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야... 내가 지금 너를 이렇게 부른 이유, 너도 잘 알고 있지?"

"...그렇습니다."

중대장실에 무거운 분위기가 내리깔린다. 고개를 푹 숙이고 중대장의 눈을 바라보지 못하는 송하나의 눈에는 어지러히 국방색이 흐트러진 군복이 눈에 밟힐 뿐이었다. 임관 당시에는 자랑스럽기까지 했던 군복이건만, 오늘의 군복엔 그 어떠한 영광도 찾아볼 수 없었다.

"내가 화난 이유는... 왜 보고를 안했냐 이거야. 응?"

"죄송합니다."

"내가 죄송하단 말 들으려고 너 부른줄 알아?"

묘하게 입꼬리를 올린 중대장은 눈웃음을 지으며 송하나를 쳐다보았다. 그런 중대장의 모습에 송하나는 공포가 엄습했다. 중대는 물론이고 대대에서 또라이라고 악명높은 1중대장 상준호. 이미 병사들에게 수차례 찔렸음에도 불구하고 일을 잘한단 이유로 대대장은 훈계 이외의 처벌을 내리지 않았다. 아버지가 투스타라는 소문이 병사들 사이에는 꽤나 퍼져 있었지만, 그 사실 여부는 중대장만이 알 것이다.

"어떻게 해야겠냐 내가? 응? 여군이라고 봐주는것도 정도가 있어요~."

여군이라고 봐준다...는 성차별적인 발언에 송하나는 잠시 움찔하여 눈을 치켜들었지만 웃고있는 중대장의 서슬퍼런 눈동자를 마주하자 다시 고개를 푹 숙여버렸다. 좆같은 군생활이라며 마음속으로 중얼거린 송하나는 용기를 내어 중대장을 향해 말했다.

"하지만 한준범 일병이 복통을 호소하는 바람에... 그때 중대장님도 14훈련장으로 가셔서 바로 보고드릴수가 없었습니다. 전화도 안받으시고..."

"송하나!"

쾅!

중대장실의 책상을 손으로 친 후 송하나를 노려보는 중대장의 모습에 송하나는 저도 모르게 몸을 움추렸다. 중대장은 어이가 없다는듯이 이를 꽉 깨물며 말했다.

"진짜 너 사이코패스냐? 내가 14훈련장 가기전에 너한테 머라고 말했어? 곧 대대장님이 전술훈련 망개통 보러 오신다고 내가 인원들 집합시키고 훈련준비 하라고 했지?"

순간 송하나의 머리속엔 반박할 의견들이 수도없이 떠올랐으나 상명하복이 원칙인 군대이기에 별 수 없이 생각을 접었다.

"...그렇습니다."

"근데 대대장님 오시자마자 앰뷸런스 나가는걸 보여줘? 너 나 엿먹일려고 그런거지? 어? 입이 있으면 말을해봐~ 너때문에 얼마나 개쪽이였는지 알기나 해?"

"죄송합니다."

"하~ 됐다 됐어. 너랑 무슨 말을 하겠냐. 너 나가서 2소대장 불러와."

"예 알겠습니다."

송하나는 힘없이 경례를 하고 중대장실을 나섰다. 그러나 중대장실을 나서기 전, 중대장이 조용히 중얼거린 "시발년이 얼굴만 믿고 들어와서는 잘하는게 없어요."를 듣자 그만 머리가 하얘지는 느낌이었다. 복도를 지나가던 행정계원 한 명이 멀뚱히 서 있는 송하나를 보고는 걱정되는 마음에 괜찮으시냐고 물었지만 송하나는 대답할 수 없었다. 입을 여는순간 눈물이 흐를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병사에게 약한 모습 보여주는건 죽기보다 싫었기에, 송하나는 웃으며 "괜찮아." 라고 말하고는 흡연장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다행히도 흡연장엔 사람이 없었다. 바쁜 일과 중이라 그런것이겠지만 송하나에겐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송하나는 담배를 입에 물고는 불을 붙였다. 한 입 쭉 빨아들이고 후 불고는 허여멀건한 담배연기가 하늘을 따라 쭉 올라가는 모습을 바라보며 송하나는 말없이 눈물을 훔쳤다. 

'개자식! 나쁜새끼!'

중대장에 대한 욕을 하면 할수록, 서러움이 북받쳐 오르는 느낌만 강해질 뿐이었다. 그렇게 담배 하나를 다 필때가 되서야 송하나는 겨우 마음이 진정되었다. 담배재를 털어넣으며 송하나는 주머니에서 스마트폰을 꺼냈다. 이렇게 우울할 때마다 자신의 전성기 시절을 돌아보는것이 버릇처럼 되었기 때문이다. 사진에는 긴 생머리를 흐트려놓고 카메라를 향해 V자를 그리는 자신이 있었다. 

"바보같아..."

옛날생각에 젖어 피식 웃으며 그녀는 작게 읇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