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즐기는 게임을 하나 만들기 위해선 수많은 개발자들의 고심과 노력이 뒷받침되어야 한다는 것은 이미 누구나 아는 사실입니다. 절대 쉽게 나오는 결과물이 아니죠. 하지만 보이는 것 외 적인 부분까지도 모두 다듬어져야 진정한 명작이라는 이름표를 붙일 자격이 주어집니다. 예를 들자면 부유감이나, 공기의 온도 같은 개념을 꺼내 볼 수 있겠네요.

KGC 2012 무대에 오른 시즈해머 게임즈 조셉 살루드(Joseph Salud) 아트 디렉터는 이런 명작을 만드는 데 제법 잔뼈가 굵은 사람입니다. 독특한 배경과 놀라운 긴장감, 그에 따른 최고의 공포를 선사한 '데드스페이스'가 그의 손에서 탄생했죠. 그리고 이번 강연을 위해 꺼내든 준비물은 '콜 오브 듀티 : 모던워페어3'로, 이 역시 그의 숨결이 녹아든 작품입니다.

[ ▲ 강연을 진행한 시즈해머 게임즈의 '조셉 살루드' 아트 디렉터 ]


그는 어린시절부터 각종 격투기와 무술, 그리고 북미 슈퍼 히어로를 좋아했으며, 스타워즈같은 SF 영화나 군사 영화도 즐겨 보았다고 회상했습니다. 물론 게임 개발자로 활동하는 만큼 비디오 게임도 무척 좋아했죠. 유년 시절 가장 인상깊게 했던 게임으로 코나미의 '콘트라'를 꼽은 그는, 이러한 모든 경험들이 축적되어 현재 게임을 개발하는 데 커다란 밑거름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EA 사에 입사해 '데드스페이스'를 제작한 후, 그는 새로운 스튜디오에 핵심인력으로 합류했습니다. 태어난 지 얼마 안 된 '슬래쳐해머 스튜디오'가 그 주인공으로, 그는 이 회사에 들어온 지 얼마되지 않아 굉장히 큰 프로젝트를 담당하게 됐죠. 누구나 다 아는 '콜 오브 듀티 : 모던워페어3'의 총괄 아트 디렉터 역할을 맡게 된 겁니다. 그 전까지의 경험이 결코 부족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았지만, 그 거대한 탑 앞에서는 한없이 작아질 수밖에 없었다고 합니다.

의구심이 들었습니다. 정말 이 녀석을 자신이 제대로 뽑아낼 수 있을지에 대한 걱정이 들었고, 주위 사람들과 다양한 이야기도 나눴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자신의 생각들을 서서히 정리해 나갔고, 그 생각의 조각들을 크게 분류해 보면 이렇게 됩니다.

1. 플레이어의 생각을 읽어야 한다.
2. 플레이어를 게임 속에서 흥분시킬 필요가 있다.
3. 플레이어가 우리 게임을 기꺼이 믿도록 만들어야 한다.
4. 게임이 보기에 좋은 것은 물론, 굉장히 빨라야 한다. (최소 60프레임 이상)


그가 아는 콜 오브 듀티 팬들은 자신들이 즐기는 게임에 대해 굉장한 애착을 보여 주었다고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과 동감하는 것이 최우선 과제가 되었다고. 어느 정도 가닥이 잡힌 총괄 아트 디렉터는 바로 공부와 리서치를 시작합니다. 자신의 콘셉 아티스트 팀원들과 함께 말이죠.



사진에는 멋진 파리의 풍경이 담겨 있습니다. 그는 이 파리를 하나의 스테이지로 이해하려 노력했죠. 예를 들자면, '파리의 지표면은 어떠한가' '어떤 음식을 먹고' '어떤 옷을 입고' '도시 전체적으로 어떤 컬러가 많은지'를 유심히 관찰했습니다. 각 국가, 도시마다 특색있는 컬러가 있습니다. 이렇게 전반적인 풍미를 이해하고 나면, 구글 스트리트 뷰를 보며 로컬 지역을 자세히 살피며 콘셉 아트를 짭니다. 아, 물론 그대로 모방하진 않습니다. 그렇게 한다고 게임이 재미있어 지는 것은 아니니까요. 아티스트들은 게임에 어울릴 법한 가상의 파리를 만듭니다. 그는 가상의 파리라 하더라도 현실감이 없으면, 그것이 파괴되는 순간 플레이어의 감정 역시 움직일 수 없다고 설명했습니다.



뉴욕 맨하탄도 위와 같은 맥락입니다. 사람들은 유명한 건물이 포격됐을 때 굉장히 감성적인 반응을 보였다고 합니다. 게임 속에서 월스트리트가 파괴된 장면이 있는데, 자신이 보기에도 이 부분은 스토리 몰입감을 비롯, 멋진 부분이 참 많다고 합니다. 하지만 무언가 빠진 것 같았죠. 그의 마음에 걸리는 게 있었던 겁니다.

그것은 컬러, 즉 장면의 전반적인 색감이었습니다.

조셉 살루드 아트 디렉터는 당시 이것을 깨닫기까지 시간이 좀 걸렸다고 회상했습니다. 기본 콘셉트였던 일러스트는 마젠타 컬러를 많이 사용했죠. 조금 격식있는 컬러이면서도 아름다움을 나타내는 데 부족함이 없는 색상입니다. 하지만 뭐랄까요. 현실적인 면에 있어서는 다소 부족해 보였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렇게 수정했습니다. 자세히 살펴보면, 색감을 현실적인 낮에 어울리도록 변환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는 자연광 이펙트에서 대조를 조금 더 강조하여 얻어낸 결과물인데, 이렇게 하니 굉장히 흥미로운 결과물이 나온 것은 물론, 911사태같은 과거 역사까지도 오버랩 될 정도의 현실감까지 얻었다고.

조셉 살루드 아트 디렉터는 또다른 예로 모던워페어3 스테이지 중 하나인 '하버' 미션을 시연했습니다. 그는 이 장면을 위해 많은 인력과 긴 시간이 투자되었다고 말했죠.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게임 총괄 디렉터, 애니메이션 디렉터에서 아트 디렉터인 자신까지. 모두 머리를 맞대 어떻게 하면 이 장면을 훌륭하게 연출할 수 있을지 고민했다고 합니다.



그 자리에서 아트 디렉터들은 대조가 강조되어야 함을 어필했습니다. 여기서 대조는 전체적인 색감과 공간의 느낌을 포함한 모든 부분을 아우릅니다. 이를 적용하게 되면 같은 오브젝트라도 다른 느낌으로 표현하는 게 가능하죠. 그는 잠수함으로 대변되는 '하버' 미션을 제작할 때 대조가 중요한 이유도 바로 이것이라고 전했습니다. 거대한 느낌을 주어야 하니까요.

그는 스타워즈를 예로 들었습니다. 영화에 등장하는 스타 디스트로이어 쉽이 주인공 머리 위로 지나가는 장면이 있는데, 그 부분을 매우 인상깊게 봤다고 말하며, 게임에도 해당 느낌을 적용하기 위해 노력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게임에서는 잠수함이라는 특성에 어울리도록 심해와 특유의 느낌을 주려 노력했죠. 물 밖에서 들어오는 빛 효과라던가, 잠수함에 드리워지는 그림자에 매우 많은 공을 들였습니다. 이 모든 것은 답답하면서도 축축한 심해의 분위기를 완벽하게 표현하기 위한 투자입니다.

물 바깥으로 나오는 순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플레이어는 물 밖으로 나오는 순간 잠수함 크기가 생각보다 크다는 것에 놀라게 됩니다. 이것은 잠수함의 검은 색감과 대비되는 밝은 색감을 맨하탄 항구와 바다 부분에 사용했기 때문이라고 하는데요. 그는 이 모든 아이템들을 정확하고 인상깊게 표현할 수 있도록 많은 신경을 썼다고 다시 한 번 강조했습니다.




'Big Moment'

조셉 살루드 아트 디렉터는 이 단어를 게임에 대입하면 굉장히 거대한 서사적 장면을 의미한다고 말했습니다. 그 예시로 게임 내 적용된 사막 폭풍 씬을 보여주며, "처음 사막에 도달한 플레이어는 아름다운 해변과 광활한 금빛 사막에 취하게 된다. 하지만 곧 다가오는 거대한 모래 폭풍으로 하여금, 자신이 얼마나 큰 변화를 겪는지 깨닫게 된다"고 전했습니다. 이는 푸른색과 금색 배경은 순식간에 어두운 오렌지색으로 뒤바뀌며, 불 효과에 근접한 배경 움직임 및 특유의 거친 사운드가 생성하는 분위기 때문으로, 이러한 빅 모먼트는 게임의 액션에 활력을 불어넣는다고 말했습니다.

스토리텔링 역시 배경 못지 않게 게임의 현실성에 많은 부분을 기여합니다. 조셉 살루드 아트 디렉터는 "시즈해머 게임즈는 스토리텔링 자문관을 별도로 구성하고 있다. 우리는 전쟁을 겪어보지 않았지만, 우리 게임을 플레이하는 일부 유저들은 군인 출신일 수도 있다"며 "이런 유저들의 니즈를 만족시켜주기 위해 그들이 있는 것으로, 실제 전장의 분위기를 재현하는 데 큰 도움을 얻을 수 있다. 예를 들자면 창문에 두지 말아야 할 사물이라던가, 바리케이트 구성 같은 것들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아울러 그는 배경만 보더라도 어떤 캐릭터가 이곳에 어울리는지 느낄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전했습니다. 사람들은 이미 액션 영화에 익숙한 편이기 때문에 기초적인 이미지가 심어져 있고, 이에 부각할수록 현실성은 더욱 증가된다는 말이 골자입니다.





조셉 살루드 아트 디렉터는 모던워페어3의 빛 효과에 대해 "스크린샷을 멀리서 봐도 아름답게 보일 수 있도록 하려 노력했다"고 전했습니다. 이는 단순히 오브젝트에 텍스쳐를 입히는 것이 아닌, 하늘에서 내려오는 빛과 땅에 있는 각양각색의 효과들을 버무려 인상깊은 장면을 연출하는 것을 뜻하죠.

아트 디렉터는 매일같이 그림을 봐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칫 객관성을 잃어버릴 우려가 있다고 그는 말합니다. 조셉 살루드 아트 디렉터는 자신 역시 그런 딜레마에 빠진 경우가 있다고 말하며, 그럴 때는 아예 그림을 며칠 간 보지 않는다고 전했습니다. 그러고 며칠 있다 다시 일러스트를 보면 그전까지 보지 못했던 부족했던 부분이 속속 보이게 된다고. 심지어 이미지의 깊이와 온도까지 느낄 수 있는 단계에 이르렀다고 설명했습니다.

시즈해머 게임즈의 아티스트들은 다소 독특한 작업 방식을 보여줍니다. 그는 자신을 비롯한 팀원들이 게임 콘셉트를 짤 때 일부러 최대한 부족한 상태로 제작한 후 테스트를 진행한다고 합니다. 그 이후 아트디렉터 팀과 크리에이티브 팀이 상이하며 수정방안을 짜 나가죠. 이 때는 디자이너와 아티스트들이 자기 마음대로 작업할 수 있도록 최대한 배려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 이후 좀 더 게임플레이가 안정화되면, 아티스트들이 디테일을 추가합니다. 하지만 이 단계 역시 디테일은 느슨하게 풀어놓습니다. 그 이유로 조셉 살루드 아트 디렉터는 추후 완성단계에서 추가할 때 편리성을 극대화시키기 위함이라고 말했습니다.

알파 단계까지 오면 그래픽이 어느정도 현실성을 입기 시작합니다. 이 땐 스토리텔링도 신경 써서 추가되어있고, 빛과 안개효과 및 파괴효과, 그리고 사물 하나하나까지 정밀하게 구현하죠. 하지만 이 역시 최종단계는 아닙니다. 그 이유는 엔지니어링 부분에서 메모리 할당량이 정확한지 검증하지 못했기 때문인데요. 그렇기 때문에 이러한 테스트가 완료된 후 최종 판이 등장하게 됩니다. 이 때 처음 콘셉 아트와 비교해 어느정도 구현이 됐는지 체크해 보죠.

강연의 끝자락에서 조셉 살러드 아트 디렉터는 "슬래지해머 아티스트들은 기본적으로 이렇게 작업한다. 난 우리 팀이 훌륭한 팀이라 생각하며, 그 역량에 맞는 좋은 작품을 내 놓게 되었다고 생각한다"며 이야기를 마쳤습니다.



[ ▲ 모던워페어3 그래픽 완성 과정 ]


아래는 이날 강연장에서 오간 질의응답을 정리한 것입니다.



'모던워페어3'를 개발하면서 전작인 '모던워페어2'를 많이 참고했을 것 같다 어떤 것을 배웠나?

- 내가 슬래지해머 스튜디오에 입사한 후, 모던워페어2를 굉장히 많이 플레이 했고, 또 거기서 많이 배웠다. 그래서 3편을 만들면서 전작과 스토리라인이 자연스럽게 연결될 수 있도록 특별히 신경쓸 수 있었다. 그 외에도 우리가 주의깊게 본 것은 여러가지 에셋이었다. 이것들을 더욱 현대적으로 보이게 하기 위해 파괴 효과나 빛 효과에도 주의를 기울였다.


슬래지해머 스튜디오에 컨셉 아티스트는 몇 명인가? 또, 하나의 콘셉트를 제작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어떻게 되는지?

- 메인 아티스트는 6~7명 정도이며, 정확히 기억은 안나지만 배경 아티스트는 최대 20명까지 있었던 것 같다. 제작 기간은 콘셉트 규모에 따라 다르다. 대규모 콘셉트는 몇 주가 걸리지만, 작은건 하루만에 만들 수도 있다.


'모던워페어3' 정도 대작을 개발하다보면 위기도 많았을 것 같다.

- 도입부인 맨하탄 스테이지를 만들 때 가장 힘들었다. 그 이유는 당시 우리 팀원들 모두 처음 시도하는 분야였기 때문이다. 엔진을 구동하는 데 많은 시행착오를 겪었고, 몇몇 효과도 제대로 구현되지 못했다. 우리의 계획이 좋은지 어떤지는 당시에 아무 의미가 없었다. 제대로 실행조차 힘들었으니.(웃음) 모던워페어3의 총 개발 기간은 약 1년 정도로 상당히 짧은 편이다. 우리 아티스트들은 제한된 시간 내에 해당 문제점들을 해결하고 좋은 게임을 출시하는 데 성공했다. 우리 팀이 대단하다고 생각되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작업할 때 어떤 툴을 쓰는지 알려줄 수 있나?

- 여러가지 툴을 사용하지만, 콘셉트를 만들 때는 주로 포토샵을 쓴다. 아티스트들이 각자 다양한 브러시를 사용하는데 서로 공유하도록 장려하고 있다. 우리는 실제 사진을 모은 콜렉션 집을 소스로 사용해 그 위에 그래픽을 입히는 방식을 채용했다. 그래서 한 층 더 현실감을 높일 수 있었으며, 개발 시간도 크게 단축할 수 있었다. .


테크니컬 아티스트와 효과적으로 대화하기 위한 노하우가 궁금하다.

나는 모든 아티스트들이 멈추지 않고 좀더 나아가는 것을 원한다. 대부분 사람들은 안전을 추구하는 성향이 강하지만 난 는 다소 독특한 케이스다. 이러한 나의 성향을 그들에게 요구하기 위해선 일단 테크니컬 아티스트들과 이야기를 최대한 많이 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고 많이 들어야 한다.

좀 더 세부적으로 말하자면, 나는 'NO'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일단 그들이 내 목표를 이해하려 노력하고 가능한 옵션을 제시하기에 이러한 단어를 사용할 일이 적다.(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