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피커에서 울려나오는 방송은 내 몸을 얼어
붙게 만들었다.
이 마을에서 살인귀와 함께 갇히다니...
사형선고를 들은 기분이었다.
정화씨도 시체들을 본데다 이런 방송마저
들으니, 충격을 받은 것 같았다. 그러나 우리가
여기서 할 일은 우선 파출서를 찾아가는 수밖에
없었다. 비는 계속 내리고 있었고,
아침이었는데도 불구하고 파출소로 가는 길에는
인적이 드물었다. 시체를 목격한 것과 그 방송
때문인지 길가 숲에서무언가가 퍽하고 튀어나와
우리를 갈기갈기 찢어버릴 것 같기도 했다.
우리는 거의 뛰다 시피해서 어제 그 파출서로
뛰어들어갔다. 그러나 이게 원일인가...
그저께만해도 헌병과 경찰들로 가득찼던
파출소에 아무도 없는 것이었다. 나는 당황하고
겁이 나서, 누구 없냐고 다급하게 소리쳤다.
몇번을 불러도 대답이 없어 너무 황당하고
절망적이었다.
이런 절박한 상황에 경찰 한명없다니...
이제 어떻게 해야 하나 당황하고 있는데,
부시럭 소리가 나면서 책상 뒷편에서 누군가가
일어나는 것이었다.
자고 있었는지 눈도 제대로 뜨지도 못하고
부시시한 모습으로 일어난 사람은 바로 그
김반장이라는 사람이었다. 그 사람은 어제
과음을 했는지 술 냄새를 확 풍기며 아직도 술이
덜 깬 모습으로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나는
웬지 모를 한심함도 느꼈지만,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다급하게 말했다.
“사람이 죽었어요! 사람이!
무당집에 두명이 죽어있어요! 무당은 머리에
낫이 꼿혀 있었어요!!!”
김반장은 처음에 내 말이 무슨 얘기인지 잘못
알아듯는 듯 했다. 단지 과음 때문에 머리가
아프고 어지러운지 의자에 아무렇게나 앉더니
주전자에 있는 물을 들이키더니 다시 어떤
일이냐고 물었다.
다시 차근 차근 우리가 무당집에서 발견한
끔찍했던 시체에 대해 얘기해주자, 그제서야
김반장은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았는지 세면대
에 가서 물을 머리에 끼언고 옷을 고쳐 입고
아까와는 좀 다른 모습으로 돌아왔다. 그러더
니 어디엔가 전화를 걸려고 노력하다가 전화
가 먹통인 것을 알고 욕지거리와 함께 전화를
내던져버렸다. 술에 취해 골아떨어져 전화선
이 유실되고 다리가 끊겨 고립된 상황을 모르
고 있는 것 같았다. 나는 식식거리는 김반장에
게 홍수얘기를 해주었다. 역시 모르고 있었더
니 김반장은 매우 놀랐다. 나는 다른 경찰은
다들 어디에들 있냐고 물었다. 내 질문에 김반
장은 히스테릭컬한 웃음과 함께 미쳐 생각하지
못한 얘기를 들려주었다.
“...하하... 다른 경찰이라...
이봐요 젊은이, 이렇게 작은 마을에는 원래
경찰이 거의 없소.
사실 이 마을에 경찰은 단 두명뿐이요. 아니,
나까지 합해 셋이 되야 정상이지만, 서순경은
읍내에 나갔으니 두명뿐이지.
여기는 파출소가 아니예요. 그저 작은 마을에
지서일뿐이죠.
그놈의 낫 살인사건 때문에 잠시 북적거렸지만,
지금은 다들 떠났고, 아무도 나가거나 들어갈
수 없는 이 마을에는 150여명의 주민과
두명의 별볼일 없는 경찰, 당신 두명, 그리고
피에 굶주린 미치광이 살인마가 있는거요. 아,
그놈 때문에 마을 사람 수가 점점 줄어들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김반장님이 뭔가 어떻게 해야 되지
않나요?”
정화씨는 그 얘기를 듣고도 별로 놀리지 않는
듯 꾸물럭거리는 김반장을 다그쳤다. 김반장은
어쩔 수 없다는 듯이 자리에서 일어나면서도
부정적인 얘기를 계속했다.
“그래야죠. 아가씨...
하지만 난들 특별히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는
것은 뻔하지 않소.
전화도 안되니 아무런 수사 협조나 도움도
받을 수 없고, 하나 남은 이순경은 집에서 자고
있을텐데 여기서 걸어서 한 20분 거리라 불
러오기도 수월하지도 않고... 차도 들어갈 수
없는 곳에 살고 있고...
그리고 이 마을은 사실 내 구역도 아닌데...
그래도 어쩔 수 없지...
안내하슈. 가 봐야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
겠지 뭐...”
말은 그렇게 해도 김반장은 처음의 탁하고
쾡한 눈빛이 아닌, 날카롭게 빛나는 형사의 눈
으로 돌아왔다. 말도 시니컬하게 하고, 모습도
작고 꾀죄죄하게 보여도 어딘지 모르게 믿음이
가는 사람이었다. 김반장을 데리고 그 무당의
집으로 나서려 하는데, 갑자기 문이 부서져라
열리더니, 겁에 질리고 당황한 얼굴의 경찰이
뛰어들어오는 것이었다.
“반...장...님!!!
큰 일...이 났어...요!! 사과골 최씨 부부
가...낫에 찔려... 헉헉...
죽어있는 것이 발견되었대요... 헉헉
살인이예요...”
우리는 처음에 우리 귀를 의심했다. 또 살인
이라니...
무당집 살인얘기를 하는 줄 알았다. 하지만
그것이 아닌 다른 살인에 대한 얘기였다. 온
몸에 소름이 쫙 끼치는 것이 느꼈졌다.
하지만 김반장은 침착하게 사태를 파악하려
고, 겁에 질리고 숨이 차서 어쩔 줄 몰라하는
그 젊은 순경을 다그쳤다.
“이봐! 이순경!
도대체 무슨 얘기를 하는거야?
흥분하지 말고 차근차근 사건에 대해 말해
봐!
천천히!!”
“죄송합니다. 김반장님.
제가 너무 당황했습니다.
사실 저도 집에서 자고 있는데, 갑자기 정미
소 김영감이 문을 두들기는 거예요. 김영감 말
로는 아침에 일이 있어 최씨네 갔는데 인기척
은 없고 방문밖으로 피 같은 것이 흘러나와 있
는 것이 보였다는 거예요.
피를 보니 너무 무서워 가까이 있는 우리집
에 와 나를 깨웠습니다.
나는 귀찮아서 그냥 무시하고 잠을 계속자려
고 하는데, 김영감의 겁에 질린 모습이 마음에
걸렸고, 김영감역시 너무 보채서 못 이기는 척
하고 최씨네로 향했죠. 그때 마을 방송을 통해
우리 동네가 고립되었다는 것을 알았고...
최씨네는 김영감 말대로 아무런 인기척이 없
었어요. 방문앞에는 말그대로 시뻘건 핏물같
은 것이 흘러있었습니다. 저는 불길한 느낌이
들었지만, 그냥 문을 열었어요.
문을 여는 순간, 나는 지옥에 들어온 기분이
었습니다.
작은 방 사방에 피가 튀어 있었고, 최씨와 부
인이 처참하게 피투성이가 되어 죽어 있었어
요. 구역질이 나오는 것을 참으며 대충 보니
부인은 누워있는 상태로 목이 따져 있는 것을
보니 자다가 변을 당한 것 같았고, 최씨는 벽
에 기대앉은 채로 목과 어깨가 심하게 난도질
당한 것을 보니 자다가 부인이 죽은 순간 깨어
범인을 보고 죽은 것 같았어요. 최씨의 눈은
마치 무슨 악마를 본 것처럼 공포로 가득차있
었어요. 나도 모르게 뒷걸음질치다가 방바닥
에 피투성이가 된 낫이 하나 떨어져 있는 것도
발견했습니다. 방안은 마치 악마가 낫을 들고
휩 쓸고 간 것 같아 보였어요.
저는 내가 경찰이라는 것도 잊고 김영감과
함께 그 끔찍한 곳에서 뒤도 안돌아보고 도망
쳤습니다. 김영감은 자기 집으로 갔고, 저는
여기로 왔습니다.
어떻게 해야하죠? 다리는 끊겼다는데...”
이순경의 말은 우리에게 충격으로 다가왔다.
또다른 살인이라니...
이제 그 살인마는 닥치는대로 사람을 죽이고
다니는 것이다.
나와 정화씨는 그 얘기를 듣고 우리가 아침에
목격했던 무당 모녀의 시체를 떠올렸다.
온몸에 전율이 흐르는 것 같았다. 어찌할 바를
모르고 멍하고 있는데, 김반장이 그 분위기를
깼다.
아까와는 전혀 다른 침착한 목소리로 이순경에게
앞으로 할 일을 지시했다.
“이순경, 어차피 이번 사건은 우리 몫이야.
다리가 복구되고, 읍내에서 지원이 들어오려면
넉넉잡아 한 이틀에서 사흘은 걸릴꺼야.
그때까지 손 놓고 그 놈이 사람을 죽이는 것을
볼수만은 없잖아! 그러니 뭔가는 해야지...
이순경은 당장 이장댁에 가서 오늘 발견된
살인사건에 대해 얘기하고, 가능한 빨리 마울
사람들을 한 곳에 모이게 하라고 해. 전화가
불통되었으니, 모아놓고 이번 사건에 대해 경
고를 해줘야겠어.
그리고 장정 두세명정도 비닐 하우스에 쓰는
큰 비닐 가지고 무당집으로 보내줘. 그리고
고기간 하는 정씨에게 시체들이 들어갈 수 있
는 냉동고가 있나 물어봐. 이 날씨에 시체를
그냥 놨두면 얼마 안가 흉칙하게 썩어버릴테
니...그 일이 다 끝나면, 최씨 집에 가서 다른
사람들이 현장을 훼손하지 않게 지키고 있
어. 내가 무당집을 조사해 본 뒤 서둘러 최씨
집 살인 현장으로 달려갈테니...
그리고 주의할 건 마을 사람들에게 경고를
하되 무작정 겁을 집어먹지 않게 주의하도록.
괜한 소동 일어나면 통제가 힘들어지니까...
아, 그리고 마을 사람들 모일 때, 집에 쓰는
낫을 들고 모이라고 해.
그 살인마는 이상하게 낫에 집착하는 것 같으
니...
없어진 낫을 보면 뭔가 단서가 잡힐지도 모
르니까...
또, 지서에 있는 무기고를 열어 옛날 총이라도
좋으니 있는데로 꺼내가져와. 나는 권총
한자루 가지고 있으니, 자네나 무장하고 남은
것이 있으면, 최씨 집으로 가져와. 쓸모가 있을
테니...
이순경 명심해!
이번 사건을 해결하고, 마을 사람들을 보호
해야 할 사람은 우리 둘밖에없다는 것을...
그럼 수고하게...”
김반장은 마치 미리 생각하고 있던 것처럼
일사천리로 이순경에게 명령하고 멍해 있는
우리를 독촉해 무당집으로 향했다.
빗줄기는 아침보다는 약해졌지만, 그래도
끊임없이 내리고 있었다.
김반장의 고물차에 타 무당집으로 향하면
서, 나는 그 무당이 우리를 불러 해 주었던 괴
기한 얘기와 우리가 준비했던 의식에 대해 간
략하게 얘기해 주었다. 솔직이 김반장이 우리
의 황당한 얘기를 않믿을까 걱정했는데, 김반
장은 진지한 표정을 하고 몇가지 질문까지 하
면서 우리의 얘기를 들었다. 과수원 얘기를 꺼
내자 김반장의 표정은 웬지 모르게 심각해 졌다.
뭔가 생각이 가는 쪽이 있는 것처럼 보였다.
걸어서는 한참인 거리지만, 비포장 시골길
인데도 불구하고 차로는 금방이었다. 김반장
은 무당집 어귀에 도착하자 서둘러 차에서 내
렸다.
우리는 뛰다시피 김반장의 뒤를 따랐다. 잰
걸음으로 무당집으로 향하는 김반장의 뒷모습
은 노련한 사냥개를 연상시켰다. 피냄새를 맡
은...
무당집은 우리가 떠날때와 변한 것이 없었다.
하지만 나는 잔인하게 살해된 시체들이 널
부러져 있는 그 방에는 죽어도 들어가기 싫었
다. 다른 것보다도 겁에 질려 있는 그 눈이 머
리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김반장은 거침없이 그 방으로 들어갔다.
들어가는 순간 김반장의 신음소리가 들렸
다. 산전수전 다 겪은 반장 역시 충격을 받은
모양이었다. 하지만 곧 반장은 재빠르게 참혹
한 현장을 조사했다. 나는 정화씨와 함께 그
방으로 들어가지 마당에서 기다렸다.
정화씨는 떨고 있는 것 같았다. 나는 잠시
생각에 잠겨 보았다.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인가?
사라진 재원이를 찾으로 왔다가 끔찍한 살
인사건에 휘말린 것이다. 더구나 언제 우리가
그 희생양이 될지 모르는 상황에서...
아직까지 재원이에 대한 단서가 하나도 없
는 것을 봐서, 이 마을에서 재원이의 그 무언
가를 찾으려 한 것은 헛수고 같았다. 대신 엉
뚱한 일에 빠져들게 된 것이다.
김반장의 목소리가 생각에 잠겨있는 나를
방해했다.
“일한씨! 여기좀 들어와서 이것좀 봐주겠
소!”
나는 그 방에 들어가기는 지옥에 들어가는
것보다 싫었지만, 김반장의 강압적인 목소리
에 어쩔 수 없이 방에 발을 들여놓았다.
방안은 기분나쁘게 우리가 시체를 발견하던
그대로였다.
김반장은 앉아있는채로 정수리에 낫이 박혀
죽어있는 노파 무당의 시체앞에 서서 골똘히
무언가 생각하고 있는 모습이었다.
시체들의 모습은 이미 본 것이긴 하지만, 여
전히 소름이 끼칠정도로 끔찍한 모습 그대로
였다. 벌써 썩기 시작하는지 고약한 냄새마저
풍기고 있었다. 구역질을 참으며 김반장에게
로 다가갔다.
“여기 박힌 낫좀 자세히 봐요. 날이 왼쪽을
향해 박혀 있고, 손잡이가 오른쪽을 향한 것을
보면, 상식적으로 범인은 오른손 잡이라는 얘
기죠.
하긴 범인 자체가 상식적인 놈이 아니긴 하
지만...낫을 이용해 사람의 두개골을 뚫고 이
정도 박는다는 것은 인간의 힘으로 불가능해
보인는 데...
그런데 여기 방바닥에 놓여져 있는 낫을 잘
봐요?
좀 이상하죠?”
나는 김반장이 무슨 얘기를 하는지 잘 이해
가 가지 않았다. 노파 무당의 정수리 박힌 낫
을 보고 범인이 오른손 잡이라는 것을 추측한
것은 이해했지만, 피투성이가 된채로 놓여있
는 다른 하나의 낫을 보고 이상하다는 것은 알
수가 없었다. 단지 손잡이 역시 피가 튀어져있
고, 누군가가 다 쓰고 가지런히 놓은 것처럼
낫 놓여있는 것이었다. 의아해하고 있는데 김
반장이 자기 추리를 얘기해 주었다.
“이 방바닥에 놓여진 낫을 잘 보세요.
날 끝이 오른쪽을 향하고 있죠.
한 번 생각해보세요. 오른손에 낫을 쥐고
사람을 난도질해 죽인 후 그 흉기를 가지런히
놓았다면, 낫의 날 끝이 왼쪽을 향해야 되죠.
그런데 이 낫의 날끝은 오른쪽을 향하고 있어
요. 다시 한 번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이번엔
범인은 왼손잡이가 되어 무당의 딸을 난도질
해 죽인 것이예요. 그 후 자랑이라도 하듯이
낫을 가지런히 놓았어요. 왼손으로...
무당 딸 시체의 상처를 보더래도, 대부분의
상처가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나있어요. 그것
은 범인이 낫을 왼손으로 들고 휘둘렀다는 얘
기예요?
혹시 이 방에 처음 들어왔을 때, 너무 놀라
낫의 방향을 건드린 것 아니예요?”
나는 그제서야 김반장이 얘기하는 것을 이
해했다. 하지만 우리는 처음 시체들을 발견할
때 전혀 건드린 것이 없었다. 김반장은 나의
대답에 고개를 끄덕이면서 자기의 논리를 계
속해서 폈다.
“하긴 여기 놓여진 낫에 튀긴 피자국을 보
아도, 누가 움직여놓은 것은 아닌 것 같군요.
또한 범인이 살인 직후 낫을 던진 것이 아니고
가만히 바닥에 놓았다는 것은 주변에 고여있
는 핏물을 보면 알 수가 있어요.
그럼 생각해보죠.
결과적으로 그 놈은 무당노파는 오른손을
이용해 낫을 정수리에 꼿았고, 무당의 딸은 왼
손을 이용해 난도질 했다는 거요.
놈이 양손잡이일 수도 있고, 아니면....
범인 두 명일 가능성도 있는거죠...
그렇게 된다면 문제가 커지는데...
그리고 그 놈이 이방으로 칩입하고 나간 흔
적이 전혀없다는 거예요.
정밀 조사를 해봐야 알겠지만, 육안으로 보
면 안에서 잠긴 창문이나, 문에는 특별한 흔적
이 없다는 거요 그리고 더욱 이상한 것은 방바
닥에 이렇게 많은 피가 튀었는데 놈의 발자국
이 하나도 안 찍혔다는 거요.
여기서 이렇게 낫으로 내리찍었다면, 피가
사방에 튀고 움직일 때 발작국이 나야 정상인
데, 여기난 발자국은 우리 발작국밖에 없다는
거요.
그 놈은 마치 허공에 뜬 상태에서 살인을
저지르고, 귀신처럼 사라진것 같소. 참 이상하
죠....
또 하나 알아볼 수 있는 것은 무당은 앉아서
아무런 반항없이 당했다는 거요. 그 얘기는
즉 그 살인범은 무당을 알고 있었던 놈 같아
요. 그러니까 그 놈은 이 방에 들어와 아무런
저항없이 이 무당 노파를 오른손으로 죽이고,
겁에 질려 반항하는 무당의 딸을 왼손으로 난
도질 했다는 거요.
좀 이상하죠?
두 사람을 죽인다고 가정할 때, 아무리 침
착하다고 해도 첫 번째 희생 자의 머리에다 낫
을 박아놓고, 반항하는 두 번째 희생자에게는
낫을 바꿔들고 죽였다는 것이...
그 놈이 양손잡이라면 아무런 문제가 없겠
죠...
하지만 만약 살인마가 둘이라면...”
김반장의 추리에 나는 한기까지 느껴졌다.
무자비하고, 치밀하고, 힘도 보통 인간정도
를 뛰어넘고, 또 살인을 즐기는 듯한 살인마가
둘이라는 것이...
김반장은 손에 장갑을 끼고 머리에 박힌 낫
을 빼보려고 했으나, 워낙 깊이 박혀 혼자 힘
으로는 꼼짝도 안했다. 시체의 상태가 상할까
봐 김반장은 낫을 뽑는 것을 포기하고, 바닥에
놓여진 두 번째 낫을 조심스럽게 가져온 비닐
봉지에 넣었다.
그때 밖에서 웅성거리는 소리와 함께, 들어
가 보라는 정화씨의 목소리가 들렸다. 이순경
이 보낸 마을들의 젊은이 네명이 커다란 검은
비닐을 들고 방안으로 들어왔다. 그들은 방안
의 참혹한 광경을 보고 움직일 줄을몰랐다. 김
반장은 정신을 못 차리고 있는 그들에게 소리
를 치면서 빨리 비닐에 싸서 시체를 운반하라
고 했다.
그들은 신음소리를 내면서 겨우 시체를 비
닐에 싸 운반하기 시작했다. 김반장은 장소를
훼손하지 말라고 주의 주면서 시체 운반을 지
휘했다.
마을 청년들은 언뜻 보기에도 겁에 질린 모
습들이 역력했다. 그들의 표정엔 죽음의 공포
가 보였다.
김반장은 그들을 트럭에 실어 보내고, 잠시
집 주위를 돌면서 뭔가를 찾았다. 그러더니 마
당 한 구석에서 뭔가를 발견했는지 잠시 멈추
었다.
어깨 너머로 보니, 거므스름한 흙이 빗물에
떠내려가는 것을 보고 있는 것이었다. 마당은
원래 황토흙으로 덮여 있어, 검은 흙은 눈에
띄었다. 많지 않은 양이었는지 빗물에 섞여
그리 뚜렷하진 않았지만, 김반장은 웬지 그
흙물을 유심히 살펴보았다.
그러더니 아무 얘기도 않 해주고, 시체가
발견된 최씨네로 향했다.
최씨네로 가는 차에서 김반장은 우리에게
무당이 했던 얘기에 대해 자세히 물어봤다.
과수원에서 하려고 했던 의식에 대해 물어봤다.
나는 대답하기 뭐했지만, 김반장의 진지한
모습에 있는대로 얘기해 주었다.
과수원 주인이 부인을 살려내려고 하다가 뭔가
무시무시한 것을 살려낸 것 같다는 황당한
얘기를 했다. 김반장은 그 얘기를 듣고 전혀
놀라는 기색없이 뭔가 골똘이 생각하는 것
같았다.
비오는 시골길을 덜컹거리며 달려 최씨네에
도착했다.
어느새 소문이 퍼졌는지, 많은 마을 사람들이
웅성거리며 모여있었다. 차에서 내리는 김반장을
보고 구세주를 만났다는 듯이 모여들었지만,
뒤 따라 내리는 나와 정화씨를 보더니 경계와
분노의 눈길을 주는 것이었다. 김반장은 모여드는
사람들에게 오늘 저녁 전체 모임에서 자세히
설명하겠으니, 꼭들 모이라고 하고 사람들을
헤치고 집안으로 들어갔다.
집에는 이장으로 보이는 사람과 이순경이
구식 칼빈총을 세자루들고 서 있었다. 김반장
은 이장에게 다가가 몇가지 얘기하고, 생각지
도 않게 우리를 마을 이장에게 소개시켰다.
“이장님, 이 젊은 분들은 학술조사차 이 동
네 왔다가제 수사를 돕게 된 분입니다. 결정적
인 단서도 많이 찾고 능력있는 분들입니다. 많
이 도와주세요.”
마을 이장은 김반장의 소개에 미심쩍인 표
정을 지었지만, 우리를 경계하는 태도는 처음
에 비하면 거의 없어졌다. 나와 정화씨는 엉겹
결에 인사하고 김반장을 의문스러운 표정으로
쳐다보았다.
김반장은 우리들의 의문스러운 표정을 무시
하고 이장과 저녁에 있을 모임과 사건에 대한
대책에 대해 논의했다. 그리고 읍내와 연락할
길을 반드시 찾아달라고 부탁했다. 이장은 모
여든 마을사람들에게 다가가 오늘 저녁 모임
에 대해 설명해주고, 각자 맡은 이웃에게 연락
을 하라며 해산을 종용했다.
김반장은 이장이 자리를 뜨자 우리를 거짓
으로 소개한 것에 대해 해명했다.
“마을에는 당신들이 오고서부터 이상한 소
문이 돌기 시작했어요.
당신들이 악귀를 이 마을에 데리고 와, 사
람들이 계속 죽어가고 있다는... 겁에 질린 마
을 사람들이 혹시 희생양으로 무슨 짓을 저질
를까 이렇게 소개한거요. 오해말고, 혹시 모르
니까 좀 주의하세요.
사람들이 공포에 휩싸이면 어떤 일이 발생
할지 모르니....”
김반장의 뜻밖에 경고에 나와 정화씨는 겁
이 났다.
그럼 마을 사람들이 이번 연쇄 살인 사건을
우리 탓으로 돌리고 있다는 것인가...갑자기
우리를 바라보던 마을 사람들의 경계의 눈빛
이 무서워지기 시작했다. 김반장은 이순경을
데리고 시체가 있는 방으로 들어갔다. 한참을
방안에서 조사하고 나와서는 김반장은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며 얘기했다.
“정말 지독한 놈인 것 같아...
낫을 이용해서, 사람을 완전히 회를 쳐놨
군...
아무런 주저없이 무시무시한 힘으로 부부
를 피떡으로 만들었소.
그런데 이번에는 왼손만 쓴 것 같아.
아니면, 왼손잡이만 여기에 왔을지도 모르
지....”
그러더니 이순경과 나를 바라보고 지시를
내렸다.
“이순경은 이 시체들을 가지고 냉동고로 가
고, 보건소로 가서 보건의를 데려와 시체를 살
펴보게 하도록. 뭐 자세한 것은 모르겠지만 혹
시 새로운 것이 나올지도 모르니.
그것을 다 마치면 지서에서 나를 기다리도록.
그리고 기다리는 동안 지난번 그 탈영병 사
건 기록이 있나 찾아봐.
몇 년전에 있었던 과수원 살인사건의 기록도...
그리고 일한씨와 정화씨는 나와 함께 갈때가 있소.
내키지 않으면 그냥 여관에서 쉬어도 좋지
만, 친구를 찾기 위해서라도 그리고 마을 사람
들에게 의심을 받지 않기 위해서도 나를 따라
다는 것이 좋겠소. 뭔가 수사에 도움이 될 것
같기도 하고...
친구 문제는 저녁 마을 전체 모임때 얘기해
보면 뭔가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르고...”
김반장은 우리의 의향을 물었다. 나는 정화
씨를 쳐다보았다. 정화씨는 잠시 생각하더니
김반장을 따라나서자고 했다. 여관에서 두려
움에 떨고 있기 보다는 차라리 김반장을 따라
다니는 것이 좋다고 판단한 것 같았다.
김반장은 여기서도 마당을 조사하다가 아까
무당집에서 본 검은 흙물을 발견했다. 심각한
표정으로 그 흙물을 살폈다.
그러더니 우리를 데리고 어딘가로 향했다.
어디로 가냐는 우리 질문에 단지 어르신을
만나러 간다고 짧게 대답했다. 한참을 산길을
걷다 보니, 커다란 집이 하나 나왔다.
김반장은 그 집 주인과 잘 아는 사이인지,
어르신이라고 불리는 노인의 상태를 묻더니
좀 뵈야겠다고 말했다. 집주인 좀 망설이다가
김반장의 간곡한 요청에 허락했다.
잠시만 기다려 달라는 집주인의 얘기에 우
리는 대청에서 기다렸다.
김반장은 우리를 보고 어르신이라는 사람에
게 대해 설명해 주었다.
“지금 우리가 만나 뵐 분은 이 마을에 최고
연장자고 이 마을에 대해 모르는 것이 없는 분
입니다. 아마 거의 백세가 다 되셨을테지...
이 마을에서만 백년을 사신 샘이죠.
나는 이 분에게 그 과수원에 둘러싼 전해내
려오는 얘길에 대해 물어볼 생각이요. 혹시 당
신들이 무당에게 들었던 얘기와 재원이란 친
구에게 들었던 얘기와 뭔가 관련되는 얘기가
나올지 모르니 잘 들어보세요.
한가지 걱정은 어르신이 너무 나이가 많고
지금 풍에 걸려 몸도 불편하셔서 말씀을 제대
로 해 주실까 하는거요...”
때마침 집주인이 우리를 그 어르신이라는
분이 계시는 방안으로 안내했다. 그 어르신이
라는 할아버지는 첫눈에 봐도 나이가 엄청 많
이 들어보였다. 몸도 불편한지 누워있는 상태
에서 고개만 끄덕거렸다. 김반장은 자리에 앉
아마자 큰 소리로 자기를 포함한 우리를 소개
했다.
“어르신!
저 방앗간집 둘째아들 종수입니다. 읍내에
서 순사질하고 있는...
이 젊은이들은 서울에서 공부하고 있는 학
생들이구요!
어르신 몸은 좀 어떠세요?”
그 말에 그 할아버지는 힘겹게 눈을 뜨고 우
리를 바라보았다. 그리곤 거의 듣기 힘든 작은
소리를 얘기를 했다.
“아...종수...
나야...이제...죽을...몸이지...뭐...콜록 콜
록!
그런데...무슨...일이지...”
김반장은 목소리를 가다듬고, 큰 소리로 물
어보았다.
“어른신!
저 성황당 너머 과수원 아시죠?
거기서 사람이 죽은 적 있죠?
그것에 대해 얘기 좀 해 주세요?”
김반장의 질문에 나는 의아할 수 밖에 없었
다. 몇 년전에 있었던 그 살인사건을 굳이 이
노인에게 물을 필요는 없을 것 같았다.
거의 죽어가는 노인 그 사건에 대해서 알 리
가 없을텐데 무엇을 묻는지 궁금했다.
하지만 나의 의심은 그 노인의 대답을 듣자
충격과 함께 여지없이 깨져버렸다.
“아...그 일...
오래전 일이지...오래전 콜록콜록...
내가 어렸을 적...일이니까...
아주 무서운 일이었지. 그 과수원에서 있었
던...콜록 콜록!
아마 내가 10살정도 되었을 때 일이었을 거야.
그러니까 왜놈들에게 우리나라를 빼았끼고
몇 년이 지난 후였으니까...
그때 우리 마을은 참 못사는 산골이었어.
보리고개 때는 나무껍질을 벗겨먹어야 할 정
도로 힘들었지...
농사라고 해도 조그만 텃밭에 지었고, 약초
나 나물을 캐어 생계를 연명했어. 참 배고픈
시절이었지...
그런데, 그때 과수원자리에 누군가가 이사
왔지.
이상한 일이었지.
이런 산골에 누군가가 이사온다는 것은.
그때는 주민이 50명정도 밖에 안되는 촌구
석 작은 마을이었거든.
그 젊은 사람은 젊은 부인과 내 또래의 딸년
을 데리고 왔어.
읍내 지서장이 이사올 때 따라온 것을 사람
들이 보고 높은 사람이 왔다고 수군거리던 것
이 기억나구나...콜록.
그 사람은 돈이 많았는지, 그 과수원 땅을
사고 사람들을 사서 그 버려진 땅을 과수원으
로 만들었지...
그러더니 일본에서 들여온 새로운 종자의
과일들을 키우기 시작했어.
마을 사람들은 그 새로운 사람의 정체에 대
해 궁금해했어. 그리고 동시에 미워하기 시작
했어.
왜 미워한 줄 알아?
특별한 이유없이 새로운 사람이라는 것을
이유하나로...
그때 우리동네는 거의 한가족이었지. 모두
가 친척인 셈이었지.
그런 동네에 이물질이 들어온 거야.
그 사람은 동네 사람들과 어울릴라고 했지
만, 동네 사람들은 그를 미워하고 배척했어.
마치 그 사람이 역병 환자라도 되는 것처럼 증
오했어.
그 이유없는 증오심과 미움은 눈덩이가 불
어나듯 커졌지...
아마 낯선 이방인에 대한 맹목적인 미움이
었을 거야...
그렇게 마을 사람들의 손가락질을 받으면서
도 그 사람은 묵묵히 과수원을 일구어 나갔
어...지금 생각해 보면 그 사람은 참 부지런하
고 착실했는데...
하지만 나도 어른들의 영향을 받아서인지
그 집 식구가 지나가면 돌을 던지거나 침을 뱉
는등 못살게 굴었지...
그 젊은 부인은 참 괴로웠을거야...
마을 사람들이 두려워 집밖에 제대로 나오
지도 못하고...
아마 집안에서 서너살된 딸아이만 키우고
있었겠지...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마을에 이상한 소문
이 돌기 시작했어.
그 과수원 집은 귀신의 소굴이라는 거야...
그 젊은 부부는 귀신을 섬기는 사람들이
고...
그런 무시무시한 소문은 겉잡을 수 없이 커
졌지...
이제 마을 사람들은 그 과수원집 사람을 공
포와 증오가 뒤섞인 눈으로 바라보게 되었
지... 콜록콜록!
나도 어렸지만, 마을 사람들의 그 감정을 그
대로 여과없이 가지게 되었어.
밤마다 그 과수원 집 헛간에서 사람이 비명
소리가 들려온다는 등, 그 집 사람들은 피에다
밥을 말아 먹는다등 별의별 소문이 있었지.
낮에도 그 집을 지나기가 무서울 정도였
지...
그러던 여름이었을거야...콜록콜록!
그 여름도 올해처럼 비가 많이왔지...
그때는 아무런 시설이 없었으니 물난리는
쉽게 일어났지...
그래도 우리 마을은 높은 곳에 있어 왠만한
홍수에는 별로 피해를 보지 않았어... 그런데
그 해는 좀 달랐어...
살고 있는 집들은 그래도 괜찮았지만, 논과
밭은 물에 잠겨버렸어.
그해 농사는 치명적인 타격을 받았지...
콜록 콜록!
지금도 그 해 겨울의 배고픔만 생각하면 괴
롭지...
농사에 전적으로 의지하던 우리 마을은 그
홍수로 대 흉년을 맞이했지...
가을이라고 해봤자 거두어 드린 수확이란
보잘 것 없었고...
사람들은 정말 배고픔을 견디다 못해 나무
껍질을 벗겨먹고, 몇몇은 아예 이 마을을 떠나
버렸지...
약초를 캐러 산으로 들어간 사람도 있었고,
사냥한답시고 산으로 들어갔다 멧돼지에 박혀
죽은 사람도 있었지...
휴...
그런데 공교롭게도 그 과수원 집만 홍수 피
해를 보지 않은 거야...
그 과수원이 워낙 높은 지역에 있어서 그 큰
물난리에도 말짱했지...
더욱이 일본에서 들여온 신종자 탓인지 아
니면 운이 좋았던지 과수원 농사도 평년에 비
해 잘되었지...콜록콜록!
마을 사람들이 굶주림에 미쳐갈 때 그 집만
풍족하게 지냈어.
그 사람은 착했지...
마을 사람이 어려운 것을 알고 처음에는 나
름대로 도우려 했어.
쌀 두가마니를 마을 사람들에게 놔누주었
지...
하지만 사람들은 재수 없는 쌀이라고 받기
는커녕 그 사람에게 욕설을 퍼붇고 그 쌀을 태
워버렸어...
모두들 미쳤지... 미쳤어...
그 사람은 그 사건 이후 더 이상 마을 사람
들을 도우려 하지 않았지...
그래도 남 몰래 그 사람 집에 찾아가 먹을
것을 얻어먹은 마을 사람들도 꽤 있었어...
나도 그때 배고픔에 못이겨 친구들과 함께
그 집에 먹을 것을 훔치러 들어간 적이 있었
어. 귀신이 나올지도 모른다는 무서움을 참으
며 담을 넘어 그 집에 들어갔지...
부엌에 들어가 가마솥에 남아있던 찬밥을
미친 듯이 입안으로 우겨넣다가 그 집 주인에
게 들켰지...콜록콜록!
그때가 그 집 주인하고 처음으로 말을 해본
것이지...
지금 기억에도 그 사람은 이상할 정도로 우
리에게 잘 해주었어.
배고품에 찌들린 우리를 불쌍하게 봤는지,
도둑질하러 들어온 우리를 나무라기는 커녕,
싫어하는 부인을 달래서 반찬까지 차려주었
지...
우리는 무서움과 체면은 다 잊고 먹기에만
정신을 팔았지...
그때 우리모습을 보고 한숨을 내쉬는 그 사
람의 모습이 아직도 기억에 남아있어...
그 사건 이후로 우리는 그 사람을 보는 시각
이 달라졌어. 하지만 어른들에게 혼날까봐 그
집에서 밥을 얻어먹었다는 얘기는 꺼내지도
못했어...
괜히 그 사람이 칭찬했다가 날벼락이라도
떨어질 것 같았거든...
가을은 지나고 그 혹독한 겨울이 다가왔
지...콜록콜록...
그 끔찍한 겨울이...
모든 마을 사람은 굶주림에 거의 미칠 지경
이었지...
마을에 식량이란 식량과 가축은 모든 먹어
치웠지만, 그 대기근을 해결할 수는 없었어...
정말 지독히도 괴로운 겨울이었어...
아직까지도 그 겨울의 고통은 생생할 지경
이니...
그러던 어느날 밤, 동구밖에 살던 최씨가 그
과수원집 헛간에 들어간 음식을 훔치다 과수
원집 주인에게 들킨 일이 발생했어. 과수원 집
주인은 망설이다가 최씨를 놔 주었데... 콜록
콜록...
그런데...그 최씨는 자기 잘못은 생각하지도
않고 그 날 이후 마을 사람들에게 과수원집 헛
간에는 먹을 것이 넘쳐나고 있고, 그 집 주인
은 탐욕스럽게 그 음식들을 왜놈들에게 바친
다고 소문냈어. 그 집 주인에 대한 마을 사람
들의 증오는 더욱 심해졌지...
굶주림이 심하다보면 이성이 마비 되는지...
며칠 후 눈이 심하게 오던 날 누구의 주동도
없었는데도 저절로 마을 사람들이 모였어...
아직도 기억나...그 살벌했던 분위기를...
마을 사람들의 눈에는 광기가 가득했고, 모
두들 낫이나 곡괭이들을 들고 누군가를 죽일
기세로 모여들었지...
바로 그 과수원집에 쳐들어가려고 모인 것
이야...
나는 어른들 몰래 거기에 따라갔어... 어쩌
면 나를 따뜻하게 대접했던 그 집 주인이 걱정
되었을 지도 몰랐어...
마을 사람들은 한손에 횃불을 들고 살기 등
등해서 과수원집으로 향했어.
그리곤 그 집 문앞을 애워샀어.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문을 부시고 그 과수원 집으로 쳐
들어갔지...콜록콜록...
한 무리의 마을 사람들은 곳간을 부시고 들
어가 닥치는 대로 그 집 식량을 들고 나왔고,
다른 한무리는 곤히 자고 있던 그 집 일가를
붙잡아 나왔어. 과수원 집 주인 필사적으로 겁
에 질려 있는 아내와 목이 터져라 울고 있던
딸을 달래려 애썼어.
지금 생각해보면 그 사람 참 대단한 사람이
야...
자다가 그렇게 험악한 분위기에 휩싸였는데
도 그렇게 당황하는 모습이 아니었어. 차가운
눈 바닥에 가족과 함께 내팽겨쳐지고 주위에
는 광기에 사로잡힌 마을사람들이 살기를 띠
고 있고, 자기의 재산이 눈앞에서 약탈당하는
데도 그렇게 겁에 질린 모습이 아니었지...
그리고 당당하게 마을 사람들에게 따졌지...
‘여러분, 배가 고프면 저희 집 곡식을 가져
가시오!
하지만, 이런 식으로 강탈하지는 마시오!
부탁하면 드릴 생각이었소.
뭐하는 짓들이요!
한밤중에 아녀자를 놀라게 하면서까지 그
럴 필요는 없잖소!
다들 집으로 돌아가시오. 헛간에 있는 것
도 이제 다들 가져 가지 않았소!
없었던 일로 할테니, 다들 돌아가시오!
우리를 그만 괴롭히고...’
어린마음에 보기엔 정말 용감하고 위풍당당
해보였지...
그런데도 그렇게 당당하게 말하던 그 사람
의 모습에는 이상하게도 슬픔이 보였어... 뭔
가 안타까워하고, 허탈하고 희망을 잃은듯
한...
살기 등등하던 마을 사람들도 그 사람의 꾸
짓음에 정신을 차렸는지 고개를 숙이고 슬금
슬금 뒷걸음질치기 시작했어. 여기 저기서 제
정신을 차린 사람들이 손에 들고 있던 낫과 몽
둥이들을 힘없이 떨구기 시작했어.
마을 사람들도 자기들의 강도질에 부끄러움
을 느꼈는지 서로의 시선을 피했지...나는 안
도했지... 어느새 그 과수원 주인의 편이 되었
거든.
그냥 그렇게 그날 밤일은 끝나는 것 같았
지...
그때였어...콜록콜록...
휴...
어디선가 날카로운 외침소리가 들려왔어
‘저 놈을 이대로 놨두면 순사에게 신고할
지도 몰라!’
그 외침소리 하나로 가라앉던 마을 사람들
의 분위기는 갑자기 험악해지기 시작했어. 모
두들 다시 이유모를 살기에 사로잡혔지...
아마 그 과수원 주인이 순사들과 친한 관계
로 보여진데다, 이 사실이 마을 지서까지 신고
되면 마을 사람들 모두 서슬퍼런 왜놈 경찰에
끌려고 고초를 겪어야한다는 것이 겁이 나서
더 그랬을지도 몰라...
여기저기서 한마디씩 터져나오기 시작했어.
‘맞어! 저 놈은 분명히 신고할꺼야!’
‘저 놈은 왜놈 지서장과 한통속이니 이대
로 가만있지 않을거야!’
‘저 놈말은 믿을 수 없어!’
이런 저런 험악한 말이 터져 나오더니, 어디
선가 끔찍한 말이 나오기 시작했어
‘저 놈을 죽이자! 죽여서 입을 막자!’
‘그래 죽이자!’
‘저놈은 죽어도 싼 놈이야!’
‘죽여!’
삽시간의 분위기는 무시무시해졌어. 마을
사람들의 얼굴은 악귀같았어.
피에 굶주린 도깨비 같았지.
그 과수원 주인도 심각함을 느끼고 필사적
으로 점점 다가오는 마을 사람들을 말리려 애
썼지...콜록콜록...
하지만 소용없었어.
이미 미쳐버린 마을 사람들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절규하던 과수원 주인을 덮쳤어. 마
치 늑대떼가 먹이를 발견하고 게걸스럽게 덮
치듯이...
비명소리와 낫과 몽둥이가 난무하고 피가
사방으로 튀었어...
콜록콜록...
어렸던 나는 차마 눈을 뜨고 볼 수가 없었지.
하지만 알 수 없는 의무감에 사로잡혀 눈을
돌릴 수 없었어...
달려들었던 마을 사람들이 한두발 떨어지자
그 사람의 처참한 모습이 보였지... 휴...
정말 순식간에 멀쩡하던 사람이 피투성이
고깃덩이가 되어버렸어...
평소에 그렇게 양순하던 마을 사람들이 그
때는 그렇게 다르게 보였지...
자기 남편이 잔인하게 죽임을 당하는 것을
두눈으로 똑똑히 보게 된 그 부인은 실성한 사
람처럼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지.
목이 터져라 울고 있는 어린 딸을 품에 꼭
안고, 애 만은 살려 달라고 처절하게 외쳤지...
콜록콜록...
이미 한 번의 살인을 저지른 마을 사람들의
눈에는 여자와 어린아이도 전혀 불쌍하게 보
이지 않는 것 같았지.
몇몇은 차마 여자와 어린아이는 그냥 두자
며, 물러섰어...
하지만 이미 칫솟은 광기는 아무도 막지 못
했어...
자기들이 살인한 모습을 본 그 가련한 모녀
를 살려둘 생각은 들지도 않았을 거야... 찢어
질 듯한 비명을 지르며 애엄마는 필사적으로
딸을 품안에 안고 보호하려고 했지.
마을 사람들은 최면에 걸린 사람들 처럼 피
묻은 낫과 몽둥이를 들고 천천히 다가갔어...
휴...콜록콜록...
그때는 이미 마을 사람들이 아니었지... 완
전히 악귀였지, 악귀...
무서웠어... 지금 생각해도 몸이 떨리곤
해...
뒤에서 본 마을 사람들은 허겁지겁 먹을 것
을 먹어치우는 들개처럼 보였어. ‘퍽퍽’하는
소리와 피가 튀기는 것은 그 모녀를 둘러싼 마
을 사람들의 등뒤로 보였어.
기계적으로 낫과 몽둥이로 희생자를 내려치
는 모습은 정말 지옥을 보는 것 같았어...
곧 아이와 엄마의 비명소리도 없어지고‘퍽
퍽’하는 내려찍는 소리만 들렸어. 마을 사람들
은 살육을 마치고 천천히 물러났지...
마을 사람들 사이로 보인 아이와 엄마는 정
말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참혹하게 보였어... 형
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찢겼으니...
하얀 눈은 사방이 빨간 피로 물들었어...
마을 사람들은 자기들이 저지른 일을 감상
이라고 하는 듯이 가만히 서 있었어. 기분나쁜
적막이었어...
그때였지... 콜록콜록...
분노로 피를 토해내는 듯한 처절한 절규가
들렸어...
‘이 놈들! 이 놈들...’
죽었다고만 생각했던 그 과수원 주인이 살
아서 자기 가족이 처첨하게 죽는 것을 본 것이
야...
사랑하는 아내와 딸이 낫과 몽둥이에 맞아
죽는 모습을...
그 사람은 피투성이가 되고, 살점이 너덜거
리는데도 불구하고 몸을 일으키려고 애섰지...
마을 사람들은 범죄현장을 들킨 사람들처럼
그 모습을 충격을 받았는지 아니면 겁이 났는
지 움직이지 못했어...
그 사람은 몸을 일으켰어...
그 모습이야말로 정말 처참했지...
한쪽팔은 팔꿈치 밑으로 거의 잘려나가 대
롱거렸고, 핏물을 뒤집어쓴 것 처럼 머리위부
터 발끝까지 피투성이였어...
하지만 그 빨간 피 사이로 분노와 증오를 불
타는 눈은 보기만 해도 몸이 얼어붙을 정도로
무서워 보였지...
그 사람은 비틀거리며 천천히 자기 가족의
시체더미로 다가갔지...
아무도 막지 못했어... 그 사람이 지나가니
까, 주위에 마을 사람들은 겁에 질린 듯이 슬
금슬금 뒷걸음질쳤어...
그 사람은 형체를 알아볼 수 없는 아내와 딸
의 시체를 안고 주위의 마을 사람들을 무시무
시한 눈으로 보고, 잊을 수 없는 한마디를 했
지...
‘이 놈들, 내가 반드시 복수한다...
너희들 모두, 내가 받은 만큼 돌려준다...’
지옥에서 들려오는 듯한 목소리였지...
마을 사람들은 겁에 질려 아무 짓도 못하고
가만히 서 있었지...
그 사람은 중상을 입었는데도 불구하고 딸
과 아내를 안고 눈물을 흘리며, 중오의 눈으로
마을 사람들을 쏘와보고 있었어...
그때 어디선가‘끝장내자!’‘죽여!’라는 말
이 들려오고, 마을 사람들은 그 말에 최면에
깨것처럼 불안한 적막을 깨고 그 사람에게 달
려 들었어.
가느다라게 숨이 붙어있던 그 사람은 순식
간에 무지막지한 몽둥이질과 낫질로 죽임을
당했지...콜록콜록...
마을 사람들은 한동안 가만히 있었지...
그때 무슨 생각들을 하고 있었는지 아무도
모르지...
양심의 가책을 느꼈는지, 아니면 그 과수원
주인의 마지막 말을 생각하고 있었는지...
하지만 이내 모두들 제정신을 차렸는지, 자
기들이 저지른 엄청난 일에 놀라기 시작했
어...
모두들 차마 자기들이 이 사람들을 이렇게
죽였는지 인정하기 싫어하는 눈치였어... 서로
아무말 없이 집으로 돌아가기 시작했어...
몇몇 어른들이 남아 처참한 세식구의 시체
를 헛간으로 날라 그 바닥에 묻기 시작했어.
땅이 얼지 않아서 파기가 쉬었을테고, 들키지
않기 위해서 였나봐...그리고는 마당에 핏자국
을 없애려고 짚더미를 모아 불을 부쳤어.
검은 잿더미가 핏자국을 덮을 것이라고 생각
한 것 같았지...
불을 활활타올랐지...
나는 몸이 꽁꽁 언 것도 못느끼고, 그 참혹한
살육을 목격했지...
모든 마을 사람들이 집으로 돌아갈 때까지
있다가 나도 집으로 돌아왔지...
그 이후에 마을 사람들은 그날 밤 아무 일도
없었다는 것처럼 고된 생활로 돌아갔지...콜록
콜록...
모두들 그 날 밤일은 기억에서 없어진 듯이
행동했어...
그 과수원 집에서 가져온 곡식으로 우리 마
을은 겨울을 났지...
그런데 어느날 읍내 지서장이 나타나 없어
진 과수원 주인에 대해 찾기 시작했어... 그 지
서장을 통해 충격적인 사실을 알 수 있었지...
우리가 왜놈의 앞잡이며 쪽발이 지서장과
한통속이라고 생각했던 그 과수원 주인이 유
명한 독립운동가였다는 거야...
독립운동하다가 왜놈에게 혹독한 고문을 당
하고 중국으로 쫓겨나가게 되었댔지...그렇지
만 그 과수원 주인은 조국을 떠날 수 없다고
이 시골에 내려와 농사를 짓기로 약속했대...
그래서 지서장이 감시를 하고 있었고...
그 사람은 농사를 지으면서 새로운 종자를
실험해서 가난한 민족을 풍족하게 먹여살릴
방도를 연구하고, 여러방면으로 독립운동을
몰래 지원하고 있었되지...휴...
내가 그 집에 밥을 훔치러 들어갔을 때나, 마
을 사람들이 헛간을 강탈했을 때 왜 그 사람이
화를 내기보다는 허탈해 했는지 알 수 있었지...
동포의 헐벚은 모습이 슬펐던 것이지...
그런 사람을 그렇게 처참히 죽여버리다니...
마을 사람들은 충격에 휩싸였지...
그때만 해도 독립운동가는 우리 촌구석에서
도 추앙받는 존재였지...
너무 크나큰 죄악을 저지를 셈이었지...
그 이후로 누구도 그 과수원집에는 근처에
도 가려고 하지도 않았고, 그 과수원 주인에
대해서는 누구도 말할 수 없는 금기로 여겼
지...
그 과수원은 수십년동안 버려진 집이었지...
콜록콜록...
그 후에 전쟁이 나고, 또 데모다 혁명이다
시끄러웠지...
공장이 들어서고, 그 당시 사람을 죽였던 마
을 사람들은 대부분 죽거나 떠났지...
이제 누가 남았는지 나도 잘 모르겠어...가
물가물해...
나도 평생을 괴로워했지...
아무리 잊어버리려 해도, 가끔식 그 장면이
생생하게 떠올랐지...
휴...콜록콜록...
이게 자네가 듣고 싶어했던 살인얘기인가...
너무 무서운 얘기지...”
나는 그 노인의 얘기에 충격을 받을 수 밖에
없었다. 한 마을이 이방인에 대한 맹목적인 증
오로 가족을 몰살시키는 일을 저지르다니...
그리고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하루하
루를 살아가다니...
내가 멍해있는 가운데도, 김반장은 뭔가 골
똘히 생각하는 듯 하더니 많은 얘기를 해서 지
친 듯이 눈을 감고 있는 노인에게 질문을 시작
했다.
마치 용의자를 심문하는 것처럼 날카로운
질문을 던졌다.
“어르신, 말씀은 잘 들었습니다.
하지만 몇가지 이해가 안 되는 일이 있는
데...
좀 대답해 주시겠습니까?
솔직히 말해 주세요... 그날밤 주동했던 사
람과 적극적으로 가담했던 사람들 기억하세죠?
방앗간 김영감님하고, 사과골 최영감님이
그 일에 가담했죠?
어르신 기억하시고 있는 것 모두 말씀 해주
세요...
다 알고 있습니다. 중요한 일이예요...
그리고 그 이후에 그 집에 일어났던 괴상한
일들 하고...
제 어렸을 때도 그런 일이 있었던 것은 알아
요...
어른들이 쉬쉬해서 잘 몰랐지만...
부탁입니다. 꼭 얘기해주세요...”
무례하다면 무례할 수 있는 김반장에 질문
에 노인은 움칠거렸다. 나는 그 노인인 화를
낼 줄 알았다. 하지만 그 노인은 한참을 눈을
감은 채로 있다가 결심을 했다는 듯이 그 충격
적인 얘기를 계속했다.
“휴...자네도 뭔가를 알고 있군...콜록콜록...
죽어가는 마당에 숨겨야 뭘 하노...
숨기는 것도 이제 그만이야...
하지만 사실을 알게되면 김반장 자네도 그
멍에에서 벗어나기 힘들걸세...
괴롭고 두려울거야...
하지만 원한다니 다 말해주지...
...콜록콜록
언제던가...김 반장 자네가 전쟁끝난 이듬해
에 태어났지...
그러면 그 사람들 얘기를 알겠군....
모두 사실이야...
감추고 싶지만, 죽을 때 까지 따라다닐...
자네 할아버지. 내 아버지, 사과골 최씨, 밤
골 김씨 모두들 그 사람을 죽이는데 있었지...
아니 앞장섰어...
특히 내 아버지는 마을 사람들을 끌고 그 집
에 갔지... 또 죽었는 줄 알았던 그 사람을 멈
칫거리던 마을 사람들을 선동해 죽인 것도 내
아버지였지...콜록 콜록...
휴...천벌 받을 짓이야! 천벌...
자네 할아버지...최씨...김씨 모두 앞장섰지...
그 일가족을 몰살하는데....
그리곤 모두들 아무 일도 없었다는 것처럼
그일을 잊었지...
요즘 얘기로 하면 은폐인가...
하지만 모두들 잊고 싶지만, 벗어날 수 없는
악몽같았을거야...
그것때문인지, 몇몇 사람들은 마을을 떠났
지...
그리고 몇몇 사람들은...그렇게 죽어 버렸지...
그 사건 이후로 그 집은 버려졌지...
아무도 그 집에서 살려고 하지도 않았고, 그
넓은 과수원은 버려진 채 수십년이 지났
지...공짜나 다름없는데도 아무도 거기 살려
고 하지 않았어...
언제 부터인가, 마을 사람들은 낮에도 그 집
앞길을 지나기를 꺼려했어...
어쩔 수 없이 지나가는 일이 있어도, 저 언
덕배기 길로 한참 돌아갔지...
더구나 무서운 일도 가끔씩 일어나곤 했
지...
콜록...콜록...콜록...
그 집에서....콜록...콜록... 일어났던 일들
은...콜록...콜록...
나 말고도 아는...콜록 사람이 있을테니...콜
록....
그 사람들에게...들어보게...
콜록...
너무 말을 많이 했는지...콜록...더 이상 얘
기 못하겠네...
콜록...
무서운 일이야...
진작 죽었어야 했었는데...
콜록...”
그 노인은 갑자기 심하게 기침을 하면서 얘
기를 멈추었다.
더 많은 충격적인 일들이 있는 것 같았지만,
안색까지 새파래지며 기침을 해대는 노인을
보니 더 이상 얘기를 재촉할 수 없었다.
김반장도 그 노인이 나이에 비해 너무 시간
동안 얘기를 시킨 것 같아 불만스러운 표정을
하면서도 물러설 수 밖에 없었다.
노인은 지친 듯이 가족들의 부축을 받으며
자리에 누웠다.
그래도 정중히 인사를 하고 나가는 우리들
에게 마지막으로 힘겹게 한마디 던졌다.
“콜록, 콜록...
김반장, 자네...할아버지 죽음이 기억나나?
콜록...콜록...
그것 한 번 잘 생각해 보게...콜록...
다들 이상하게 생각들했지...콜록...
이게 다 업보지...업보야...”
그 노인의 마지막 말에 김반장의 표정이 순
간적으로 굳어지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순간적
이지만, 눈빛이 예사롭지 않게 빛났다.
밖에는 비가 계속해서 내리고 있었다.
대문을 나서며 나는 머리속에 맴돌고 있던
수십가지 의문을 참지 못하고 김반장에게 질
문하기 시작했다.
“그 영감님이 말씀하신 것이 사실이라면,
그 무당의 얘기와 뭔가 통하는 것이 있지 않겠
어요? 이번 살인은 그 옛날 원한과 관련이 있
겠죠?
그리고, 그 이후에 그 집에는 대체 무슨 일
이 있었죠?
김반장님도 이 마을 출신이시니까 아는 얘
기 있으시죠?
그리고 할아버님이 돌아가실 때 어떤 일이
있던것이죠?”
김반장은 쉴새없는 나의 질문을 들었는지
못 들었는지, 시종일관 뭔가 골똘이 생각하는
표정이었다. 김반장의 무반응에 머쓱해진 나
는 천천히 걸어갔다. 같이 말이 없던 정화씨는
내게 한마디 했다.
“일한씨... 정말 무슨 일이지요?
뭔가 뒤죽박죽인 것 같지만 결국 여러사람
이 참혹하게 죽고 있잖아요...
도대체 어떻게 된 것이죠?
그리고 재원씨는 어디에 있는 것이에요?”
체념과 공포가 뒤섞인듯한 정화씨의 말에
나는 깜짝 놀랐다. 살인 사건에 휘말리는 바람
에 우리가 여기에 온 진짜 목적인 재원이를 찾
는 일을 잊어버리고 있었던 것이다. 정말 재원
이는 어디에 있는 것일까?
이 살인 사건들과 재원이가 관련되 있지는
않을까?
갑자기 머리속이 재원이 생각으로 가득찼다.
그때 갑자기 말없이 빗속을 걸어가던 김반
장은 한숨을 쉬며 나를 돌아보았다.
“일한씨...
친구 걱정이 되지요?
하지만 지금이 이 사건을 해결해야 해요...
그래야 친구분의 안위를 알 수가 있고...그리
고 솔직이 고립된 지금, 누가 언제 그 미친 살
인마에게 죽음을 당할지 모르니, 살기 위해서
라도 해결을 해야되요...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지금까지 내
가 듣고 느낀 바로는 이번 사건은 좀 이상한
것 같아요... 아니 많이 이상하지...
모든 것이 그 버려진 집과 연관되어 있고,
그 연관성은 불가사의할 뿐이고...
그 영감님에게 들은 얘기는 나도 처음들은
얘기예요...
어렸을 때 어른들이 그 집 근처에 가는 것도
꺼려한 것은 기억이 나지만, 그런 일이 있었는
지는 정말 몰랐어요...
내가 이 영감님을 찾아와 본 것은 어렸을 때
이유도 모른 채로 그 집을 무서워하고, 어른들
이 가까이 가지 못하게 한 것이 생각나서예
요...
이 영감님이 그 집 근처에도 못가게 야단치
던 생각이 났거든요...
뭔가 이유가 있을 것 같았죠...
하지만 좀 생각해 봐야 할 것이 그 영감님이
말해주신 살인 정말 일어났던 사실인가라는
점이예요...사실이라면 얼만큼 영감님의 기억
이 정확한 가도 문제이고... 그런 일이 실제로
일어난 일이라면, 정말 큰 사건이죠...
누군지 모르지만, 충분한 살해동기도 될 수
있고...
다리만 안끊겼다면, 군청이나 읍내에 연락
해 무언가 실마리를 찾을 수도 있을 것 같은
데...제기랄...
지금으로썬 그래도 그 영감님의 얘기를 가
장 중요하게 참고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죠...
그리고 우리 할아버지의 죽음에 대해 얘기
했는데...
그래 좀 이상하긴 했어...
내가 한 10살때쯤 돌아가셨을 것이예요...
그때도 지금처럼 여름이었어요... 더웠던 것
이 생각나요...
할아버지는 아마 읍내에 무슨 잔치에 갔었
을 거예요...
그런데 다음 날 아침이 되도록 돌아오시지
않았던 것이었고...
걱정이 된 아버지는 내손을 잡고, 할아버지
가 가셨던 읍내집까지 가셨어요. 하지만, 그
집 말로는 전날 밤 술이 거나하게 취해서 우리
집으로 향했다는 것이예요...
작은 마을이었으니, 할아버지가 없어진 사실은
삽시간에 온 마을에 퍼졌고, 마을 사람들
이 모두 나서 할아버지를 찾아다녔어요...
술에 취했다니, 집으로 돌아오다가 길가에
잠이 들었다고 생각했죠...
하지만, 하루 종일 마을 곳곳을 찾아봐도 찾
을 수가 없는 것이예요...
읍내에서 마을로 오는 길은 아까 영감님이
말한 것처럼, 그 집을 지나는 가까운 길을 놨
두고 먼길로 돌아다녔거든요...
결국 할아버지를 못찾게 되고 밤이 됐지
요...
찾아볼 곳은 다 찾아봤어요...
한 곳만 빼놓고...
이상할 정도로 망설이던 마을 사람들은 노인
몇분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횃불을 들고 그
버려진 흉가로 향했어요...
그집 앞을 지나는 길을 찾아보지않았 거든요...
나는 엄마 몰래 아버지를 따라 그 곳을 향했
어요...
그런데 아직도 이상하게 생각되었던 것은
할아버지를 찾아가는 사람들이 마치 무슨 싸
움을 하러 가는 사람처럼 낫이나 몽둥이 등을
들고 가는 것이였죠... 겁에 질린 표정들을 하
고 내키지 않는 모습들이 역력했어요...
제일 앞에 선 것은 역시 아버지였죠...
철없던 나였지만, 어른들마저 겁을 내는 것
같으니 무서웠어요...
그 집으로 향하는 길도 음산했어요... 인적
이 닿지 않아 무성해진 잡초와 길가의 나무들
이 섬뜩하게 느껴졌죠...
횃불을 들고 그 집앞에 도착했어요...
얼마나 무시무시했는지...
그때 그 집의 모습은 정말 무서웠어요...하
도 어른들이 가지 못하게 해서 그때가 나는 그
집을 처음 보는 것이였어요...
수십년동안 아무런 손이 가지 않았던 그 집
은 허름하면서도 횃불에 비친 그 모습은 무슨
살아있는 악귀를 보는 듯 했어요...
마을 사람들은 뭔가를 경계하는 모습을 하
면서도 무리무리 흩어져 할아버지를 찾아다녔
어요.
나도‘할아버지!’라고 몇번 소리쳤던것도 같
고...
여하튼 얼마 안가서‘찾았다!’라는 소리가
저 길가 구석에서 들려왔죠...
사람들은 그 소리를 듣고 모여들었죠...
그리곤 모두들 고개를 돌렸어요. 마치 지옥
이라도 본 것 같은 표정을 지으며...
아버지는 사람들을 헤치고 할아버지를 보더
니 신음소리와 함께 나의 눈을 가렸죠...
하지만 짧은 순간이었지만, 나는 평생을 잊
지 못할 처참한 모습을 보았지요...내가 20여
년동안 경찰에 있으면서 보았던 어떤 시체보
다 그때 할아버지의 시체는 끔찍했죠...
길가에 버려진 할아버지의 시체는 어떤 무
지막지한 살인마에 당했는지 수십군데 난도질
당해져 있었어요... 언뜻봐서 누워있는 것 같
았는데, 순간 뭔가 이상해 보였죠...
이상한 점을 깨닫자마자, 나는 아버지의 손
을 뿌리치고 거기서 도망쳤죠.
할아버지의 얼굴만 하늘을 보고 있고, 몸은
뒤집어져 있었죠...
누군가가 할아버지의 목을 잘라 머리만 뒤
집어놓은 것이죠...
휴...
나중에 들은 얘기로는 할아버지 시체 옆에
녹슨 낫이 발견되었고, 살인범은 못잡았다더
군요... 그 당시 허술한 경찰들은 출몰하던 도
둑때로 범인을 지목했지만 결국 해결하지 못
했다고 했어요...
그런데 이상한 것은 할아버지의 그 끔찍한
죽음이후, 우리집은 뭔가에 쫓기듯이 이 마을을
떠났죠... 그렇게 해서 나는 이 마을을 떠났고...
그 때 이사할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마을 떠
났어요...
지금 생각해 보니 할아버지의 죽음이 많은
사람들에게 이유모를 큰 공포를 느끼게 한 것
같아요...
그 이후 나는 할아버지의 죽음에 대해 그렇
게 깊이 생각해 본 적이 없다가 어떻해 해서
경찰이 되고, 여기 연천으로 다시 돌아오게 되
었죠...
작년인가 갑자기 생각이 나, 할아버지 죽음
에 대한 경찰 자료를 찾아봤지만, 벌써 수십년
전의 일이라 흔적도 없이 사라졌더군요...
지금까지 특별한 의심을 안 했는데, 영감님
말을 듣고 보니 뭔가 좀 이상해요...그 때도 낫
이었고, 그 사건에 할아버지도 연류되었다
니...
그리고...”
얘기를 계속하던 김반장은 갑자기 발걸음을
멈추었다. 그리곤 뭔가를 깨달았다는 표정과
함께 다급하게 외쳤다.
“그래 맞아!
할아버지 시체를 찾아나섰을 때, 그 버려진
집을 찾아보라고 한 것은 영감님이었어! 이제
기억나는데 아버지에게 거기 한 번 가보라고
한 것도 이 영감님이었어!!! 그리고 우리가 이
사갈 때 끝까지 따라나와 다시는 돌아오지 말
라고 한 것도 그 영감님이었고...
영감님이 말해주지 않은 뭔가 있는 것 같아.
피곤함을 핑계로 그때의 일을 몇가지 숨긴
것 같아!
일한씨, 우리 다시 돌아갑시다!
무슨 일이 있더라도 숨겨진 얘기를 다들어
야 겠어!”
김반장은 뭔가 결정적인 단서를 찾은 것처
럼 정말 발걸음을 돌렸다. 나도 그 영감의 얘
기가 뭔가 미흡했던 생각이 들어 두말않고 따
라 나섰다.
김반장은 비 맞는 것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걸음을 재촉했어.
영감님 집에서 얼마 안 갔기 때문인지, 발을
돌린지 얼마안가 그 집이 보였다.
그때였다.
여자의 찢어지는 듯한 비명소리가 그 집에
서 들려왔다.
그 순간 김반장은 우산을 내던지고 그 집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나도 불길한 예감을 느
끼며 그 뒤를 쫓았다.
나는 뛰면서 정화씨를 돌아보며 외쳤다.
“정화씨는 천천히 따라와요!”
그리고 비에 흠뻑 젖으며 그 집으로 뛰어갔다.
김반장은 풍기는 이미지와는 달리 이외로
빨리 달려, 젊은 나보다도 한참을 앞섰다.
숨을 할딱이며 그 집 마당에 들어섰을 때,
이미 김반장은 신발을 신은 채로 마루로 뛰어
올라 가고 있었다.
그 순간 나는 그 영감님 방에서 또 한 차례
의 비명소리와‘퍽’하고 기분나쁜 소리가 들
려왔다. 김반장은 민첩하게 권총을 빼어들고
그 영감님 방문을 차고 뛰어들었다.
동시에 쨍그렁하고 창문이 깨지는 소리가
들렸고, 다음 순간 나도 김반장을 따라 그 방
에 들어갔다.
실제 시간으로 따진다면 5초도 안걸리는 순
간이었지만, 너무 큰 충격때문인지 내 눈앞에
는 모든 것이 슬로우 비디오처럼 펼쳐졌다.
방에 들어가자 마자 내 눈앞에 펼쳐진 것은
글자 그대로 피바다였다.
방안 전체가 시뻘건 피로 뒤덮혀 있었다.
불과 5분전만 해도 우리에게 얘기를 들려주
었던, 그 영감님은 누운 채로 목이 잘려있었고,
우리를 안내해 주었던 중년의 사내도 갈기갈
기 찢겨진 채로 방구석에 널부러져 있었다. 창
가에는 비명을 질렀던 것 같은 중년의 부인 피
투성이가 된 채로‘그륵그륵’하는 숨너머가는
소리를 내며 쓰러져 있었다.
그리고 김반장이 들어갈 때 깨어진 것 같은
창문너머로 뭔가가 멀어지는 것이 보였다. 김
반장은“서라!”라는 소리와 함께 이미 권총을
움직이는 그것을 겨누고 발사했다.
그것은 총에 맞았는지 안 맞았는지 비 속에
서 숲으로 순식간에 사라져 가고 있었다.
창졸간이어서 자세히는 못보았지만, 내눈에
는 사람의 뒷모습으로 보였다.
한 손에는 낫을 든...
하지만 그 모습에는 왠지 모르게 사람이라
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섬뜩함이 느껴졌다.
몸을 부르르떨고 있을 때, 김반장은 나를 돌
아보고 짧고 빠르게 한마디 했다.
“그 놈이야! 그 놈...
따라가야해!”
그리곤 창문을 훌쩍 뛰어넘고 그것이 사라
진 쪽으로 뛰어갔다.
등뒤로 이제야 도착해 방안의 지옥을 발견
한 모양인 정화씨의 날카로운 비명소리가 들
려왔다.
충격으로 아무런 생각을 할 수 없던 나는,
정화씨에게 마당에 나가 잠깐만 기다리라는
한마디만 남긴 채, 무엇에 홀린 듯 김반장의 뒤
를 따라 창문을 넘었다.
그리고 숲으로 사라진 그것의 뒤를 쫓았다...
뭔가에 홀린 듯이 그 놈을 쫓아 창밖으로 뛰
어나갔다.
나서자 마자 갑자기 이상할 정도로 굵어진
빗줄기가 얼굴에 떨어져 눈을 제대로 뜰 수 없
었다. 대충 눈위를 흘러내리는 빛물을 손으로
훔치며, 김 반장과 그 놈이 사라진 쪽으로 달
리기 시작했다.
김반장이 먼저 뛰어나간지 불과 10초도 안
되는 시간이었지만, 저 멀리 나무를 헤치고 달
려가고 있었다. 나도 필사적으로 따라가기 시
작했다.
며칠동안 계속내린 비 때문에 땅은 질퍽거
리고, 무성한 나뭇가지에 온 몸을 할퀴고, 얼
굴 정면으로 떨어지는 빗방울로 앞은 잘 보이
지 않고, 정말 따라가기가 힘들었다.
한 5분쯤 따라갔을까, 어느새 깊은 숲속까지
들어오게 되었다. 김반장은 벌써 울창한 숲속
으로 사라져서 보이지 않게 되었다. 물론 그
놈도 시야에서 사라졌다.
나는 가쁜 숨을 몰아쉬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나무들을 제외하고는 아무 것도 보이지 않
았다.
몇번을 소리쳐 김반장을 불러 보았지만, 돌
아오는 것은 메아리 뿐이었다.
생각해보더라도, 그 놈을 쫓고 있는 김반장
이 내 소리에 대답할 처지 같지는 않았다.
잠시 숨을 가다듬으면서, 어떻할까 생각해
보았다.
무턱대고 김반장이 사라진 숲속으로 들어갈
까도 생각했지만, 따라가봤자 찾을 수도 없을
것 같았다. 그리고 솔직이 혼자서 따라가는 것
이 겁도 났다. 비는 점점 심하게 내리고, 슬슬
비로 흠뻑적은 몸도 추워지기 시작했다. 김반
장 뒤를 따라가지 못한 것에 대해 부끄러움도
느껴졌다. 하지만 김반장이 혼자서라도 잘 처
리할 것이라며 위안했다. 또한 그 살육의 현장
에 혼자 남겨두고 온 정화씨도 걱정이 되었다.
되돌아 가기 위해 발길을 돌렸다.
그런데 그 순간 나는 난감해질 수밖에 없었다.
어디로 가야할 지 길을 잃어버린 것 같았다.
비도 내리고 있었고, 길이 없는 숲을 헤치고 들어
온 바람에 어디로 가야할 지 종잡을 수 없었다.
그래도 움직이긴 움직어야 했기에, 대충 감
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가도가도 도무지 어디가 어딘지 알 수 없었
다. 나무들이 모습은 다 똑같이 보였고, 그 집
으로 돌아가는 방향을 알 수 없었다.
질퍽이는 땅에 발은 자꾸 빠져 걷기마저도
힘들었다.
그런데 갑자기 등뒤로 이상한 느낌이 들었
다. 누군가가 나를 지켜보고 있는 것 같은 섬
뜩한 느낌이었다.
뒤를 돌아보았으나, 무성한 나무들밖에 보
이지 않았다.
하지만 그 나무들 뒤에 뭔가 기분나쁜 것이
있어 보였다.
가만히 들여다 보고 있었지만, 떨어지는 빗
방울에 흔들리는 나뭇가지들의 움직임만이 보
일 뿐이었다. 귀를 기울여 봐도, 후들거리며
나뭇가지에 떨어지는 빗소리밖에 들리지 않았
다. 하지만, 사방에서 들려오는 그 소리는 마치
뭔가가 내게로 다가오는 발소리처럼 들렸다.
사방을 둘러봐도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지
만, 뭔가가 점점 나를 행해 압박해 들어오는
느낌을 더욱 강해졌다.
겁이 났다.
비 때문에 앞도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무언가 나를 보고 있고, 점점 다가온
다는 섬뜩한 느낌은 더욱 강해지는 것 같았다.
주위를 둘러봐서, 야구 방망이 크기의 나무
토막을 집어들었다.
나무의 묵직한 촉감을 느끼니 좀 든든해졌다.
천천히 주변을 경계하며,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나뭇가지에 떨어지는 빗소리는 점점 커지는
것 같았다. 하지만 어디선가 나를 덮칠 것 같
은 느낌은 점점 강해졌다.
불안한 느낌이 강해지면서, 비에 흔들리는
나무들이 모두 살아움직이는 것처럼 보였다.
나무를 잡은 손에 나도 모르게 힘이 들어갔다.
후드득 소리가 나서 돌아보았지만, 빗방울
이 한꺼번에 떨어지는 것이었다.
비로 젖은 온몸에 땀까지 나기 시작했다.
보이지 않는 무언가에 포위당한 기분이었다.
나도 모르게 덜덜 떨려오는 것 같았다.
그때였다.
갑자기‘탕!’하는 소리가 온 숲속을 메아리
쳤다.
총소리 같았다.
뒤어어‘타탕!’하는 소리가 계속해서 이어졌
다.
하지만 메아리 소리 때문에 어디서 난 소리
인지 알 수 없었다.
아마 김반장이 총을 쏜 것 같았다.
그리곤 죽음같은 적막이 흘렀다. 단지 빗소
리만 들려왔다.
그 총소리에도 불구하고, 내 주변을 휘감고
있는 사악한 기운은 수그러들지 않고 점점 다
가오는 것처럼 느껴졌다.
더 이상 생각할 수 없었다.
닥치는 대로 뛰기 시작했다. 앞에도 아무것
도 보이지 않았다. 나무가지에 온 몸이 ⓒJ혔고,
걸려 넘어지기도 했다. 진흙이 묻는 것도 개의
치 않았다.
그렇지만, 조금이라도 지체하면 뭔가가 내
뒷덜미를 챌 것 같았다.
그런 느낌만 들면 지체없이 들고 있는 나무
몽둥이를 뒤로 후려쳤지만, 아무 것도 없었다.
점점 더 다급해졌다.
등골이 오싹해지는 것을 느끼며 얼마나 달
렸을까...
온 몸은 진흙투성이가 되고 엉망이 되었다.
순간 누군가 내 등을 확 잡는 것이 느껴졌
다.
너무 놀라가 두려워 움직일 수 없을 정도였다.
있는 힘을 다해 들고 있던 나무몽동이를 휘
둘려는 순간, 귀에 익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야 나 일한씨... 김반장...”
화들짝 놀라며 고개를 돌려 등뒤를 보았다.
김반장이었다.
그런데 김반장 역시 호된 일을 겪었는지, 한
쪽 어깨가 피버범이 되어있었다. 다른 한 손으
로는 간신히 권총을 쥐고 있었다.
“반장님! 무슨 일이죠? 어떻게 된거예요?
괜찮은 것예요?”
김반장은 고통스러운지, 신음소리를 내며
간신히 대답했다
“나는 견딜만하니...걱정마...
그 놈이 저기 그 집으로...돌아갔으니...
정화씨가...혼자 있는...
빨리 가봐...나는...따라갈테니...
자, 이 총을 가져가게...”
그러면서 내게 피묻은 총을 쥐어졌다. 김반
장은 피투성이가 되었지만, 그 눈만은 공포와
그것을 이기려는 강한 의지가 섞여서 삼뜩할
정돌로 빛나고 있었다.
나는 땅바닥에 주저앉은 김반장의 어깨 상
처를 살펴보았다. 뭔가 날카로운 것에 왼쪽 어
깨부분이 찢겨나갔다. 언뜻 보기에 깊은 상처
같이 보였지만, 김반장은 계속해서 아무렇지
도 않다고 말했다.
“나는 걱정말라니까... 좀 쉬었다 금방 따라
간다니까...
빨리 가...그 놈은 벌써 그 집에 갔을가야...
정화씨가 위험하니 빨리...
으윽...괜찮아 괜찮아...
그 놈을 꼭 잡아...
아니 죽어버려...”
김반장은 헉헉대면서, 나를 재촉했다.
다친 김반장을 이렇게 놔두고 간다는 것 때
문에 잠시 망설였지만, 괜찮을 것 같았다. 그
의 그런 처절한 모습을 보니, 이유모를 분노가
치솟는 것 같았다.
김반장의 피가 묻은 총을 꽉 쥐고, 고개를
드니 저기 나무사이로 그 끔찍한 살인이 있었
던 노인 집이 보였다. 길을 잃은줄 알았지만,
그래도 제대로 온 것이었다.
나는 심호흡을 하고 그 집을 향해 뛰기 시작
했다.
뒤에서 김반장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조심하게...
놈은...사람이...아닐지도 모르니...
제기랄! 으윽...”
나는 공포와 이상야릇한 흥분감도 느끼면
서, 그 집을 향해 달렸다.
그때였다.
찢어지는 듯한 여자의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정화씨가 걱정되었다. 있는 힘을 다해서 달
렸다.
땅이 질퍽거리는 것이나 미끄러지는 것은
전혀 개의치 않고, 느낄 수 없었다. 달릴 수 밖
에 없었다.
아까 그 놈을 쫓아 김반장과 함께 뛰어넘은
창문이 보였다.
그 창문 사이로 언뜻 뭔가 움직이는 것이 보
였다.
피빛의...
나는 죽음힘을 향해 뛰었다.
마당에는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나는 정화씨를 목이 터져라 불렀지만, 아무
론 대답도 없었다.
총을 꽉쥐고, 시체들이 나동그라져 있을 방
안으로 뛰어들어갔다.
바닥에 피묻은 발자국이 보였다. 심장이 콩
쾅거리는 것을 느끼며 방으로 뛰어 들어갔다.
방바닥은 피바다 그대로였다.
시체들은 그대로 널부러져 있는데, 이상하
게도 그 노인의 시체가 감쪽같이 사라졌다. 겁
나고 놀랐다.
그 놈이 여기를 다녀간 것이다.
가뿐 숨을 몰아쉬며 정화씨를 찾아보았다.
그 놈이 어디선가 낫을 들어 덮칠 것만 같았
지만, 상관할 수 없었다.
정화씨가 걱정되었다. 어디선가 낫에 난도
질당해 있을 것만 같았다.
한 구석에서 가느다란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소리나는 쪽을 확 돌아보았다.
정화씨였다.
방 한구석에서 피투성이가 된 채로 눈만 내
놓고 쪼그리고 앉아 있었다.
나는 다급히 정화씨에게 다가갔다. 어디라
도 다친 줄 알았다. 하지만 정화씨는 몸을 부
르르 떨고 있었다.
다행히 살아있었다.
무릎을 앉고 있는 정화씨를 살펴보았지만,
피투성이만 되어있을뿐 상처는 보이지 않았
다. 어깨를 잡아 흔들며 정화씨를 불러보았지
만, 대답은 커녕 멍하니 허공을 쳐다보며 계속
떨고 있었다.
피범벅이 된 얼굴은 지옥이라도 들여다 본
사람처럼 겁에 질려 있었고, 눈은 악마에게 영
혼이라도 빼앗긴 사람의 눈처럼 아무런 초점
도 없었다.
정화씨는 부들부들 떨면서 입으로는 뭔가를
계속해서 중얼거리고 있었다.
아무리 흔들어보아도 전혀 반응이 없었다.
무슨 소리를 중얼거리는 것인가 주의깊게
들어보았지만, 단지 이 두마디의 연속이었다.
“...그가 왔어...낫을 들고...
그가 왔어...낫을 들고...
그가 왔어...낫을 들고...”
...정화씨의 어깨를 부여잡고 흔들었지만,
계속해서 그 말만 대뇌이고 있었다. 김반장은
불편한 몸을 이끌고 다가와 넋이 나간 정화씨
를 살펴보더니 한숨을 내쉬고 한마디 했다.
“휴...정화씨는 지금 엄청난 충격을 받은 것
같네요...
뭔가 끔찍한 것을 본 듯한 눈빛이야...
하지만, 잠시 시간이 지나면 제정신을 찾을
것 같아요...
안정이 필요하고...”
김반장의 말이 끝나자마자, 정화씨는 고개
를 떨구더니 기절했다.
순간적으로 당황했지만, 살펴보니 다행히
정신을 잃었을 뿐이었다.
김반장을 잠시 멍해있는 나를 보챘다.
“일한씨, 이제 서두르지...
빨리 정화씨를 데리고 지서로 돌아갑시다...
거기 가서 좀 차분히 생각 좀 하고, 그 놈에
대해 대비도 해야할 것같아...”
“김반장님은 다친 곳은 어떠세요?
제가 정화씨를 업고 갈테니, 빨리 출발하죠...”
나는 말을 하면서, 김반장의 상처를 살펴보
았다. 흘러나오던 피는 좀 멈춘 것 같지만, 그
렇게 가벼운 상처같지는 않았다. 기절한 정화
씨를 들쳐업고 우리는 그 피비린내 나는 지옥
에서 출발했다. 빗줄기는 좀 가늘어져 있었지
만, 쉽게 그칠 것 같지는 않았다.
이미 젖을대로 젖어있어서, 우산 쓸 생각은
하지도 않았다. 하지만 등에 업힌 정화씨에게
는 김반장이 웃옷을 벗어 덮어 주었다.
“피는 묻었지만, 그래도 그냥 비 맞는 것보
다 나을거야...
제정신이라면 죽어도 피 묻은 옷은 덮지 않
겠다고 했겠지...
하하...
그건 그렇고 일한씨 무겁지 않아요?
원래 기절한 사람은 제정신의 사람보다 3배
는 무겁다는데...”
김반장은 심각한 분위기를 바꾸려는 듯이
가벼운 농담을 던졌다. 하지만 자기 자신은 긴
장된 얼굴을 하고 연신 사방을 살피면서 앞장
섰다. 그 놈이라도 갑자기 튀어나올 것처럼 경
계했다. 어깨의 상처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한
손에는 안전장치를 푼 권총을 쥐고 있었다.
나도 긴장이 되었는지, 등에 업힌 정화씨의
무게를 느낄 수 없었다.
앞서가는 김반장의 어깨의 상처가 눈에 띠
었다. 날카로운 것에 찢겨나간 상처가 길게 보
였다. 꽤 아플 것 같은데도 김반장은 겉으로는
티를 내지 않았다. 갑자기 잊고 있던 의문이
생각났다.
“저... 김반장님,
그 어깨 상처 말인데요...
그렇게 다칠 때 그 살인마 보셨나요?
어떻게 다치신거죠?
저는 김반장님을 따라가다가 놓쳐버려, 무
슨 일이 있었는지 볼 수 없었거든요?”
김반장은 내 질문을 들었는지 말았는지, 뒤
도 안돌아보고 계속해서 걸어갔다. 내가 다시
한 번 물어보려는 순간, 김반장의 어두운 목소
리가 들려왔다.
“그 놈말이지요...
그 놈...
말하기 부끄럽지만 그 때 솔직이 나도 무서
웠어요...
무서웠지...
죽는 줄 알았어... 어깨가 낫에 찍혔을 때는...
나도 창문을 뛰어넘어 숲으로 그 놈의 뒤를
필사적으로 쫓아갔어요...
평소에 나쁜 놈들 잡으러 다니는 것 때문
에, 달리기만은 자신이 있었는데 그 놈은 도저
히 잡을 수 없었어요...
그 놈은 달리는 것이 아니고, 마치 땅위를
떠가는 것처럼 순식간에 숲속으로 사라졌지...
숨은 차왔고, 허탈했죠...
도망가는 범인을 따라가 잡는 것은 둘째가
라면 서러워할 나였는데도, 어떻게 된 것인지
그 놈은 따라가면 따라갈수록 점점 멀어지더
니 순식간에 사라져 버린 거예요...
잠시 숨을 돌리며, 사방을 둘러 보고 있었
는데...
그때였어요...
갑자기 등뒤에서 섬뜩한 살기가 느껴졌어요.
뒤를 돌아보았죠.
그놈이었어요.
정말 아무 인기척도 못 느꼈는데, 어느새
내 등뒤에서 낫을 높이 쳐들고 나를 치려고 하
는 것이었어요. 분명히 내가 사방을 한바퀴 돌
면서 둘러보았는데...글자 그대로 갑자기 나
타난 것이었어요.
실제로 그 놈이 나를 낫으로 내려치려고 하
는 순간은 1초도 안되는 짧은 순간이었을 거
야... 하지만 나에게는 죽음같은 시간이었어요.
아무것도 느낄 수 없었어요. 어깨위로 떨어
지던 빗방울마저도...
단지 느낄 수 있던 것은 공포뿐이었어요...
그 놈의 낫이 내 머리를 향해 내리치는 모
습이 보였어요.
이상하게도 움직일 수 없었어요. 마치 입체
영화관에서 낫이 나를 향해 날아오는 장면을
보는 것 같았어요. 그것도 슬로우 비디오로...
천천히 그 낫이 내 머리로 점점 다가왔죠...
어쩔 수 없이 죽음을 맞이하고 있었어요...
그런데 순간적으로 어디서가 튀었는지 빗
방을이 내 눈에 튀었어요.
정신이 들었지. 짧은 순간이었지만 괴기한
최면에 들려있었던 것 같아요.
전혀 반항을 할 수 없었으니까...
다행히 그 빗방울 때문에 나는 움직일 수
있었던 것같아요.
생각할 새도 없이 몸을 틀었어요.
머리를 향해 내리쳐지던 낫은 내 어깨를 내
려쳤어요.
아픔을 느낄 새도 없이 나는 뒤로 넘어졌어
요.
그리고는 쓰러진 나를 향해 다시 한 번 낫
을 힘껏 치켜든 그놈에게 들고 있는 권총을 겨
냥하고 아무런 거림낏없이 방아쇠를 당겼죠.
2미터거리도 안되는 가까운 거리였는데, 아
무리 권총이라도 빗나갈 거리가 아니었는데,
그 놈은 총에 안맞았었는지 전혀 개의치 않았
어요.
어쩌면 그 놈은 내총에 맞았는 지도 몰라...
나는 분명히 그 놈의 심장을 정확히 겨냥했
거든...순식간의 일이었지만, 가까운 거리여서
확신할 수 있어요.
하지만 그 놈은 분명히 아무렇지도 않게 나
에게 다가왔어요.
나는 공포에 떨며 2번째, 3번째 방아쇠를
당겼어요.
그런데 운 좋게 3번째 총알이 그 놈이 낫을
들고 있던 손을 명중시켰죠.
낫이 저쪽으로 날아갔어요.
그러니 총알 세레에도 꿈쩍않던 그 놈이 잠
시 멈추더니, 낫을 떨어뜨린 곳으로 가더니,
나는 전혀 개의치 않는다는 듯이, 순식간에 그
 노인이 죽어있던 집쪽으로 사라졌어요.
나는 필사적으로 몸을 일으켜 세워 멀어져
가는 그 놈의 등뒤를 향해 총을 발사했지만...
하지만, 그 놈은 순식간에 사라졌어요.
그때서야 나는 어깨의 통증을 처음 느꼈어요...
휴...
그런데 일한씨가 궁금했던 것에 대한 답은...
그 놈이 누구였는지, 어떻게 생겼는지...
정말 부끄러운 얘기지만, 솔직이 나는 그 놈
에 대해서는 하나도 기억나는 것이 없어요...
너무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어서 그랬는지,
아니면 너무 무서웠던지...
단지 기억나는 것은 그 놈이 입었던 붉은
색 체크무늬 상의 뿐이고.
그것도 내가 그 놈의 심장을 겨누고 총알
쐈기 때문에 기억나는 것 뿐이예요. 그리곤 아
무것도 생각해낼 수 없어요.
단지 그 놈에게 풍겨나오던 사악함과 무시
무시함만 기억날 뿐이지...
부끄럽네요...
경찰이라는 작자가 범인을 잡기는커녕 겁에
질려, 인상착의도 제대로 기억못하고 있으
니...”
얘기를 마친 김반장의 어깨는 축늘어졌다.
부끄러움과 무력감을 느끼고 있는 것 같았
다. 하기 힘든 얘기었는지 얘기하는 동안 한
번도 뒤돌아 보지 않았다.
사실 나는 이전부터 마음에 제일 걸려오던
것을 김반장의 얘기를 통해 확인하고 싶었었
다. 그런 살인을 저지르고 다니는 놈이 혹시
사라진 재원이가 아닌가하는 것이었다.
자꾸 그런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김반장이 기억을 못하는 것으로 봐
서 재원이가 아닐 수도 있었다.
“김반장은 정말 큰일날 뻔 했네요...
그래도 다행이네요...
그런데 그 놈을 다시 보면 아실 수 있겠어요?”
“그건 걱정 말아요...
그놈의 얼굴은 기억못해도, 그 놈이 뿜어내는
그 숨막히는 살기와 공포감은 죽을 때까지
잊을 수 없을테니까...
그건 그렇고, 일한씨 안 힘들어요?
정화씨가 아무리 여자고 가볍고 하더라도,
이렇게 비맞으면서 걸으려면 힘들텐데...”
김반장은 그러면서 걸음을 재촉했다.
잠시 가늘어졌던 빗줄기는 다시 굵어지는
것 같았다.
머리속에는 수 많은 생각이 지나갔다.
이렇게 계속해서 비가 오면 고립된 이 마을
은 언제 외부와 연결될 수 있을까?
그 때까지 우리 모두는 이 미치광이 살인마
를 잡을 수 있을까?
아니, 그 놈으로부터 살아남을 수 있을까?
그리고 도대체 재원이는 어떻게 된 것일까?
버려진 집에 얽힌 괴기한 이야기들, 재원이
의 정신착란과 실종, 정체 모를 살인마의 잇따
른 연쇄 살인, 이 모든 것이 도대체 어떤 관련
이 있을까?
의문에 의문이 꼬리를 물고 떠올랐다. 뭔가
알 것 같으면서도 도저히 감을 잡을 수도 없었다.
그런데 갑자기 이 생각이 떠올랐다.
그 살인마는 도대체 왜 계속해서 살인을 하
고 있는 것일까?
닥치는대로...아니면 우리가 모르는 어떤 이
유로...
이제까지 그 놈의 계속되는 살인을 뒤쫓다
보니, 너무 그 놈에 이끌려온 것 같았다. 제대
로 그 놈의 동기를 파악할 틈도 없이...
“김반장님,
지금 떠오른 사실인데요?
그 살인마는 왜 마을 사람들을 계속해서 죽
이고 있을까요?
그리고 희생자들은 어떤 특별한 이유가 있
어 그 놈에게 죽음을 당한 걸까요?
아니면 무차별적으로 살육을 감행하고 있는
것일까요?”
김반장은 나의 질문에 다시한번 발걸음을
멈추었다. 잠시 뭔가 생각하는 것 같다가 다시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하며 얘기를 시작했다.
“그래요...
일한씨 말이 맞아요.
이제까지 우리는 너무 그 놈의 살인 하나하
나를 쫓고만 있었어.
하긴 순식간에 너무 많은 살인사건이 발생
했으니...
연쇄 살인 사건에서 가장 중요하고 제일 먼
저 조사해야 하는 것은 살인범의 살해 패턴을
찾는 것이죠...
희생자들 사이에 어떤 공통점이 있나 등을
밝혀내서 범인의 살해동기를 알아내고 다음
살인을 예방하거나 그 놈에 대한 단서를 발견
해야 하는 것인데...
우리도 한 번 생각해 봐요...
이 사건의 제일 첫 번째 희생자는 누구였
지...
우리가 수사에 나선 것은 탈영병이 이곳 근
처에 숨어들었다는 신고와 동시에 성일여관
주인인 최씨가 상체와 하체가 잘린 채 발견되
었다는 신고를 받고나서였지... 그리고 며칠있
다가 정미소 김씨가 시체로 발견되고...
두 사건의 용의자는 알다시피 그 거구의 탈
영병었지...
하지만 일한씨가 그 탈영병의 시체와 낫을
발견하고 나서 일단은 사건이 종결되었지...
그 바보같은 군 수사관놈들...
그저 자기들 책임인 탈영병이 시체로 발견
되자 얼씨구나 좋구나 하고 사건을 종결시켜
버리고...
그리고 홍수로 마을이 고립되고, 무당과 그
조수가 시체로 발견되었지...
그 살인도 일한씨와 정화씨가 발견하고...
같은 시간 사과골 최씨 부부가 난도질당한
끔찍한 시체로 발견되고...
그리고 지금 어르신과 어르신을 모시던 부
부가 당했어요...
모든 피해자는 낫으로 당했고...
탈영병을 제외하고는 이 마을에 산지 오래
되는 사람이고...
뭔가 연관성이 있을텐데...
그것이 뭘까...”
“김반장님, 이것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그 버려진 집에 몇 년전에 발생했다는 살인
사건이요...
과수원 주인이 자기 딸과 사윗감었던 장교,
그리고 아들을 낫으로 죽이고 자신은 자살한
사건, 그 어르신이 얘기했던 일제 시대에 있었
던 끔찍한 사건들과 이번 사건과의 무슨 연관
성을 없을까요?
괜히 꺼림직하네요...
모든 사건들이 다 그 버려진 집과 낫이라는
매개체로 얽히고 힌 실타레같아요... 원한과
중오, 복수, 뭐 이런 것이 동기 아닐까요?”
“글쎄요...
일한씨 말도 일리가 있지만, 너무 모호해요...
뭔가 더욱 명확한 살해 동기나 패턴이 숨겨져
있을 것 같아요...
어짜피 읍내의 지원이 앞으로 얼마간은 불
가능하니 우리끼리 그것을 찾아내야 해요...
앗! 그런데 저건 뭐지...”
김반장은 갑자기 말을 멈추고, 뭔가를 발견한
것처럼 앞으로 뛰어갔다.
나는 정화씨를 업고 있어 뛰어 갈 수는 없지만,
그래도 빠른 걸음으로 김반장의 뒤를 따라
갔다. 김반장이 발견한 것은 길 한폭판에 뭔가
가 널부러져 있는 것이었다.
먼저 달려간 김반장은 그것을 보더니 허리
를 굽혀 두손을 무릎에 올리고 큰 소리로 외쳤
다.
“제기랄!! 이럴수가!!
똑같잖아! 똑같아...”
김반장의 소리를 듣고 나는 정화씨를 업고
더욱 빨리 뛰어 뭔가가 널부러져 있는 곳으로
달려 갔다.
그것을 보는 순간은 나는 큰 충격을 받았다.
시체였다.
시체가 가지런히 누워있었다.
아니 자세히 보니 누워있는 것이 아니라 몸은
엎허져 있고, 머리만 잘라 하늘을 향하게
돌려놓은 것이었다.
끔찍한 모습에 정신이 멍해져 있는데, 김반장의
목이 쉰듯한 목소리를 듣고 온 몸에 소름이
쫙 끼쳤다.
“그때와 똑같아...
내가 어릴적 할아버지 시체를 그 과수원 근
처에서 발견했을 때와...
그때도 할아버지 시체는 이렇게 놓여있었어...
머리만 하늘을 향한 채로...
제기랄! 똑같단 말야...”
...길복판에 가지런히 놓여진 그 끔찍한 시체
주위에는 피와 빗물이 섞인붉은 웅덩이를
이루고 있었다.
나는 천천히 그 시체로 다가갔다.
바로 아까 그 집에서 사라진 노인의 시체였다.
우리에게 과수원 집의 숨겨진 비밀을 얘기해
주었던...하지만 뭔가를 숨기고 있다가 이렇게
처참한 시체로 발견된 것이다.
“그 놈이 어르신의 시체를 이렇게 여기다
이런 모양으로 가져다 놓은 것은 우연이라고
보기에는 너무 많은 것을 의미하는 것 같네요...
우리에게 뭔가 보여주고 싶은 것일지도 모르죠...
우연일지도 모르지만, 무슨 의도가 있다면
이 시체 배열을 봐서는 일한씨에게 보다는
내게 하고 싶은 말이 있는 것 같아요...
그렇다면 그것이 무엇일까?”
“어쩌면 그 놈이 아무생각없이 여기다 시체
를 버리고 간 것일지도 있잖아요... 단지
정말 우연의 일치일 수도 있고...”
“모르겠어요...
무엇을 의미하는 것이며, 어떤 것이 진실인
지를...
휴...
그건 그렇고, 어르신의 이 끔찍한 시체를
여기다 버리고 갈 수도 없고,
그렇다고 어떻게 옮길 수도 없고...
어떻게 하지...”
김반장은 난감한 표정을 한참 짓다가, 주위
를 둘러 보았다.
다행히 길가에 쓰다버린 듯한 가마니가 몇
개 보였다. 김반장은 그 가마니 몇 개를 가져와
시체를 덮었다. 그리고는 어쩔 수 없다는
듯이 한숨을 내쉬었다.
“우선 이렇게라도 수습을 하죠...
빨리 지서에 돌아가 사람들을 보내 시체를
처리해야 겠어요...
이런 식으로 가다간 온 마을이 시체로 넘쳐
나가겠어요...
큰일났군... 큰일났어...”
대충 시체가 안보일 정도로 가려놓고 우리는
다시 출발했다.
슬슬 팔과 허리가 아파왔다. 처음에는 그렇게
가볍던 정화씨의 몸이 천근만근으로 느껴졌다.
어느새 땀까지 나는 것 같았다.
아마 그 시체를 봐서, 더욱 힘이 빠진 것 같
았다.
김반장은 찹찹한 듯 걸음걸이가 느려졌다.
그러더니 갑자기 긴장된 목소리로 속삭였다.
“일한씨...
조심하죠...우리...
그 놈이 시체를 여기다 놓고 갔다는 것은
우리 주위에서 맴돈다는 얘기일 수도 있으니
까...혹시 다음 목표가 우리일 수도 있으니
까...
여하튼 그 놈은 이 근처에 있는 것이 확실
해요...
모르죠... 어디선가 우리를 감시하고 있을
지도...”
그러고는 사방을 경계하며 발걸음을 옮겼다.
나는 더욱 난감해졌다. 정화씨를 업은 것은
점점 힘들어지는데, 어디선가 그 놈이 낫을
들고 튀어나올지도 모르고...
김반장의 얘기를 듣고 보니, 사방의 인적은
전혀 없고 비만 내리고 있는 것이 으시시했다.
이미 마을 사람들에게는 살인에 대한 소문이
쫙 퍼졌을테고, 아무도 이 음침한 길을 돌아다
니지 않을 것 같았다. 단지 저녁 모임시간이
되면 모여들 것이었다.
더구나 우리들을 보니, 영락없는 상처입은
채로 천천히 도망가는 먹이같았다. 지금 이 상
태에서 그 놈이 덮친다면 그 놈을 잡기는, 제
대로 저항하기도 힘들 것 같았다. 올때는 한
20분도 안걸린 것 같은 짧은 거리였지만, 긴
장한데다 정화씨까지 업고 있으니 정말 한참
걸리는 것 같았다.
정화씨를 업고 있는 상태에서도 자꾸 뒤에서
뭔가가 쫓아오는 것 같아 돌아보게 되었다.
체력 소모는 더욱 심해지고...
김반장 역시 신경이 날카로웠는지 쉬지 않
고 주위를 둘러 보았다.
우리를 내려다보는 뜨거운 시선을 느껴진
것 같은 것이 한두번이 아니었다. 긴장은 더욱
심해지고, 발걸음 하나하나 떼놓는 것 자체가
힘들어졌다.
간신히 고개를 들어보니 저 앞으로 지서가
보였다.
왔다갔다 하는 사람도 보였다. 이제는 살았
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김반장이 외쳤다.
“이봐! 빨리 나와봐!
여기와서 일한씨 좀 도와줘!”
그 말을 들었는지, 지서 앞에서 있던 마을
장정 서넛이 달려와 정화씨를 들쳐업고 나를
부축해줬다. 김반장을 부축을 거절한 채로 성
큼성큼 지서로 들어갔다. 나는 정화씨를 지서
의 숙직실에 눕혔다. 김반장은 지서로 들어가
자마자 수많은 질문과 보고를 무시하고, 우선
지서에 있던 어떤 아주머니에게 정화씨의 간
호를 부탁했다. 그 아주머니는 피묻은 채로 쫄
딱 젖어버린 정화씨를 보더니‘에구머니’하면
서, 나를 포함한 남자들을 숙직실밖으로 쫓아
냈다. 우선 젓은 옷부터 갈아입힐 생각이었나
보다.
나는 그 아주머니의 걱정말라는 말을 듣고
등이 밀려서, 숙직실에서 나왔다. 김반장은 의
자에 앉아 상의를 벗고, 어깨의 상처를 치료하
고 있었다.
나를 보더니 정화씨는 걱정말라고 했다. 그
아주머니가 잘 해주고, 지금 자기 어깨를 치료
하고 있는 보건의가 정화씨를 진찰할 것이라
고 했다.
나는 무너지듯 빈 의자에 주저앉았다.
젖은 몸이 추워졌지만, 지금 그것을 신경 쓸
수가 없었다. 시계를 보니 어느새 오후 3시를
넘고 있었다. 생각해보니 먹은 것도 없어 배가
고픈 것 같기도 했다.
김반장은 어깨를 치료하면서 이순경에게 지
금까지의 상황을 보고 받고 있었다.
“...아직 읍내와 연락할 수 있는 방법을 찾
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이장님이 오늘 오후 5시에 모든 마
을 사람들을 분교 교실로 모이라고 전달하셨
습니다. 시체들은 모두 냉동고로 옮겼고, 의사
선생님이 검사하셨습니다. 반장님께 직접 몇
가지 말씀 드린답니다.
그리고 마을에 있는 총기류를 모아 보니,
지서용 칼빈총 3정과 보관중인사냥용 공기총
2정이 전부입니다. 실탄은 칼빈용 100발과 권
총용 20발입니다. 모두 지서에 모아두었습니
다.
말씀하신 탈영병 사건 기록은 그때 군 수사
본부에서 전부 가져가서 찾을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몇 년 전에 있었던 그 과수원집 살인사
건에 대한 기록들은 본서에 보관되어있고, 그
사건을 담당했던 주형중 순경은 얼마전에 아
시다시피 분신자살했고, 개인적으로 보관하고
있던 사건 기록도 같이 사라졌습니다. 그런
데...”
그때였다. 갑자기 이순경의 말이 채 끝나기
전에 지서의 문을 쾅 열고 누군가가 뛰어들어
왔다.
머리를 산발한 어느 아주머니였다.
“우리 애가 ...
큰일 났어요!!! 큰 일!!
제발...
제발... 안돼!!!”
미친 사람처럼 알 수 없는 소리를 외치더니
이내 자리에서 쓰러저 혼절해버렸다. 지서안
에 있던 사람들은 그 아주머니에게 웅성거리
며 다가갔다.
“서산댁, 정신차려요! 정신차려...”
이순경이 쓰러진 아주머니를 흔들어 깨우려
고 했지만,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김반장의
어깨에 붕대를 감아주던 보건의는 재빠르게
아주머니의 상태를 살펴보고 단순한 충격에
의한 기절이라고 말했다. 정화씨와 비슷한 경
우처럼 보였다. 모두들 어리둥절했다.
무슨 일인지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멍하고 쓰러진 그 아주머니를 보고 있는데,
어떤 남자가 지서로 뛰어들어왔다. 가슴에는
피투성이가 된 뭔가를 들고 들어왔다.
처음에는 전혀 알아볼 수가 없었다. 무슨 동
물의 시체를 가져온 줄 알았다.
하지만 그 피투성이의 것을 알아보는 순간
너무 큰 충격에 멍해졌다.
속이 매쓰꺼워지며 구토가 나오는 것 같았다.
바로 아이의 시체였다.
더욱 끔직한 것은 그 애의 양팔이 붙어있지
않은 것이었다.
“우리 애가 죽었어요!!!
흐흑...흐흑...
누가 우리 애의 팔을 잘랐어요...
제발 살려줘요...
흐흑...”
모두들 그 참혹한 모습에 얼어붙은 듯 움직
일 수 없었다.
그 와중에도 보건의는 그 사람이 책상위에
내려놓은 거의 고깃덩이나 다름없는 피투성이
의 아이를 살펴보았다. 내가 보기에도 그 애는
이미 이세상 사람이 아니었다. 의사 역시 고개
를 가로져으며, 자기 가운을 벗어 그 참혹한
시체를 덮어주었다.
아이를 안고온 그 사람 제정신을 잃은 것처
럼 계속해서 흐느끼기만 했다.
또 다른 살인이 일어난 것이었다.
김반장은 상처치료가 끝나지도 않았는데,
벌떡 일어나 제정신을 잃고 흐느끼고만 있는
그 사람을 부여잡고 흔들며 소리쳤다.
“이봐! 박씨!
무슨 얘기 하고 있는가야?
이게 어떻게 된 일이야?
안사람은 저렇게 기절해있고!!!
도대체 어떤 일이야?
정신차리고 말좀 해봐!!
이봐 정신 차리란 말야!!!!”
김반장의 과격한 행동에 그 사람은 흐느낌
을 멈추고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는 춧점없는
눈빛을 하고 마치 딴사람 얘기하듯이 또 하나
의 끔찍한 사건을 얘기했다.
“...아, 김반장님...
오랜만이네요...
언제 마을에 오셨나요...
우리 애를 살리려 오셨나요?
우리 애가 죽었어요...
머리가 잘려나갔어요...
이장님이 마을에 끔찍한 일이 발생하니, 조
심하고 오늘 5시에 분교로 온 가족을 데리고
모이라는 말씀을 전해주시고 우리집을 다녀가
셨죠...
안사람은 겁에 질려, 물난리 난 것 구경하
러 나간 애를 찾아 나서자고 했죠.
우리 애 아시죠...우리 부부의 하나뿐이 자
랑...
개 공부도 지학교에서 일등 해요...
읍내 중학교에서 서울대학감이라고 다들
칭찬하는데...
방학이라 집에서 농사일 돕고 공부도 하고
있었는데...
강가로 갔죠...
거기는 우리애가 어렸을 때부터 자주 놀러가
던 곳이었어요...
처음에는 여편네가 걱정도 팔자라고 생각
하며 투덜거리며 애를 찾으러 간 것인데...
강가로 갔지요...
그런데 누군가가 저 옆을 휙하고 지나가는
것이 언뜻 보였지요...
너무 순식간에 일이었기에, 그냥 잘못 본
것인줄 알았는데...
그 놈이야!
그 놈이 우리 애를 저렇게 만든거야!
흑흑...
아무 생각없이 애 이름을 부르며 강가를 헤
맸죠...
그런데...
그런데 말이예요...
저쪽에 뭔가가 보이는 거예요...
그쪽으로 다가갈수록 이상하게도 불안해졌
죠...
바로 우리 애였어요...
피투성이가 된채...두팔이 잘려나간 채...
아냐! 이건 아냐!!!!!
아냐!!!!!!!!”
갑자기 그 사람은 발작이라도 한 듯이 악을
쓰고 책상을 쾅쾅 쳐댔다.
이순경은 그 사람을 부여잡고, 진정하라고
외쳤다.
하지만 그 사람은 아들을 잃은 슬픔에 실성
한 사람처럼 악을 쓰고 보이는 것은 모두 부셔
버릴 기세였다.
금새 지서안은 아수라장이 될 판이었다. 나
를 포함한 마을 사람들이 그 사람을 향해 달려
들었지만, 그 사람을 진정시킬 수가 없었다.
그 사람은 보건의가 진정제를 놓을 때까지
처절한 발악을 계속했다. 하지만 그 진정제가
약효를 보았는지, 발작을 멈추고 의자에 주저
앉았다.
순간 죽음과 같은 적막이 흘렀다.
모두 참담함과 무력감, 또는 절망감을 느끼
고 있는 것 같았다.
그 사람은 의자에 앉아 계속해서 아들의 이
름을 뇌까리며 흐느꼈다.
그 끔찍한 적막을 깬 것 역시 김반장이었다.
“나쁜 새끼...
이제 아이까지...
어디 보자. 잔인한 놈...
모두들, 이제 가만히 있을 수 없지?
자, 빨리 움직이자!
이장님, 박씨하고 안사람을 집으로 데리고
가서 좀 안정시켜 주시겠어요? 댁에 사람들
좀 불러서 같이 계셔 주시죠...워낙 큰 충격을
받으셨을테니...
그리고 의사 선생님 수고 스럽겠지만 여기
서 이 애가 어떻게 살해되었는지 좀 봐주시겠
어요... 물론 생소한 일이겠지만, 최선을 다해
주세요...
뭔가 단서를 발견할 수 있을 지도 모르니까
요...
김군은 의사 선생님의 검시가 끝나면 몇 명
과 같이 이 애를 그 냉동고에 날라주게...냉동
고에 이제 자리가 없겠군...
제기랄...”
모두들 김반장의 얘기를 듣고, 최면에서 깨
어난 사람들처럼 움직이기 시작했다. 아무도
김반장의 반명령조의 말에 이의를 두지 않았
다. 명령에 복종하는 것인지 아니면, 이 지옥
같은 자리에서 한시 바삐 빠져나가고 싶은 것
인지 민첩하게 움직였다.
김반장은 보건의가 감다만 붕대를 자기 손
으로 대충 감아버리고 웃옷을 입었다. 누기 봐
도 김반장의 눈에는 분노와 굳은 결의가 서려
있었다. 이제 그 놈을 용서할 수 없다는 강렬
한 의지를 풍겨냈다.
하지만 내눈에는 그런 김반장의 모습에서
웬지 모르게, 김반장 자신의 두려움이 느껴졌
다. 자기 힘으로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공포
를 억지로 억누르고 있는 자의 모습이 느껴졌
다.
김반장이 몸을 일으키며 움직이려 할 때, 이
순경이 갑자기 뭔가가 떠오른 듯이 허름한 수
첩을 내밀며 말을 했다.
처음에는 무슨 얘기를 하려는지 의아해했는
데, 그 얘기의 의미를 알아차렸을 때는 온 몸에
전율을 느꼈다.
“저... 김반장님, 아까 말씀드리려고 했는
데, 저런 일이 발생하는 바람에...
주순경의 과수원 살인 사건에 대한 수사 기
록 있잖습니까...
전부 없었졌는 줄 알았는데... 지서 캐비넷
을 뒤지다 보니 이걸 발견했습니다. 앞에 보니
주순경 이름하고, 그 과수원 살인 사건에 대한
요약이 있는걸 보니, 아마 없어지지 않은 그
사건의 개인적인 기록 같습니다.
저는 아직 읽어보지 않아서 어떤 내용이 담
겨 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이것이 반장님이 찾던 것입니까?...”
...나와 김반장은 목마른 사람이 물을 찾듯
이 허겁지겁 이순경이 내민 그 그 주형사의 수
첩을 받았다. 이순경은 우리의 갑작스런 행동
에 놀라면서 말했다.
“그것이 그렇게 중요한 단서가 될까요...
정신병으로 자기 몸에 불을 지른 사람이 끄
적거려 놓은 것 같은데...
제가 신참시절에 듣기에는 주형사는 그 사
건을 맡은 이후로 점점 이상해져서 결국은 사
표를 냈다고 하는데요...
더구나 점점 자폐증상까지 보이며 남과의
접촉을 끊더니 그렇게 죽었는데...
그것이 쓸모있을까요?”
김반장은 그 수첩을 뒤적이니라 고개도 들
지 않고 차가운 목소리로 이순경의 질문에 답
해주었다.
“소문에 가려 진실을 보지 못한다면 좋은
경찰이 될 수없네.
나는 이 주형사를 알고 있어...내 밑에서 일
한적도 있고...
그렇게 능력은 뛰어나지 않았어도, 사건 하
나를 끈질기게 물고 늘어지는 것에는 일가견
이 있지... 그것 때문에 오히려 출세도 못했고
비극적인 최후를 맞이했지만...
요즘같은 세상에, 몇가지 의문을 끝까지 포
기하지 않고 추적하는 경찰은 점점 사라지네...
이 주순경은 요즘은 거의 보기 힘든 그런
사람이었는데...
그런 사람이 사건을 포기하고 사표를 썼다
면 반드시 그런 이유가 있었을꺼야... 혹시 그
의 자살도 뭔가 연관이 있을지도 모르고...”
나는 김반장에게 내가 들었던 주형사의 얘
기를 해주었다. 재원이 편지에 나왔던 얘기며,
그 사람이 자살전에 나와 통화했던 내용을 얘
기해 주었다.
김반장은 그 얘기를 듣고 수첩을 읽는 것을
잠깐 멈추고 생각에 잠겼다.
그리고 혼잣말인지 모르게 한마디를 내뱉었다.
“정말 그 집에 뭔가가 있는 것일까...”
그러더니 그 낡은 수첩에 다시 몰두했다.
나는 치밀어오르는 호기심을 억제할 수 없
었다.
갑자기 그 주형사와의 마지막 통화가 생각났다.
‘...걱정마쇼. 안 그래도 내가 오늘 신나를
사오고 다 준비해 두었소.
오늘 밤에 그 빌어먹을 집을 태워버릴 작
정이요. 더 이상 그 악귀같은 집을 그대로 나
둘 수가 없겠소. 또 다른 사람이 희생될 지도
모르잖소.
그래서 그 집을 싸그리 태워버릴 생각이요...
재원이 학생이 회복되면, 이 얘기 전해주
고 연락해달라고 전해주쇼...’
그러더니 그는 자기 몸에 불을 질러 자살했
다.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 과수
원 살인 사건에 대해 가장 많이 알고 있을 그
사람이 비밀을 품고 영원히 가버린 것이다. 또
한 주형사가 작성한 수사기록과 동생 지철이
의 일기는 재원이가 그 버려진 집으로 가져갔
다가 사라졌다. 지금 이 상황에서는 이 수첩만
이 지금의 피비린내나는 연쇄살인 사건과 그
과수원 사건의 단서를 줄 것만 같았다. 이 두
사건은 버려진 집을 가운데 두고 뭔가 관련이
있는 것 같았다. 설사 아니더라도 지금 상황은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이었다.
나는 이것저것 생각을 하면서 지서안을 천
천히 둘러보았다.
김반장은 집중해서 그 수첩을 읽고 있었고,
보건의는 책상을 수술대 삼아 그 아이의 끔찍
한 시체를 검사하고 있었다. 이장은 정신을 제
대로 추스르지도 못한 그 아이의 부모를 어디
론가 데리고 나가고 있었다. 이순경은 어저쩡
한 자세로 김반장이 수첩을 다 읽기를 기다리
고 있었고 몇 명의 청년들은 혹시나 총이라도
나누어주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품으며 이것
저것을 돕고 있었다. 하지만 이 지서안에는 숨
길 수 없는 분위기가 풍기고 있었다. 내가 너
무 민감하게 느끼는 것인지는 모르지만, 모두
에게서 공포 내음이 진하게 풍겨나오고 있었
다. 뭔가에 쫓기는 듯한 초조함과 두려움들이
느껴졌다.
숙직실에 누워있을 정화씨가 생각났다.
문을 노크했더니. 정화씨를 돌보고 있던 아
주머니가 들어오라고 했다.
정화씨는 아직 정신을 차리지 못한 것 같았다.
기절 상태에서도 몸서리를 치는 것을 보니
뭔가 무서운 것을 무의식중에서 보는 것처럼
느껴졌다. 한편으로는 안쓰러웠고, 한편으로
는 연민의 정이 느껴졌다. 사라진 남자친구를
찾으러 왔다가 온갓 험하고 끔찍한 일을 경험
하고 정신까지 잃다니...나의 책임도 느껴졌
다.
착잡했다.
아주머니 말로는 좀 시간이 지나면, 정신을
차릴 것 같다고 했다. 하지만 의사도 아닌 그
아주머니의 말은 쉽게 믿겨지지 않았다.
그때 마침 그 아이의 시체에 대한 검시를 끝
냈는지, 보건의가 김반장을 부르는 소리가 들
려왔다. 나는 재빠르게 숙직실을 나왔다.
김반장은 읽던 것을 멈추고 시체가 놓여있
는 책상위로 다가갔다. 보건의는 진저리치는
표정으로 얘기했다.
“휴...
정말 끔찍하군요...제가 검시관이 아닌 이
상 정확한 사인이나 기타 사항에 대해서는 말
씀드릴 수 없네요. 더구나 아무런 장비도 없고
부검도 하지 않은 상태에서 뭔가를 밝히기란
불가능하죠... 특히 저같은 보건의로써는 더욱
더 힘든 일이죠...
그래도 대략적인 사인은 잘려나간 두 손을
제외하곤 특별한 외상이 없는 것으로 보아 출
혈과다로 사망한 것 같습니다. 두 손이 잘려나
간 부분은 뭔가 매우 날카로운 것에 잘린 것
처럼 매끔하게 잘렸습니다. 뼈까지 깔끔하게
잘려나간 것을 보면, 사람이 아닌 기계에 의해
잘린 것 같습니다.
이런 상처는 제가 인턴시절 응급실에서 본
기억이 있는데, 절단기에 손을 잘려서 병원에
실려온 기술자때와 똑같은 형태입니다. 날카
로운 것에 엄청난 힘을 실었을 때 나타나는 상
처죠... 아마 사람 힘으로는 힘들 걸요...큰 도
끼로 내려친다면 자르는 것은 가능할지 모르
지만, 이런 상처를 남길 순 없어요...
그리고 여기 이상한 흔적이 보입니다.
누군가가 팔뚝근처에 지혈해준 흔적입니
다. 자국이 보이죠?
강한 힘으로 밧줄 같은 것으로 동여맨 자국
입니다.
양쪽 팔에 모두 자국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누군가가 두 팔을 피가 안통할 정도로 강하게
조여 놓았다는 얘기입니다.
참 이상한 일입니다. 손을 잘라내고 지혈을
하다니...
만약 살인이라면, 정말 끔찍한 살인 방법입
니다.
이 아이는 자기 손이 잘려나가는 고통을 맛
본 후에 거기서 피가 흘러나오는 것을 보면서
죽어간 것이죠... 더구나 팔뚝을 지혈했기 때
문에 피는 천천히 흘러나왔겠죠... 물론 주체
도 못할 정도로 많이 흘러나왔겠지만, 사망시
간은 좀 늦츨 수 있었을 것입니다.
아이는 천천히 죽어갔습니다. 온갖 공포와
고통을 느끼며...
휴...”
지서안은 죽음과 같은 적막이 흘렀다.
이순경이“제기랄! 어떤 새끼가 그런거야!!!”
라고 목쉰 목소리로 욕지거리를 할 때까지 아
무 소리도 나지 않았다. 그제서야 모두들 큰
충격에서 깨어난 것처럼 행동했다. 기다리던
마을 청년은 그 가련한 아이의 시체를 푸대에
싸서 옮겨갔다. 그래도 지서안은 바닥이며 책
상이며 피범벅이 되어있었다. 하지만 아무도
그것을 닦아낼 생각조차 못하고 있었다.
김반장은 보건의에게 몇가지 질문하고, 팔
짱을 끼고 생각에 잠겼다.
우리는 한참을 김반장의 생각이 끝나길 기
다리고만 있었다.
이윽고 고개를 든 김반장은 먼저 이순경에
게 단호한 목소리로 명령을 내렸다.
“이순경, 지금 당장 무기고에 있는 칼빈 총
과 실탄을 챙겨가지고 나오게.
그리고 좀 쓸만한 마을 청년들을 무장시키
게. 총이 없는 사람들은 몽둥이라도 들려서 무
장시켜.
그들을 데리고 마을 한바퀴 돌면서 마을 사
람들 전부를 분교로 데려오게. 마을에 남아 있
는 모든 사람들 데리고 오는 것이야! 반항하거
나 지시에 따르지 않는 마을 사람들이 있으면
강제로라도 데리고 오게.
단단히 각오해야 할걸세!
자네도 알고 있듯이 그 미치광이 살인마는
어디서 누구를 살해할지 몰라. 어쩌면 지금도
누군가를 갈기갈기 찢고 있을 지도 모르지...
어두어지기 까지는 앞으로 2, 3시간 남았으
니 서두르게.
어두어지면 그 놈의 살인행각에서 피하기
가 더욱더 힘들어 지니까.
그리고 마을을 돌 때, 읍내 본서와 연락할
수 있는 무언가를 찾아보게.
휴대폰이나 무전기나 아무 것이라도 좋아.
읍내와 연락할 수 있는 것이라면 다 가져오
게!
이렇게 비오는 날, 한집 한집 들르며 마을
사람들 전부를 데리고 다닌다는 것이 쉬운일
이 아니라는 것은 나도 알아!
하지만,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더 많은
사람이 죽어나갈 것 같아.
수고스럽고 위험하겠지만 부탁하네...
명심하게!
그 놈은 미친놈이지만, 멍청한 놈은 아니라
네...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그 버려진 집
근처는 지나지 말게!
이유는 묻지 말게, 나도 잘 모르니까...
마을을 돌다가 그 놈 같으면 생포할 생각말
고, 가차없이 발포하게.
섣불리 덤벼들다간 자네들만 다칠테니까!
그런 놈은 잡을 생각하지말고 죽일 생각을
해!
그것이 그 놈의 살인 행각을 막는 가장 좋
은 방법이먀...
그럼 부탁하네!”
이순경은 김반장의 단호하면서 진지한 얘기
에 아무런 불만도 표시 못하고 무기고로 갔다.
이순경의 굳은 얼굴에는 두려움과 강한 책임
감이 느껴졌다. 이순경은 칼빈총을 꺼내와서
실탄을 장전하고 자기가 하나 들고 나머지는
마침 지서에 있던 청년들에게 나누어 줬다.
간단히 사용법을 설명해주었다.
마을 청년들은 처음 총을 받아들 때는 약간
들뜬 모습마저 보였지만, 심각한 분위기를 파
악했는지 차츰 긴장된 모습으로 이순경의 설
명을 들었다.
이순경은 마을 지도를 펼치고 마을 사람들
을 안전하고 최대로 짧은 시간에 데리고 올 루
트를 정했다.
그리곤 우비를 입고, 굳은 표정과 함께 지서
를 나섰다.
김반장은 나가고 있는 이순경에게 한마디
덧붙였다.
“제발 조심하게...
그 놈은 정말 위험한 놈이야!
어쩌면 인간이 아닐지도 몰라...
단지 인간의 탈을 쓴 괴물일지도 모르니
까...”
이순경은 잠시 발길을 멈추었지만, ‘괜찮습
니다!’라고 자신감넘치는 대답을 남기고 청년
들을 이끌고 나섰다. 그 뒷모습을 보며 나는
불안감을 느꼈지만, 이순경의 힘찬 대답에 그
불안감을 애써 떨쳐버렸다.
이제 지서에는 나와 김반장밖에 남지 않았다.
김반장은 한숨을 내쉬며 그 문제의 수첩을
내밀었다.
“일한씨...
이거 한 번 읽어 보세요...
여기 쓰여진 내용을 믿어야 할지 말아야 할
지...
만약 모두 사실이라면, 이번 사건과 어떻게
연관지어야 하는지...
뭔가 알 것 같기도 하고...
무슨 안개 속에서 더듬는 것 같기도 하고...
여하튼 일한씨도 읽어보세요...
혹시 일한씨가 재원씨에게 받았다는 편지
와 관련되어 뭔가 새로운 사실이 밝혀질 수도
있으니까요...”
나도 모르게 그 수첩을 받아든 손이 긴장으
로 떨렸다.
이 수첩에는 분명히 뭔가가 있을 것 같았다.
이 끔찍하고 계속되는 살인 사건의 진상을
밝혀낼 수 있는 그 무엇이...
나는 심호흡을 하고 그 수첩을 펼쳐보았다.
그 무시무시하고 기괴한 사건의 기록을...
주형사의 수첩에 적혀져 있던 것은, 수사에
관한 일정한 형식이 없는 메모들이었다. 한 번
에 쓰여지지 않고, 몇 달에 걸쳐 쓰여진 것이
었다.
[ 과수원 살인 사건
- 3명의 희생자와 1명의 목격자가 발견
- 살인 도구는 낫으로 추정
- 살인 도구로 추정되는 낫에는 4명의 지문
이 모두 채취됨...
- 1명의 목격자는 사건 당시의 일을 기억못
함...
모든 가능성을 감안해 최대한 논리적으로
생각해 보자...
1. 희생자중 살인범이 있다면...
(즉, 범인도 자살또는 정당방위에 의한 타
살로 죽었다는 가정)
가) 한병식(과수원 주인)이 살인범이라면...
- 살인 동기: 정신질환?
- 타당성 있는 결론. 그러나, 안중위와 아
들인 지철을 죽인 다음에 자기 목을 스스로 잘
라 자살하는 것은 불가능. 또한 그렇다면 사라
진 그 머리는 어디에...
- 안중위나 지철이 정당방위로 한병식을
죽이고, 자신들도 죽었다고 하는 것도 이해가
안감. 정당방위로 상대방의 머리를 잘라버리
는 것은 논리적이지 못함.
더구나 마지막에 낫을 쥐고 있던 사람은
한병식...
나) 안현(인근 모부대 ROTC 중위)이 살인
범이라면...
- 살인 동기: 한병식의 딸 한지희와의 결
혼 문제로 빚어진 갈등?
너무모호하고, 일가족 몰살의동기로는약함.
- 먼저 지철의 등을 낫으로 찍어 죽이고,
격투 끝에 한병식의 머리를 자른 후에 자기도
깊은 상처를 입고 죽었다? 그렇다면 없어진
한병식의 머리 또한 안현이 처리했다는 것인
데, 죽을 정도로 깊은 상처를 입은 사람이 왜
이미 자기가 죽인 사람의 머리를 잘라 숨겼을
까?
또한 마지막에 낫을 쥐고 있던 사람은
한병식이었다.
다) 한지철(과수원 집 아들, 중학생)이 살인
범이라면...
- 살인 동기: 정신질환?
- 안중위와 아버지를 죽이고 그때 입은 상
처로 죽음? 또는 살인을 말리던 누나인 지희
에게 피살됨? 중학생의 힘으로 사람의 머리를
잘라낼 수 없음.
또한 안중위와 한병식의 시체에는 서로 격
투한 흔적이 발견되었지만, 지철과 격투한 흔
적은 없음.
라) 한지희(과수원 집 딸, 안중위와 결혼 예
정)이 살인범이라면...
- 살인 동기: 정신질환? 또는 결혼 문제로
일어난 갈등?
- 유일한 생존자이기 때문에 가장 유력한
용의자가 될 수 있음.
과연 혼자서 세명을 남자들을 죽일 수 있
었을까?
또한 여자 힘으로 사람의 머리를 잘라 낼
수 있을까?
마) 살인자가 두 명이상이라며...(가능성 있
는 조합을 보면)
- 한지희와 안현이 공범: 타당성 높음
살인 동기는 결혼에 방해가 되는 가족의
처치?(우발적) - 일리 있음.
안현과 한지희 한병식과 한지철을 죽이고
그 과정에서 안중위도 죽임을 당함? - 일
리 있음
사라진 한병식의 머리와 마지막에 한병식
에게 쥐어진 낫은 수사의 초점을 흐리게 하기
위한 한지희의 속임수? - 일리 있음
한지희의 실성은 속임수? - 정신과 전문의
의 소견으로는 절대로 속일 수 없다고 함.
결국 한지희는 진짜로 정신병 환자로 밝혀짐.
살인을 저질렀지만, 그 충격으로 한지희가
진짜로 실성? - 타당성높음.
하지만 왜 한병식의 머리는 숨기고
낫을 쥐어줬을까?
또 하나의 의문...한병식이 낫을 쥐고 있던
형태로 봐서 남이 죽은 후에 쥐어준 것은
절대 아님.
2. 제3자가 범인이라면...
- 살인동기: 과수원 가족과의 원한?
- 과수원 집에 제 3자가 침입한 흔적을 발
견 못함.
피바다가 된 과수원 집 바닥에서 제3자의
발자국을 발견 못함.
흔적없이 들어왔다 살인을 저지르고 사라
지는 것을 불가능.
제 3자가 살인을 했다면 안중위와 한병식
이 쥐고 있던 서로의 머리카락과 계급장은?
결정적인 목격자가 될 수도 있는 한지희
를 살려둔 이유는?
모든 것이 뒤죽박죽이다. 제대로 된 결론은
하나도 없다. 글자 그대로 미궁이다. 도대체
무슨 일일까? 한지희가 제정신을 차려 그때
사건을 말해주지 않는 한 진상을 영원히 알 수
없을까?
분명히 이 사건은 가정 불화로 인한 자살 따
위가 아니다. 누군가가 무지막지한 원한 또는
악의를 가지고 저지른 끔찍한 범죄가 확실하
다...하지만...
원한이다. 이런 잔학한 살인을 저지린다는
것은 물건이 목적이었던 것이 아니다. 또한 사
람을 죽이기 위해서라면 이런 잔학한 살상극
을 벌이진 않았을 것이다. 놈의 목적은 사람을
갈기 갈기 찢어서 최대한 잔인하게 죽이는 것
이었다! 최대한의 고통과 공포를 느끼게 하면
서...]
적혀있는 볼펜 색깔이 다른 것을 보니 며칠
후에 적힌 내용같다.
[ 3. 원한관계
가) 과수원 주인 한병식과의 원한
- 5년전에 이곳으로 이주. 이사를 주선한
사람은 친구라는 성일 여관 주인(최성일)이 했
다. 이사 후 1년만에 부인 사망.
원인 불명. 단지 치료 할 수 없는 병으로
사망했다고 알려짐.
부인이 죽기 전까지 마을 사람들과 원만
한 관계를 유지.
그러나 부인이 죽은 후에는, 전혀 다른 성
격의 소유자처럼 행동.
항상 술에 취해 살고, 폭력적이 됨. 그 때
문에 마을 사람들과의 관계도 나빠짐.
특히 정미소를 운영하는 김은철과 술자리
에서 싸움을 벌여 전치 4주 정도의 상처를 입
힘. 김은철의 고소로 치료비와 합의금조로
500만원 지급하는 등, 마을 사람들과의 관계
과 악화.
가장 가까운 친구는 역시 여관주인인 최성일.
나) 안중위와의 원한
- 서울에서 여유있는 집안 출신으로 제대
를 앞둔 ROTC 군인.
재대후 대기업에 입사하기로 되어있는
등 안정되고 전망있는 상태였음. 소속 대대장
등 상급자의 증언에 따르면 밝은 성격으로 원
만한 복무 생활을 했음.
하지만 안중위가 지휘하던 소대원들의 증언에
의하면, 소대원 중 상병 한명과 관계가
좋지 않았다고 한다.
자세히는 말해주지 않았으나, 하극상과 관계
있는 것 같다.
도시 출신이며 대졸 학력의 연약한 소대장을
각계 각층의 거친 병사들이 복종하고 따를
수 있었을까...
다) 첫째딸 한지희와의 원한
- 마을 사람들의 칭찬이 자자함.
마을에서 가장 훌륭한 부인감이며
며느리감으로 간주됨.
뛰어난 외모와 착한 성격으로 모든 사람이
좋아함.
원한 관계는 전혀 없다고 주변에서 증언.
하지만...가뜩이나 여자가 부족한 마을에서
어디 내어놔도 손색이 없는 일등 신부감을
놓고 아무런 잡음이 없다?
더구나 외부 사람과 결혼하는데...
표면적으로는 없다고 했으나, 이 결혼에
대한 치정 살인의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누군가 한지희를 짝사랑했다?
조사가 필요...]
시간이 얼마 지난 후에 쓰여진 것으로 보이는
메모가 한지희에 관한 내용에 덧붙여져 있다.
[마을에 한지희에 대한 이상한 소문이 돌
고 있다.
정신이 나가있는 지금, 한병식의 친구인
여관주인 최성일이 돌봐주 고 있으나, 누군가
의 애를 임신하고 있다는등 지저분한 소문이
있다.
불쌍한 것...마을 누군가가 실성한 지희를
농락하는 것 같다...
죽일 놈...
라) 한지철와의 원한
- 중학생이라 특별한 원한관계가 없다.
전학 와서도 친구를 잘 사귀는등 원만한
관계를 유지.
단지, 같은 반 반장(박윤환)과 성적이나
인기 같은 것에서 경쟁관계여서 껄끄러운 사
이였다고 함. 친구들의 얘기로는 반장이 지철
을 엄마가 없어 버릇없는 애라는 등 심한 욕도
하고 사이가 나뻤다고 함.
직접 반장에게 물어보니 자신은 지철과
사이가 좋았다고 주장.]
또다시 시간이 지난 후에 적힌 내용 같다.
[무섭다...
이 사건에 대해 집착할수록 뭔가가 나를
압박하고 뒤쫓는 것 같다.
나를 감시하고 나를 위협한다.
무엇일까...
제기랄...
박형사가 오늘 죽었다. 교통사고로...
단순한 교통사고라고 하지만 믿울 수 없
다. 본서에서 파견나와서 이 사건에 대해 정열
적으로 조사하던 젊은이였는데...
그도 사건에 파고들수록 공포를 느끼고
있는 것 같다.
결국 사건을 상부의 지시로 말도 안되는
시나리오로 마무리하고 나서 본서로 복귀했지
만, 그는 끝까지 석연치 않음을 떨칠 수 없었
나 보다. 사고 당하기 전날 밤에 술취한 목소리
로 전화해 그가 내게 말한 것이 머리 속에서
떠나지 않는다.
‘주형사님, 포기하실 것입니까?
저는 무섭습니다. 부끄럽지만 무서워요...
밤마다 끔찍한 악몽에 시달려요...죽음이
내게 다가오는 것 같아요...
이 사건에는 뭔가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불가사의한 일이 있는 것 같습니다. 아주 무서
운...
아직 주형사님께 말씀드릴 단계는 아니지
만, 살인 사건이 일어난 그 집에 대해 뭔가를
알아냈아요...
얘기해도 믿지는 않을 거예요...
제가 살아있다면 곧 말씀드릴꼐요...
무서워요...’
박형사가 정말 사고였는지. 자살했는지.
아니면 뭔가에 의해 죽었는지...
나도 무섭다.
그 집에 뭔가가 있다.
알수 없지만, 이 공포의 근원인 그 무언가
가...
4. 과수원 - 살인사건이 일어난 후 버려진
집.
- 1920년대 지어졌다고 추측됨.
이 집을 지은 주인에 대한 기록은 없음. 해
방까지 주인이 나타나지 않고 버려진 채로 남
겨졌다고 함...
그 후 여러 가지 괴기한 얘기가 전해짐
그 중에 신빙성있는 얘기만 몇가지 살펴
보면, 6.25 당시 국군 소대가 그 집에 주둔한
적이 있는데, 하룻밤사이에 한 소대가 사지가
잘린 상태로 모두 죽었다는 것이다. 전쟁때라
아무 조사 없이 끝났으나 전해진 이야기로는
그때 발견된 한명의 생존자였던 소대장이 낫
을 들고 부대원 전원을 죽였다고 한다.
그 소대장은 물론 미친 상태에서 혼란 중
에 사라지고...
그 외에도 수사기록 및 사망사건의 자료
들을 조사해 보면, 그 집에서 시체로 발견되어
나온 사망자 수가 이번 사건을 제외하고, 30년
간 20 명이 넘으니 뭔가 이상하다. 더구나 그
기간 동안에 특별히 거주자도 없는 상태에서
그렇게 많은 사람이 죽어나간 것에는 이상한
일이다.
희생자의 대부분이 부랑자나 떠돌이 그리
고 술주정뱅이가 하룻밤 정도 빈집에서 쉬려고
들어갔다가 다음날 시체로 발견된 경우다. 모
든 경우가 사인은 충격에 의한 심장마비 또는
원인불명으로 기록되었다.
한병식은 왜 그런 집을 사서 이사하게 되
었을까?
누가 그 집을 소유하게 되고 한병식에게
팔았을까?
한병식의 그 집으로의 이주는 친구이며
여관주인인 최성일이 주선했다. 그런데 한병식
에게 집을 팔았다는 것도 바로 최성일이였다.
서류상에 보면 소유주가 불분명한 상태였
던 6년전에 최성일이 자기 소유로 신고하고,
그 뒤 바로 한병식에게 판 것이다.
최성일은 그 집이 흉가라는 것을 알고 판
것인가?
한병식은 그 집이 그런 저주 받은 집이라
는 것을 알고 그 집으로 이사한 것일까?
그 집을 처음 짓고 실종된 사람은 누구일
까?
마을에서 제일 나이가 많은 어르신에게
물어보았지만, 아무 것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
고 했다. 하지만 뭔가 알고 있는 듯한 눈치였다.
확실히 뭔가 숨겨진 얘기가 있다.
그 집이 풍기는 그 기괴하고 무시무시한
것은 과연 무었을까?
그게 무엇이든 나를 압박하고 나를 죽음
으로 몰아 넣고 있다.
너무 무섭다...
어디로 가도 나를 쫓아오는 괴물이 있다.
그 집에서 뭔가 나오고 있다.
사악한 기운이...]
그리고 재원이가 그 집에 들어갔다 정신이
나간 후에 쓰여진 듯한 글이 보였다. 바로 주
형사가 몸에 불이 붙여 죽기 전에 쓴 글이었
다.
[...멀쩡한 의대생이 그 집에 들어갔다가 미
쳐서 나왔다.
내게도 찾아와 이것저것 물어보았는데...
그 때 얘기해준 내 잘못이다. 말렸어여 하
는데...
도망가고 숨어사는 것도 이제 끝이다.
그 집에 있는 것이 무엇이든 이제는 정말
끝을 봐야겠다.
불을 지를 것이다.
내가 죽던 그 집이 타 없어지던, 이제 죽음
의 공포는 끝이다.
수십명의 피를 먹고도 아직도 사람의 목숨
에 굶주려있는 그 집을 이 세상에서 없앨 생각
이다...
이제 모든 것이 끝이다...]
나는 메모를 다 읽고 더욱 혼란해질 수 밖에
없었다.
이것을 쓴 날 밤 주형준 형사는 몸에 불을
붙여 자살했다.
자살이 아니고 그 집에 의해 죽음을 당했는
지도 모르지만...
주형사의 기록은 나를 더욱 혼란스럽게 만
들었다.
뭔가 단서를 제공해주는 것 같기도 했지만,
확답을 내 주지는 않고 있었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이번 살인이든, 지난번 살인이든 어떤 관
계인지는 모르지만 그 버려진 집과 관련되어
있는 것은 확실해 보였다.
김반장은 내게 그 기록에 대해 물어보았다.
“일한씨, 어때요?
무슨 감이 잡혀요? 그 끔찍한 놈에 대해...”
“아뇨. 전혀...
하지만, 확실한 것은 그 버려진 과수원과의
관계는 분명히 있다는 것입니다. 형태가
어떠하든, 그 집이 이번 사건의 중심이 되는
것 같습니다.
비이성적인 생각인 것 같지만, 제가 생각
해낼 수 있는 것은 이것뿐이네요...
반장님은 뭐 좀 아시겠나요?”
“나도 비슷하죠...
그래도 선명하지는 않지만 그림하나가 눈
에 보이는 것 같네요.
일한씨 말대로 그 버려진 집이 중심에 있
는...”
김반장은 뭔가를 알아차린 것 같지만, 아직
밝힐 때가 아닌지 전부 얘기해 주지 않고 있었
다. 좀 자세히 물어보고 싶었지만, 때가 되면
알게 될 것 같아 참았다.
그때 숙직실 방문이 열리며, 정화씨를 봐주
고 있던 아주머니가 나왔다.
정화씨가 정신을 차렸다는 얘기를 해주었
다.
나는 황급히 방안으로 들어가보았다.
정화씨는 파리한 얼굴을 하며 벽에 기대어
앉아 있었다. 첫눈에 봐도 대단하게 고생하고
험한 경험을 한 사람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
나는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정화씨... 괜찮아요?
안심하세요... 여기는 지서 안이니까...
일어나서 다행이네요. 모두 걱정했어요...”
정화씨는 힘이 하나도 들어가지 않은 목소
리로 대답했다.
“미안해요... 일한씨...
저 때문에 고생하고...
저는 여기 괜히 따라왔나 봐요... 방해만 되
고...
그때 일한씨 말듣고 오지 말 것 그랬어요...”
안 되어보이는 정화씨에 뭔가 위로의 말이
라도 해 줘야겠다고 하는데, 갑자기 김반장이
끼어들었다.
“정화씨, 일어나자마자 이런 질문해서 미안
한데...
지금 상황이 워낙 급하니까 좀 이해해줘요...
정화씨 기절하기 전에 상황에 대해 기억해요...
기억나는 것이 하나라도 있으면 얘기해 주
시겠어요.
무리라는 것을 알지만 부탁입니다...”
나는 정화씨가 안쓰러웠지만, 김반장의 다
급한 입장도 이해가 되었다.
어떻해 보면, 지금 현재 그 놈을 보고 살아
있는 것은 김반장과 정화씨밖에 없는 상황이
었다. 김반장의 경우는 제대로 목격한 것이 아
니니까, 정화씨가 유일한 증인이자 단서가 될
수 있는 것이었다. 정화씨는 김반장의 질문을
들었는지 말았는지, 가만히 눈을 감고 있었다.
무엇을 생각하는 것인지, 아니면 그 놈을 목
격한 순간을 회상하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한참을 그렇게 가만히 있다가 가라앉은 목소
리로 얘기하기 시작했다.
“너무 무서웠어요...
사실 그 때 상황에 대한 정확한 기억은 없는
것 같아요...
일한씨가 반장님을 따라 창을 뛰어넘어 간
후, 저는 혼자서 그 끔찍한 살인 현장에 혼자
남아있게 되었어요.
방안에 흐틀어져 있는 시체들을 보니 구역
질이 나고 무서워서 방에 있을 수 없었어요.
밖에 나와서도 그 방안 피바다의 전경이 머리
속을 떠나지 않아 괴로웠어요. 자꾸 무서워져
딴 생각을 하면서 비 내리는 것을 보고 있었어
요.
갑자기 총소리 같은 것이 메아리쳐서 들렸
어요. 깜짝 놀랐어요.
그 소리 후에 사방은 쥐죽은 듯이 조용해
졌어요. 단지 빗방울 떨어지는 소리만 들렸어
요. 그러니까 더욱 무서워지는 것이였어요.
일한씨나 김반장님에게 무슨 일이라도 났
을까 걱정되기 까지 했어요.
한참을 마음 졸이며 떨고 있는데, 갑자기
뒤에서 발자국이 들리는 것이였어요. 너무 무
서워 뒤를 돌아보려는 순간 머리에 큰 충격을
느꼈어요. 순간 주변이 깜깜해지고, 의식을 잃
었어요...
그리곤 아무 것도 기억이 안나내요...
정신을 차려보니, 낯선 방에 낯선 아주머니
가 저를 보살피고 있었어요...
이것이 제가 기억할 수 있는 모든 것입니다.”
정화씨의 대답에는 이해할 수 없는 부분들
이 있었다. 나도 모르게 그 의문에 대한 질문
이 튀어나왔다.
“그런데 정화씨...
정말 전혀 기억이 안나나요?
제가 정화씨를 발견했을때는 정신을 잃고
있지 않았을 때 였거든요...”
내 질문에 정화씨는 이상할정도로 깜짝 놀
라면서 반문했다.
“정신을 잃고 있지 않았다고요...
그럼, 그때 제가 무얼 하고 있었죠?”
나는 머뭇거리며 대답을 못하고 있었다. 그
러자 옆에 있던 김반장이 담담하게 말해 주었
다.
“그때 정화씨는‘그가 왔어. 낫을 들고...’
라는 말을 계속해서
중얼거렸어요...그것은 전혀 기억이 안나나
보죠?
그러다가 기절했어요. 우리는 그 말을 듣고
정화씨가 최소한 그 놈을 봤으리라
생각했지요...
하긴 그 놈과 마주쳤으면, 정화씨도 살아남
지 못했을지도 모르죠...
다행입니다...
그래도 혹시나 하고 물어보는데요...
정화씨가 무의식중에 중얼거리는‘그’가 누
구인지 기억나세요?”
정화씨는 김반장의 질문을 듣고 이상할 정도로
당황하는 것 같았다. 평소의 정화씨와 달리
침착하지 못한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그럴 만
한 일을 당했다고 생각하니 납득이 갔다. 정화
씨는 더듬거리면서 김반장의 질문에 간신히
대답했다.
“그건...음...
모르겠어요...제가 왜 그런 얘기를 중얼거
렸는지...
아무것도 기억 안나요...
단지 머리에 얻어맞고 정신을 잃었다는 것
밖에요...
전혀 모르겠어요...”
좀 이상한 대답이었지만, 김반장은 알았다
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솔직이 정화씨의 대답을 듣고 더욱 혼
란스러워졌다.
말이 안되는 것 같기도 했지만, 기억이 안난
다는 데는 특별히 할말이 없었다. 김반장의 반
응이 궁금했다. 그런데 내 생각과는 달리 김반
장은 더 이상 묻지않고, 오히려 정화씨의 말을
전적으로 믿는다는 듯이 행동했다. 힘들더라
도 몸을 일으켜 모두들 분교로 옮기자는 얘기
를 했을 뿐이다. 정화씨는 자기는 괜찮다는 듯
이 옮길 준비를 하겠다고 했다.
방에서 나와서 나는 나지막히 김반장에게
물었다.
“반장님, 좀 이상하지 않으세요?
정화씨의 대답이 약간 말이 안되는 것 같기
도 한데...”
“글쎄요...
약간 말이 안 되는 것 같은 것이 아니라, 좀
많이 틀리는 것 같은데...
좀 더 기다리죠... 정화씨가 직접 얘기해 주
겠죠... 뭐...
우선 분교로 옮기고 봅시다.
이순경도 마을 사람들을 데리고 곧 분교로
돌아올 것 같으니까...”
김반장은 정화씨의 대답에 대해 의문점만
동의했을 뿐이고, 더 이상 얘기하지 않고 분교
로 옮기는 데에 신경을 쓰지 않았다 하지만 내
가 보기에도 김반장은 나름대로 정화씨의 대
답에 대해 다른 생각이 있는 것 같았다.
김반장은 지서안에 있던 사람들을 재촉해서
분교로의 이동을 지시했다.
밖에는 약간은 가늘어졌지만, 비가 계속해
서 내리고 있었다.
나는 몸이 불편한 정화씨를 부축했다.
자그마한 몸짓의 정화씨는 뭐가 그렇게 겁
나는지 연신 바르르 떨고 있었다. 나는 그런
정화씨에게 우산을 바쳐주고 묵묵히 분교로
향했다.
가녀린 정화씨를 보니, 안쓰러운 생각이 들
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