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걸 0과 1로 돌아가면서 별다른 생각 없이 상대방을 특정 지을 수 있고 상반대 결과로 특정 지어진다. 참이 하나라면 타겟팅에 필요한 시간 결과가 없기 때문이고 내가 참이냐 아니냐에 따라 타겟과 증명을 동시에 하는 꼴이기에 1석2조다.

그 이후 다른 결정에서 오고가는 상호간에 대화랄까. 참과 거짓을 각자 한 가지씩 2개의 증명 과정 없이 1개의 증명 과정만으로도 결국 두개를 증명하고 생각의 결과가 반으로 줄어든다.

나 아니면 너이고 하나 외 다른 것을 반대로 생각 할 필요도 없이 참과 거짓이 결정난다.

01과 1에서 01로 다시 되물으면 4개의 생각 중 2개의 생각이다. 01과 1에서 0 그리고 이로 다시 되물으면 8개의 생각 중 4개의 생각이다.

0은 없다.
1은 있다.

0과 1 중 1번의 갈래에서 01을 생각 해보자.

0과 1의 생각을 하고 다음 01의 생각을 하고 규칙에 의한 경우들은 01, 00, 10, 11이지만 오직 참만 찾는 yes or no로 하나의 경우들만 찾아가니 01과 00, 10과 11 단 두 가지씩만 생각하면 되고 이는 해당 건에 대한 생각과 해결 과정의 수가 같아 처리를 빠르게 하기 때문이다.

문제에서 처리해야 할 문제가 발생했다. 그럼 총 4가지의 증명 과정이 있으나 증명과 타겟팅의 이분법적 사고를 통해 2가지의 증명으로 문제와 증명을 한 가지씩 매칭하여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고 사람들은 한 가지의 문제에서 복합적인 사고를 하기 싫어한다.

실제로 똑똑하다는 말을 다르게 받아드릴 때가 많은데 복합적인 사고를 하는 것이 단순히 노력을 많이 하고 자신이 하는 것 만큼 받아가는 태도가 아닌 그냥 근본적인 태생이 좋아서 두뇌의 성능에 의해 어려운 여러가지 생각을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꽤나 많다.

무의식적으로 그런 생각을 가진다. 이런 무의식을 자아로 통제하여 교정한다. 나도 그렇다. 한 번 생각을 해봐야 하는 이유가 아닐까.? 때문에 난 복합적인 이라는 단어나 맥락이 내가 생각한 것 외에 것일 수도 있다고 생각하려 한다. 이분법적 사고를 하지 않으면 된다. 이것도 이분법인가.?

사실 이분법적 사고는 그저 답을 달라는 말과도 같다. 단순히 이해->학습(배우는게 아닌 생각하는 것)->정리 라는 단계를 밟아 나가는 것과 다르게 증명이 곧 이해인 이분법적 정리는 정해진 답을 학습하는 것만으로 스스로 생각을 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이해와 학습=이분법적 사고, 이해와 학습의 정답을 상대가 말해주길 바란다.)

물론 내가 제일 좋아하는 대답이긴 하다. 보고나 답을 내주길 바라지 내가 하기는 귀찮음.

때문에 "복합적인 사고는 그 사람의 천재성을 들어낸다"고 한다면 이 문장을 "노력이냐", "근본이냐"로 받아드리는 차이로 상대방의 세계관을 이해할 수 있다.

안봐도 뻔한 것은 복합적인 생각을 근본적인 태생에 의한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세계관에서 이분법적 사고관을 선호한다. 복합적으로 생각해야 할 이유를 모르기 때문에 생각이 많은 척을 한다고 생각한다.(생각이 많은게 아니라 해야만 하는거고 태생이 아니라 노력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건실하여 모범적이다.)

물론 별다른 생각이 없기는 하지 근데 신중해야 해서 생각을 해봐야 하는게 뻐기려고 하는건 아니잖은가.?(아니 라고만 하고 답을 말하지 않는 사람들의 타입도 있달까.?) 무조건 그렇게만 했다가 조져버리는 현장을 모른다거나 글로만 배웠다는 느낌이랑도 비슷하다.

보통은 되게 복합적인 노력을 싫어할만하다. 사실 모든 부분에서 그렇게 진지하게 대하면 너무 느리고 스트레스가 심하다.

일반적인 무의식적 오해는 사건에 필요한 생각은 하나라고 생각한다. 사실 "하나의 문제에서 내 생각 외 다른 사람의 문제는 틀리다."는 빠르고 편하다. 하지만 여러 이유를 들어 생각을 해야 기발한 아이디어가 나온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