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을 하다보면 가끔 성도착증이나 이상한 취향에 눈을 떠버린 경우를 왕왕 듣게 된다. 찾아보면 어떤 심리적 원리를 알아낼 수도 있을 것 같다.(그게 드라마기 때문에 재밌다.)

어떤이가 올바르지 않다고 생각하는 것과 부끄러워하는 것에 대해 부정하면서도 "강렬한 부정은 곧 긍정"이란 말이 떠나가지 않을 때가 많다.(오해일수도 있다. ㅎ)

올드보이 영화에서 복수는 "똑같은 사람 만들기"였다. 어떤 이유가 "성립하기 위한 조건" 우리가 배우자를 찾을 때 조건을 보듯이 깐깐하게 따지는 것들에 총채는 우리 스스로를 괴롭게 만들기 때문에 떠올리는 것 조차 힘든 것들이다.

우리 스스로를 악하다고 느껴지게 하는 모든 생각들 그중에서 모순을 떠올리기 싫어한다. 모순을 의인화 한다면 어떤 느낌일까.? 모순의 신?

특히 원죄에 대한 본질적인 근원을 파헤치면 영화 속 "이우진"도 남매 간에 사랑이 사회에서 허락하지 않는 금기라는 것을 알았을 것이다.

"이우진"이 자신의 원초적인 감각에 대한 해부를 했더라면 지금 이 느껴지는 감정이 일시적인 순간으로서 존재 했었다는 것만으로 그 자체가 아름다울 것이다. 그게 추억 이듯이 그 순간 사랑 만큼은 진실되었다는 것이다.

난 이 사랑을 보고 느낀 것은 끝맺음이 서로 문제 없이 잘 이해하여 이별한 우정으로서에 결말이 되지 못한 것이 안타깝다. 나 자신은 이 사랑이 옳다고는 생각하지 않기에 결국에는 좋게좋게 떼어내자는 생각으로 갈것 같은데 사랑은 어떻게 해소되는 것일까.?

이별 후 친구 처럼 지낸다가 정말 도시전설 속 이야기인지 아니면 그런 시간이 무뎌지는지 질문하면 그 질문에 답변자는 관계를 생각하게 된다.

결혼 생활이 잉꼬부부인 사람들은 애착이 잘 형성된 것이라고 생각한다. 애착 중에서도 잘 형성된 경우인데 한 순간 사랑했다가 그런 감정 없이 남매나 친족 처럼 느껴진다거나 벽이 있는 사람들을 종종 보곤한다.(그래도 서로의 존재가 소중하다고들 말한다.)

애착의 형태가 어떤 것인지 모르겠으나 강렬한 이끌림이나 성적 자극과는 조금 멀게 느껴진다. 구분되어야 한다. 아름다운 미적 이끌림에 유혹되어 접근하는 과정에서 서로의 생각과 감정을 공유하다보면 비로써 상대방을 진정성있게 사랑하게 된다.

대부분에 사랑은 육체적이거나 삶에서 자신의 한계를 느끼고 살아가기 위하여 교제나 결혼을 했으나 애착이 형성된 경우라고 생각한다.

어떤 사정이 있었는지 잘은 모르겠지만 캐릭터 "이우진"에 감정이 왜 그렇게 사그라지지 않았는지 쉽기도 하고 금기를 깨가면서 까지 사랑해버렸던 이상 멈출 수 없었던게 아닐까 싶기도 하다.

애초에 그럴 거였으면 사랑 안했고 이제와서 되돌리기에는 지금까지 해왔던 모든 것들이 부정된다. 그 때 그 순간 만큼은 진심이였는데 자신은 거짓말쟁이가 될 수 있다.(추억이란 있을 수 없다. 전진무퇴 진성 오빠부대란 이런 것.)

난 이게 어느 순간 저주가 됐기에 그렇게 마지막에 불쌍해 보였던게 아닌가 싶다.(아 새@ 이거 골때리네 어쩌면 좋아쓰까잉)

난 사람이 조종되는 것이나 가끔 정치적인 설전에서 번복되는 것을 두려워하는 이유가 신뢰를 기반하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아주 작은 틈새지만 그 사람 입장에서는 비껴갈 수 없는 특정 요건만을 수행할 수 밖에 없도록 가두는 것이 조종에 근간이다.

법도 사람이 선할 수 있도록 그 울타리 밖을 제한한다. 영향은 이런걸 말하는게 아닐지 사회적 동물이며 지능이 높아 관계에 대해 자신에게 질문을 던지는 불쌍한 이 동물들은 자신들을 선한 영역에 가두고 그 이외에 세상은 부정한다.

사람은 거짓말은 좋아해도 거짓말쟁이로 보이고 싶지는 않다. 사랑은 미친짓인게 멈출 수가 없는 것이다.

"이우진" 입장에선 자신을 변호하기 위해서는 "진실된 완전무결함"과 "떳떳함"이 필요하다. 자신을 나쁜 사람으로 만들어서 죄인으로서 패널티를 받기는 싫을 것이기에 자신에 과오를 인정하는 것은 무리수다.

한 때에 본능으로 근친을 저지르는 짐승이 되는 것이니 차라리 진실된 사랑을 쫒는 사랑꾼이 되려고 하겠지. 그래서 난 "이우진"이 이타적인 사랑이 아닌 이기적인 사랑을 했다고 여긴다.(이기적인 사랑이 다 나쁜건 아니다. 이기적으로 사랑하는건데 상대도 사랑했다면 더 이상 이기적인게 아니니까.)

이우진이 "깨닫기 전에 사랑해버렸다."는 주제는 애착을 봐라보는 새로운 시각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너희들은 특별하지 않다.", "너희들은 모른다.", "내 자신이 유별나게 이상해서가 아니다."라고 항변하는 그에 태도에서 분노 마저 느껴진다. 애처롭다.

사람들은 자기가 좋아하는 이유.

애착, 사랑, 우정, 가족애, 애국심 같은 이유에 좋아하게된 이유가 있다. 의미에 따라서 그것에 대한 즉각적인 계기나 발단이 있을텐데 "그냥 좋다."고 한다.

그 점을 생각하는게 있는 그대로에 묘사 보다는 자기자신을 향한 거짓말 속임수로 합리화가 될 수 있기 때문에 아예 생각을 안해도 된다고 하지만 난 그럴 수 없다.(아마 대부분에 사람들이 그럴 것.)

생각을 강화하는 식으로 지금 그대로에 감정을 해석하는거라 "일단 저지르게 하는 것"이 최상책이다. 이미 지나온 일에 대해서 부정하고 바꾸려 해도 자기자신만 나쁜 놈이 되는 것이기 때문에 생각이 바뀌거나 상황 여건에 따라 행동할 수 있다.(이게 경로의존성? 다른 루트가 형성 될 수 없어진?) 어떻게 보면 자기 의견이 없는게 아니라 나도 모르는 새에 없어진 것이다.(작업친거지.)

끝까지 싫다는 친구들은 그게 본심이겠지.

"생각하지마라." 이게 반대에 근간이기 때문에 막는 것이고 다시 반대로 내가 원하는 흐름이나 같은 의견에 대해서는 "생각을 멈추지 마라."고 한다.

보통 심리학에선 "생각하지마라."를 사용하는 것은 "다른 것도 고려해라."라는 의미에서 사용되는데 구차한 의견들은 생각하지말고 다른 방법들도 있다는 것을 알려주는 것이다.

재밌는건 구조가 "생각하지마라."를 "다시 생각하라."하며 반복시킨다. 생각을 다채롭게 하는 식에 접근이라 나쁘지는 않는데 일반이이 하는거랑 심리학자가 하는 것은 뭔가 테크니컬한게 다르다.

불교적인 느낌도 강한데 의심도 덜 들고 말을 대체로 잘 수용함.(신뢰에 종류 : 전문가, 능력있는 사람. -> 그 사람 말이 대체로 맞을 것이다.)

이란 고원에서는 어떤 왕이 앓는 병이 뭔줄 모르다가 어떤 재상인지 현자인지 지혜로운 사람이 병이 무엇인지 밝혀주는데 본인이나 그 주변 사람들은 직감하면서 아니라고 생각하고 "상사병"이란 존재 자체를 떠올리지 못한다.

이게 내 자신이 망각하려는 것과 깊은 생각 속 잘 인지되지 않는 생각의 심연이 인간 내면에 본질이라고 믿는 이유이다.

어떤 특정 관념이 있기 때문에 이유가 있을 수 밖에 없는데 그런것을 잘 인지하지 못하는 것.

아주 어두운 밤길을 걸어다니듯이 우리가 아주 나쁘다고 생각하는 것들을 다시 생각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