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의 작은 불씨가 큐브 속 수많은 가능성의 갈래로 갈라져 나아갔다. 갈래는 각자 저마다의 차원으로 노선을 정하였고, 어느 갈래는 아크라시아의 엘가시아로, 어떤 갈래는 닐프가드, 미드갈, 아제로스로도 향하며 가능성의 삼각주를 이루었다. 그런데 조금 특별한 가능성 중 하나가 혼돈의 차원으로 향하는 갈래를 만들어 뻗어나갔다. 그렇게 불씨의 갈래들 중 하나는 어둠의 별 페트라니아에 첫 발을 내딛게 되었다.

할의 후예인 그의 지략과 전투력은 악마들로부터 살아남는데에 특화된 듯 했다. 인간의 수명을 아득히 넘어버리는 시간동안 살아남은 그의 힘은, 대악마를 제외한 그 어떤 악마도 맞설 자가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카멘은 그렇게 페트라니아의 절반을 평정했다.

어느날, 카제로스가 아브렐슈드라는 부관을 거느리고 카멘을 찾아왔다. 카멘은 단박에 알아차렸다. 카제로스라는 대악마는 여태까지 느껴보지 못한, 자신을 압도할만한 힘의 존재라는 것을. 카제로스는 거절할 수 없는 제안을 해왔다. 본인의 자리를 내어줄테니 도움을 달라는 제안이였다. 그는 이 별에는 큰 관심이 없다고 했다. 다른 차원을 차지하는 것이 그의 목표였다. 카제로스는 자신의 힘을 일부 나누어 주겠다는 파격적인 조건까지 덧붙이며, 카멘을 군단장으로 영입하는 데에 성공한다.

하지만 카멘은 너무 안일했다. 아브렐슈드라는 존재를 간과했던 것이다. 그녀의 계략은 카멘의 안일함을 파고들어 꿰뚫었다. 어둠의 힘을 가장해 전승된 카제로스의 영혼 조각은 갑옷의 형상을 이루며 카멘을 잠식하기 시작했다. 결국 카멘은 카제로스의 꼭두각시가 되어버렸다. 카제로스와 아브렐슈드는 이 사실을 누구에게도 발설하지 않았다. 심지어 나머지 군단장들에게까지도...

훗날 카멘의 모습을 한 카제로스는 루테란 상공에 뜬 바라트론 앞에서 이렇게 말했다.

"그래...내가..(할)..어둠의...주인이다."

그의 낮지만 힘 있는 목소리에 모두 긴장한 탓이였을까? 깨어진 카멘의 투구 사이로 흘러나온 '할'이라는 아주 작은 외침은 그 누구의 귓가에도 도달하지 못했다. 그 외침은 누구의 외침이였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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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상상해본 카멘의 스토리를 소설 형식으로 적어봤습니다. 여태까진 이런 저런 근거를 찾고 분석해서 추측글을 썼었는데, 이번엔 너무 빡빡하지 않게 가벼운 마음으로 추측해보자라는 생각에 이런 형식으로 써봤습니다. 물론 어느정도 사실에 기반해서 쓰긴 했습니다만, 그래도 근거 없는 추측이 많으니 진지한 반응은 ㄴㄴ!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