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희 전대통령을 지역감정의 원흉이라고 몰아붙이는 사람들은 거의 대부분이 대중이 새끼의 후빨러들입니다. 그 이유는 진정한 지역감정의 창시자이자 수혜자인 대중이 새끼를 쉴드치기 위해서입니다.

대중이 새끼의 후빨러들의 논리는 박정희 전대통령 당시 경상도 지역의 집중발전을 놓고 '지역감정'이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저건 당시의 상황과 현실을 전혀 모르는 무지몽매한 발언입니다. 마치 '왜 세종대왕은 백성을 생각한다면서 민주주의를 하지 않았냐?'라고 하는 수준의 우매한 발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박정희 전대통령이 경제개발정책을 시작했던 1960년대는 대한민국의 1인당국민소득이 북한보다 못할때이고 지금은 우리가 원조를 하는 방글라데시 같은 나라에서 우리가 원조를 받던 시기입니다. 즉, 당시 대한민국은 G20의장국이며 OECD가입국인 지금으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세계최빈국'이던 시절이 바로 저 시절입니다.

미국과 일본에서 원조와 차관을 들여와 경제개발을 위한 밑거름을 쓰려고 했지만 당시 우리의 상황으로는 '균형발전'이라고는 상상도 할 수 없고 오직 '선택과 집중'에 의한 단기간 성장 정책 외에는 선택할 수가 없던 상황이었습니다. 이런 시기였기 때문에 균형발전이 아닌 경상도 지역의 집중발전이 이뤄진 것입니다. 그러면 '왜 전라도가 아닌 경상도냐, 이것이야 말로 지역감정의 발로 아니냐'라고 하는 사람들을 위해 왜 그때 '경상도 밖에 될 수 없었는지'를 알려드리겠습니다.

첫째, 부산항은 지금도 그렇지만 국내최대의 항만이었고, 일제가 남겨놓은 것이긴 하지만 물류창고 및 하역시설이 갖춰져 있었습니다. 그러나 전라도에는 이런 시설이 전무하여 처음부터 건설해야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한정된 자금으로 경제개발을 하기 위해 한푼이라도 아껴야 했던 당시의 상황으로서 이미 항만과 물류시설이 갖춰진 부산항을 중심으로 공단이 들어서는건 당연한 결정이었습니다. 거기다가 부산과 영남권은 6.25 전쟁으로 인한 피해를 가장 적게 본 곳이기 때문에 기타 시설들도 다른 지역에 비해 남아있는 것이 많았습니다.

둘째, 온국민이 굶주리며 나무껍질을 벗겨먹고 풀뿌리를 캐먹던 '보릿고개'라는게 당시 존재했습니다. 이런 시대에 그나마 곡창지대로 불리며 쌀을 생산하는 호남평야에 공장을 건설하는 모험을 택할 수는 없었습니다. 경상도 쪽은 전라도 쪽에 비해 척박하고 버려진 토지가 많아 이를 공장부지로 쓰기에는 적합했습니다.

셋째, 당시 대한민국의 유이한 교역국이었던 미국과 일본에 보다 가까웠던 것은 경상도였습니다. 당시 중국은 북한과 함께 우리의 적대국으로 교역은 커녕 왕래도 허용되지 않던 시기였으므로 전라도에 공장을 짓는건 어떠한 메리트도 가지지 못하던 시기였습니다.

이런 합리적이고 타당한 이유에 의하여 경상도가 '선택과 집중'의 대상이 되어 발전을 이뤘음에도 저런 사실들을 감추고 '경상도 정권이라 경상도만 발전시킨다'라는 왜곡되고 거짓된 논리로 전라도민을 속이고 선동하여 지지를 이끌어낸 대중이야 말로 지역감정의 창시자이며 수혜자이고 나라팔아먹은 매국노라 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