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린은 약 일주일간 여행을 떠날 채비를 하는 중이었다.

 

고성. 글레스트 헤임이라고 하는 옛 버려진 성터는 과거에 모종의 일에 의해 버려진 성터가 되어버렸고, 강력한 저주에 의해 죽지 못한 자들이 배회하고 있는 옛 성터였다. 퇴마를 위해 프론테라의 기사단과 성기사단. 그리고 성당의 프리스트들이 배치되어 현재는 상당수 정화 의식이 끝났다고는 하는데, 수도원 아래에서 지하무덤이 발견되고, 지하무덤에서는 다시 지하 배수로가 발견되어 더욱더 많은 인원을 투입해 터를 잡고 있는 몬스터들을 제거해 나가고 있었다.

 

즉, 과거에는 위험한 곳이었지만 지금은 매우 안전한 곳으로 글레스트헤임으로 떠나는 소린의 여행은 특례중에 특례라 할 수 있을 정도로 매우 간단한 시험이었다. 가서 퇴마의식도 없고 그냥 도착하면 고된 일을 수행하느라 고생했다며 바로 프리스트로 전직시켜주는 가장 간단한 시험이었다.

 

소린의 이런 특례에 대해서는 아무도 말이 없었다. 그녀를 따르는 어콜라이트들은 이미 상당히 많았고, 그녀보다 먼저 프리스트가 된 친구들도 소린은 이미 프리스트나 다름없다 생각하고 대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물론 모두가 그녀를 좋아하고 있지는 않지만 싫어하는 이들이 소린에게 방해를 할 정도로 영향력이 있지는 않았다.

 

"다 됐나아."

 

여행하면서 간단하게 먹을 말린 음식들과 중간에 노숙을 할 준비를 모두 마친 소린은 자신의 가방을 보며 흐르는 땀을 닦았다. 가는 데만 일주일이 걸리지만, 도착해서는 그 쪽의 기사단들과 성기사단. 그리고 프리스트들에게 도움을 받으면 되기 때문에 갈 준비만 하면 올 때는 크게 걱정 없었다.

 

"조심히 다녀와라."

 

밤프 사제는 떠날 채비를 모두 끝낸 소린에게 이야기했다.

 

"걱정하지마세요! 도착하면 다른 사람들도 있잖아요. 그러니까 너무 크게 걱정하지 않으셔도 되요!"

 

소린의 말에 밤프는 아무렇지 않게 웃었지만 그래도 걱정되는 것은 매한가지였다. 가는 동안에 혹시라도 위험이 생길까 걱정이 되기 때문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랜달 로랜스를 호위로 몰래 붙여 놓은 것이었다.

 

"다녀오겠습니다!"

 

소린은 그대로 가방을 매고 큰 소리로 인사했다.

 

"다녀오너라."

 

소린의 말에 밤프는 인자하게 웃으며 대답해주었다.

 

소린은 성밖으로 나가기 위해 프론테라의 검문소로 향했다. 중간에 게펜이라는 마법도시가 있지만 소린은 고된 여정을 떠나며 자신의 인내를 시험하는 시험이기 때문에 게펜에 들리면 탈락이었다. 때문에 소린은 완전히 노숙을 할 생각으로 나설 수 밖에 없었다.

 

"야. 드디어 가?"

"엑."

 

마침 검문소 근처에 있었던 세이렌을 본 소린은 노골적으로 싫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뭐냐! 그 표정은!"

"뭐 신경쓸 일 없잖아?"

"신경이 쓰이니까 그러지."

"왜? 어째서?"

 

소린은 기도 안차다는 듯 이야기했다.

 

"뭐, 신경쓰면 안되냐? 그동안의 우정이라던가 그런걸 생각해서 말야."

"아니 난 너랑 우정같은 건 전혀전혀 없는데."

"....."

 

그러고보니 소린과 세이렌사이에는 그다지 좋은 기억은 없었다. 세이렌이야 소린을 상당히 마음에 들어하지만 소린은 세이렌에 대한 감정을 잘 알수가 없었다. 소린에게 세이렌은 신경은 쓰이지만 보면 또 짜증도 나고. 조금 애매한 감정이었다. 최근들어 세이렌이 어째서 오크들 토벌에 앞장을 서는지, 그리고 그가 어떤 성장과정을 보내왔는지 듣고 나서는 약간 대단하다는 생각도 들기는 하지만, 또 막상 얼굴을 보면 티격태격 싸우는 일이 잦았다.

 

"정말 하나도 없어?"

"응. 전혀 없지. 아. 그러고보니 뭔가 다른 감정은 있는 것 같아."

"어떤?"

"살의?"

"...."

 

소린은 그렇게 이야기하며 자신이 자주 애용하던 무기 스터너를 꺼내들었다. 살생을 싫어하는 소린은 보통 소드메이스나 체인 같은 무기보다는 적을 기절시키는 스터너를 애용하는데 보통 스터너로 적을 기절 시키고 도망을 치는 바람에 불사형 적들을 정화시키는 시험에서 매번 떨어지곤 했었다. 프론테라 성당 소속의 몽크들과 싸워서 절대 질일이 없는 실력을 가진 복사는 소린밖에 없다 할 수 있었다.

 

"뭐 그 정도 기색이면 걱정하지 않아도 되겠네."

 

세이렌은 소린을 보며 씩 웃었다. 세이렌의 미소에 소린은 살짝 얼굴을 붉히며 다시 스터너를 가방안에 집어 넣었다. 이러니 저러니 해도 세이렌의 얼굴은 귀족집의 자제 답게 상당한 미남형이었고, 들리는 소문 역시 좋은 소문 뿐이라 여자들이 호감을 가지기에는 충분한 자격을 가지고 있었다.

 

"조심해서 다녀와."

"알았어."

"프리스트가 된 모습. 기대하고 있을께."

"아마 이것마저 실패하면 난 더 구제할 길이 없는걸지도..."

 

소린은 갑자기 쳐지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이번 시험은 파격적이어도 너무나도 파격적인 시험이었다. 고성에만 다녀오면 된다니. 그 어떤 프리스트들도 이렇게 쉬운 시험을 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소린에게는 자격이 충분했다. 정화 의식을 빼고는 모든 시험을 통과한 소린이니 당연히 그럴만도 했다.

 

"이거."

 

소린에게 세이렌은 반지 하나를 주었다.

 

"세이프티 링. 나름 비싼거라구."

 

세이렌은 살짝 얼굴을 붉혔다. 나름 비싼 정도가 아니라 상당한 고가의 장비었다. 착용하고 있는 사람을 지켜주는 반지로 구하는 것 자체가 힘든 장비었다.

 

"고마워."

 

소린은 진심으로 고마웠다. 가격을 떠나서 세이렌이 자신에게 이걸 주는 이유를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옆에서 지켜주고 싶지만 프리스트 전직시험이라고 하는 건 누가 도와줘서는 안되는 것이기 때문에, 그 마음을 담아서 이 반지를 준 것이기 때문이었다. 애초에 프론테라 검문소에 기사인 세이렌이 있는 것 자체가 소린을 기다리고 있었다는 걸 소린 스스로도 잘 알고 있었다.

 

"꼭 프리스트가 되어서 돌아올께."

 

소린은 활짝 미소 지으며 이야기했고, 그 미소에 세이렌은 얼굴을 붉혔다.

 

"조심해서 다녀와."

"응!"

 

소린은 프론테라 서문을 나섰다. 세이렌은 프론테라 서문에 서서 그녀의 모습이 사라지기 전까지 그녀의 뒷 모습을 바라보았다.

 

 

 

프론테라의 벽이 보이지 않게 된지 약 한시간이 지난 시간. 상당히 멀리온 소린은 냇가에 앉아 발을 물에 담그고 주변을 살펴보았다. 온통 숲 뿐이라 위험한 몬스터들이 있을 법도 하지만 기사단의 활약 덕분에 이 근처에는 인간에게 살의를 가진 몬스터는 거진 없다 시피 했다.

 

'누구지.'

 

멀리서 그녀를 바라보고 있는 렌달은 숲속 한 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렌달의 시선이 있는 곳 역시 에레메스 가일이 렌달이 있는 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발키리의 시험... 프론테라의 성기사를 죽이라는 것인가.'

 

에레메스 가일은 이미 렌달 로렌스의 신원을 파악한 뒤였다. 어쌔신인 에레메스는 성기사인 렌달보다 조금더 탐색과 추적에 뛰어났고, 에레메스나 렌달. 둘 모두 상당한 유명세를 떨치고 있는 사람들이지만 아직 렌달은 소린의 뒤를 쫓는 자가 에레메스라는 걸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다.

 

'밤프 사제님이 말씀하신 건 이런 뜻이었나. 누가 소린에게 어쌔신을 붙인 거지.'

 

보통 어쌔신이 따라다니는 경우는 흔치 않았다. 하지만 붙는다고 하면 제거의 의미가 강했지 호위의 의미는 거진 없었다 할 수 있었다.

 

'배후를 찾아내겠어.'

 

소린에게 호감이 있는 렌달은 누가 소린을 노리고 있는지 확인하고 싶었다. 그리고 자신의 가문을 이용해서 그 힘으로 상대를 완전히 궤멸 시킬 예정이었다. 왕가 7가문이 아니라면 렌달의 가문 역시 왠만한 귀족 쯤은 모두 물러낼 정도의 힘을 가지고 있었다.

 

'성당에서 버려진 카드인건가. 아니면 강한 신성력 때문에 질투를 사고 있는 걸지도.'

 

크루세이더들이 호위를 붙는 경우는 잦았다. 그만큼 누군가를 지키는 데에는 뛰어난 자들이었다. 보통 검사들이 기사가 될 때에는 '당신의 검이 되겠습니다.' 라는 문구가 들어가지만 크루세이더들은 '당신의 방패가 되겠습니다.' 라는 말이 들어 갔다. 즉, 기사와 크루세이더들은 검을 드는 목적이 다르다 할 수 있었다. 누군가를 지키는데 더 용이한 기술들을 많이 가진 크루세이더들은 신성한 힘으로 언데드형 몬스터들을 처리하는데 유리했고, 누군가를 지킬 때엔 이렇게 모습을 숨기는 일은 없었다.

 

'경계하고 있어. 저 자의 실력은 이미 룬 미드가르츠 왕국에서 유명하니 섣불리 움직였다간 되려 내가 당할 수도 있겠어.'

 

에레메스 역시 렌달을 경계했다.

 

서로 둘의 목적은 알지 못한 채 조심히 거리를 좁혀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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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원해주시는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천천히지만... 열심히 쓰도록 할께요! 재미있게 봐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