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카닉 슈팅"(?), 메탈레이지의 정체성.


메탈레이지는 서든어택으로 비단 FPS 뿐 아니라 국내 게임계 전체에서 1위를 지키고 있는 게임하이의 차기작 슈팅게임이라는 점에서 상당히 높은 기대를 받은 게임이다.


근 몇 년 동안 서든어택을 따라잡기 위해 출시했던 수많은 국산 FPS 게임들의 대부분이 별다른 인기를 끌지 못하고 결국 서비스 종료 내지는 무한 오픈베타라는 운명에 처해야만 했던 것을 감안해보면, 게임하이가 차기작을 제작하면서 느낀 부담감은 아마 엔씨소프트가 아이온을 만들면서 느낀 그것과 더 컸으면 컸지 적지는 않았을 거다.


그렇다고 해도, 게임하이를 둘러싸고 있는 그런 부담과 고민들의 최종 결론이 왜 메탈레이지에게 '메카닉 슈팅'이라는 생소한 수식어를 만들게끔 했는지는 이해하기 힘들다. 실제로 메탈레이지를 조금만 플레이를 해보면 메탈레이지는 아머드코어, 맥워리어 시리즈 같은 파츠 커스터마이징이 특화된 메카닉 게임과는 성격이 완전히 다르다는 것을 대번에 알 수 있기 때문이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해서, 메탈레이지는 각 직업 또는 분과가 뚜렷하게 나눠져 있고, 게이머는 그런 각 클래스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해냄과 동시에, 승리하기 위해서 전체 팀원들과 협동플레이를 펼쳐 전략을 짜내는, 굳이 비슷한 예를 들자면 밸브가 2008년에 발표한 팀포트리스2와 상당히 닮아있는 슈팅게임이다.


메카닉이라는 수식어는 단순히 각 기체들이 로봇형태고, 게이머는 그런 로봇에 탑승한다는 개념에 한정되어 있을 뿐이다. 직업 협동 팀플레이 슈팅게임. 방금 붙인 이 새로운 수식어가 메탈레이지가 만들어내는 '재미'의 핵심이다.



[ ▲ 게임하이의 신작 슈팅 게임, 메탈레이지 ]





메탈레이지가 재밌을 수 밖에 없는 이유


메탈레이지에는 총 8종류의 기체가 있고, 각 기체는 생김새 뿐 아니라 플레이 상의 역할이 뚜렷하게 구분되어 있다. 예를 들어 강습형은 체력은 약하지만 스피드가 빠르고 근접공격에 뛰어나 부스터를 잘 활용하면 적진으로 난입해 순식간에 여러 명을 한번에 처리할 수 있다.


반대로, 화력형은 움직임이 둔하고, 총기 발사의 딜레이도 길지만 엄청난 화력으로 특정 전투지점을 아비규환으로 만들 수 있다. 정비형은 전투 중에 체력이 손상된 동료들을 치료해주기도 하며, 자신이 원하는 장소에 터렛(무인발사기)을 설치해 손 한번 대지 않고도 수많은 적을 처치할 수도 있다. 물론, 국내 FPS계를 수년 동안 지배해왔던 스나이퍼 형태의 저격형 기체도 있다.


이러한 역할에 따른 직업 구분은 팀원 간에 자연스러운 협동플레이가 가능하게 하며, 단순히 먼저 보고 빨리 쏘면 끝나는 형태를 넘어서 전략시뮬레이션 게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유닛 상성과 실시간 전략의 재미를 만들어낸다는 장점이 있다. 그리고 십수명이 실시간으로 직접 자신의 기체를 동시에 플레이하기 때문에 생산되는 전략이 무한하게 많을 수 밖에 없다.


특히, 밀리터리 FPS에서 수없이 좌절을 겪어야 했던, 마우스 커서로 적을 제대로 겨냥하기 조차 어려웠던 FPS 초심자들도 개성이 뚜렷한 각 기체를 취향에 맞게 선택해서 '본인이' 잘하는 플레이를 해 나가며 즐거움을 느낄 수 있는 구조가 메탈레이지의 가장 큰 매력이다.



[ ▲ 엄폐물과 터렛을 활용한 정비형과 저격형의 플레이 - 다양한 전략의 활용이 가능하다. ]




예를 들면, 총을 아예 쏘지 못하는 사람이라도, 적절한 타이밍에 과감한 움직임으로 동료를 치료해서 전세를 반전시키며, 각 요충지에 터렛을 설치해 적을 위협하는 등의 적극적인 공격 플레이를 충분히 펼칠 수 있다.


게임 내에 단순히 킬(Kill) 수가 아닌, 앞서 설명한 다양한 플레이를 기반으로 팀에 기여를 많이 한 정도를 체크하는 '공헌도 시스템'을 도입해서 전투가 끝난 후 클로징 화면에서 킬 수보다 공헌도가 높은 사람을 순위가 높도록 설정한 것도 이와 같은 시스템을 장려하기 위함일 것이다.


또한, 메탈레이지는 이러한 직업별 시스템 위에 각 기체 별로 개성이 뚜렷한 주무기와 보조무기, 부스터 등을 제한적으로 선택할 수 있어 이런 형태의 다른 게임들보다 전략적인 플레이의 폭을 한층 더 넓히기도 했다. 물론, 메카닉 슈팅이라는 개념에서 바라 보면 초라하기 그지 없는 단순한 시스템이기는 하지만 말이다.


종합적으로 보면, 100% 완벽하지는 않지만 각 기체 별 상성과 밸런스들도 예상외로 괜찮은 수준이어서, 팀 전체별 기체 구성만 적절하다면 전체 팀플레이가 마치 톱니바퀴가 굴러가듯이 자연스럽게 어우러진다. 이는 서든어택을 통해 수년 동안, 수없이 많은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노하우를 축적해온 게임하이의 저력이 드러난 결과라고 생각된다.



[ ▲ 총질을 못하는 게이머도, 센스만 있다면 충분히 즐길 수 있다? - 동료를 회복시키는 정비형 ]





그러나, 쉽사리 잊혀지지 않는 한 가지 걱정.


사실, 유저들에게 시대에 뒤떨어진 퀄리티라며 비판 받는 그래픽도 플레이 하다 보면 봐줄 만은 하다. 각 기체 세부 디자인도 상당히 신경 쓴 흔적이 보이며, 전쟁 이후의 미래시대를 표현한 전장의 분위기도 나름 괜찮은 수준이다. 마치 장난감끼리 서로 부딪히는 소리가 나는 것처럼 전체적으로 저렴한 퀄리티의 사운드도, 기체가 이동할 때 발자국 소리까지 모션에 맞춰서 들려줄 때는 의외의 섬세함에 놀라기도 했다.


어떤 것을 막론하고, 가장 중요하게 지적하고 싶은 부분은 인터페이스다. 게임 시스템에 있어서는 국내에서는 좀처럼 볼 수 없는 특색있는 직업 협동 팀플레이를 추구하고 있지만, 게임 인터페이스는 전형적인 국내 밀리터리 FPS의 형태를 별다른 고민 없이 그대로 답습하고 있다. 1인칭이 아닌 3인칭 이라는 것만 빼면 전투 화면부터, 창고, 상점, 대기실 인터페이스가 완벽하게 복제된 듯한 느낌을 준다.


"그게 어때서?"라고 반문할지도 모르겠다. 사실 간과해도 무방하다. 게임 내적인 플레이를 신경 쓰지 않는다면 말이다. 애초에 언급했듯이 메탈레이지는 직업별 역할과 협동, 팀플레이가 중요한 게임이다. 일반 밀리터리 FPS는 신컨 고수 한명이 스나이핑으로 다른 팀 전원을 사살할 수도 있지만, 메탈레이지는 이러한 플레이가 불가능한 대신, 각 기체에 대한 이해도가 높은 개념 팀원이 모일 수록 시너지를 발휘해 팀 전체가 막강해지는 형태다.



[ ▲ 기존 국내 FPS들을 그대로 답습한 인터페이스 - 초보자는 상황 파악이 힘들다. ]




서비스 초반에는 모두다 초보니 어떻게 넘어가지만, 중 후반으로 돌입할수록 각 직업별 개념이 충만한 팀들은 점차 많아질 것이고, 초보들은 막상 전장에 들어와서 뭘 해야 하는지도 모른 채, 각 기체에 대한 역할도 파악하지 못한 채 상대팀에게 나가떨어질 확률이 높다.


이것을 보완하기 위해 앞서 언급했던 팀포트리스2에서는 캐릭터 디자인부터 전장의 다양한 표시물까지 최대한 게이머가 사전 지식 없이도 직관적으로 자신의 역할을 이해하고 전장 구조를 파악해, 빠른 시간 안에 최대한 본격적인 전투에 돌입할 수 있게끔 만들고 배치했다.


그래서 아무리 강한 팀이 전장을 휘어잡더라도 초보자 그룹이 어느 정도는 맞대응을 하면서 실력을 키울 수 있는 시간을 벌어준다. 또한, 한 팀의 전력이 강해 밸런스가 무너질 때에는 시스템적으로 자동으로 몇몇 인원을 교체해 균등한 조건에서 플레이 할 수 있도록 해주기도 한다. (참고로 위와 같은 시스템적인 고민들은 팀포트리스2 시작화면의 개발자 코멘트리에 자세히 설명되어 있다.)



[ ▲ '메딕'이라는 힐러의 역할과 전장 내 이동 방향을 게임 내에서 직관적으로 파악할 수 있다.
딱 보면 이 놈은 뭘하는지, 여기는 어디인지 예상할 수 있다는 말. ]




하지만, 메탈레이지에서는 이런 부분이 완전히 배제되어 있다. "아, 이 직업은 주로 힐러 역할을 담당하면서 후방을 지원하는구나.", "아, 이 길로 가면 적의 후방으로 진입해 습격을 할 수 있구나.", "아, 이 아이템은 이럴 때 사용하는구나."라는 개념들을 게임 내에서 직관적으로 파악하기가 너무 힘들다. 더군다나, 대부분의 게이머들이 게임 내 툴팁을 읽지 않고 바로 전장에 뛰어든다는 것을 감안한다면 이 문제는 더욱 심각해진다.


처음 메탈레이지에 접속해서 단순히 외형이 마음에 들어 정비병을 선택한 후에 '어, 총이 안 나가네'라고 방황하다가 적에게 한방에 나가떨어진다면, 초보게이머는 일반 밀리터리 FPS 게임과 똑같은 평가를 내릴 게 분명하다. "나하고는 역시 안 맞는 게임." 밀리터리 FPS와는 전혀 다른 게임성을 추구하는, 보다 보편적인 즐거움을 줄 수 있는 메탈레이지로서는 상당히 억울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메탈레이지의 현재와 한계, 그리고 앞으로의 가능성.


메탈레이지는, 물론 메카닉을 기대하던 게이머들은 뒤통수를 맞겠지만, 국내에 생소한 직업 협동 팀플레이 슈팅게임을 '완성도' 있는 수준으로 선보이고 있다. 각 기체별 특색은 뚜렷하며, 각 기체마다 재미를 느낄 수 있는 요소들을 골고루 배치해 실시간으로 펼쳐지는 팀플레이 전략의 묘미를 제대로 느낄 수 있도록 했다. 그리고 각 팀원들의 센스에 따라서 그렇게 생상되는 전략도 무궁무진해진다.


반면에, 보스모드를 비롯해서 각 기체별, 각 전장별 밸런스는 아직 조금씩 삐걱거리고 있고, 기존 게임들을 답습한 현재의 인터페이스로서는 앞서 설명한 '초보자들이 충분히 즐길 수 있는 게임이지만, 알기도 전에 실력차에 의해 포기해버릴 수 밖에 없는' 직업 협동 팀플레이 슈팅게임의 한계를 보완하기에 벅차 보인다.


그렇다고 해도, 누가 요즘에 할만한 게임을 추천해달라고 한다면, 나는 주저 없이 메탈레이지를 꼽을 것이다. 그만큼 메탈레이지는 시간을 투자해 즐길 가치가 있으며, 국내 온라인 유저들에게 지금까지 경험하지 못했던 색다른 재미를 주기에 충분하다. 여기에는 국내 시장에서는 좀처럼 나올 수 없는 도전의 결과물인 메탈레이지에 대한 개인적인 호감과 앞으로 메탈레이지가 더 나은 모습을 선보이게 될 거라고 믿게 만드는 게임하이라는 보증수표도 한 몫을 했다.



[ ▲ 칭찬하고 싶은 메탈레이지의 '공헌도' 시스템, 그리고 좀 자랑 ]




Inven Vito - 오의덕 기자
(vito@inv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