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프트웨어를 모르면 동네 치킨집 사장님한테 물어보면 된다'라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언제부터인가 잦은 야근과 철야로 몸이 지치고, 경력이 쌓여갈수록 개발 실무에서 멀어진 개발자들이 은퇴 이후 퇴직금으로 치킨집을 차렸다는 이야기가 유행처럼 번졌기 때문이다. 극심한 불황에도 불구하고 매년 7,400개의 치킨집이 새롭게 생겨나고 있다는 통계를 보면, 어쩌면 이러한 농담은 개발자들에겐 그저 우스갯소리에 그치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게 된다.

'유나이트 서울 2017'의 강연을 위해 강단에 선 에이스프로젝트 안현석 개발자는 '저의 미래는 정말 치킨집 사장님인가요?'라는 주제로 자신의 17년 개발인생을 회고했다. 부모님을 졸라 컴퓨터 학원에 다닐 수 있었던 유년 시절부터, 취업을 위해 다양한 자격증을 취득하여 결국 직업 개발자가 되기까지, 그의 인생에서 소프트웨어 개발은 떼놓으려야 떼놓을 수 없는 파트너와 같은 존재였다.

▲ 에이스프로젝트 안현석 개발자

처음으로 취직한 회사들이 줄줄이 도산하는 등, 다양한 위기가 닥쳐온 순간에도 그는 개발에 대한 열정을 버리지 않았다. 야근과 철야를 불사하며 노력한 결과 50여 명의 사람들을 관리해야 하는 자리까지 오르게 됐지만, 개발 실무에서 완전히 손을 떼고 '입코딩 전문가'가 되어야 했던 환경에 회의감을 느낀 그는 이직을 통해 다시 개발자 신분으로 회귀했다.

그는 자신이 지금까지 총 22개의 게임 개발에 직·간접적으로 관여하며 나름 열심히 살았지만, 결국 '눈에 띄는 히트작 하나 없는 평범하고 나이 많은 개발자'가 됐다고 토로했다. 무엇하나 눈에 띄는 히트작도 없고, 뛰어난 업적이라고 할 수 있는 기술적인 성과가 없는 것은 물론, 어디하나 집중하지 못한 애매한 커리어패스까지 더해져 결국 '치킨집 사장님'이라는 선택지를 고려하게 됐다는 것이다.

하지만, '치킨집 사장님'은 누구나 쉽게 도전할 수 있을 만큼 쉬운 일이 아니다. 매년 7,400개의 치킨집이 새롭게 생겨나면 그중 5,000개의 치킨집이 문을 닫는다고 할 정도니, 그 경쟁의 치열함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다.


그렇다면 과연 '소프트웨어 개발자'라는 자신의 강점을 버리면서까지 치킨집 사장님에 도전할 필요가 있을까? 그의 대답은 자연스럽게 'NO'였다. 진입장벽이 낮아 누구나 쉽게 도전할 수 있는 치킨집 사장님과 비교했을 때, 소프트웨어 개발자는 누구나 쉽게 시작할 수 있는 직업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그는 젊은 개발자들이, 그리고 개발자를 꿈꾸며 열심히 노력하고 있을 학생들이 자신과 같은 고민을 하지 않길 바라며 오랫동안 게임 개발자로서 살아가며 얻은 몇 가지 느낀 점들을 하나씩 소개했다.


■ 대기업 VS 스타트업

개발자 지망생이나 신입 개발자들이 가장 많이 하는 질문이 바로 '대기업과 스타트업 중 어떤 곳으로 갈지'라는 고민이다. 대기업은 안정적인 개발 환경과 개발 프로세스를 갖추고 있고 훌륭한 사수가 많이 있어 기본기를 탄탄히 쌓을 수 있지만, 다양한 경험을 쉽게 접하지 못한다는 단점이 있다.

반면, 스타트업은 개발환경과 프로세스가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경우가 많고 제대로 된 사수가 한 명도 없을 가능성이 있지만, 신입이 쉽게 접하기 힘든 다양한 경험을 해볼 수 있다는 특징이 있다.

그는 습득이 가장 빠른 시기에 다양한 경험을 해보고 3년 차 이후의 진로 결정에 반영할 수 있도록 '스타트업'을 추천했다. 경력이 쌓이게 되면 여러 분야에 쉽게 도전하기 힘들어지기 때문에 가장 처음에는 여러가지 경험을 통해 폭을 넓히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 기술에 대한 호기심

다음으로 그는 새로운 기술에 대한 호기심을 계속 유지하되, 구현의 재미에 현혹되면 안 된다고 당부했다. 클라이언트 개발자는 눈에 보이는 것을 만들다 보니 만드는 재미에 빠져 기술적으로 소홀해지는 경우가 많다. 기술의 원리에 대한 호기심을 잃게 되면 결국 기술지식이 얕은 상태에 머무르게 되고, 이러한 개발자는 업계에서 오랫동안 버틸 수 없다.

호기심을 잃지 않기 위해서는 지속적인 자극이 필요한데, 이를 위해 개발자 커뮤니티나 컨퍼런스, 뉴스, 책, 모임 등에 참여하는 것으로 새로운 지식을 계속 얻고자 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 야근의 늪

한번 빠지면 쉽게 헤어나올 수 없는 '야근'을 조심하는 것도 중요하다. 보통 야근을 하게 되는 심리에는 '정해진 일정을 지키기 위해'라는 이유 이외에도 집에 가도 특별히 할 것이 없기 때문에 남는다는 '습관성 야근'과 '개발 실력이 부족해서'라는 이유가 있다.

특히 신입의 경우, '부족한 실력을 야근으로 때우면 된다'라는 착각을 하기 쉬운데, 이는 장기적으로 봤을 때 습관성 야근이 될 수 있기 때문에 최악의 선택이라고 할 수 있다. 야근할 시간에 자기의 실력 부족을 먼저 인정하고, 자기개발을 통해 빨리 실력을 키우는 것이 더 현명한 방법이다.

야근이 계속되면 자연스럽게 습관이 되고, '습관성 야근러'들은 어차피 저녁에 야근할 거니까 낮에는 설렁설렁해도 되겠지라는 마음을 품기 쉽다. 이러한 자세는 협업을 힘들게 하고, 업무 효율 감소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다. 때문에 개발자는 가능한 야근을 지양하고, 업무시간에 최대한 집중하여 일찍 퇴근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좋다.


이외에도 종종 개발자의 잘못된 스케줄링 때문에 야근이 발생하는 경우가 있다. 물론 넘치는 열정도 좋지만, 자신의 능력을 정확히 파악하고 함부로 타협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업무분석은 최대한 치밀하게 하고 일을 최대한 작은 단위로 잘게 쪼개서 실행하는 것이 좋다. 안현석 개발자는 30분 단위로 일정을 쪼개서 정하면 하루 8시간의 업무에서 최대 16번의 성취감을 느낄 수 있으므로 개발 효율에도 큰 도움이 된다고 설명했다.


■ 한 우물 파기

웹 프로그래머부터 SI 프로그래머, 모바일 게임 프로그래머, PM, PD, R&D까지 다양한 경험을 겪은 안현석 개발자는 자신이 어떤 한 분야에서 정통한 매력적인 개발자가 되지는 못했다고 밝혔다.

3년~5년 차 개발자라면 자신의 분야에서 스페셜리스트가 되기 위해 적성에 맞는 분야를 선택하는 것이 중요하다. 경력이 쌓이고 개발의 난이도가 높아지면 넓은 경험보다 깊은 경험이 요구되는 시기가 분명히 찾아온다. 한 번이라도 하나의 분야에서 일정 깊이에 도달해야 크게 성장할 수 있으며, 깊이 파는 것에 지쳐 옆으로만 늘리는 것을 주의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 우물 안 개구리

어느 정도 개발 경험을 쌓은 경력자들에게 그는 우물 안 개구리가 되지 않을 것을 당부했다. 10년 차 정도 되는 개발자는 자기 자신이 정답이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있는데, 자기만의 세상에 빠져서 사는 것은 개발자로서 가장 조심해야 할 문제라는 것이다.

기술 트렌드의 변화는 매우 빠르고, 이에 뒤처지지 않기 위해서는 베테랑 개발자라고 하더라도 뉴스, SNS, 컨퍼런스 등을 통해 지속적인 인사이트를 얻어야 한다.


오랜 경험 자체가 독이 되는 경우도 있다. 경력이 쌓이면 나만의 철학과 편견이 생기고, 매너리즘에 빠져 새로운 것에 대한 의심과 거부감이 생길 수 있다. 이때 '꼰대 개발자'가 되지 않기 위해서는 더 많은 외부활동을 해야 한다.

고인 물이 썩는다는 말처럼, 좋은 경험과 노하우는 공유하고 비우는 자세도 중요하다. 자신에게 좋은 지식이 있다면 컨퍼런스와 같은 다양한 자리를 통해 이를 공유하고, 지속적으로 새로운 지식을 받아들여 채울 필요가 있다. 이러한 자세는 개발자들이 계속 성장할 수 있는 선순환 구조를 만드는데 기여하기도 한다.


■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만의 신념을 가지는 것

이외에도 개발자로서 알아두면 좋은 다양한 경험들이 있지만, 그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자신만의 신념을 가지는 것'이다. 가벼운 농담으로라도 "치킨집 사장이나 해야지"라고 말하는 대신, 자신이 가진 강점이 무엇인지 끊임없이 돌아보는 것으로 자신의 분야에서 오랫동안 잘해나갈 방법을 찾는 것이 긍정적인 방향이라고 할 수 있다.

안현석 개발자는 "분명 쉽지 않은 길이지만, 새로운 것을 개발하는 것 만큼 흥분되고 재미있는 일은 없다"라며, "백발이 될 때까지 개발을 계속하겠다"고 포부를 밝히는 것으로 강연을 마무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