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산공실록(高山公実録)』

 

 

명량해전 당시 일본 수군의 총대장이었던 '도도 다카토라' 가문의 문서를 모아서 만든 전집

당시의 상황은 도도 다카토라의 부하 중 한 사람이 대필한 기록인 ​'默記(묵기)'에서 확인할 수 있다.

 

 

​-默記(묵기)-

 

御歸陣被成候
ちとまへかとにこもかいへこしなされ
にすいえんと申所にはんしやう分十三そうい申候
大川のせよりはやきしはのさし引御候 所にちとしほのやらき申候 
十三そうのふねい申候
それを見付是ともとりよし舟手御相にてはいまのせとをこきくたし
はなるましきとていつれもせきふねをかゝり被成
さきのふねともハ敵船にあひ手負あまたいてき申候
にも來島出雲守殿うちしににて御座候
其外ふねめしつれられ
からうのものもくわはん手負討死仕候
 毛利民部大夫殿せきにてはんふねへかゝり成候
はん十文字のかまをかけ候処
はんより弓鉄砲はけしくうち申候
をはなれはいりなされあやうく
藤堂孫八郎藤堂勘解由両人船をよせ敵船をおいのけたすけ申候
しふんよりまて御合戰にて御座候
みなとのやうすはん船能存候付風能見すまし
せとをめけほをひきかけはしらせについて是非なくおつかけ申儀もまかいならす
いつみおはせられ

 

 

당신(누굴 말하는 건지는 모르겠음)께서 (일본의)본진으로 돌아가실 때

 조금 전에 제포(薺浦-경상우수영)에 가셨습니다.


'수영(해남에 위치했던 전라 우수영을 말하는 듯)'이라는 곳에 조선 대장선 13척이 있었습니다.
큰 강의 여울목에서 바닷물의 간만이 빠른 해역인데, 약간 바닷물의 흐름이 약해진 구역에
13척의 배가 있었습니다.

그것을 보고 꼭 쳐부숴야겠다고 수군()들과 상의하여 싸우게 된 것입니다.

큰 배로는 지금의 좁은 해역을 배를 저어나갈 수 없으므로, 모두 세키부네(關船)를 마련한 후에
싸움을 시작했던 것입니다.

먼저 싸움을 시작한 수군들은 적선을 만나, 많은 사람들이 부상당했습니다.

그중에서 '쿠루시마 이즈모노카미 (来嶋出雲守 - 구루지마 미치후사 來島出雲)'님은 전사하셨습니다.

그 밖에도 수군들이 잡혀갔습니다.

부하(가로 家老 - 다이묘의 중신)들도 과반수는 잡혀가거나 전사하든가 했습니다. 

그곳에서 '모리민부타이후 (毛利民部大輔 - 모리 다카마사 毛利高政)님이 

세끼부네를 타고 적선을 공격했습니다.

적선으로 뛰어들어가기 위해 십자 모양의 낫을 걸었습니다만,
적선으로부터 활과 총탄이 격렬하게 퍼부었므로 

배를 떠나 바다로 들어가 위험하게 되었는데('전투중에 정신없이 바다에 빠져버렸는데' 를 좋게 변명해준 거),

도도 손하치로(藤堂孫八郎)'와 '도도 다카요시(藤堂勘解由)' 

두 사람의 배가 다가와서 적선들을 밀어제친 후 구해드렸습니다. 

아침 8시부터 저녁 6시까지 싸웠습니다.

항구의 모습이나 적선에 대해 많이 알고 있었으므로, 

바람의 방향도 잘 판단하여서
그 좁은 해역을 벗어나 돛을 끌어 당겨 달렸습니다. 

그 때문에 적도 어쩔 수 없이 추격할 수 없었습니다.
이츠미 님
(和泉樣 - 도도 다카토라 藤堂高虎)도 팔 두 곳을 부상당했습니다.

 

 

출처 : https://blog.naver.com/leean2001/221385303420

 

 

 

 

 

 

여기서 파악이 가능한 것들은 이렇다.

 

1. 명량해전 때 일본 대부분의 수군 전력이 전투 중에 사망하고, 조선군에게 포로로 잡혔다는 점

 

2.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직접 파견한 군감찰관인 모리 다카마사가 전투중에 침수되어 겨우 구조되었다는 점

 

3. 최후방에 있었을 총대장인 도도 다카토라도 조선군이 쏜 화살에 두팔을 관통당했다는 점

그래서 대필로 보고서를 쓰라 했겠지.

 

 

즉 어떻게든 변명을 하고 있어도, 정황상 대판 깨진 걸 확실하게 보여주고 있다는 것

그리고 이후 적군의 목도 380급을 베었다며 위조하고,

적도 이후 해협에서 물러났으니 전투에서 이겼다는 기적의 논리를 보여주기도 한다...

 

 

 

 

그에 반해 이순신의 『난중일기』는 명량해전의 전과를 이렇게 서술한다.

 

 

 

적선 30척을 깨부수자 적선들이 물러나 도망치니, 다시는 아군에게 접근하지 못했다. 이는 실로 천행이었다.(此實天幸)
- 『정유일기』 음력 9월 16일자 기록 -




즉 양국에서 묘사한 명량해전은 이렇다.




왜선 30척을 격침시켰습니다. 이번 승리는 정말 운이 좋았습니다.













선봉장은 사망하고, 총사령관도 팔이 관통당하는 중상을 입고

최고지도자가 보낸 감독관도 침수당한 끝에 겨우 구조되고

수많은 다이묘의 중신들과 병력들이 대부분 사망하고 포로로 잡혀도

적이 해협에서 물러났기에 어쨌든 이겼습니다.

적도 380명이나 죽였고요.

 







한줄 요약 : 교차검증이 존나 '완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