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히 말해서 이제 개성이 중요한 시대라고 본다. 게임이 구려도 좋다. 그래픽이든, 독창적인 게임 시스템이든 간에 일단 시선부터 확 사로잡는 것이 급선무다. 마켓에만 가도 비슷비슷한 게임이 넘쳐나는데, 어떤 것이라도 눈에 띄는 특색을 보여야 되지 않을까.

채점기준에 개성을 넣는다면 '한칼의 무사' 는 감점이다. 유저들을 자극시키고 달아오르게 할 만한 요소가 없다. 전형적인 퍼즐 RPG인데다가, 퍼즐도 최근 유행하는 한 붓 그리기다. 그렇다고 일러스트가 환상적으로 이쁜가? 하면 그것도 아니다. 닌자와 무사만 줄기차게 나오는데다 (그것도 남성카드 비율이 압도적으로 높다! 심지어, 미소년도 아니라 우락부락한 사나이가 가득하다!!!!) '무사' 라는 컨셉에 너무 치중한 나머지 화려하고 세련된 맛이 없다.

사람을 만날 때도 첫인상을 중히 여기는 기자는 도저히 이 게임을 용납할 수 없었다. 플레이 취향도 "나 달린다! 난다! 썰고 벤다! 부순다아아!" 다 보니, 단순히 퍼즐만 줄기차게 풀어가는 '한칼의 무사' 가 맘에 찰 리 없다. 그런데....어?....어? 이상하다. 계속 하고 있다. 며칠 내내 한다.

문제는 본인조차 "왜 이 게임을 하고 있는가" 라는 물음에 명쾌한 해답을 찾질 못했다. 그냥 하다보니 의외로 괜찮다고 말만 하지, 무엇이 재밌는지 왜 재미있는지는 애매했다. 그렇게 생각 없이 퍼즐만 줄기차게 풀며 찾은 몇 가지를 얘기해보려 한다.

▲ 게임 초기만 해도 이렇게 수려해 보이던 일러스트가..

▲ 분명 출시 전 공개 이미지는 이랬는데...

▲ ?!?! 뭐여, 이게 같은 게임이라고?
무슨 페이지인지 설명 안하면 안될 것 같아 텍스트를 추가했다

겉보기와는 다르게 '한칼의 무사' 게임 자체는 완성도가 상당히 높다. 레벨링 시스템부터 난이도 조정, 퍼즐, 인공지능까지 어쩜 이렇게 아구가 딱 딱 맞아 떨어지는지 신기할 정도로 잘 만든 게임이다. 커다란 첫 인상의 장벽을 감내하고 플레이하다보면 어느새 집중하게 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일단 레벨링 시스템. 초반의 레벨업 기준이 상당히 관대한 편이다. 한정된 에너지를 소비해 던전 하나씩 격파해나가는 방식이다보니 에너지가 떨어지면 게임을 즐길 수 없다. 하지만 레벨업이 금방금방 되기 때문에 에너지가 다시 만땅이 된다. 이렇게 반복적으로 플레이하다 보면 게임의 전반적인 시스템과 재미를 충분히 파악할 수 있게 된다.

아까도 말했듯이, 첫인상이 좋지 않기 때문에 초반부터 에너지가 떨어지면 게임도 끝이다. 안한다. '한칼의 무사' 의 매력은 외형이 아니라 내면(시스템)에 있기 때문에 길고 많이 플레이하는 것이 최선의 선택이다. 그런 관점에서 보자면 금방금방 에너지를 채워주는 레벨업 시스템은 상당히 좋다. 또한, 던전 공략에 드는 에너지가 적기 때문에 에너지 한도 내에서도 충분히 많이 즐길 수도 있다.

단순히 에너지를 채워주는 캐릭터 레벨 뿐만 아니라, 카드 자체의 성장 요구치도 관대하다. 초반부터 좋은 카드 못 뽑았다고 울상 지을 것도 없이, 게임을 플레이하면 할 수록 6성이나 7성까지 충분히 성장시킬 수 있는 카드들을 뽑을 수 있어 후를 도모할 수 있다.

성장도 쉽다. 등급을 올릴 수 있는 진화에는 던전을 통해 획득할 수 있는 특정 재료가 필요한데, 획득률이 높은 편이라 빠르게 재료를 수집할 수 있다. 요구하는 재료의 양도 많지 않아서 던전 십 몇 번 만으로도 다 모을 수 있다.

던전 난이도도 기가 막히게 잘 조정해놨다. 더 어려운 던전을 공략하고 싶은데 카드 성장이 부족해 쩔쩔매는 경우도 없다. 진화 재료도 적당히 모이고 카드도 얼추 획득했을 즈음에 맞춰 적당한 난이도의 던전이 열린다. 언제 나올지도 모르는 좋은 카드를 획득하기 위해 저레벨 던전만 죽자고 도는, 소위 '노가다' 를 안해도 된다는 게 참 좋다.

▲ 강화, 진화에 많은 재료가 필요하진 않다.
'강화' 나 '진화' 나 인터페이스가 비슷한건 넘어가자

▲ 레벨 요구치도 생각보다 적어 부담은 덜하다.
'성공' 이나 '초성공' 이나 이펙트가 똑같은건 애교로 받아들이자

▲ 던전 한 번 클리어하면 골드와 재료를 왕창 얻을 수 있다. 재료에 큰 부담은 갖지 않아도 될 듯


요새 이빨 큰 토끼 나오는 퍼즐 게임으로 '한 붓 그리기' 방식이 대유행하고 있다. 시기적으로 봤을 땐 '한칼의 무사' 런칭시기는 참으로 적절하다. 같은 퍼즐 RPG로서 비교 대상군인 '퍼즐앤드래곤'에 비해 퍼즐 방식이 쉬운 편이라 공략에 대한 부담도 없다. '퍼즐앤드래곤' 은 드롭을 자유자재로 이동하며 퍼즐 배치 자체를 바꿔야 했지만, '한칼의 무사' 는 있는 퍼즐 내에서 그저 쓰으으윽 연결해주면 된다. 같은 색 3개를 연결하면 이 후 다른 색 드롭도 연달아 연결할 수 있기 때문에 잘만 연결하면 배치된 드롭이 싹 사라지는 광경도 종종 보게 된다.

다만 직관성이 너무 떨어진다. 퍼즐 구성은 수준급일지언정, 어떻게 이어가야할 지 한 눈에 확 와닿지 않는다. 퍼즐 없애는 느낌도 상당히 밋밋하다. 아까도 말했지만, 썰고 베고 부수는 데 익숙한 기자로서는 용서하지 못할 정도로 정적이다. 퍼즐 터지는 타격감이나 사운드도 굉장히 어설프다. 이게 무슨 무사가 휘두르는 칼을 보는 듯한 이펙트라는건지 모르겠다. 연출이나 디테일에 조금만 더 신경썼다면 참 좋았을텐데...여러모로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


▲ 우리 모두를 속였던 트레일러 영상부터 보자

▲ 얼마나 멋진 말인가. 퍼즐은 액션이라니!!! 출시전만 해도 굉장히 설렜는데...

▲ ...는 그냥 퍼즐. 이펙트가 부족해서 그런지 이상하게 콤보는 쌓여가는데 기분은 그저 그렇다

▲ 대충 스킬은 이런 느낌이다...느낌 알겠죠?


아쉬움은 이 뿐이 아니다. 퍼즐RPG의 경우 보통 '속성' 시스템을 활용한다. 물이 불을 잡고, 불이 나무를 잡는 식의 가위바위보 시스템이다. 이러한 속성 시스템에서는 반대 속성끼리 주고받는 대미지가 최소 1/2, 최대 2배까지도 변하는데, 보통의 퍼즐 RPG는 속성별 편차에도 큰 지장 없이 플레이할 수 있도록 무(無)속성 혹은 빛, 어둠 등 개별적인 속성을 따로 만들어둔다.

허나 '한칼의 무사' 역시 나무의 속성 시스템을 사용했다. 하지만 이 속성권에 영향을 받지 않는 개별적인 속성은 마련하지 않아 모든 던전에서 사용할 수 있는 보편적인 파티를 구성하기가 힘들다. 힘들여 카드를 키워놨더니 특정 속성 던전에서는 몰살당하는 일이 매우 많다.

이왕 말 나온 김에 하나만 더 말하고 가자. PvP는 왜 이런가. 왜 친구의 카드가 PvP 파티에 속해있는건지 모르겠다. 보통 PvP라 함은 내가 공들여 키운 나만의 파티가 다른 유저에 비해 얼마나 힘세고 강한지 알아보기 위한 컨텐츠인데, 거기에 친구 6명의 카드를 넣는 경우가 어디있나. PvP만 빼면 친구가 굳이 없어도 그냥저냥 괜찮기에 혼자서 플레이하다 "이 정도 키웠으면 충분히 강한 덱이 됐겠지. 와하하하" 라며 의기양양하게 PvP했다가 영혼까지 털렸다(18레벨이었는데 3레벨한테 털렸다. 6vs12를 어떻게 이기나?). 친구 없는 사람 서러워서 살겠나 싶을 정도다.

▲ 0승 4패...저도 참 좋아하는데요. 제가 한 번 싸워보...죄송해요. 혼자가 아니셨네요.


반면 참신한 점도 있다. 처음 게임을 실행하니 기본적인 인터페이스와 퍼즐을 이용한 전투 정도만 가르쳐주고 끝났다길래 당황했는데, 알고 봤더니 던전 이름이 팁이었다(...). 속성 시스템이라던가 블록 잇는 방식을 이름에다가 친절하게 써주고 있었다. 세련되지는 않았지만, 쨌든 지루한 튜토리얼을 빠르게 넘길 수 있도록 방법을 고안했다는 것에 높은 점수를 준다.

그리고 또 하나. '한칼의 무사' 인공지능은 여태 플레이해본 카드배틀, 퍼즐RPG 중 가장 독특하다. 기자에게는 매 턴마다 HP가 떨어진 카드 한 장의 체력을 300까지 자동으로 채워주는 카드가 있는데, 정말 신기하리만큼 체력을 잘 채워준다. 체력 없는 순으로 채워주기도 할 뿐더러, 전체 체력 대비 남은 체력 비율도 따져가며 채워준다.

근데 왜 공격할 때 그런 멋진 인공지능을 발휘하지 못하는지...한 방만 더 때리면 잡을 수 있는 카드를 두고 왜 다른 놈을 때리는건지...왜 옆에 살아있는 애 놔두고 방금 죽인 적 카드에게 헛 공격을 하는건지... 이에 비해 적 인공지능은 끝내주게 뛰어나다. 내 카드 중 가장 약한 카드를 골라 총공격을 펼쳐 써보지도 못하고 죽여버리는 일이 종종 있다. 이걸 두고 뛰어나다고 해야할 지 멍청하다고 해야할 지 종잡을 수가 없다.

▲ 튜토리얼이 왜 필요해? 던전이름으로 설명하면 편해!


뭐, 확실히 무난하게 재밌는 게임인 건 분명하다. 영혼과 지갑을 모두 바칠 정도는 아니지만 카드 성장에서 오는 재미도 이만하면 됐고, 한 붓 그리기 퍼즐 방식도 재밌다. 서비스 초반이라 그런지 카드 이미지가 안 나온다던가 이따끔 튕긴다던가...하는 어설픈 모습은 애교로 받아들일 수 있는 정도다. 그걸 감내하고라도 게임 자체가 재밌으니 괜찮다.

허나 아까도 말했듯이, 모든 컨텐츠를 후져 보이게 만드는 인터페이스 배치나 그래픽에는 절대 좋은 평을 줄 수가 없다. 카드를 뽑을 때나 진화시키는 중요한 타이밍조차 심심해보이는 이펙트만이라도 어떻게 해줬으면 좋겠다. 쉐프의 스테이크를 호일 접시에 담아둔 것 같은 어눌한 모습말고 조금씩 살을 붙여 나가다보면 정말 괜찮은 게임으로 남을 수 있을 듯 하다. 일단 본인은 좀 더 해볼 거 같다.


▲ 이 용서 안되는 일러스트는 어떻게 좀 해주세요 근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