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 어떤 히어로즈 오브 더 스톰(이하 히어로즈) 팀도 최강 MVP 블랙에 맞서지 못하던 시기. 이번 히어로즈 슈퍼리그 2016 시즌2에서 새롭게 등장한 템페스트가 기적과 같은 경기력으로 MVP 블랙을 4:0으로 완파하는 장면을 연출했다. 기존 팀들은 엄두도 못 낼 만한 겁없는 신생팀의 패기로 MVP 블랙을 넘어선 것이다. MVP 블랙 독주의 '암흑의 시대'에서 히어로즈 e스포츠가 한 단계 더 발전할 만한 한 줄기의 빛을 보여준 결승전이었다.

그런데, 작은 차이로 이런 극적인 결과가 나오지 못할 뻔 했다. 이번 시즌에 최고의 활약을 선보인 '다미' 박주닮의 건강이 좋지 않았기 때문이다. 타지에서 올라와 새 집을 구할만한 상황이 아니었던 박주닮은 '덕덕' 김경덕의 방에서 함께 살았고, 불편한 자세로 연습을 이어가다 보니 손목에 무리가 갔다. 떨어지면 탈락인 4강 패자전에서 손목 보호대를 하고 진통제까지 맞으며 경기에 임할 정도였다. 다행히 박주닮은 결승전에서 제 실력을 발휘했지만, 부상이 조금 더 악화됐다면 템페스트의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제대로 연습할 만한 환경이 조성되지 않아서 벌어진 일이다.

▲ '다미' 박주닮 연습하는 모습 (이미지 출처 : imgur.com)

이러한 문제는 템페스트뿐만 아니라 많은 히어로즈 팀들이 겪고 있는 상황이다. 매 시즌 해체와 리빌딩을 반복하면서 오랫동안 팀원을 유지할 수 있는 팀이 없었다. 스폰서가 없는 팀들이 기본적인 운영비 문제로 시작해 방황하며 팀을 유지하지 못하는 것이다. 결국, 히어로즈 최초의 프로팀인 TNL까지 사라지게 됐다. 리그마다 준우승, 4강 이상의 꾸준한 성적을 낸 팀이 아쉽게 프로 생활을 그만뒀다. 그동안 잘 버텨온 TNL이지만, 이번 시즌 결승 진출과 섬머 글로벌 챔피언십 진출에 좌절하며 자연스럽게 해체하게 된 것이다.

기본적인 팀 운영이 힘든 상황이 계속된다면, 앞으로 판을 흔들만한 템페스트와 같은 새로운 팀은 점점 더 등장하기 힘들어질 것이다. 자칫, 히어로즈는 스폰서를 받을 수 있는 팀들의 '그들만의 리그'가 돼 발전 없이 쇠락의 길을 걸을 수 있다. 최근 히어로즈씬에 새로운 신예가 등장하지 않는 점 역시 이러한 현실과 관련이 깊다. 단순히, 상금과 대회 여부를 떠나서 기본적으로 팀을 꾸리고 연습을 이어가기조차 힘들기 때문이다.

이제 히어로즈 e스포츠를 유지하기 위해 게임사인 블리자드에서 행동해야 하는 시기가 왔다. 지금까지 히어로즈 e스포츠의 규모를 키우기 위한 활동과 투자를 해왔고, 이에 걸맞은 내실을 다져야 한다. 세 시즌 동안 진행하는 지역별 리그-글로벌 챔피언십을 열었고, 국내에서도 e스포츠 담당자의 채용을 늘리며 블리자드 e스포츠에 대한 투자 규모를 키워가고 있다. 희망적인 부분은 문화체육관광부에서 히어로즈를 'e스포츠 일반종목'으로 선정했다는 점이다. 남은 것은 선수들이 게임에 집중할 수 있는 가장 기본적인 환경을 조성하는 것.

▲ 출처 : 문화체육관광부 공식 홈페이지

겉으로만 'e스포츠 일반종목'이 아닌 프로게이머들이 활동을 이어갈 수 있는 여건을 갖춰야 한다. 스프링 글로벌 챔피언십에서 진행된 인터뷰에서 마이크 모하임은 e스포츠 투자에 관한 질문에 "블리자드는 올해 e스포츠에 정말 많은 투자를 할 계획이다. 게임별 특성에 맞춰 서포트 방식을 달리할 것이다"고 말한 적 있다. 히어로즈는 팀 게임이다. 팀원 5명이 함께 모여 연습할 수 있는 공간과 시간이 절실하다. 많은 지원이 이뤄질 수 없더라도 e스포츠를 지속하기 위해 최소한의 연습 환경은 보장돼야 한다.

이상적인 형태는 리그에 참가하는 팀에게 지원금을 전달하는 것이다. 실제로 라이엇 게임즈와 협회는 프로게이머로 등록된 선수, 코치진에게 지원금을 주며 팀 운영을 돕는 역할을 하고 있다. 새로운 팀들이 챌린저스 코리아라는 2부 리그를 거쳐 롤챔스라는 1부 리그까지 도전하는 것을 멈추지 않고 있다. 넥슨에서도 피파온라인3 챔피언십에 출전하는 선수들에게 지원금을 지급해 e스포츠 리그 활성화 방향을 이어가고 있다. 프로들이 사비를 보태 자신에게 가장 알맞은 연습 환경을 스스로 찾을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다. 만약 현실적으로 지원금을 확보하거나 기준 선정이 힘들다면, 최소한 차선책이라도 시행해야 한다.

구체적으로 히어로즈 프로팀 전용 연습실을 생각할 수 있다. 모든 팀들의 연습실을 제공할 수 없더라도 시간을 정해놓고 그들이 와서 함께 연습할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할 수 있다. 연습을 실전처럼 할 수 있는 환경만 주어진다면, 프로게이머들은 현장 경기에서 덜 긴장하고 나은 실력을 발휘할 수 있을 것이다. 블리자드 측에서는 외부에 정보를 유출하지 않는 한에서 프로팀 연습 경기 표본을 확보할 수 있기에 손해만 보는 장사만은 아니다. 연습실을 사용할 수 있는 팀만 공정하게 선정한다면, 함께 모여서 연습하기 힘든 팀들에게 좋은 기회가 주어질 것이다.

블리자드가 앞으로 해야 하는 일은 어찌 보면 간단하다. 히어로즈 e스포츠에 도전하는 이들의 가능성을 키울 수 있게 기본적인 토양과 발판을 만들어주는 것이다. 새롭게 지역-커뮤니티 토너먼트를 운영 및 관리하는 'Grassroots e스포츠 매니저'를 모집하는 만큼 아마추어 육성과 신예 발굴에도 어느 정도 신경 쓰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지금까지 블리자드는 스타2의 WCS 체제, 와글와글 하스스톤, 히어로즈 글로벌 챔피언십 등 세계 최강 팀을 가리는 것에 집중적으로 투자했고, 준프로-비주류 프로팀 양성을 소흘히 해왔다. 하지만 겉으로만 번지르르한 나무는 쓰러질 수밖에 없다. 'Grassroots'라는 표현처럼 나무를 지지해줄 그 뿌리가 튼튼해져야 한다. 이제부터라도 더 많은 사람들이 블리자드 e스포츠에 도전할 만한 기본 토대를 다진다면 더 좋은 열매를 거둘 수 있을 것이다. 최고의 플레이를 보여주는 팀 역시 아마추어 시절부터 발전해왔다. 다시 한 번 세계 히어로즈 팬들의 기억에 남을 만한 템페스트와 같은 신생팀이 나올 것인지, '그들만의 리그'로 끝날 것인지는 앞으로 블리자드의 행보에 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