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온라인게임 게시판들을 보다 보면 조금 신기한 생각이 든다.

어떤 방식이 더 낫냐, 어떤 서버가 더 좋냐를 가지고 며칠씩 싸운다.
어떤 종족이 1티어냐, 어떤 직업이 제일 좋으냐, 어떤 특성을 찍어야 하느냐는 질문도 끊임없이 올라온다.

물론 정보를 묻는 것 자체가 잘못됐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그런데 가끔은 이런 생각이 든다.

우리는 왜 게임을 하면서까지 이렇게 ‘정답’을 찾으려고 할까.

“PvP에서 제일 좋은 직업이 뭐예요?”
“지금 제일 좋은 직업이 뭐예요?”
“가장 빠른 렙업 루트가 뭔가요?”
“만렙 찍으면 뭐부터 해야 돼요?”
“어떤 장비부터 맞춰야 돼요?”

정답을 찾은 다음에는 그 길로 사람들이 우르르 간다.

캐릭터의 외형이 마음에 드는지, 그 직업의 판타지가 좋은지, 내가 그 플레이를 재미있어하는지는 그다음 문제다.

좋은 것과 내가 좋아하는 것은 전혀 다른 말인데, 어느 순간부터 우리는 이 둘을 같은 말처럼 사용한다.

나는 이게 한국 온라인게임 문화의 꽤 재미있는 특징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유난히 효율에 민감하다.

남보다 빨리 레벨을 올리고, 남보다 빨리 좋은 장비를 맞추고, 남보다 빠르게 콘텐츠를 졸업하는 것을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한다.

그래서 게임에서도 계속 최단거리를 찾는다.

그런 문화에서 골드나 현금성 재화를 이용해 시간과 과정을 단축하는 방식이 사랑받는 것도 어쩌면 너무 자연스러운 일이다.

이런 방식은 엄청나게 효율적이다.
운에 맡길 필요도 없다.
몇 달 동안 사람들과 관계를 만들 필요도 없다.
내가 원하는 아이템이 나왔는데 다른 사람이 먹어가는 걸 바라볼 필요도 없다.

재화가 충분하다면 내가 원하는 결과를 가장 빠르고 확실하게 얻을 수 있다.

쉽게 말하면 게임 안의 수많은 불확실성을 돈이나 재화라는 하나의 숫자로 바꿔버리는 방식이다.

그래서 한국 사람들이 이런 방식을 좋아하는 이유를 단순히 “쌀먹이 많아서”라고 설명하는 것도 나는 부족하다고 생각한다.

우리의 성향과 너무 잘 맞는다.

시간 대비 효율이 명확하고, 결과가 숫자로 보이고, 노력의 보상을 확실하게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직장인이라 시간이 없다.”
게임의 효율과 편의성을 이야기할 때 정말 많이 나오는 말이다.

충분히 이해한다.

그런데 나는 가끔 그다음 질문을 해보고 싶다.

그 시간을 아껴서 우리는 어디로 그렇게 빨리 가려고 하는 걸까?

레벨업하는 시간이 아까워서 최대한 빨리 만렙을 찍는다.
던전이나 필드에서 천천히 장비를 맞추는 시간이 아까워서 거래나 재화로 해결한다.
몇 주씩 반복해서 도전하는 게 싫어서 원하는 아이템을 빠르게 맞춘다.

그렇게 남들보다 훨씬 빨리 최고 레벨과 좋은 장비에 도달한다.

그리고 묻는다.

“이제 뭐해요?”

나는 이 질문이 굉장히 상징적이라고 생각한다.

게임의 과정 대부분을 효율이라는 이름으로 걷어내고 목적지까지 최대한 빨리 달려온 다음, 목적지에 도착해서 할 게 없다고 말한다.

조금 이상하지 않은가.

애초에 온라인게임은 이상한 게임이다.

효율만 생각하면 해서는 안 되는 행동투성이다.

낚시를 한다.
요리를 올린다.
광석을 캐고 제작을 하며 생활 콘텐츠를 즐긴다.
친구 기다리면서 마을에서 한 시간 동안 떠든다.
지나가다가 처음 보는 사람을 도와준다.
전장이나 PvP에 들어가서 하루 종일 비슷한 곳에서 싸운다.
별 의미도 없는 아이템 하나를 먹겠다고 옛날 던전을 몇 번씩 돈다.
아무 보상도 없는 곳을 괜히 돌아다닌다.
캐릭터에게 예쁜 옷을 입히고 마을 한구석에 세워두기도 한다.

효율로 보면 대부분 쓸데없는 짓이다.

그런데 원래 게임이라는 게 그런 쓸데없는 짓을 재미있어서 하는 것이다.

효율이 목적이 되는 순간부터 게임은 조금씩 일이 되어간다.

온라인게임에서 중요한 건 최종 콘텐츠에 최대한 빨리 도달하는 것만은 아닐 것이다.

빨리 만렙을 찍어서 최종 던전이나 레이드에 들어가는 것만이 게임이 아니라, 그 과정에서 지나가는 지역과 퀘스트와 필드와 사람들까지 전부 게임이다.

그런데 이런 방식은 어쩌면 한국 사람들이 가장 어려워하는 방식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너무 오랫동안 목적지 중심으로 게임을 해왔기 때문이다.

나는 그래서 국내 온라인게임을 볼 때 가끔 걱정되기도 한다.

사람들이 누구보다 빠르게 레벨을 올리고, 누구보다 빠르게 공략을 끝내고, 누구보다 빠르게 최고 장비를 맞춘 뒤에

“그래서 다음 콘텐츠 언제 나옴?”

이라고 말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업데이트가 천천히 나오면

“할 거 없네.”
“망겜이네.”
“사람 다 빠졌네.”

라는 이야기가 나온다.

하지만 어쩌면 콘텐츠가 없는 게 아니라, 우리가 콘텐츠라고 인정하는 범위가 지나치게 좁은 것인지도 모른다.

레이드를 안 하는 사람도 있다.

PvP만 하는 사람도 있다.

필드에서 돌아다니는 걸 좋아하는 사람도 있고,
생활 콘텐츠를 좋아하는 사람도 있고,
돈 버는 재미로 하는 사람도 있고,
퀘스트 읽으면서 돌아다니는 걸 좋아하는 사람도 있다.

캐릭터 꾸미기만 좋아하는 사람도 있고,
다른 사람들과 떠드는 재미로 접속하는 사람도 있다.

또 누군가는 정말 아무 목적 없이 친구랑 돌아다니는 게 재미있을 수도 있다.

그런데 한국 커뮤니티에서는 이상하게 자신의 취향이 아닌 콘텐츠를 아예 가치 없는 것으로 취급하는 경우가 많다.

“난 OOO 안 하는데?”
여기까지는 취향이다.

그런데 어느 순간
“OOO를 왜 함?”
이 되고,

조금 더 과장하면,
“OOO 하는 애들은 이상한 애들임.”
이 된다.

레이드도 마찬가지고, 생활 콘텐츠도 마찬가지고, 서버 선택도 마찬가지고, 파티 방식이나 거래 방식도 마찬가지다.

‘나는 안 좋아한다’와 ‘그건 잘못된 것이다‘를 구분하지 못하면 모든 취향의 차이는 결국 전쟁이 된다.

그래서 게시판에서 매번 똑같은 싸움이 반복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사실 나는 온라인게임 커뮤니티에서 벌어지는 수많은 논쟁을 보면서 각각의 주제보다 이 문제가 더 흥미로웠다.

우리는 왜 이렇게 상대에게 정답을 인정받으려고 할까.

내가 뭐를 선택했으면 그것이 더 우월해야 하고 더 현명한 선택이어야 한다.

내가 어떤 방식을 좋아하면 그 방식이 가장 합리적인 시스템이어야 하고,
내가 싫어하는 방식을 선택한 사람은 잘못된 사람이어야 한다.

내가 고른 직업은 좋은 직업이어야 하고,
내가 선택한 플레이 방식은 효율적인 방식이어야 한다.

그냥

“나는 이게 더 재미있다.”

라고 말하면 끝날 일을 굳이 객관적인 진리로 만들려고 한다.

게임에서조차 말이다.

나 역시 그래왔다.

그래서 최근 생각이 조금 바뀌었다.

게임을 조금 다르게 해보고 싶다.

최고의 종족이 아니라 내가 하고 싶은 종족을 하고,
최고의 직업이 아니라 내가 재미있는 직업을 하고,

남들이 만렙을 찍었다고 조급해하지 않고,
남들이 엔드컨텐츠에 들어갔다고 따라 들어가지 않고,

내가 좋아하는 콘텐츠를 나만의 속도로 해보고 싶다.

게임에는 반드시 정답이 있어야 할 필요가 없다.

남보다 늦게 만렙을 찍어도 된다.
최고 장비가 아니어도 된다.
레이드를 안 해도 된다.
PvP를 안 해도 되고, 반대로 PvP만 해도 된다.
생활 콘텐츠만 해도 되고, 캐릭터만 꾸며도 된다.
아무 목적 없이 돌아다녀도 된다.

효율적이지 않아도 된다.

그게 게임이니까.

어쩌면 우리가 온라인게임에서 다시 배워야 하는 건 새로운 레이드 공략이나 최고의 특성 트리가 아닐지도 모른다.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스스로 결정하는 법.

그리고 다른 사람이 나와 다르게 게임해도 그냥 내버려 두는 법.

그 두 가지인지도 모르겠다.

게임에서까지 남보다 빨리 가야 하고,
남들이 좋다는 것을 골라야 하고,
최고의 효율을 찾아야 하고,
정답에서 벗어나면 손해를 본 것 같은 기분이 든다면,

한 번쯤 생각해볼 만하다.

우리는 지금 게임을 하고 있는 걸까.

아니면 게임에서도 또 경쟁하고 있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