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1971년 신민당 대통령 후보 경선에서 개대중은 불법적인 수단을 동원하여 당시 유력한 대권주자였던 김영삼에게 승리. 충분히 경선불복 및 불협화음이 나올 수 있는 부분이었으나 김영삼은 경선결과에 승복. 개대중은 김영삼의 승복에 감사하며 '다음에 또 김영삼 후보와 대통령 자리를 놓고 붙게 되면 그때는 반드시 내가 양보할 것'이라고 대국민 약속.

 

But. 1987년 전두환 전대통령이 개대중을 사면복권시키자마자 김영삼을 지지하기로 했던 약속을 깨고 튀어나와 뒤통수를 침. 결국 어부지리로 노태우 당선

 

2. 1989년 일본 덴노 히로히토 사망. 히로히토는 2차 세계대전의 주범이며 우리나라에게는 일제시대의 원흉인 인물. 현재 우리나라가 신사참배 반대 이유도 히로히토의 위패가 야스쿠니 신사에 합사되어 있기 때문. 그런데 개대중은 '평민당 총재' 신분으로 조문을 가서 그 영전에 90도로 참배(한국인 유일)

 

Cf. 2001년 고이즈미 준이치로 일본 총리가 신사참배를 하면서 '총리자격이 아닌 개인자격'이라고 밝혔음에도 국내에서는 엄청난 항의와 비난이 봇물쳤음. 그런데 개대중은 '평민당 총재' 자격으로 참배했는데도 개대중을 후빨하는 인간들이 한국에 존재

 

3. 1990년 김영삼과 김종필, 노태우가 손을 잡고 민주자유당(민자당) 탄생. 소위 얘기하는 3당합당. 왕따당한 개대중은 '군사정권의 후예와 손을 잡은 김영삼은 민주세력의 배신자'라고 강도높게 비난

 

But. 1996년 개대중은 김종필과 손을 잡고 DJP 연합을 출범시켜 이를 이용해 대통령에 당선

 

4. 1997년 김영삼의 차남 김현철 수뢰혐의로 구속. 김영삼의 '나는 모르는 일'이라는 해명에 대해 '어찌 아버지가 아들이 한 일을 모를 수가 있느냐'며 강도높게 비난

 

But. 2001~2002년까지 개대중의 세아들이 모두 수뢰 및 비리로 구속되고 마누라까지 연루되었음에도 개대중은 '나는 알지 못하는 일'이라고 해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