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엇은 리그오브레전드의 세계관을 구축하는데 꽤 공을 들이고 있다.
본가인 롤에서 부터 시작해서 같은 세계관을 공유하는 레전드 오브 룬테라, 개발중인 롤 격투게임이나 롤RPG 등등.

롤의 바탕이 되는 세계관 '룬테라' 자체를 게임사의 프랜차이즈의 간판으로 내걸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솔직히 말해서, 유저들은 거기에 별 관심이 없다.
반응이 부정적이냐 긍정적이냐를 떠나서 그냥 관심 자체가 없다.

얼마 전에 나온 신 챔피언 비에고를 메인으로 한 '몰락'의 서사 역시 시네마틱을 비롯해 새로운 프랜차이즈로 만들기 위해 라이엇에서 엄청나게 공을 들였음에도 불구하고

유저들의 반응은 '아, 얘가 신챔인가보네? 이번엔 광고가 좀 요란하네.' 정도의 반응에서 그친다.

롤 세계관에 처음으로 등장한 끝판왕급 악역 비에고가 어떤 존재인지,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아무런 관심조차 없다.

관심있는 건 어떤 포지션을 가는 챔피언인지, 솔랭 승률이 얼마인지가 궁금할 뿐.

나름 세계 굴지의 게임사인 라이엇이 온 힘을 다해 푸시하고있는 중인데도 
사람들은 정말 놀라울 정도로 그 룬테라의 세계관에 아무런 관심이 없다.

왜 이런 일이 생겼을까?
잦은 설정 갈아엎기 때문에? 그냥 못 만들어서?

여러가지 복합적인 원인이 있겠지만, 가장 큰 원인은 리그오브레전드의 유저들이 게임세계관에 전혀 소속감을 느끼지 못하기 때문이다.
정확히는, 플레이어와 세계관이 전혀 상호작용을 하고 있지 못하기 때문에.


유저와 게임세계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상호작용이란 유저가 그 게임의 세계관에 몰입하는데 매우 중대한 역할을 한다.

가령 MMORPG를 예시로 들자면, RPG게임 내에서 플레이어의 캐릭터는 유저의 분신이자 세계관의 주민이다.

캐릭터는 능동적으로 게임의 세계와 상호작용을 주고 받으며, 세계 안을 여행하며 성장하고, 서사를 진행시키며 게임 세계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주고 변화시킨다.
그 과정에서 플레이어는 자신의 그 세계의 일원이 된 듯한 몰입감을 느끼며 자연스럽게 게임의 세계관에 빠져들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AOS장르는 태생적으로 그러한 세계관적 몰입에 불리한 형태를 지니고 있다.
플레이어가 한정된 전장 내에서 반복해서 유사한 형태의 전투만을 수행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플레이어가 이 게임을 하나의 '살아있는 세계'로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이 캐릭터들이 왜 여기에 있는지, 왜 싸우고 있는지를 납득할 수 있게 설명해내야 한다.


과거 리그오브레전드에선 이 문제를 아주 영리한 방법으로 해결했는데, 바로 '소환사' 라는 설정이다.

룬테라는 과거 대전쟁으로 한 번 황폐해졌던 세계다.
세계를 멸망시킬뻔 했던 전쟁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국가간의 전면전은 금지되었으며 
분쟁이 발생할 경우, '전쟁의회'에서 선출한 챔피언들로 하여금 인공적인 소규모의 유사 전쟁을 수행한다.

이 때 이 소규모 전쟁 속에서 챔피언들은 전쟁의회에서 선발된 '소환사'의 통솔에 따라 움직이는데, 
이 '소환사'가 바로 플레이어라는 설정이었다.

과거 라이엇은 이 설정을 정말 영리하게 사용했는데, 그 일례로 녹서스 vs 아이오니아 이벤트가 있다.

룬테라 내의 국가인 녹서스와 아이오니아의 분쟁이 벌어진다.
이에 따라 선발된 실제 플레이어 10명이 5명씩 팀을 나눠 각각 아이오니아와 녹서스를 대표하여 경기를 치뤘고, 
그 결과 아이오니아 팀이 승리함에 따라 아이오니아의 승리로 공식 스토리가 쓰여져나간다.

이만하면 유저들이 룬테라의 세계 안에서 가진 역할이 무엇인지, 소환사의 협곡에서 왜 그렇게 싸워댔던 건지 정말 기똥차게 설명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현재는? 

설정을 갈아엎는 과정에서 '소환사'라는 장치가 완전히 폐기되었음에도 이를 대체할 설정은 주어지지 않았다.
'룬테라'라는 세상과 모니터 너머의 유저를 연결해주던 고리가 완전히 끊어진 채로 방치되버린 것이다.

이제 유저는 소환사의 협곡에서 반복되는 대전을 즐길 뿐, 게임의 세계관과는 아무런 상호작용도 하지 않는다.
게임 내에서도 이 챔피언들이 누구이며, 왜 여기서 싸우고 있는지 설명하지 않는다.

롤을 즐기는 수많은 유저들에게 있어서 
'리그 오브 레전드'의 세계는 수틀리면 부모 안부를 묻는 적과 팀원이있는 '소환사의 협곡'이지, 
데마시아와 녹서스, 아이오니아가 경쟁을 벌이는 '룬테라'가 아니다.

이것이 바로 룬테라의 세계관에 유저들이 아무런 흥미도 가지지 않는 이유이다.
마치 중동 어디에서 내전이 벌어졌다는 뉴스를 보는 것처럼, 
룬테라의 이야기 역시 나와 아무런 영향도 주고받지 않는, 다른 곳의 이야기이기 때문에.

라이엇이 '룬테라'의 세계관을 매력적으로 만들기 위해서 해야할 일은 여태까지 집중하던 세계관에 살을 붙이고 예쁘게 색을 칠하는 일이 아니다.
그보다 먼저 '소환사의 협곡'에 있는 유저들과 '룬테라'의 세계 사이에 끊어져 버린 연결을 다시 잇는 것. 
그게 먼저 선행되지 않는 한 사람들이 '룬테라'의 세계에 매력을 느끼기는 어려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