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게임 하나가 트렌드를 이끈 뒤, 비슷한 성격의 게임들이 우후죽순 나오는 경우는 외국에도 흔하다. 장르 이름이 제대로 정의되지 않는 경우도 많다. 그 경우는 게임 이름에 'Like'를 붙여 장르명을 대체하곤 한다. 그중 대표주자 중 하나가 '디아블로' 시리즈였고, 작년 '디아블로 Like'라고 불릴 만한 온라인게임이 등장했다. '던전스트라이커'였다.

쿼터뷰 시점의 핵앤슬래시 액션과 파밍을 통한 성장이라는 장르 특성만 가진 것은 아니었다. 2D 배경에서 매력적으로 숨쉬는 일러스트와 캐릭터가 있었고, 스킬 계승 같은 고유의 시스템도 흥미로웠다. 타격감과 액션 역시 높은 질을 자랑했다. 국내 게임계에 MORPG 열풍이 부는 듯했다. 하지만 1년을 버티지 못하고 문을 닫았다. 여러 이유가 있었지만, 가장 큰 것으로는 콘텐츠 부족이 꼽혔다.

그리고 다시 '뉴 던전스트라이커(이하 뉴 던스)'가 나왔다. 개발진은 "같은 과오를 또 겪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고 말했다. 이 말을 그저 외면하기엔 '던스'의 뼈대는 분명 매력적이었다. 그래서 살펴보았다. 기자가 사랑해 마지않는 최정문을 모델로 삼은 액토즈소프트에 심심한 감사를 표하면서.



혹자는 이런 말을 한다. "디아블로3 출시에 맞춰 따라 나온 던전스트라이커가 이제 디아3 확장팩 출시에 맞춰 새로 따라 나온다"고. 시기상으로 절묘하게 맞물리긴 하다. 하지만 억울할 부분도 있다. 정확히 언제 나올지 모르는 블리자드 게임 출시 일정에 따라가는 일은 일부러 하려고 해도 쉽지 않으니까. 오히려 디아블로3 열풍이 한참 지난 뒤 같은 장르의 새로운 게임 수요가 생길 때 오픈하는 것이 사업적으로는 더 영리할 수도 있다.

다만, 감히 말하고 싶다. '뉴 던스'는 '디아3'을 참고한 것이 문제가 아니다. 오히려 너무 참고하지 않은 것이 가장 큰 문제점이었다.

▲ 이게 현실이면 얼마나 좋겠느냐마는...


'디아블로3' 이야기부터 잠깐 해볼까. 엄청난 기대에 미치지 못했던 이 게임이 다시 살아난 시기는 확장팩 출시가 아닌 그 이전 2.0 패치였다. 폐지줍기에 지친 유저들은 갑자기 전설 아이템 떨어지는 맑고 고운 소리를 예사로 듣기 시작했다. 야만용사가 인벤토리 하나 가득 지능템만 채우는 일도 사라졌다. 난이도 구분도 편리해졌다. '파밍이 재미있어졌다'고 입소문을 타면서 떠나간 유저들이 너도나도 몰려들었다.

구 던스에는 악몽이 있었다. 악몽 던전을 무한으로 돌아다니면서 폐지를 주워야 했던 그 시절, 지친 유저들은 하나하나 떨어져 나갔다. 재료템 하나하나 구하는 것이 보통 힘든 일이 아니었다. 던전은 언제나 똑같았고, 개선은 없었다.

'뉴 던스'는 '악몽' 대신 '시공'으로 풀었다. 시간의 균열에서 시공의 열쇠를 제작해 공간의 균열로 진입할 수 있는 것. 여기에 어비스 던전과 챌린지 던전 등 선택지를 늘렸다. 스킬 시스템도 전면 개편했다. 문제점들은 확실히 인식하고 있었다. 시스템 정비는 돋보였다.

하지만 그 시스템 위에 얹은 사냥터의 짜임새가 아직 미완이다. 완제품을 드랍하게 된 것은 것은 좋은 변화지만, 드랍률은 여전히 미미하다. 비장의 수로 내놓은 계승 스킬 개선과 다양한 던전은 30레벨 이후 체험할 수 있는데, 그 전까지는 오히려 구 던스보다 밀도가 약해졌다. 레벨링이 느려져서 같은 던전을 두세 번씩 거쳐야 하는 현상이 그 중심에 있다.

▲ 캐시 시스템은 괜찮다. 하지만 무과금에게 창고 공간은 약간 부족하다


'뉴 던스'는 기존 파밍의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 아이템 등급을 일곱 가지로 늘렸다. 커먼부터 시작해 스페셜과 레전더리, 에픽에 이르기까지. 여기에 각 등급마다 최하급부터 최상급까지 다섯 가지 품질을 넣었다. 얻을 수 있는 아이템 종류는 아주 다양해졌다. 그에 반해 파밍 자유도는 늘지 않았다. 모든 아이템은 '이전에 비해 높은가, 낮은가' 이 한 가지만 보면 되는 상황은 여전하기 때문이다.

파밍의 재미는 강한 아이템 먹기에서만 나오지 않는다. '아이템 모으기'의 재미도 꼭 필요하다. 유연해져야 한다. PvP를 구현하기 어려운 게임이라 더욱 그렇다. 아이템이 성능을 발휘하기 위해 갖추는 옵션이 획일화된 이상, 파밍은 수평으로 풍성해지는 것이 아니라 수직으로 단조로워질 수밖에 없다.

가장 큰 문제는 '다양성'이다. 디아블로3 2.0 패치의 벤치마킹이 더 필요하다. 디아블로3가 단순히 드랍률 상향으로 인기를 회복한 게 아니다. 아이템 옵션 종류가 원체 많았고, 밸런스도 적절히 관리되었다. 무엇보다 허를 찌르는 다양한 특수 옵션이 존재했다. 템은 물론이고 몬스터들의 패턴도 다양하게 조합되면서 긴장감을 높였다. 스킬, 아이템, 사냥 대상. 이 3요소의 조합 가짓수가 넓은 스펙트럼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파밍류 MORPG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가 여기에 있다. 바로 '파밍을 향한 동기부여'다. 같은 던전을 수백 번 돌더라도 다양성이 충분하다면 즐거운 파밍 라이프가 되고, 두세 번만 돌아도 같은 전투라면 유저는 지루하다고 느끼기 마련이다. 던전을 돌아다니는 과정이 새로워야 하고, "내가 몇 시간을 투자해 파밍하면 이 정도 성과가 나오겠다"는 기본 계산이 서야 한다.

인벤토리와 창고 캐시도 약간은 아쉽다. 캐시 자체가 문제는 아니다. 부분유료화 RPG 장르의 한계상 그 정도 수익원은 있어야 하고, 기간제로 판매하는 등의 악수도 두지 않았다. 하지만 그것을 캐시로 충당하려면 라이트유저 역시 큰 불편이 없을 정도의 공간은 기본으로 마련해야 한다. 거기서 코어 유저들이 부족해지는 공간을 구매할 수 있도록 마련하는 캐시 시스템이 최상이다.

던전 한번 다녀올 때마다 인벤 한번씩 비우는 지금 상황은 피로를 유발한다. 무과금 라이트 유저들이 쑥쑥 커나가서 프리미엄 서비스와 아바타를 구매하는 코어 유저로 성장할 수 있도록 선순환 구조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

▲ 클래릭 스킬 '심판'을 메이지가 사용하는 모습


평가가 좀 가혹했을지도 모르겠다. 다른 질문으로 다가가보자. '뉴 던스'는 발전할 수 있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답은 'Yes'다. 모든 게임에서 가장 중요한 '시스템'은 구 던스보다 개선되었다. 스킬의 성격과 특성을 조작에 따라 다양하게 변주시키면서 상황에 맞게 응용할 수 있는 여지를 많이 남겼다.

스킬 태세전환 시스템은 진입장벽이 생기지 않을까 걱정하는 목소리도 있었지만, 초반 진입이 쉬운 게임이라 장점이 훨씬 큰 것으로 보인다. 그렇기 때문에 몬스터의 다양성 부족이 더 아쉽게 다가오기도 한다. 온갖 방식으로 사냥을 할 수 있게끔 만들었는데 사냥 대상의 패턴이 하나라면 그 시스템을 죽이는 일밖에 되지 않는다. 가장 급하게 개선할 점을 하나만 말하라면 바로 이것이다.

재료템이 아닌 완제품을 드랍하게 된 것은, 비록 드랍률 상향이 필요할지언정 잘 된 일이다. 계승 스킬 역시 장기적으로 이득이 될 수 있게 변화되었다. 구 던스의 계승이 훨씬 매력적이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캐릭터 개성이 실종되고 콘텐츠 소모가 빨라진다는 치명적인 단점을 막을 방법은 떠오르지 않는다. 지금 정도면 직업별 정체성도 살리고 밸런스도 지키는 수준에서 잘 타협했다. 선방이다.

피로도는 많이 부족하지만,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고 인정하고 싶다. 그 와중에 직업별 피로도를 분리 배치하면서 서브 직업의 육성 기회를 마련한 센스는 어느 정도 플러스 점수를 줄 수 있을 것 같다.

▲ 바뀐 스킬 시스템은 '최상'이 아니다. 그러나 '최선'일 수는 있다


앞으로 중요한 것은 그 가능성을 실행하는 일이다. 단순히 추가 던전으로는 유저들의 콘텐츠 소모를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은 구 던스를 통해 개발진도 충분히 학습했을 것이다. 크게 두 가지 열쇠가 있다. 파밍 말고도 갖가지 놀 거리를 마련하거나, 아니면 파밍 자체의 재미를 한껏 늘리거나. 유저들 사이에서도 요구 방향은 엇갈린다. 하지만 '뉴 던스'에는 후자가 더 어울린다고 생각한다. 인벤 독자 여러분의 많은 의견 부탁드린다.

구 던스 시절 '없댓'이라고 불릴 정도로 민첩하지 못했던 업데이트 속도를 개선하고, 던전과 아이템의 변수를 제공할 수 있다면 충분히 롱런이 가능하다. 좋은 평가를 받아온 'Like 디아'류의 해법을 더 파고들었으면 한다.

특유의 비주얼 및 타격감과 시스템만으로도 정체성은 이미 충분히 갖춘 상태다. 동종 장르에 좋은 성공 사례들이 있는데, 일부러 그것들을 비켜나갈 필요는 없다. '유연함'을 염두에 두고 꾸준히 즐거운 게임으로 성장하길 기대한다. '뉴 던스'는 그럴 능력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