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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9-09 0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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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계의 궁극적 인습 파괴자" 브라이언 클러프의 일생!"UEFA 선정 축구 역사상 최고의 감독 10인" 브라이언 클러프 BRIAN CLOUGH [1935~2004] 브라이언 클러프라는 인물을 아는가? 브라이언 클러프는 선수로서도, 감독으로서도 레전드의 면모를 보여줬다. 선수로서는 미들즈브러의 레전드. 미들즈브러에서 1955년부터 1961년까지 6년동안 뛰면서 미들즈브러 역대 통산 개인득점 3위를 달성했다. 차트를 보면 213경기 197골, 엄청난 기록이다. △1957년의 클러프 모습 그런데 1961년에 미들즈브러의 라이벌인 선덜랜드(!)에 이적 했다! 라이벌팀으로 이적해도 실력은 변함없었다. 1년반동안 61경기 54골을 기록했다. 하지만 1962년의 크리스마스 다음날인 12월 26일, 십자인대 파열이라는 끔직한 부상을 당했다. 그렇게 2년동안 벤치신세, 결국 부상에서 복귀하여도 3경기밖에 뛰지 못하였다. '하지만 그는 언제나 선덜랜드의 벤치와 라커룸에 있었다.' ![]() △1963년, 선덜랜드의 라커룸에서 -첫 감독생활- 결국 1964년, 30살이라는 젊은 나이에 선수생활을 마감했다. 그러면서 클러프는 지도자에 도전하였다, 전술이해도가 빨라 축구에 심취해있었기 때문. 1965년, 그는 동료와 잉글랜드 4부리그에 있었던 하틀리풀스 유나이티드 FC 의 젊은 감독으로 들어왔다. 당시 팀은 재정위기에 허덕이고 있었는데, 클러프가 직접 호프집에 들어와 모금생활을 했을정도였다. 그렇게 팬들의 사랑을 제대로 받았다. 보드진과 다툼이 있어 감독에서 경질 될때, 팬들이 나서서 그 보드진을 경질시키고 복귀시킬정도. 결국 1967년, 4부리그 중하위권이였던 하틀리풀스를 3부리그로 승격시켰다. -레전드의 시작- 하틀리풀스를 3부리그 승격을 시킴으로서 여러 유명팀에 관심을 받았다. 그렇게 클러프는 팬들의 박수와 함께 1967년, 33살의 나이로 더비 카운티로 떠나게 된다. 더비 카운티는 당시 10년동안 2부리그에서 머물러있었다 더비 카운티에서의 첫 시즌은 그렇게 잘 흘러가지는 못했다. 감독 선임 이전 시즌보다 한순위 더 낮게 시즌을 끝내었다. 하지만 클러프는 성공을 위해 여러 5명의 선수를 영입하였고, 무려 11명이라는 선수를 방출하였다. 그렇게 1968년, 22경기 무패기록을 세우며 2부리그를 우승으로 이끌었다. 34살의 나이에 10년동안 2부리그에 있었던 클럽을 2년차에 우승시킨것이다! 하지만, 1부리그 승격 시즌에는 9위로 순위를 끝마쳤다! 승격팀에 비해서는 다소 성공한 시즌이라 할수 있었다. 이때만해도 더비 카운티의 전성기는 끝나는줄만 알았다. 하지만, 다음시즌인 1971-72 시즌. 42경기 24승 10무 8패 2등: 리즈 유나이티드 - 42경기 23승 9무 9패 3등: 리버풀 - 42경기 23승 9무 9패 라는 기록으로 36살에 카운티를 1부리그 우승으로 이끌었다. 우승까지 약간의 운도 따랐는데, 마지막 라운드인 42R, 맨체스터 시티 전에서 승리함으로서 일시적으로 1위를 달성하였지만. 리즈 유나이티드와 리버풀이 너무나도 잘하여 1위를 재탈환 당할것이라고 다들 예상하였다. 하지만 두 팀은 마지막 라운드에서 리즈 유나이티드는 울버햄튼과의 경기에서 패배. 리버풀은 아스날과의 경기에서 무승부를 기록하여 리그 우승을 차지하였다. ![]() △구단 역사 88년만에 1부리그 우승을 이끌어내다 리그우승을 한 다음시즌, 리그 7위로 시즌을 끝마쳤지만 유로피안 컵에서 무려 준결승에 진출하였다. 하지만 유벤투스에게 합계 3-1로 패배했다. 클러프는 부정행위들에 대해 축구협회를 대차게 까곤, 정치적인 노골적인 말을 하기도 했다. 축구협회와 싸우기도 하고, 카운티의 보드진과 언쟁이 벌어진적도 있다. 그렇게 여러 경기와 축구를 혼잡하게 만들었다. 그렇게 회장과의 불화로 인해, 1973년, 자진사퇴하였다. -잠시간의 혼잡한 감독생활- 1974년, 당시 3부리그에 소속되어있던 브라이튼 앤 호브 알비온에 선임되었다. 하지만, 1973-74 시즌 리그 19위라는 기대에 못미친 결과로 인해 1년뒤 해임되었다. 그 다음 정착지는 전설이였던 돈 레비 감독이 잉글랜드 국대 감독으로 떠나 자리가 비어있었던 1부리그의 리즈 유나이티드였다. 하지만 클러프가 리즈 유나이티드로 들어올때, 경악을 금치 못했다. 리즈의 선수들은 '더러운' 플레이와 '속임수'를 마다하는 플레이를 했다. 클러프는 이에대해 매우 화가나 이에 대한 징계로 2부리그로 떨어트릴려고 할정도. 그렇게 44일만에 리즈 유나이티드를 떠났다. -전성기- '언더독[UNDERDOG]의 진정한 시작' 그렇게, 그의 커리어의 최정점을 찍어낼 클럽에 도착했다. 1975년, 그는 2부리그의 노팅엄 포레스트 FC 에 선임되었다. 노팅엄 포레스트는 선임당시 리그 13위로, 희망이 보이지 않던 팀이였다. 하지만, 클러프가 도착하고 나서, 점점 팀이 급성장하기 시작했다. 1974/75 2부리그 16위 1975/76 2부리그 8위 1976/77 2부리그 3위 그렇게 부임 3시즌만에 1부리그 승격을 이루었다. 그런데 다음 시즌 무려 77/78 1부리그 우승을 이루었다 2위였던 리버풀보다 승점이 7점이나 높았던 우승이였다. 이에 그치지않고 그 시즌 리그컵 우승까지 이루었다. [1977/78 리그컵 결승] 포레스트 1:0 리버풀 이 말도안되는 시즌을 겪은 축구계는 당황하지 않을수가 없었다. 이동안 잉글랜드에서 이런 감독은 없었다. 하지만 노팅엄 포레스트는 질주를 멈출수 없었다. 다음시즌 유로피언 컵에 도전할수 있게 된 노팅엄 포레스트는 아주그냥 씹어먹었다. 이 시즌에 트레블을 이루어낼뻔했지만, 결국 리그 2위를 달성해 실패하였다. [1978/79 1부리그 준우승] [1979 리그컵 우승] [1978/79 유로피언 컵] 32강 노팅엄 2:0 리버풀 16강 노팅엄 7:2 아테네 8강 노팅엄 5:2 GCZ 4강 노팅엄 4:3 쾰른 결승 노팅엄 1:0 말뫼 결국 노팅엄 포레스트 FC에 입단하고 3시즌만에 1부리그로 승격 시키더니 1시즌만에 1부리그를 우승으로 이끌고 또 다음 1시즌만에 현재의 챔스인 유로피언 컵을 우승시켰다! 진짜 이정도면 극의 극에 달하는 전성기라고 할수 있었다. 하지만... [1979 유로피언 슈퍼컵 우승] [1979/80 1부리그 5위] [1979/80 유로피언 컵] 32강 노팅엄 3:1 외스터 16강 노팅엄 4:1 피테슈티 8강 노팅엄 3:2 뒤나모 4강 노팅엄 2:1 아약스 결승 노팅엄 1:0 함부르크 무려 두시즌 연속 유로피언컵 우승을 이끌었다. 그의 나이 44살이였다. ![]() △ 2부리그 팀을 유로피언 컵 두시즌 연속 우승을 달성해 내다. 그 이후, 더 성장하나 싶었지만 점점 하락세를 보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점점 팀을 구축해 나가면서 1988/89,1989/90 이렇게 두시즌 연속으로 리그컵 우승을 시키는 위엄을 다시 보여줬다. 브라이언 클러프는 언제나 팀에대해 열정적이고, 적극적이였으며, 부정행위에 대해 극히 부정적이였다. 다시 1부리그 중하위권에서 전전하던 포레스트는 1990년에 로이 킨을 영입하면서 미래를 준비하려 했으나, 1992/93 시즌에 팀 성적이 곤두박질 치면서 22위라는 최악의 성적으로 강등당했고, 결국 클러프는 1993년, 59살의 나이에 28년간의 오랜 지도자 생활을 마감했다. 브라이언 클러프는 1부리그 승격, 1부리그 우승, 챔피언스 리그 2연패를 4시즌만에 이뤄낸 축구역사에 전무후무한 업적을 이뤄낸 명장이였다. 브라이언 클러프는 1993년 이후 스포츠사에서 여러 논평을 하다가 알코올 중독 지료 부작용으로 인해 투병하다가 2004년에 사망하였다. ![]() [BRIAN CLOUGH IS A FOOTBALL GENI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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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 몇없는 릴osc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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