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대한민국 게임대상을 수상하며 화려하게 게임계에 데뷔를 한 네이비필드라는 타이틀이 있다. 한국을 비롯하여 해외 여러나라에서 상용서비스를 시작했으며, 세계 2차 대전을 배경으로 오로지 해전만을 다룬 첫 번째 타이틀이기도 한 네이비필드는 과거 워게이밍의 '월드오브탱크'에 영감을 준 타이틀로 유명세를 떨치기도 했다.

네이비필드의 속편인 네이비필드 2는 올해 처음으로 일반 유저들에게 공개되었으니, 거의 10년만에 등장하게 된 후속작인 셈이다. 그런데 전작이 있는 게임의 속편은 제작할때 많은 개발자들이 쉽게 빠져들 수 있는 함정이 있다고 한다. 네이비필드2를 제작하면서 어떻게 이런 함정에서 헤어나올 수 있었는지, 정승호 실장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흔히 속편이라고 한다면 영화의 속편과 같이 쉽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영화의 경우 애초에 속편을 염두에 두고 제작되기도 하지만, 게임의 경우에는 전작의 성공 여부에 따라서 속편이 제작된다. 온라인 게임에서도 상당히 다양한 속편이 등장하고 있으며, 많은 게임 개발사들이 현재도 속편을 제작하고 있다. 과연 이렇게 많은 개발사에서 속편을 제작하려고 하는 이유는 과연 무엇일까?" 라는 질문을 던진 정승호 실장은 다음과 같이 말을 이어갔다.

"그 이유는 바로 전작의 경험을 토대로 쉽고 빠른 개발에 대한 생각과 개발사의 한풀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이미 어느정도 성과를 보여준 전작을 가지고 있는 경우 비슷한 타이틀을 만들면 최소한 어느정도 수입을 낼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을 가질 수 있게 해주는 것이다."


보통 속편 제작을 처음 결정했을 경우 기본적으로 전작을 통해서 확보되고 인정받은 숙달된 인력을 회사차원에서 보유하고 있기 때문에 상당히 빠르게 개발을 진행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한다. 게다가 이미 전작을 바탕으로 모아둔 풍부한 자료와 경험, 그리고 전작이라는 강력한 비교 대상이 존재하기 때문에 개발의 속도는 더욱 빨라질 것이라고 예상한다. 하지만 이것이 첫 번째 함정인 것이다.




"저희도 처음에는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다. 숙달된 인력을 가지고 있으니 매우 쉽고 빠르게 제작할 수 있을 것이라고. 하지만 이런 인력들은 예전의 기술로 열심히 노력을 거듭하여 지쳐있었던 인력이었다. 차기작을 위해선 최신의 기술을 습득해야 했으며 더 많은 노력을 필요로 하게 되었다.

풍부하다고 느꼈던 경험에도 함정이 존재했다. 원작이 있기 때문에 그것에 지나치게 익숙해져 있었기 때문이다. 새로운 것을 생각해내야 하는데 분명한 장애가 있었으며, 익숙함을 버릴 수 없다면 자연스럽게 창의력은 떨어지기 마련이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유저들에게 익숙한 것을 버리라고 강요하는 형태로 흘러가게 되었다.

이런 문제는 처음 게임을 선보였을 때 느끼게 되었다. 개발자들 사이에서 이걸 모르면 바보 아냐? 라는 생각을 하게 되는 부분도 처음 접한 유저들이 모를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익숙하다는 점은 빠른 개발속도로 연결될 것이라는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가게 되었다. 게다가 이러한 익숙함은 회사내에 민감한 정치적인 사회성과도 충돌을 일으키게 되었다. 저마다 자신의 정치적인 지분을 찾게 되면서,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 부단히 많은 노력을 들였다고 전했다.

기본적으로 신작에 대한 프로젝트라고 하면 처음부터 열심히 하겠지만, 속편이라는 늪에 빠져서 다들 안이하게 생각했었던 것 같다. 쉽잖아!! 라는 말이 자연스럽게 등장하면서 게임 자체에 대해서도 쉽게 생각하는 경향을 안게되었다고 한다.





"개발자의 한풀이라는 측면에서 속편을 생각하는 것도 큰 함정이었다. 전작을 만들고 서비스하는 동안 쌓였던 불만을 새 프로젝트에서 풀 수 있을 것이라고 단언했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러한 한풀이를 너무 쉽게 생각했다는 점이다. 전작의 단점과 장점을 조금 더 치열하게 분석하고 확인했어야 했다.

하지만, 의도했던 개발 시간이 당겨지면서 이야기는 달라지게 되었다. 구체적으로 어떤 것이 쉬운것인지 뼈대를 잡지 못하고 무조건 전작에서 나쁘다고 느꼈던 점을 바꾸기 시작했다. 세밀한 부분에 대한 신경을 쓰다보니 커다란 뼈대를 미쳐 세우지 못했던 것이다. 매니아 유저들을 생각하지 못하고 무조건 쉽게, 무조건 쾌적한 플레이만 신경썼다. 최소 접속 인원에 대한 고민도 하지 않은채 말이다."



실제로 게임에는 다양한 재미가 존재한다. 어떤 사람에겐 애니팡이 너무나도 재미있게 느껴지지만, 어떤 사람에겐 시드마이어의 문명이 더욱 재미있게 느껴질 수 있으니 말이다. 이러한 차이점과 장점, 단점의 분석없이 디테일한 작업만 강요하는 것이 한풀이 부분에서 나타날 수 있는 큰 함정이라고 한다.


"오랜 충돌과 다양한 시행착오를 거치며 저희가 찾아낸 해답은 바로 비전이라는 것이다. 한풀이의 함정에 빠져서 디테일에 대한 비평을 듣다보면 프로젝트 전체를 바라보는 것에 소홀해질 수 밖에 없다는 것을 알게되었다. 거기에 풍부한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함정과 기존작에 대한 익숙함에서 오는 함정까지 빠지게 된다면 처음 의도했던바와 다르게 시간마저 늘어지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네이비필드2의 비전을 '전략성 넘치는 해전 게임'이라고 세워놓았다. 이 비전 안에서 모든 것을 새롭게 만들자라고 생각했었다. 전작은 유저의 능력에 따라서 격차가 많이 벌어지는 반면, 속편에서는 전략성이 넘치는 해전 게임이라는 비전아래 전략적인 부분을 극대화시키기 시작했다."






이렇게 확고한 비전아래 프로젝트를 진행한다면 확실히 배가 산으로 갈 일은 없을 터. 비전이 확실하게 잡히자 내부의 시스템도 차곡차곡 만들어지기 시작했다고 한다. 개발자의 한풀이 항목중에선 잠수함도 존재했다. 어떤 개발자가 잠수함에는 잠망경으로 보는 것이 바로 로망! 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하지만, 확고한 비전 아래선 고민도 잠시였다. 전략성의 측면에서 1인칭으로 보는 잠수함의 존재는 추구하는 방향과 어울리지 않았다.


"스타크래프트 유닛을 클릭하자 1인칭 시점으로 바뀌는 것과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전략성을 위해서 전작의 직선적인 밸런스를 물고 물리는 모양의 원 형태로 바꾸게 되었다. 예전에는 먼치킨급의 함선이 등장할 수 있었지만, 이제 그러한 일이 불가능했다.

네이비필드2를 제작하는데 걸린 기간은 총 5년이다. 그리고 이중에서 50% 이상의 시간을 앞서서 설명한 함정에서 허우적대고 있었다. 평가와 교육, 그리고 외부 솔루션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며 끊임없는 자기쇄신과 회사내에서 정치를 배제하여 극복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정승호 실장은 속편을 제작한다는 것에서 가장 중요한 점은 '속편이 아닌 신작을 만드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전했다. 알고보면 별거 아닌 이야기일 수 있지만, 이러한 함정은 하루이틀만에 생겨나는 것이 아니라고 한다.

이렇게 별 것아닐수도 있는 진실을 알기까지 수십억의 비용적인 손실과 시간 손실을 감당했다고 전한 정승호 실장은 앞으로 속편을 제작하고자하는 많은 개발사들에게 작은 도움이 되길 원한다며 강의를 마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