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시대, 어느 국가나 '좌파'라 주장하고 '진보'라 자칭하는 사람들은 항상 '깨끗함과 청렴함'을 강조해왔습니다. 왜냐하면 그것 외에는 현재의 시스템을 움직이고 있는 보수 기득권을 이길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녹슬고 오래된 기계가 삐그덕 거리면서 돌아가고 있습니다. 옆에서 보면 곧 고장나거나 사고날것 같이 불안해보이는데도 신기하게도 어떻게든 돌아갑니다. 금방 고장나서 버려야 될것 같다고 생각한게 벌써 수년, 수십년이 되가지만 어찌됐던 기계는 돌아가고 있습니다. 녹슬고 오래된 기계라도 '돌리는 재주와 능력'이 있다는 것입니다. 즉, '보수', '기득권'이라 자칭하는 세력들은 일단 이 점에서 진보와 좌파라고 주장하는 세력들보다 점수를 따고 들어갑니다.

어느 시대, 어느 국가에서든 '진보'라는 사람들이 주장하는건 '새로운 시도'이고 '기존 시스템에 대한 문제 지적과 개선안'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청사진'일 뿐 구체적으로 실현화된 실체가 아니기 때문에 그럴듯해 보이지만 실행성이나 비용등의 측면에서 문제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론상으로 가능해보이지만 실현이 불가능한 것들이 많다는 얘깁니다. 대표적인 것이 '사회주의 이론' 같은 것입니다. 이론상으로는 정말 파라다이스가 펼쳐질 것 같은 사회주의 이론은 전세계 어느나라에서도 그들이 제시한 파라다이스는 커녕 그들이 그렇게 '지옥과 같다'라고 했던 자본주의보다 더한 지옥만을 만들고 말았습니다.

누구나 그렇지만 '주어진 현실에 안주'하는 것이 가장 편하고 쉽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진보, 좌파라 주장하는 자들이 제안하는 청사진은 저런 편함과 쉬움에 대한 도전적인 측면을 가지게 되어있습니다. 젊어서 진보, 좌파 였던 사람들이 나이가 먹으면서 자연스럽게 보수, 기득권화 되어가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현상인 것입니다. 잃을 것이 없고 의욕이 앞서던 젊은 시절에야 실패를 무릎쓰고라도 도전도 해보고 싶고 바꿔도 보고 싶지만 가진 것이 많아지고 도전의 실패가 부담감으로 다가오는 나이가 되면 조금 불합리하더라도 현실의 시스템을 수용하고 가는 것이 당연한 현상인 것입니다.

그래서 진보는 항상 '청렴성'과 '도덕성'을 전제로 깔고 들어가야 합니다. 위에서 '녹슬고 오래된 기계'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는데 가장 좋은 것은 저 기계를 억지로 돌리는데 들어가는 불합리하고 부조리한 현상을 비판하고 이에 대한 개선을 제기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녹슨 부품을 다른 녹슨 부품으로 교체하자'고 하는 주장이 힘을 얻지 못함은 당연한 것입니다.

지금 서울시장 보궐선거를 앞두고 야권 통합 후보 박원순 후보의 도덕적 문제가 하나 둘씩 공개가 되고 있습니다. 병역비리라고 예상되는 이상한 호적문제부터 시작해서 주적 북한을 목전에 두고 있는 관계로 필연적으로 제기될 수 밖에 없는 사상검증까지 다양한 얘기가 나옵니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나라에서 '좌파', '진보'라고 자칭하는 '사이비'들이 박원순의 도덕성인 측면에서의 문제까지 '쉴드'를 치고 있다는 점입니다. 그러면서 급기야 '도덕성이 뭐가 중요하냐'같은 보수, 기득권 측에서나 나올 말을 스스로 뱉고 있습니다.

보수, 기득권의 일원인 저같은 사람의 입장에서 진보라는 측이 먼저 '도덕성이 뭐가 중요하냐'같은 말이 나오면 반갑기 그지 없습니다. 도덕성을 따지지 않는다면 '능력적인 측면'에서 진보는 보수에게 이길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어떻게든 현재의 시스템을 억지던 편법이던 돌리고 있는 쪽이 시스템 운영이라고는 해보지도 않은 사람보다는 능력적인 측면에서 뛰어나다는 것은 당연하기 때문입니다.

진보, 좌파라고 주장하려면 '도덕성'이란 필요조건 중에서도 가장 선행되어야 할 부분입니다. 보수가 도덕성 측면에서 흠집이 있다면 그것은 '지금까지 시스템을 운영해온 능력'으로 커버가 되지만, 진보가 도덕성 측면에서 흠집이 있다면 그것은 치명적인 것입니다.

진보 후보에 대한 도덕성 검증을 쉴드치고 '그게 뭐가 중요하냐'라고 외치는 진보는 사이비일 수 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그런 사이비들이 설치면 설칠 수록 보수와 기득권에게는 유리하고 좋은 결과를 가지고 올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