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혈과의 전투를 승리로 이끌며 장래가 촉망받던 훌륭한 지휘관은 이젠 점점 편집증 환자가 되어가고 있었다. 매번 지역 신문에서의 헤드라인은 그가 담당하고 있는 지역의 크고 작은 사건사고들을 보도 하고 있었다. 신문사 기자들은 거의 철혈의 스파이가 아닐까 싶을 정도로 지휘부에서 일어나는 조금이라도 잘못된 점들만 찾아내 과장되게 보도했다. 얼마 전엔 전투 중 철혈이 쏜 총알이 작전지역에서 2 km 는 더 떨어진 곳에서 유효사거리를 벗어나 운동 에너지를 잃은 탄환이 버려진 창고 담장에 툭 하고 부딪힌 걸 어떻게 찾아내선 ' 민간 시설까지 날아든 총탄, 그리폰의 처참한 대처 능력의 실태 ' 이라고 대서특필 되던 날엔 부관이었던 SV-98에게 자신이 쏘라면 그 기자 새끼들을 쏠 수 있겠냐고 진지하게 물어봤다던 이야기까지 돌고 있었고, 건수를 잡히지 않기 위해 인형들의 통제는 더더욱 심해졌다. 어디선가 보고 있을 카메라 랜즈를 피해 휴식은 무조건 건물내에서 허락됐고, 창문엔 하루 종일 커튼이 쳐져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자들은 늘 사소한 흠집들을 찾아냈다. 조금만 더 시간이 흘렀다면, 지휘관은 진심으로 수틀리게 구는 그 기자들을 사고사로 위장시켰겠지. 아마 일주일도 걸리지 않았을텐데.

때문에 지휘관에게 필요한 것은 쌓여가는 분노를 표출할 희생양이었다. "누구든 한 놈만 걸려라." 라는 말을 달고 살던 지휘관에게 재수없게 걸린 것이 바로 그 블랙옵스라는 집단이었다. 타이밍 좋게도 최근의 작전 중 일부가 문제되었는지 민간 건물 하나가 폭발에 휘말렸고 그 중에서 CCTV에 그들의 영상이 담겨 있었다. 아마 그건 계산외였겠지. '테러와 암살을 목적인 그리폰의 살인인형!' 이라는 헤드라인이 첫 페이지를 장식하고 있는 신문을 노려보더니 지휘관은 무언가 결심한 듯한 얼굴로 전화기를 집어들어 그 신문사에 전화를 걸었다. 보도된 인형들은 자신들과는 전혀 상관없는 불법인형들이며 본 안전계약사의 지휘관은 지역의 안전을 위해 책임지고 불법 인형들을 전부 축출하겠다고 선언하던 지휘관의 거의 고함치듯 커져가는 목소리는 악에 받쳐 있었다. 지휘관은 당연히 404소대를 알고 있었다. 그들이 그리폰의 용병이라는 것도, 일전엔 헬리안투스에게 직접 의뢰를 받은 적이 있다는 것도 알고 있었지만, 이럴 때 만큼은 그 블랙옵스라는 신분을 철저하게 인정해서 일관되게 전혀 모른다고 밀고나갔다. 그건 휘하에 있는 다른 인형들에게도 예외는 아니었다.

불법무장인형 수색섬멸작전의 개요와 목적은 지역 시민들의 안전을 위협하는 불법인형들을 제거함으로 시민들의 안전을 확보하고, 그리폰의 신뢰를 재고하기 위해서라는 목적. 120명의 인형들 앞에서 무언가에 홀린 듯 큰 소리로 열변을 토하며 404소대는 무조건적으로 제거해야하는 테러집단으로 낙인을 찍었다. 그들이 우리의 아군이 아니었냐는 의견은 단칼에 부정되었다. 아마 지휘관은 웅변에 재능이 있었던 것 같다. 알 수 없는 이유로 작전의 이상이 생기거나, 기억이 제거되었던 인형, 혹은 미복귀해 실종처리된 인형들의 사례를 예를 들며 404는 우리의 적이라고, 몇 번이나 소리칠땐, 일부 인형들은 정말 그럴지도 모른다고 생각이 들던 모양이었으니까. 곧바로 수색조가 편성되고 실탄을 지급되었다. 

군수지원 임무까지 멈추고 가용할 수 있는 모든 병력을 긁어모은 대규모 수색작전. 교전수칙은 간단했다. 경고 없이 곧바로 사격, 가능하면 생포하지만 시체만 끌고올 수 있다면 무슨 짓을 해도 상관없다는 지휘관은 스스로의 표현을 검열하지 않았다. 작전은 바로 시작되었다. 가장 최근에 발견되었다던 인근 야산, 철혈과의 전투 지역, 도심 인근 폐허. 철혈을 상대하던 지휘관의 훌륭한 지휘능력은 이런 곳에서도 발휘되고 있어 포위망은 정말로 촘촘하게 짜여 좁혀들어왔다. 작전이 시작되고나서 여기저기서 발견했다는 보고가 들어오기 시작했고, 다음 날이 되던 날 새벽에 처음으로 교전이 벌어졌다. 서로의 피해는 경미하지만 서로를 향해 날아가는 총탄은 정말로 실전이라는 감각을 심어주기 충분했다. 아군이니 그래도 생포해야하지 않을까? 하던 생각은 옆에 있던 동료가 총에 맞아 쓰러지는 순간 사라지기 마련이니까.

헬리안투스의 연락이 오던 날 부관으로 지휘통제실을 지키고 있던건 자신이었다. 지금 당장 작전을 멈추라는 경고에 '무슨 말을 하시는 지 모르겠습니다.' , '모르고 있던 일입니다.' . '전달 받지 못했습니다.', '저는 제 할 일을 하고 있을 뿐입니다.', '폭우로 인해 통신상태가 원활하지 않은 것 같으니 다음에 연락하겠습니다.' 라며 강제로 통신을 끊어버리고, 통신기에 권총을 난사할 때의 광기어린 얼굴을 하고 있던 지휘관도 가까이에서 볼 수 있었다. 

"꼬우면 때려치면 되지. 니가 아쉽지 내가 아쉽냐? 헬리안 개년이 진짜 여태 잘 해줘도 지랄이야. 내가 여태 얼마나 잘 했는데. 시키는 것도 죄다하고, 좆같이 어려웠던 임무도 우리 인형들 희생으로 만든거잖아. 야, M14 안 그러냐? 이 지역을 사수 할 수 있었던게 누구덕이야? 우리보다 그 불법인형들이 더 중요하다는거지? 씨발."

라고 분노에 차 내뱉던 말도 아직도 머릿속에 선명하게 남아있었다. 그 와중에도 '우리' 라는 표현을 써준 지휘관이 조금 고맙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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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14. 해당지점에 도착했습니다. 대기할까요?"

지휘관은 수색부터 하라는 짧은 응답을 보내줬다. 한정된 병력으로 넓은 포위망을 형성하다보니 당연히 지역을 수색하는 인원은 소수가 되기 마련이지만 지휘관은 바로 그 점을 노리고 있었다.무고한 그리폰 인형이 당한다면 더더욱 그 불법인형을 제거해야하는 명분을 주게되는 일이고, 인형들 역시 아군이라고 믿었던 존재가 적이였다는 배신감과 분노로 사기를 높게 유지할 수 있었다. 포위망이 빠르게 좁혀지자 돌파하기 위해, 혹은 마주치기 때문에 교전이 잦아졌고 쓰러지는 인형도 늘어났지만 보급을 받지 못하는 소규모 게릴라는 이런 희생을 감수한 소모전을 당해낼 수 있을리가 없었다. 어떻게 뚫고 지나갔다 하더라도, 근처에는 항상 다른 아군이 있었다. 슬슬 탄약이 떨어질 시기니 좀 더 속도를 올리라는 지휘관의 지시 이후 얼마 지나지 않아 첫번째 사살 보고가 빗속에서 누구나 들을 수 있는 공개 채널로 들려온다.

[여기는 NTW-20. HK416의 사살을 확인했다. 재보급후 다음 위치로 이동하겠다. 이상.] 

하긴. 그런 걸 맞고 멀쩡할리가 없지. 더군다나 여긴 철혈과의 분쟁지역이 아닌 몇 개월간 관리를 맡은 지역이기 때문에 지형에 익숙한 건 이쪽이었다. 다른 RF인형도 아니고 NTW-20에게 당한거라면 보나마나 매복에 당했을 것이다. 남은 건 3명. 소총을 단단히 움켜쥐고서 주피터라도 얻어 맞아 층 몇개가 날아간 폐건물 안으로 들어섰다. 바닥에 보이는 진흙의 발자국과 떨어진 물. 비가오는 날의 추격은 이런 흔적을 남기기 쉬웠다. 수색의 엘리트라고 불리던 404소대가 이런 실수를 할 수 있을까? 아니면 부상이나 사기저하로 판단력이 떨어졌다던가. 기왕이면 후자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흔적을 따랐다. 2층으로 이어지고 있는 발자국의 주인을 찾는 건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S08 지역 그리폰 소속 전술인형 M14입니다. 무기를 버리고 두 손이 보이도록 머리 위로 올려요. G11."

네모난 돌격소총을 끌어안은체 벽에 기대 주저 앉아있는 G11의 모습에서 저항의 기색은 보이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총구를 내리는 멍청한 짓은 하지 않는다. 자신의 말에도 그저 느릿하게 고개를 들어 공허한 눈으로 자신을 올려다보더니 마치 무거운 짐을 내버리듯 달그락거리며 소총을 옆으로 떨어뜨고선 천천히 일어나 양 손을 들어보인다.

"...어서 와. 기다리고 있었어. M14. 딱히 널 기다린건 아니지만 날 찾은 건 너니까. 인사정도는 해줘야할 것 같아서."

입고 있는 녹색의 코트에는 총탄의 흔적이 가득했고, 가녀린 몸을 관통해 인공혈액으로 엉망이 된 상의와, 왼쪽 허벅지엔 대구경탄에 맞았는지 훤히 드러낸 금속 프레임에서 치직거리며 스파크가 튀고 있었다. 이대로 두면 자신이 쏘지 않아도 알아서 전력이 다 되서 기능이 정지되어도 이상하지 않을 상황이었다.

"그런가요? 네. 반가워요. G11. 순순히 협조해주셔서 감사하네요. 자. 이제 뒤로 돌아요."

"넌 보이자마자 쏘지 않는구나. 지휘관의 교전수칙은 무경고 사격아니었어?"

"가능하면 생포하라는 지시도 있었거든요."

어째서 쏘지 않았느냐? 라는 질문에 쉽게 답을 줄 순 없었다. 누군가 묻는다면 같은 인형이라 쏘는 것에 저항감이 있었다. 라고 대답해주기로 생각하면서 총구를 내리지 않은체로 천천히 다가갔다. 오른손으로 개머리판을 움켜쥔체로 왼손으로 수갑을 꺼낼 때 G11의 녹색의 코트 안 쪽에서 핀 뽑힌 섬광탄이 굴러떨어졌다.

"그래? 그거 안타깝네."

실내전은 주특기가 아니였다. 경험이 부족하다는 건 이럴 때 쓰는 말이겠지. 떨어진 섬광탄에 황급히 한 팔로 눈을 가려냈지만 이후 느껴지는 섬광과 폭음의 충격에는 어지간한 인형이라도 정신 못 차리는 것이 당연했다. 머릿속의 연산장치에 무리가 갈 정도로 회로를 돌려냈다. 시야는 아직 잘 보이지 않지만, 바닥을 기어다니는 추태 대신, 방향감각을 찾고, 네 목소리가 들렸던 곳으로 총구를 들어올리는 것까지는 할 수 있었다. 모의전에서 지긋지긋하게 당해본 나름의 대처였으지만 돌아온 시야에서 그녀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대신 밑에서 턱을 향해 날아든 주먹에 간신히 돌아오던 눈 앞의 시야는 곧바로 위로 넘어가버렸다. 몸의 고통보다도 더 민감하게 느껴지는건 자신의 총이 손에서 떨어지는 것이라니. 총은 맬빵 째로 제법 멀리까지 밀어져있었다.

"시도는 좋았어. 이 쯤해둬. 안 그러면 살아서 못 돌아갈거야."

자신을 내려다보는 조그만한 전술인형의 손에는 각진 돌격소총이 다시 들려있었다. 총알이 남아 있을까? 빈 총일까.

"...전 하루 종일이라도 할 수 있는데. 그런 몸으로도 이렇게나 저항하는 걸 보면 돌아갈 곳이 있긴한 모양이네요. G11."

피해는 크지 않았다. 대구경 총탄에 몸이 관통된 것도 아니고, 사지 한 쪽이 뜯긴 것이 아닌, 그냥 꼴 사납게 넘어졌을 뿐. 빈손으로 천천히 일어났다. 일어나는 동안 공격은 없었다. 빈 총이다.

"아니면 돌아갈 수 밖에 없는 곳이라던가. 그래서, 저도 다른 인형들 처럼 해치워버리고 아무렇지도 않게 돌아갈건가요? 마중 나오는 동료분들은 있으시고?"

"......그 말은 하지 말았어야했어."

피식 지어내는 비웃음. 그리고 멍하던 얼굴이 순식간 분노 일그러지던 그녀의 얼굴과 함께 개머리판이 복부로 날아들었다. 묵직한 충격에 허리가 접히고 다리가 후들거렸지만 간신히 쓰러지지 않는 것 까진 해냈다.

"틀린 말은... 아닌가 보네요. G11. 이젠 반겨주는 곳도 없으면서. 하하..딱하기도 하지."

예상은 하고 있었지만 생각보다 강한 통증에 이를 물어 버텨냈다. 분명 기관이 어디 하나는 나갔을 것이다. 다시 한 번 소총을 휘두르기 전에 목덜미를 강하게 끌어안아 벽으로 몰아붙여 만들어낸 클린치 포지션. 애초에 처음부터 도발을 건 것도 이런 것을 기다렸던거니까. 벽만 없었다면 그대로 넘어뜨릴 수 있었을텐데. 신장의 차이는 이럴 때 꽤 유리했다. 밀착한 몸에선 왼손으로 엇갈리도록 네 오른팔을 잡아 누르면서, 총상 자국이 있는 부상 부위을 거칠게 움켜쥐고. 안면에도 주먹을 몇 번 꽂아넣서야 손을 풀어내고 붙었던 몸이 떨어진다. 

"윽...흐으..."

G11은 벽에 기댄체 처음 만났을때처럼 스르륵 주저앉아버렸다. 아마 멀쩡한 상태로 마주쳤다면 자신은 말도 걸기전에 벌집이 되었겠지. 처음과 다른 점이 있다면 코에는 인공혈액이 흐르고 있다는 것 정도. 우선 떨어뜨린 자신의 소총부터 주워들어 머리를 겨눈체 노리쇠를 거칠게 당겼다. 철컥이는 묵직한 쇳소리가 비오는 날의 폐건물 안에서 메아리쳤다.

"원래 제게는 타인의 목숨을 심판할 권리는 없지만 지금은 제한적으로 부여되어있거든요. 그러니 선택을 할 기회를 드릴게요."

G11은 듣고 있는 것 처럼 보이진 않았지만 아랑곳 하지 않고 입을 열었다.

"하나. 지금 제 손에 죽는다. 거짓말 안 하고 지금 G11의 시체만 끌고가도 제 임무는 거기서 끝이니까. 둘. 이대로 포박당해 지휘부까지 호송된다. 재미없는 결말이 기다리고 있을거라고 감히 말씀 드릴 수 있어요."

총을 겨누고 있었지만 금방이라도 잠이 들어버릴 것 같은 모습으로 고개를 숙이고 있는 네게 다가가 턱을 잡아들고, 이미 풀려버린 눈을 똑바로 마주본다.

"셋. 저와 못 다한 이야기를 마저 하죠. G11에겐 묻고 싶은 것이 많으니까."

전혀 안 듣고 있던 것은 아니었던 모양인지 얇은 눈썹이 불쾌하다는 듯 일그러지는 것이 보였다.

"방금까지 죽일 기세로 패놓고 이제와서...콜록..! 이야기를 하고 싶다고?"

어처구니 없다는 듯 짜증가득한 눈으로 올려다보다 기침을 하자 입가엔 인공혈액과 윤활유가 뒤섞인 암적색의 끈적한 액체가 흘러내렸다. 코트의 소매자락으로 닦아내자 흉하게 볼에 번진다.

"그래. 어차피 곧 죽을건데. 그 정도 선심은 써줄게. 콜록..! 럼주 한 병만 있으면 정말 좋을텐데... 뭐가 묻고 싶어?"

그제서야 머리를 겨누고 있던 총구를 내렸다. 소총을 어깨 뒤로 들쳐매고는 근처 철제 상자를 손으로 툭툭 쓸어내고,이미 흙투성이가 치마를 정리하며 마주 앉는다.

"그야 G11에 대한 이야기. 늘 궁금한 것들이 많았거든요. 소문의 404소대. 인간의 통제를 받지 않는 자유로운 인형의 삶은 어떤지 정말 궁금했어요."

처음 마주하자마자 방아쇠를 당기지 않은 이유였다. 인간과 비슷한 사고와 권한을 갖고 있는 불법 비인가 인형. 규칙과 명령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운 삶에 대한 동경은 어느 순간부터 자신의 목적이 되고 있었다. 군수지역에서 보이는 인간들의 삶, 간만에 받은 외출과 휴가는 인형으로서 가지면 문제될 법한 사상을 더욱 부추기고 있었다. 대답을 기대하고 있었지만 그 말에 G11의 표정은 싸늘하기만 했다.

"...자유? 누가 그래? 우리가 자유롭다고. 죽지 못해서 살던 나날이었을 뿐이지. 방금 그 이야기를 416이 들었다면 정말 재밌는 표정을 지었을..! 거야. 한심한 녀석이라고. 이제는 못 보겠지만...."

G11은 다시 한 번 옷 소매로 입가를 훔쳐냈다. 이젠 코트의 녹색의 부분이 더 적을 정도였다.

"그건 다 너희들이 만들어낸 허구야. 우리는 언제나 묶여있었고, 언제나 자유롭지 못했어. 우리에겐 선택지는 2가지 밖에 없었으니까. 밖은 잿빛의 세상이야. 네가 바라는 그런 아름다운 세상은 인간들이 차지하기에도 비좁거든. 나약한 인간들은 우리와 똑같은 삶을 살아 죽거나, 죽이거나. 그래도 우린 남을 원망하진 않거든. 죽게된다면 그냥...운이 나빴을 뿐이지. 그건 우리도 마찬가지니까. 이거 원래 다른 인형들 죽일 때 해주던 말인데. 운이 나빴을 뿐이라고. 기분 묘하네...묻고 싶은건 그게 다야? 자유를 원하는 M14?"

비웃음, 아니면 자조적인 웃음. 아마 둘 다 뒤섞인 씁쓸한 미소를 짓고선 자신을 바라보며 어깨를 으쓱이는 모습을 말 없이 빤히 바라보다 어깨 한 켠에 걸쳐매고 있던 가방을 열었다.

"그런가요. 그럼 G11이 절 위해 해줘야하는 일이 생겼는걸요. 이대로 여기서 제 손에 죽고 싶진 않을테니까 말예요."

응급수복용 스프레이를 가방에서 꺼내 두어번 흔들고는 격투중에 자신이 움켜쥐었던 전선이 드러나는 복부와, 프레임이 훤히 보이는 허벅지에 한 캔 전부 뿌려냈다. 조금은 흉측하게 새 살이 엉겨붙듯 생겨났지만 출혈이나 에너지 유출을 막고 간신히 걸어서 움직일 수 있는 정도까지는 회복시킬 수 있었다. 

"404에게, G11에게 요청하는 의뢰라고 생각해줘요. 보수는 지금 살려주는 목숨값이니까. 탈출 경로를 알려주고, 무선으로는 못 찾았다고 할테니. 거절할 수 없는 제안일텐데요. 싫다고 하면 바로 머리를 날려버릴건데."

거짓말이 아니었다. 아마 스스로가 그런 표정을 하고 있었던지, G11은 얼굴을 마주보다 질려버렸다는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어처구니가 없네. 나 보고 이 고통만 가득한 삶을 다시 살아가라고? 이젠 416도 없는데. 그래. 그....416. 416은 진짜로 죽은거야?"

"보고는 그렇게 받았어요. 지휘관 성격상 기만전술일 수도 있지만."

"...그렇구나... 그 지휘관 대체 뭐가 문제였던거야? 우린 우리 할 일을 했을 뿐인데..."

운 나쁘게 화풀이 표적이 되었다고 말해주고 싶진 않았기에 입을 다물었다.

"다른 애들은?"

"모르겠어요."

"정말 다른 쪽에는 관심없는 타입인 모양이네. M14. 좋아. 의뢰내용은?" 

상자에서 자리를 털고 일어나 주저앉아 있는 G11의 손을 잡아 일으켜주었다. 아직도 얼떨떨한 얼굴로 눈을 끔벅이며 올려다보는 시선은 제법 귀여워보여선 빙긋 입가에 미소가 걸린다.

"어려운 건 아니랍니다. 그저 제게 밖의 사회에 대해서 즐거운 부분만 알려주면 되니까요. 여행을 잠깐 나간다는 느낌으로, 사진과 영상 자료면 충분해요. 연인과 공원을 거니는 사람들, 부모의 손을 잡은 아이, 행복하게 웃고 있는 사람들의 얼굴 같은 것들이면 충분해요. 잿빛의 세상이 아니라는 걸 보여주는 프로파간다 같은 수준이라도 좋은걸요. 별로 어렵지 않죠? 오글거려도 조금만 참아줘요. 제겐 의미있는 일이니까."

G11은 질색하는 얼굴로 마주보다 고개를 가로저었다. 

"9가 너 정도 되는 바보가 아니라서 다행이라는 생각을 했어. 좋아. 알겠어. 대신...혹시나 416의...그...일부를 찾게 된다면 내게 알려줬으면 하는데. 그래. 그 정도면 충분해."

생각보다 강인한 인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비인가인형에게 죽음이란 인간과 다름없었다. 죽게 되면 그걸로 끝. 백업을 통한 부활 같은 건 서버가 있어야할 수 있는 일었으니까. 그런 동료를 잃었음에도 G11의 얼굴은 제법 담담했지만 말을 더듬으며 적당한 단어를 고르는 모습에서 동료를 소중하게 여기는 마음을 확실히 알 수 있었다. 만약 자신이 죽는다면 누가 이렇게 신경을 써줄까.

"네. 노력해볼게요. 잊지 말아요. G11. 당신은 제게 목숨을 하나 빚진거라구요? 이건 선금."

소총에서 황동색의 7.62mm 탄환 한 발을 꺼내 그녀에게 내밀었다. 원래라면 당신의 머리에 박혔어야하는 탄이지만. 그런 생각을 알고 있는지 G11은 제 손에 들린 탄을 영 꺼림찍하단 시선으로 바라보다 마지못해 집어들고는 주머니 깊숙한 곳에 찔러넣었다.

"죽고 싶은 걸 억지로 살려낸 목숨말이지? 알았다니까. 후으...뒤에서 쏘지나 말아."

비틀거리는 발걸음은 불안하기 짝이 없었지만 도움을 요청하지 않았다. 아직도 쏟아지고 있는 빗속으로 천천히 사라지는 그녀의 뒷모습을 한 동안 바라보다 통신채널을 열었다.

"M14입니다. 네. 지휘관. 이 구역엔 없어요. 다른 지역으로 이동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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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주일 뒤에 자신의 이름으로 소포가 도착했다. 작은 소포 상자에는 쪽지 한 장 없이 사진 묶음만 있었다. 녹색 빛이 완연한 싱그러운 여름의 공원. 빵집에서 즐거운 이야기를 하고 있는 직원과 손님, 분수대에서 물놀이를 하고 있는 아이들. 옆에서 보고 있던 개런드 선배가 한 장을 보더니 사진을 정말 잘 찍었다고 누가 찍어 보내준거냐고 물었을 땐 군수지원에서 만난 친구의 작품이라고 웃으며 둘러댔다. 

일주일 뒤에 자신의 이름으로 소포가 도착했다. 작은 소포 상자에는 쪽지 한 장 없이 사진 묶음만 있었다. 녹색 빛이 완연한 싱그러운 여름의 공원. 빵집에서 즐거운 이야기를 하고 있는 직원과 손님, 분수대에서 물놀이를 하고 있는 아이들. 옆에서 보고 있던 개런드 선배가 한 장을 보더니 사진을 정말 잘 찍었다고 누가 찍어 보내준거냐고 물었을 땐 군수지원에서 만난 친구의 작품이라고 둘러댔다. 

일주일이란 시간은 생각보다 많은 것을 바꾸어놓았다. 지휘관은 다른 사람으로 교체되었고, 수색은 3일만에 중단되었다. 부상당하거나 전사한 인형들은 이미 수복이 끝나 일과에 투입되었다. 그 후 404 소대는 그대로 증발하듯 사라져버렸고, 단 한 번도 지역내에서 의심가는 정황조차 나타나지 않았다. 폐기장에서 416의 시체를 빼오는 건 생각보다 쉽지 않았지만. 시체가 사라진 걸 깨닫는 것은 빼돌리고 나서 3일은 더 지난 후였다. 그리고 오늘. 신문 헤드라인엔 전직 그리폰 지휘관이 금품을 노린 강도에게 총에 맞아 사망했다는 기사가 실렸고, 기사의 말미에는 어김없이 그리폰의 치안유지능력을 의심하는 내용이 적혀있었다. "암울한 세상이라니까." 라고 자기일이 아닌 것 처럼 말하는 새 지휘관의 뒷모습을 보며 3달 정도 될거라고 속으로 내기를 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