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떼같은 자식들을 시커먼 바닷속에 수장시키고 시시각각 떠오르는 자식들 생각에 순간순간 가슴이

철렁 내려앉고 있을 유가족들을 향해서 시체장사를 하고 있다며, 심지어 부모로서의 자격을 시험하며

인격 살인을 서슴치 않는 일베충들. '유가족이 벼슬이냐'는 어벙이연합. '누가 배타고 놀러가라고 

시키기라도 했느냐'며 '가난한 집 자식들이 경주나 가지 무슨 제주도냐'고 조롱하는 엄마부대 봉사단...

 

금수만도 못한 패륜적인 작태들이 국민 혹은 시민의 이름으로 버젓이 비번하게 일어나는 현실속에서

동등한 권리라는 허울좋은 속박에 묶여 그저 도덕적 비난을 퍼부을 뿐, 그들의 만행을 제지할 수 없는

무력감에 그저 큰 한숨한번 내쉬고 타락해버린 세상을 탓하기도 하겠지.

그런데 너무 걱정하지들 마라. 세상은 갈수록 타락해져 가기만 하고, 무지하고 부도덕한 자들이 득세

하며 승승장구하는 것처럼 보여지지만 그래도 세상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변하게 마련이란다.

  

그러니까 그게 80년대 중반이었는데... 그때 나는 80년 광주 학살의 진실을 알리기 위해서 시민들을

대상으로 거리에서 사진전을 열고, 밤에는 광주항쟁 비디오를 상영하고, 토론회를 개최하는 일들을

하고 있었지. 그때 분위기가 어땠는지 아냐?

 

사진전을 열고 있으면 어디선가 나타나서 온갖 욕설과 함께 '학생놈들이 공부나 하지 왜 이런 짓들을

하냐' '돈 얼마 받고 이런 짓 하냐' '북한 김일성이가 시켜서 하는거냐'... 이정도 태클과 언어 폭행은

그래도 양반. 온갖 패악질을 부리며 멱살을 잡아 끌고, 밤새 잠도 한숨 못자고 제작했던 사진들을 죄다 

찢어발기면서 이를 제지하면 흉기를 들고와서 협박하고 신고하면 출동한 경찰은 옆에와서 낄낄대며

구경하고... 그런데 이런 반응을 보이는 사람들이 대부분 어떤 사람들이었는지 아냐?  

 

터미널 주변에서 쥐포를 파는 노점상 아저씨. 상가 건물 경비원 어르신. 택시기사 아저씨... 대부분이

먹고살기 빡셔보이는 삶의 무게에 짓눌려 등이 휠것같은 그런 처지의 사람들이었어. 때론 경찰들에

의해 강제연행을 당하는 일이 다반사였지만, 경찰이라면 맞서 싸우기라도 하지... 평범한 주변의 이웃

같은 사람들이라 맞대응해서 싸울수도 없는 일이고... 참 답답했었지.

 

그런데 세상은 참 넓고도 좁더라.

그후 세월이 조금 흘러서 내가 부산빈민연대 사무국장으로 일하고 있을 때, 부산 사상터미널 노점상

강제철거가 발생해서 지역 노점상들이 합동 단속반들(구청공무원.철거용역.경찰)과 대치하고 있는데

지원 요청이 왔다는 거야. 서둘러 각 대학 빈민운동관련 동아리들에 연락해서 인원을 모으고 지역의

민권단체들과 연대해서 현장으로 달려갔지.

 

그때 그 현장에서 쥐포 아저씨와 재회를 하게 된거야. 광주학살 사진전을 방해하며 흉기를 들고 위협

하던 그 아저씨말야. 그날은 합동단속반에 맞서서 같은 편이 되어서 싸웠지. 참 잘 싸우기는 하더라.

그리고 얼마 후에 빈민연대 사무실에서 노점상들을 초청해서 광주항쟁 비디오 상영회를 가졌었는데  

몇칠이 지나고 술이 한잔 얼큰하게 올라서 사무실로 찾아왔더라. 박카스 한통을 들고 와서는 그 때는

내가 정말 미안했노라며... 이렇게 좋은 일을 하는 사람들인지도 모르고... 맨날  라디오 뉴스만 들으며

살다보니 광주사태가 간첩들이 내려와서 생긴 일인지 알았다고. 직접 비디오를 보면서도 믿기지 않을

정도로 끔찍했다고.. 당신네 같은 사람들이 있어서 그나마 진실을 알게되서 다행이라고.... 그래서 난

사태가 아니라 민주화운동이라고 가르쳐드렸었지.

 

그리고 얼마 후 87년 6월 항쟁이 일어났어. 부산은 그야말로 장관이었지. 서면로터리를 중심으로해서

로터리 각 방면으로 지금으로 치자면 최소 지하철 두개 이상의 구간을 사람들이 꽉 메우고 몇날몇일

밤을 새웠을 정도였으니까. 불과 3-4년전 광주항쟁 사진전을 방해하던 노점상들. 경비원들. 택시기사

아저씨들... 6월 항쟁의 가장 큰 주역은 바로 그런 사람들이었지. 

 

추석을 맞이한 세월호 유가족들의 심정은 어떠할까 생각해보다가, 들려오는 소식들이 참 답답하기는

하지만, 언뜻 세상은 정체된 듯이 보여도 그건 잠시일 뿐, 또 어느샌가 급격한 변화의 물결이 일게 될

것이라는 희망으로 주절주절 써봤다. 물론 그 변화의 물결이 그냥 자연발생적으로 오지는 않겠지...

객관적 토대가 아무리 무르익었다고 하더라도 주체적 준비가 전혀 없다면 그것은 일회적 대중투쟁에

멈추거나 반동으로 치닫게 될 수도 있으니까.   

 

장황하게 주절거렸지만 내가 하고 싶었던 말은, 너무 답답해하며 조급할 필요는 없지만, 맨날 온라인

에서 답답함을 토로하며 관망만 하지말고, 답답함을 느끼는 만큼 사회의 변화를 위해 내가 할수도 있는

일의 조금이라도 실천하는 일이 가장 중요하다는 말이 하고 싶었던 것이야. 꼰대질이라고 말할지도

모르겠다만, 나름 명절 덕담이라고 생각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