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선 너의 그 장황하고 두서없고 무미건조한 쪽지의 답장을

쪽지로 하지 않고 글로써서 올리는 이유는 너의 느닷없고

무례하기 짝이없는 잔소리에 내가 상당히 빡쳤기 때문에

저항하는 의미로 게시판을 이용하는 것이라는 것을 미리

밝혀둔다.


니가 나에게 보낸 쪽지의 거친제목들과 글 말미의 비난을 기억한다면,

내가 무슨 말을 하는건지 이해하겠지.


1. 부조리함에 나서지 않는 것은 이해할 수 있으나 그것을

부끄러워 하지 않는 것은 틀린 것이다.

2. 넌 그것이 그르다는 생각을 하지 않는다. 시대가 다르니까

네가 옳다는 식의 자위뿐이다.

3. 시대가 바뀐 지금도 개인적 양심으로 부조리함에 항거하는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개인의 양심의 가책이나 부조리함에 대한 분노가 가족에 대한 죄책감보다

더 심했기 때문에 나서는 것이다.

4. 애초에 옳다라는 방향성이 없는 인간은 인간 구실을 할 수

없는 쓰레기이다. 그게 너다. 멍청한 작자야.


니가 글을 쓴 성의를 봐서 니 주장을 간단히 요약했다.


넌 내가 반박할거라 생각하겠지만 난 딱히 반박할 생각이 없어.

니 말이 틀린말은 아니기도 하고.

넌 적어도 부끄러워할 줄 아는 인간인거 같으니까.


다만, 오해를 바로 잡고 싶을 뿐이다.

넌 여전히 틀렸다고 생각하겠지만 말이야.


1번부터..

일단 넌 올바름의 크기에 연연하는 경향이 있어.

가정과 항거하는것 이 두가지는 상반된 것일까?

항거하는것이 더 큰 뜻을 지니기에 그게 무조건 우선순위이고

그것을 선택하지 않은(못한이 아니야) 이들은 부끄러워

해야 하는 것일까?

1번과 2번을 합쳐서 너는 내가 항거하지 않는것이 그른것을 알지만

가정을 위한다는 변명하에 부끄러운줄도 모르고 옳다라고

주장한다 했지.

나는 항거하지 않는것이 그른일이지만 부끄러워할 필요가 없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야.

그보다 가정을 안정시키는게 마땅히 선비가 먼저 할 옳은 일이라고 말하는 거야.

넌 내가 말한 수신제가치국평천하를 마치 현실과 상관없는

먼나라 얘기인양 수신어쩌구라고 폄하했지.

하지만, 선비를 먼저 언급한 것은 내가 아닐 뿐더러 수신제가치국 평천하는

대쪽어쩌구 기개가 어쩌느니 너희들이 먼저 언급한

그 선비들이 평생 가까이 하고 보배로 여기던 사서삼경 중

하나인 대학에서 나온 말이야.

알겠니?

대학을 시작으로 각종 병법서는 물론 사상서에까지 인용되던

고전중의 고전이라고. 적어도 고전이 뭔지는 알겠지.


고전 몇년 읽은 사람들이 그러하듯 나 역시 마찬가지로

그 글귀를 내 나름대로 해석했고 그 글귀는

선비들이 자칫 대의에만 치우쳐 일의 순서를 놓칠까 염려하는

가르침에 본 뜻이 있지 않을까 생각해.


육도삼략에도 이런 말이 있지.

먼 곳의 일보다 가까이에 있는 일을 먼저 해결하는 것이

백성들을 덜 수고롭게 하며 이상적이다.


넌 내가 다른 사람과 키배뜨는것을 보고 내 입장에 낙인을

찍어놨는지 모르겠지만 그건 오해야.


내 입장은 니가 주장하는 그것과는 다르다고.

불의를 보고 참거나 항거하거나 그런게 문제가 아니라

가까운 곳의 이들을 먼저 돌보지 않는 것은 불의 그 자체라고.


위를 바탕으로 3번의 얘기를 하자면 더 쉽겠지.

내가 그 사람들이 이기적이라고 말할거라 생각하겠지만

그건 그들의 선택이자 방법론일 뿐이다.

넌 니 자식들이 마치 니꺼인것 처럼 착각하는 듯이 말하고

있어.

니 자식들은 대의에 의해 어쩔 수 없이 포기되어질 수 있는

소중한 존재가 아니라 니가 낳았다면 먹여살려야 할` 의무`가

있는 존재란다. 의무 라고 의무.

국방의 의무같은 의무라고.

포기라는 선택지가 아예 없다고.

내가 시대를 들먹인건 바로 이부분의 차이 때문인거야.


4번같은 원색적인 비난같은 경우 그런 걸 했다는 것 자체로

부끄러워 해야 할 일이지만 옳다라는 것에 대해 넌 너무

경직되어 있어.

넌 처세술은 개인이 알아서 할 일이고 이 게시판은 뭐가

옳은지 이상을 논의 하는 곳이라고 하였지.

하지만 처세와 상관없는 학문 이론 사상이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하다면 그 학문이야 말로 현실에 적용할 수 없는

쓰레기라고 생각한다.


선비들이 우러러하길 마지 않았던 공자의 논어는 단지

공자의 지식수준 때문에 그 책이 현대까지 읽히고 있는게

아니야. 바로 사상과 현실의 접점인 처세술을 논하고 있기

때문이지 말 그대로 논어 라고.


쓸말이 무척 많지만, 술기운때문에 더 쓸 수가 없다.

다만 내게 보낸 쪽지에서

너의 진심어린 부들부들이 느껴져 마지막으로 조언한다.


이프리티스, 내가 정 거슬린다면 날 그냥 차단해라.

넌 나를 설득할 수 없어. 깊지가 않아.

어디서 이런 말 들어봤는지 모르겠지만 넌 지식이나

정론만 무미건조하게 나열하고 있을 뿐 니가 그 지식에

대해 고뇌한 흔적이나 주관적 통찰이 니 의견에 녹아있지

않은것처럼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