나는 국내 LoL계를 이끌 존재다.' 라는 사명감을 가지고 행동해 주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습니다."









#8 현재보다 미래가 더욱 기대되는 해설자 김동준

장장 2시간 30분에 달하는 인터뷰를 마치고 식사를 하러 간 뒤풀이 자리. 인터뷰 막바지에 으레 하는 질문을 던졌다. 인터뷰 소감 및 앞으로의 목표는 무엇이냐고. 순간 재미있는 답변이 돌아온다.


"제 스타일 자체가 본심을 숨기고 이야기하지 못하는 편이에요. 인터뷰 시 너무 솔직해서 때로는 내 살 깎아먹고 있는게 아닌지 후회했던 적도 있습니다. 앞으로 인생 살면서 뒤통수도 더 맞아보고 그래야 깨닫게 되려나봐요. (웃음) 앞으로의 목표요? 이제는 스타리그 해설자가 아닌 LoL 해설자로서 좋은 모습 보여드리는 것입니다."


그는 유쾌하면서도 솔직담백했다. 또한 진정 게임을 즐기고 사랑할 줄 아는 천상 게이머였다. 각종 아케이드 게임과 함께했던 어린 시절. 스타크래프트 리그 우승 경력 다수. 프로게이머 인생을 거쳐 워크래프트3 전문 해설자가 되기까지. 상위 0.5% 하드코어 와우(WoW) 게이머에서 이제는 리그오브레전드 해설위원으로서 힘찬 비상을 개시했다.


인벤팀이 지극히 사랑하는 하드코어 게이머의 포스가 물씬 풍기던 김동준 해설위원. 그 날의 뒤풀이에서 우리는 순수한 게이머의 시절로 되돌아가 게임 토크 삼매경에 빠져들었다.


"대외적으로 LoL 해설에 전념하기 위해 와우(WoW)를 그만 둔 것으로 알려져있지만, 사실 다른 이유가 하나 또 있어요. 군대를 다녀오니 내가 기억하는 '검투사 Nightsorrow'는 온데간데 없고, 사람들에게 큰 웃음 주는 '개그 캐릭터 Nightsorrow'만 눈 앞에 보이는거에요. 이건 아니다 싶어서 그만두었죠." (웃음)






"한 가지 게임에 몰입하면 결코 라이트하게 즐기지 못하는 편이에요. 극한의 끝을 봐야 직성이 풀리거든요. 이제는 LoL의 끝을 볼 차례입니다. 물론 게이머이기에 앞서 해설자로서 최선을 다하는 것이 우선이겠죠. 모든 걸 걸고 열심히 할 테니 지켜봐주세요."


서너 시간 이야기를 나눈 것만으로 그 사람의 인생을 통째로 가늠할 순 없다. 앞으로 하고 싶은 일이 많은 젊은 나이라면 더더욱. 하지만 게임을 대하는 진지한 자세와 솔직담백한 인생관으로 그 사람의 미래를 기대해 볼 수는 있다. 삶에 대한 욕심도, 게이머로서의 열정도 투철했던 김동준 해설위원은 그런 사람이었다. 지금보다 몇 년 후가 더 기대되는.


앞으로도 다양한 게임을 해설해보고 싶다는 바람을 피력한 그의 게임 방송 인생은 이제부터 시작이다.



▶ 김동준 해설위원이 인벤 가족들에게 전하는 메시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