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카나 부대는 툰드 초원에 진지를 구축하고 있었다. 아르카나 진지에 도착한 나는 먼저 레비나님을 만나길 바랐지만 레비나님은 이곳에 없는 듯했다. 레비나님 대신 나를 맞이한 사람은 아르카나 지휘관 스테파니었다.


"소문으로만 듣던 유피님을 이렇게 직접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아직 배울 것이 많은 일개 수습 아르카나일 뿐입니다. 그런데 레비나님은 어디에 계시나요?"

"모트롤 부대의 분위기가 예상과는 다르게 너무 조용해서 뭔가 함정이 있는 게 아닌가 하여 섣불리 공격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레비나님은 어떤 가디언분과 함께 모트롤 진지를 우회하여 레벤스 숲으로 가셨습니다."

"가디언이요?"

"네, 파란 머리가 매우 인상적인 분이셨어요. 레비나님과는 오래전부터 알고 지내던 사이 같던데..."

"..."





그 가디언에 대해 더 묻고 싶었지만 지금은 사적인 일보다는 나태의 소울을 찾는 것이 더 중요했다. 스테파니님의 설명에 따르면 모트롤 군은 지금 툰드 초원 북쪽의 칼날 언덕에 진지를 세웠다고 한다. 그리고 칼날 언덕이 지대가 높아 툰드 초원에서는 모트롤군의 진영을 살피기 힘들어 이렇다 할 작전을 세우지 못하고 있었다.


"정찰을 해보려 했지만 사방이 트인 초원에서 언덕까지 몰래 접근하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자연동화 능력이 있는 나이아스족이라면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공교롭게도 우리 부대에는 나이아스족 출신이 없습니다."

"나이아스족은 최근 감시의 땅 지역의 숲에 이상한 움직임이 있어서 이를 조사하기 위해 대부분 아르카나의 임무에서 물러난 상태인 것으로 알고 있어요. 거대한 에너지를 가진 생명체가 나타났다고 하는데... 아무튼 지금으로서는 정찰할 방법을 찾아야 할 것 같네요."





진지의 정면은 경계가 삼엄하고 몸을 숨길 곳이 마땅치 않았다. 나이아스족이 온다 해도 어려울지도 모른다.


"레비나님과 그 가디언은 진지를 우회해서 갔다고 했죠?"

"네. 딱히 몸을 숨길만 한 곳이 없어서 위험을 감수하고 초원을 돌파했는데, 다행히 칼날 진지에서의 추격대는 없었습니다."



이렇게 삼엄하게 경계하고 있으면서도 우회하는 적에 대해서는 아무런 조치도 없다니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후방으로 침투한 적은 있나요?"

"아뇨, 후방 침투를 시도하다가 들킬 경우 본대에서 지원하기 힘들어서 고립될 확률이 높습니다. 그래서 후방 침투는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그건 왜..."

"뭔가 수상해요. 전방은 이렇게 철통 수비를 하고 있으면서 배후에 위협이 될지도 모르는 레비나님과 그 가디언의 움직임에 대해서는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는 게 이해가 되지 않아요. 아무래도 적의 배후에 어떤 약점이 있는 것 같아요. 저 혼자서라면 들킬 위험도 적고 들켰다 하더라도 몸을 빼내기 쉬우니 제가 다녀올게요."

"이런 일을 부탁하고 싶지는 않지만 상황이 상황인지라 어쩔 수가 없군요. 부탁합니다."



백설기를 타고 칼날 진지의 외곽을 크게 돌아갔지만 추격하는 병력은 없었다. 시간이 좀 걸리긴 했지만 손쉽게 진지 후방으로 접근할 수 있었고 예상대로 후방 쪽은 경계 병력이 전혀 없었다. 조심스레 언덕에 올라 살펴본 칼날 진지의 내부는 충격적이었다. 잠복 병력은커녕 진지를 지킬만한 병력조차 남아 있지 않았다. 아르카나 병력이 소수이긴 하지만 이 정도라면 충분히 격파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문제는 그게 아니었다. 이 정도 병력으로 나태의 소울을 지키고 있을 리가 없다. 아무래도 모트롤 본대가 나태의 소울을 가지고 어디론가 이동하고 남은 병력은 이곳에서 아르카나의 발을 묶고 있는 듯하다. 그렇다고 아르카나 부대가 칼날 진지를 지나쳐간다면 모트롤 본대와 칼날 진지 부대의 협공을 당할 수도 있다. 한시라도 빨리 칼날 진지를 무너뜨리고 본대를 추격하는 방법밖에는 없다.

여기서 아르카나 부대가 있는 툰드 초원까지 돌아가는 시간도 아까워 방법이 없을까 고민하던 차에 칼날 진지 이곳저곳에 배치된 나무통이 보였다. 들키지 않게 조심스레 다가가 살펴보니 화약통이었다. 아무래도 칼날 진지가 함락될 때 아르카나 부대와 함께 진지를 폭파하려는 계획이었던 것 같다. 이 화약통들을 터뜨려 불을 지르면 아르카나들이 쳐들어오지 않을까? 나는 근거 없는 추측에 희망을 걸고 화약통에 불을 붙였다.




[쾅! 콰과광~!! 콰앙~!!]

하나의 화약통에 불을 붙였을 뿐인데 화약통마다 도화선이 연결되어 있었는지 칼날 진지 곳곳에서 폭발이 일어났다. 모트롤들이 소란스러워지자 얼마 지나지 않아 툰드 초원 쪽에서 아르카나의 것으로 보이는 함성이 들려왔고 나는 상황을 지켜보기 위해 몸을 숨겼다.

그런데 그때 진지 뒤쪽으로 황급히 빠져나가는 모트롤이 보였다. 나는 조심스레 빠져나와 그 모트롤의 뒤를 쫓았고 모트롤이 진지의 도움을 받을 수 없을 만큼 멀어지기를 기다렸다.




모트롤이 경계초소의 시야에서 벗어난 순간 나는 기습을 강행했고 등 뒤에서 번개 찌르기로 일격에 쓰러뜨렸다. 모트롤의 품에서 나온 보고서에는 칼날 진지가 곧 무너지고 아르카나 병력이 추격을 시작할 것을 알리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또한, 본대가 향한 곳은 레벤스 숲인 듯했다.

'레벤스 숲이라면 레비나님과 그 가디언이 간 곳인데...'

나 한 명이 돌아간다고 해서 칼날 진지 함락이 더 빨라지진 않을 테니, 이대로 아르카나들에게 맡겨도 될 것이다. 나는 그보다 빨리 레벤스 숲으로 가서 레비나님에게 이 사실을 알리기로 했다. 그리고 그 의문의 파란 머리 가디언에 대해서도 알고 싶은 마음도 컸다. 내가 레벤스 숲에 도착했을 때 그곳에 없더라도, 레비나님에게 물어볼 수 있을 것이다.

마음이 급해져 나도 모르게 백설기의 고삐를 험하게 다뤘는지, 백설기의 불만 섞인 투레질에 마음을 진정시키고 레벤스 숲으로 향했다.


To be continu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