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SL 방송 중 경기가 진행되는 때를 제외하고 거의 항상 배경 음악이 흐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방송이 시작할 때부터 선수들이 경기에 들어가기 직전까지. 모든 경기가 끝나고 정리 화면이 나올 때 부터 방송이 끝날 때 까지. 중계진이 멘트를 하는 순간을 제외하고는 계속해서 배경음악이 흐른다.

더욱 놀라운 것은 GSL 시즌마다 손에 꼽힐 정도의 몇 곡을 제외하고는 같은 곡이 사용된 적이 없다는 것이다. 과연 GSL 스탭 롤에 흐르는 음악감독 'BK'는 어떤 사람일지 궁금했다. 과연 이 사람은 어떤 사람이기에 이 세상의 음악을 모두 다 아는 것처럼 시즌마다 다른 음악을 우리에게 들려주는지 궁금해하던 중, BK를 만나 이야기를 나눌 기회를 잡을 수 있었다.

엄청난 포스를 풍길 것만 같았던 BK를 만나러 가는 날. 곰티비 지하카페에 도착해서 주위를 둘러보아도 내가 생각했던 이미지의 'GSL 음악감독'은 보이지 않았다. 대신, 카페에 앉아서 주위를 두리번거리던 중 한 테이블에서 선한 얼굴을 가진 한 남자가 두어 명의 사람들과 음악에 대한 열띤 토론을 벌이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설마 저 사람이?' 하는 기대 반 설렘 반으로 다가가 'BK'가 맞느냐고 물어보았다. 그러자 선한 얼굴을 가진 남자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네. 안녕하세요. 제가 진태민입니다."


Chapter 1. 음악청년 'BK' 진태민, GSL과 만나다.


[ ▲ 곰티비 음악감독을 맡고 있는 'BK' 진태민 ]


진태민 음악감독은 자신을 '곰티비 음악감독 BK 진태민'이라고 소개했다. 그의 닉네임인 BK는 Black Knight의 약자로 그가 즐겨 하는 체스의 검은 나이트를 일컫는 말이라고 한다. 나이트는 그가 가장 좋아하는 체스 말이고, 나이트의 움직임을 이용해 체스 경기에서 이기는 것을 본 친구가 어느 순간부터 그를 BK라고 부르기 시작한 게 닉네임의 유래라고 말했다. 어차피 GSL 해외 커뮤니티에서 진태민이라는 이름보다 BK라는 이름이 외국 팬들이 알기 쉽기에 계속 사용하게 되었다고.

그는 고등학교, 그리고 재수를 하던 시절 시작한 밴드 활동으로 음악을 시작했다. 본격적으로 음악을 하게 된 것은 대학교 시절 아르바이트로 시작한 게임음악 라이브러리 작업이었고, 이러한 과정에서 그는 자신이 음악과 잘 맞는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본격적으로 음악의 세계로 나아갔다.

진태민 음악감독은 그 시기에 주로 게임이나 영화 OST 라이브러리 작업을 맡았는데, 레드문, 라그하임, 운문, 천상비, 무혼, 루시에즈 등의 게임이 그의 손을 거쳤다. 게임 음악 뿐만 아니라 드라마나 영화에 삽입되는 곡들, 심지어 몬테소리나 지니키즈 같은 유아용 음악과 아이레드썬 같은 최면 음악 등, 다양한 작업을 거치며 음악적 깊이를 더해갔지만, 1년에 자잘한 코드 송까지 포함하여 4~500곡을 써 가는 생활에 그는 점차 지쳐가기 시작했다.

"이러다가 정말 몸에 탈 나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잠시라도 쉬는 걸로 결정을 내렸어요. 그래서 이전에 몸담고 있던 회사를 그만두었죠. 정리를 마친 후에 친구랑 술 한잔하고 있을 때 그레텍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이전 회사에 다른일로 연락을 했는데, 제가 회사를 그만두었다는 소식을 듣고 제게 연락하셔서는 '점심이나 먹자.' 라고 하셨죠. 그래서 같이 식사를 하던 중 입사 제의를 받고서 사무실에 놀러 가는 셈 치고 그레텍을 방문했습니다. 사무실 분위기도 좋았고, 이전 회사처럼 일에 치이는 생활을 하지 않아도 되기에 그레텍에 입사하기로 마음을 정했습니다. 벌써 10년 전 이야기네요."

그러나 진태민 음악감독이 몸담고 있던 게임사업부가 정리되고, 그레텍 역시 방송 사업으로 회사의 방향이 전환되자 진태민 음악감독 역시 다시 한 번 자신의 진로에 대한 고민에 빠졌다. 그는 곡을 쓰는 작곡 전문이었지 방송음악에서 필요로 하는 녹음과 믹싱 전문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러던 그가 어떻게 GSL팀에 참여하게 되었을까?

"당시 대표님이 부탁하셨기도 하고, 저 역시 잘 모르는 분야니까 한 번 도전해보자는 마음이 생겼어요. 지금와서 다시 돌이켜보면 GSL은 정말 저에게 재미있는 경험이었죠. 솔직히 이야기하자면 곡을 쓰는 위치에서 곡을 고르고, 믹싱하는 입장으로 바뀌니 예전만큼 일이 많지 않아 제 에너지가 남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다보니 일에 대한 욕심이 다시 나더라고요. 그래서 편곡이나 믹싱에 남는 에너지를 쏟으며 일하다 보니 지금까지 온 거 같습니다."


Chapter 2. Roar부터 Daughters of darkness까지, GSL에 음악이란 옷을 입히다.


[ ▲ GSL의 시작은 트리트의 로어가 장식했다 ]


2010년 9월, 글로벌 스타크래프트2 리그(이하 GSL)오픈시즌이 시작되었다. 한국에서 스타크래프트2로 진행되는 첫 e스포츠 리그 오프닝을 장식한 곡은 트리트(Treat)의 로어(Roar)였다. 국내에서는 크게 알려지지 않은 그룹의 곡이지만 GSL에 사용되면서 스타크래프트2 팬이라면 누구나 아는 노래가 되었다. 그 많고 많은 노래 중에 진태민 음악감독은 왜 트리트의 로어를 시청자들에게 선보인 걸까?

"제가 트리트를 좋아해요(웃음). 좋아하던 밴드가 10년 만에 낸 앨범에 수록된 곡이 로어였고, 스타크래프트2 역시 전작에 이어 약 10년만에 등장한 점에서 공통점을 발견하고 이 곡을 사용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죠.

하지만 단지 10년 만에 새로 나온 곡이라는 이유로 로어를 사용한 건 아니에요. 매일 새로 나온 신보를 듣다 보면서 제 나름대로 음악을 보는 눈이 생겼어요. 음악을 보는 눈이라니 조금 이상한 표현이긴 하지만(웃음). 그 중 수위 이상 올라오는 음반들이 가끔 있습니다. 트리트의 로어는 바로 그런 곡이기도 했거니와, 멜로디와 가사 모두 새로 시작한다는 분위기를 주거든요. '아 이거다!' 하는 느낌이 바로 왔어요."


진태민 음악감독이 Code S 한 시즌을 준비하기 위해 사용하는 곡은 약 3~40곡. Code A나 승격강등전, 팀 리그인 GSTL에서 사용되는 곡은 따로 준비한다고 한다. 추가로 매 시즌 GSL에 삽입되는 영상을 위해 사용하는 곡까지 따지자면 한 시즌을 준비하기 위해 수천 곡의 노래를 듣는 셈이다.

"아. 물론 결승전은 제외한 숫자입니다." 결승전 하루를 준비하기 위해 들어보는 곡이 얼마나 될까. 많아 봐야 100곡? 나의 이런 생각은 바로 깨지고 말았다. "결승전을 준비하기 위해 1차로 선별한 곡이 2천 곡 정도 됩니다. 그 중에 50곡 정도를 선정해서 결승전 당일에 사용하죠. 이걸 시간으로 계산하면 엄청나요. 주위에 같이 일하는 친구들은 '진태민 음악감독 1, 2, 3호가 나누어서 음악을 듣고 결승전 전날 합체한다'는 농담도 합니다(웃음)."

결승전 단 하루 이벤트를 위해 이천여 곡 가까이 듣는다는 진태민 음악감독은 아이튠즈나 아마존 등을 이용해 음반을 구매한다. 그러나 전 세계에서 사랑받는 GSL답게 음반 판매사나 밴드들이 직접 자신의 신보를 보내주는 일도 많다고. 진태민 음악감독은 이러한 일들이 자신에게 일할 에너지를 준다고 말했다.

"유럽, 아메리카, 아프리카 같은 곳에서 내게 '꼭 내 음악이 GSL에 나왔으면 좋겠다'며 보내주는 앨범들은 꼭 다 들어봅니다. 그리고 큰 밴드가 아닐수록 신보를 보내주면 재편곡, 리믹스 등의 과정을 거쳐서라도 방송에 내보내어 소개해주고 싶은 마음이 큽니다. GSL의 스타일을 보고 자신들의 음악이 어울리겠다고 생각해서 보내주는, 이런 일들이 제게 큰 재미이자 힘이 되는 거죠."

진태민 음악감독은 GSL을 좋아하는 밴드나 뮤지션들이라면 유명 뮤지션, 차고 밴드 가리지 않고 모두 들어보고, 좋은 곡이라면 재편곡이나 리믹싱을 진행한다고. 그러나 진태민 음악감독 자기 마음대로 작업을 진행할 수 있는 건 아니라고 이야기했다.

[ ▲ 자신의 작업실을 소개하는 진태민 음악감독. 그의 모든 마법은 이곳에서 시작된다 ]


"한국에 발매되지 않거나, 아직 한국 시장진입을 하지 않은 곡들이라면 회사 법무팀을 통해 저작권 관련 문제를 해결하고 방송에 내 보냅니다. 그러나 편곡이나 리믹싱은 꼭 밴드들과의 협의를 거친 후 진행합니다. 예를 들어 로어같은 경우 그 노래는 트리트의 곡이기 때문에 트리트가 가장 잘 알고 저는 GSL에 어떤 음악이 들어가야 좋을지 가장 잘 아는 사람입니다. GSL이라는 쇼를 위해 전체 음악을 조율하는 위치에서 보자면 '이 음악은 지금 이런 색을 가지고 있지만, 이런 효과를 주면 우리 쇼에 어울리겠다' 같은 생각이 드는 거죠. 제가 편곡하려는 곡에 대한 생각을 밴드와 교환합니다.

이런 작업이 마치 패션쇼 같아요. '너는 이 부분이 장점이니까 이 옷을 입고 워킹하고, 너는 너 자체로도 예쁘니까 이정도 악세사리만 차고 나가라'와 같은 맥락일까요?

편곡할 때에는 '이 곡이 어떤 상황에서 나간다면 이 부분을 살려주는 게 좋겠다.'라는 생각을 미리 하고 진행합니다. 예를 들어, 결승전 경기 리드 곡이라면 많은 사람이 환호하면서 자신이 좋아하는 선수를 응원하는 상황에서 나가야 하는 곡이죠. 이런 부분에서 헤일스톰(Halestorm)의 도터 오브 다크니스(Daughters of darkness) 전주 부분이 정말 잘 어울리겠다고 생각하고 오케스트라 편곡을 하기도 했습니다. 상황에 맞춰서 곡의 느낌을 뿜어내려고 노력하는 거죠.

그래도 많은 밴드가 GSL에 관심을 가져주니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독일의 한 밴드는 리믹스 하는 데 도움이 되라고 아예 곡 소스를 다 보내준 적도 있어요. 많은 이의 도움을 받다 보면 가끔 제가 GSL이라는 이름의 기관차를 탄 듯한 느낌이 듭니다. '이제 이 일을 멈출 수가 없구나!'하는 생각도 들어요(웃음)."


여기서 생긴 궁금증 하나. 한국 음악은 GSL에 어울릴까? 이 부분에 대해 진태민 음악감독의 입장은 이렇다.

"2011년 블리즈컨 GSL 결승 때 한국 음악으로만 방송이 나간 적이 있었어요. 한국 음악이라... 음악 자체가 좋고 나쁨을 떠나서 GSL의 성격과 맞는 음악이 아직 적다고 하는게 맞을 거 같아요. GSL의 특성상 동 시간대에 전 세계로 송출되는 방송인데 이러한 특성에 어울리는 곡이 없는 거죠. 외국 밴드가 보내주는 음악 역시 고민은 해보겠다고 하고 사용하지 못하는 곡이 정말 많아요. 단지 '한국 음악'이라는 이유 때문에 쓰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한국 음악 같은 경우 제가 찾아보기도 하고, 적극 추천을 받기도 하지만 GSL에 어울리는 곡은 아직 발견하지 못했어요. GSL에 어울리는 곡이 나오기에는 음악적인 풀 자체가 아직 작지 않을까 싶습니다.


[ ▲ 2011 블리즈컨과 GSL Oct. 결승이 진행된 애너하임 컨벤션 센터 ]


해외에 국내 음악을 가지고 나가서 어떻게 소개해 볼까 언제나 고민하고 있어요. 하지만 해외에서 한국 노래를 구하기 어려운 것도 사실입니다. 싸이 이전에 해외에서 우리 음악이 실질적으로 수익을 낸 사례가 없다시피 해요. 어느 날 아마존을 보다가 한국어가 쓰여 있는 걸 보고 깜짝 놀랐는데 그게 강남 스타일이었죠. 한국 음악이 글로벌 한 무대에서도 어울린다는 선례가 생겼으니 트리트의 로어처럼 잘 맞는 곡이 발매되어 GSL 무대에 쓰일 날이 멀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여태 GSL에 국내 음악을 한 번도 삽입하지 않은 건 아닙니다. 스키조의 Bomb! Bomb! BomB!을 경기 리드 음악으로 사용한 적도 있었고 반응도 좋은 편이었습니다."


진태민 음악감독은 수많은 시간을 들여 선곡하고, 재편곡하거나 리믹싱하는 과정을 거쳐 GSL에 사용된 음악을 곰티비 홈페이지 게시판에 'GSL Trax'라는 제목의 글로 정리해서 올려두는 것도 잊지 않는다. GSL을 시청하면서 들은 음악을 요청하는 팬도 많거니와, 자신에게 도움을 주는 레이블이나 밴드를 알리는 방법 중에 가장 좋은 방법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마음에 드는 곡이나 해당 음반은 디지털 구매나 CD로 들으시는 것을 강하게 추천해 드립니다. 개인에게 많은 양의 금액은 아니지만, 아티스트들에게는 큰 힘과 에너지가 됩니다." 진태민 음악감독이 GSL Trax에 항상 남기는 문구이다.


Chapter 3. 리지 헤일스톰과 톰 티클베어, BK's Choice


이렇게 많은 곡을 접하는 진태민 음악감독에게 가장 기억에 남는 곡은 어떤 곡일까? 그는 기억에 남는 곡이 너무 많다고 답했다. 한 곡 한 곡 선곡하는 과정에서 스토리가 있기 때문이다. 그중에서도 GSL이 블리즈컨에서 결승전을 갖는다는 소식을 들은 한 외국 아티스트가 현장에서 사용하기 위한 곡을 만들어 준 적도 있다고 이야기 했다. 일렉트로닉 곡을 보내주었는데 약 3만 명이 모인 블리즈컨 현장에서 사용하기 위해 진태민 음악감독이 직접 오케스트레이션으로 재편곡을 했다고.

그래도 그 중 기억에 남는 곡이 있느냐는 내 질문에 진태민 음악감독은 이렇게 답했다. "꼭 꼽자면 로어나 도터 오브 다크니스 정도가 기억에 남네요. 도터 오브 다크니스는 도입 부분의 '나~나나나나'하는 부분을 사용하려는 것이 아니라 다른 부분을 로어처럼 방송 오프닝에 사용하려 했습니다. 그러기에는 특징적인 후렴구, 여성인데도 강한 느낌을 주는 리지 헤일스톤의 보컬을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었어요.

리지 헤일스톰의 보컬을 처음 접했을 때부터 충분히 음악적인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도터 오브 다크니스 이전 헤일스톰의 곡을 GSL에 사용한 후 쭉 지켜보았는데, 확실히 리지 헤일스톰은 재능이 빠르게 빛을 본 보컬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어 진태민 음악감독은 최근에 가장 관심이 가는 사람으로 톰 티크베어 감독을 꼽았다. 톰 티크베어는 영화 '향수'의 감독으로 향기를 음악으로 표현했다는 점에서 진태민 음악감독이 관심을 가졌다고 한다. 티크베어 감독은 '클라우드 아틀라스'라는 영화를 준비 중인데, 동명의 소설을 소재로 한 이 영화의 제목은 작품 내에서 등장하는 육중주 편성 음악의 제목이다.

클라우드 아틀라스는 여태 소설로만 존재했던 음악이었고, 모두의 상상속에서만 등장했던 그 음악을 처음으로 들려주는 것이 톰 티크베어 감독이라고. "저도 음악감독으로 톰 티크베어는 어떻게 작업하는지 정말 궁금합니다. 같이 일하는 사람들과 음악적으로도 분석해 볼만큼 관심이 있어요. 티크베어는 저와 마찬가지로 영상과 음악, 이 두 가지를 모두 다루는 사람이기에 많이 연구하고 있습니다."


Chapter 4. BK가 디아블로3을 뜯지 못한 이유는?


게임 음악을 담당한 적도 있다고는 하지만, 게임과는 거리가 멀어 보이는 진태민 음악감독은 스타크래프트2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게임보다는 SF소설을 좋아하는 편이에요. 예전 해외 커뮤니티에도 남겼던 글이지만 지금 프로게이머들을 보면 소설 '엔더의 게임'이 생각납니다. 1940년대 소설이에요. 외계 종족의 침공을 막기 위한 전쟁을 벌이고 있는 도중 전쟁을 위한 인재를 발굴하는 '엔드'라는 기관이 있습니다. 주로 어린아이들을 선발하고, 이 아이들을 '엔더'라고 부릅니다.

아이들은 전쟁 시뮬레이터 안에서 훈련한 후 결과가 좋으면 커맨더가 되고 실전에 투입되는 걸로 알고 훈련을 받습니다. 그리고 최종 테스트에서 시뮬레이션을 벌이는데 여기서 통과하기 위해 엔더들은 자신의 전 병력을 미끼로 쓰고 상대 본진을 공격하는 전략을 선택합니다. 미끼들은 모두 희생되는데, 이게 시뮬레이션이 아니라 실제 전쟁을 조종하고 있었던 거죠.

1940년대에 어린아이들을 엔더로 쓰는 것이 지금 프로게이머들과 똑 같다는 느낌이 들어서 이 소설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지금 부스 안에서 게임을 하는 게이머들이 엔더들과 같다고 할까요? 물론 한쪽은 실제 전쟁이고 한쪽은 상금을 둔 치열한 싸움이라는 것 정도의 차이겠죠."


[ ▲ 1940년대 sf소설에서 등장하던 장면이 2010년 그대로 재현되었다 ]


문득 진태민 음악감독의 게임 실력은 어떨지가 궁금했다. 그리고 질문을 던지자 전혀 생각지도 못한 답변이 돌아왔다. "사실 질문지를 받고 가장 난해했던 질문이 이 문항이었어요. 음악 감독에게 게임 실력을 물을 줄 꿈에도 생각 못했고, 어떻게 답해드려야 할 지 정말 고민됐거든요.

원래 생각했던 대답은 이렇습니다. '저는 저그가 주 종족이고, 임재덕 선수와 가끔 게임을 하는데 제가 맨날 아슬아슬하게 지는 정도의 실력입니다(웃음)'.

사실 게임을 할 시간이 없습니다. 스타크래프트2도 디아블로3도 모두 게임 패키지는 가지고 있는데 뜯을 수가 없어요. 사실 디아블로3은 한 번 뜯어서 해 볼까 하고 주위에 이야기했더니 GSL을 담당하는 모든 피디가 뜯어말려서 결국은 아직도 밀봉상태죠. 스타2는 제가 하는 일과 밀접한 관계가 있으니 소스의 측면에서 어느 정도 해 보기는 했습니다. 제가 게임을 알아야 하기에 플레이해 본거죠. 아까 이야기했지만 종족은 저그를 좋아합니다."


게임 방송인 GSL을 담당하면서 정작 게임을 해 볼 시간은 부족한 진태민 음악감독. '음악 감독으로서 가장 힘든 것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일정이죠. 깔끔하게 다른 걸 고민할 필요도 없어요. e스포츠에 관련된 모든 분의 고충 일 거 같습니다." 라는 대답을 남긴 진태민 음악감독에게 일반 음악감독과 게임 음악감독의 차이를 물어보았다.

"지금 제가 맡고 있는 GSL은 전 세계에서 유일한 포맷입니다. 게임이라는 것을 떠나 무언가가 진행되는 콘텐츠가 전 세계 어딘가의 불특정 다수에게 송출되니까요. 제가 아는한 이런 방송은 없다시피 합니다. EPL, NBA, F1, NFL 같은 스포츠 이벤트라고 하더라도 보는 계층은 한정되어 있습니다.

또한, GSL은 한 편당 방송 시간이 길면서 방송 일정 역시 거의 빈틈이 없다시피 합니다. 그러면서 방송 내에서의 트렌드 변화 속도도 빠릅니다. 빠르게 진행되는 일정 때문에 선수들의 승패가 흔하게 일어나고, 이를 접하는 팬들의 감정 이입 또한 타 스포츠에 비해 약한 편이죠.

GSL은 일반 방송음악으로 접근하기에는 다른 점이 정말 많습니다. 그에 맞추어 저도 빠르게 변하고, 사람들의 감정을 잘 읽어내야 하죠. 더구나 방송을 시청하는 사람들의 눈도 높아져 있기에 신경도 더 쓰이는 게 사실입니다."




'게임 방송 음악감독'이라는 특이한 직업을 개척해 나가는 진태민 음악감독, 하지만 그가 새로운 길을 개척하고 있기에 많은 사람이 그를 좋아하고, 그의 뒤를 따라 게임 방송 음악감독을 꿈꾸는 것 또한 사실이다. 그와 같은 꿈을 꾸는 사람들에게 진태민 음악감독은 어떤 이야기를 해 주고 싶을까?

"막상 이 일을 하게 된다면 정말 힘들다는 것을 느끼게 될 겁니다. 그렇기에 일에 재미를 느끼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고 전하고 싶네요. 정말 자신이 이 일을 좋아하고 재미있게 할 수 있겠다는 확신이 들면 시작하는 게 좋습니다.

그리고 일을 대충 하기 시작하면 재미가 없어집니다. 힘든 상황을 노력으로 넘어가면서 스스로 성장하는 것에 재미를 찾는 거죠. 프로게이머들과 똑같아요. 이게 정말 내가 할 일이라고 생각하고, 일을 시작한 후에 오래 하고 싶으면 정말 열심히 해야 합니다. 어느 정도 수준에 올랐다고 대충하기 시작하면 일에 재미를 잃게 되고, 결국 다른 일을 찾게 되죠.

일에 재미를 느끼면서 끊임없이 연구하는 것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물론 음악적인 지식은 기본이겠죠. 작곡, 편곡능력과 함께 방송과 음악에 대한 이해가 필요합니다."



Chapter 5. e스포츠는 보는 관중이 만들어 가는 것.


인터뷰를 마치면서, 나는 진태민 음악감독에게 팬들에게 전하는 메세지를 부탁했다. '언제나 사랑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열심히 하겠습니다.' 정도의 인사를 생각했지만 진태민 음악감독은 다른 이야기를 꺼냈다.

"e스포츠가 어떻게 되느냐는 e스포츠를 봐주시는 분들에게 달렸다고 생각합니다. 단지 제 생각이지만 GSL이라는 콘텐츠, 나아가 e스포츠 전체가 챔피언스 리그같이 될 수 있다고 봅니다. 물론 많은 사람의 노력이 필요하겠지요.

MLB, EPL, F1같이 지금 성공했다고 인정받는 스포츠 콘텐츠들은 다들 얼마 이상의 역사가 있습니다. 반면 e스포츠는 성공한 스포츠 콘텐츠들과 비교한다면 아직 걸음마 단계이고, e스포츠가 어떻게 되느냐는 팬들이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단지 한 순간 즐기는 '게임'이 아닌 선수들의 승리하기 위해 '노력'의 과정을 봐 주시고, 이 문화가 더 커질 수 있도록 팬들이 에너지를 주셨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부스 안에서 경기하는 선수를 보면 저 역시 많은 것을 느낍니다.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의 나이에 자신을 던져 그리 열심히 하고 있는 것을 보면 누구라도 멋지다고 생각할 겁니다. 하지만 아직 판이 작아서 선수 이후의 생활을 걱정해야 하는 게 안타깝습니다. 이 시장의 규모가 더 커진다면 선수들이 더욱 자신의 선수 생활에 몰두하겠죠.

선수들이 자신의 일에 최선을 다할수 있는 그런 모습을 보고 싶습니다. 그리고 이 모습은 경기를 지켜보는 여러분들이 만들어 주신다는 것을 다시 한 번 이야기 드리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