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악한 악당이 음흉한 미소를 지으며 다가옵니다. 악당은 엄청난 힘을 가지고 있고, 시민들은 그 앞에 무력합니다. 이제 모든 게 틀렸다고 생각한 순간, 밝은 빛과 함께 나타난 슈퍼 히어로! 히어로는 멋진 몸놀림으로 악당을 쓰러트립니다. 그리곤 홀연히 사라지죠. 이때, 말없이 사라지는 게 포인트입니다. 멋지게요. 사실 어떻게 보면 유치할 수 있는 이야기 입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은 왜 이러한 히어로 영화에 열광하는 걸까요. 화려한 볼거리? 통쾌한 스토리? 많은 이유가 있으시겠지만, 누군가는 '영웅을 바라는 마음'에 히어로 영화를 찾곤 합니다.

살다 보면 가끔 내 편 하나 없고 모든 게 적으로만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에 반해 자신은 한없이 작고 초라하게 느껴질 때가 있죠. 우리는 기댈 곳이 필요하지만, 겉으로 내색하지 못합니다. 자신의 약함을 인정하는 것은 너무도 부끄러운 일이니까요. 하지만 삶이 나를 힘들게 할 때, 가끔은 나를 도와줄 누군가가 있었으면 합니다. 이런 영웅을 바라는 마음은 히어로 영화를 찾는 또 하나의 이유기도 합니다. 지친 나를 구하기 위해서 등장하는, 그런 멋진 히어로를 그리며 말이죠.

우리가 꿈꾸는 그런 멋진 히어로. 현실에선 찾기 힘들지만, 소환사의 협곡에는 분명 존재합니다. 우리가 위기에 빠졌을 때, 언제 어디서든 말 한마디면 달려와 우리를 구해주는 멋진 챔피언. 롤챔프 탐구생활 세번째 이야기, 오늘의 주인공을 다 같이 불러봅시다. 쉔님, 궁좀요!


▲ 오늘의 주인공, '협곡의 슈퍼 히어로' 쉔!



■ 쉔, 비운의 버림받은 닌자

쉔은 48번째로 리그에 합류했습니다. 쉔은 '플레이가 단순해서 왠지 가장 처음부터 있었을 것 같은 챔피언'인 가렌보다 더 빨리 만들어진 챔피언입니다. 119번째 챔피언인 브라움이나, 120번째로 등장 예정에 있는 '나르'에겐 조상과 같은 존재라고 할 수 있죠.

한국 서버 런칭 당시의 쉔은 잘 선택받지 못하는 챔피언이었습니다. 일부 유저는 쉔이 가진 도발능력을 높게 평가하고, 활용하기도 했으나 대부분의 유저는 좋지 않은 챔피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당시 기자가 처음 롤을 접할 때도 많은 유저들은 '쉔은 좋지 않으니 하지 마라!' 라고 말할 정도였으니까요.

롤챔스를 지금까지 관심 있게 지켜본 분들에겐 고갤 갸우뚱하게 할만한 이야기입니다. "쉔이 안 좋았다고? 그 스킬 구성으로 안좋을 수가 있나?"하고 말이죠. 하지만 그것은 사실이었습니다. 쉔은 그의 파트너 '이블린'과 더불어 활용하기 힘든 챔피언이라는 인식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둘 다 소환사의 협곡에서 쉽게 만나기 힘든 챔피언이었죠.

하지만 이러한 그들이 선택되어 소환사의 협곡에 등장하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좋지 않은 성능을 가진 챔피언이 등장하는 이유는 두가지 입니다. 첫번째는 전술적 활용가치가 있어서 선택되는 경우입니다. 앞서 설명한 쉔의 도발 능력때문에 선택하는 것이 이것에 해당되겠네요. 그게 아니라면? 나머지는 트롤링에 사용되는 것입니다. 애석하게도 이 두 명의 챔피언은 후자의 경우였습니다.


▲ 소환사의 협곡을 주름 잡던(?) 챔피언 남매. 적으로 그들을 만나면, 꽁승 감사!를 외치면 됐다


쉔을 즐겨 하시는 분이라면 라인전에서 쉔이 가지는 가장 큰 장점은 '라인 유지력'이라고 말씀하실 것입니다. 쉔은 다른 챔피언을 압도하진 못하지만, 끊임없이 W(닌자 방어술)스킬로 적의 공격을 방어하고, Q(날카로운 검)스킬로 자신을 체력을 회복하는 챔피언입니다. 당시 쉔의 라인전 스타일 역시 지금과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지금처럼 라인 유지력이 뛰어나지 않고, 기력관리가 힘들다는 단점이 크게 작용했습니다. 이러한 이유가 복합적으로 작용하면서 쉔은 좋지않은 평가를 받게 된거죠.

당시 쉔의 상황을 잘 보여주는 것이 롤챔스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는 LoL 인비테이셔널입니다.


▲ LoL 인비테이셔널에서 쉔은 단 한번도 선택받지 못했습니다. 쉔은 그야말로 닌자가 되었죠!


하지만 우리가 기억하는 쉔은 이런 허약한 쉔이 아닙니다. 항상 밴 리스트에 올라 있거나, 블루 팀에서 1픽으로 재빨리 가져가는 고성능의 챔피언이죠. 우리 기억속에 선명하게 남아있는 강력한 쉔은 언제부터 등장하게 되었을까요?


■ 쉔의 장기 집권 시대! 메타, 카운터? 내가 바로 메타고, 밴만이 나의 카운터다!

2012년 2월 16일 시행된 패치에서 쉔의 성능은 크게 향상됩니다. 종합 선물 세트와 같은 엄청난 버프를 받게 되죠. 그리고 이것이 앞으로 시작될 쉔이 써내려갈 전설의 시작이었습니다.

▲1.0.0.134 패치, 쉔의 상향으로 빼곡하게 채워진다! (원문 출처:LoL 공식 홈페이지)


당시 라이엇은 쉔의 상향이 불러올 결과를 짐작했을 까요? 전반적인 능력이 크게 향상 된 쉔은 그동안의 설움을 날려 버릴 기세로 소환사의 협곡을 지배하기 시작했습니다. 특히, 롤챔스에서 보여준 쉔의 존재감은 남달랐습니다. 이 패치 이후의 몇 시즌간, 롤챔스는 '쉔챔스'라고 불러도 될 정도로 쉔이 자주 등장합니다.


▲ 롤챔스에서 오랫동안 OP 자리를 지켜 온 쉔. 꾸준한 밴픽률이 그것을 증명한다


쉔의 롤챔스 성공이유는 간단합니다. 쉔은 팀 단위 게임에서 아주 좋은 선택이기 때문입니다.

쉔이 롤챔스에서 사용될 무렵, 쉔은 '탑 패왕'의 별명을 얻을 정도로 라인전이 강한 챔피언은 아니었습니다. 탑에서 쉔에게 상성상 우위를 보이는 챔피언은 여럿 있었죠. 하지만 그들도 쉔을 완벽하게 압도하진 못했습니다. 쉔은 특유의 라인 유지력과 탱키함으로 어떤 챔피언과 싸워도 최소 지지 않는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또한, 정글러로도 사용할 수 있기에 쉔의 선택은 밴픽싸움에서도 우위를 점하게 했습니다.

거기에 쉔의 궁극기, '단결된 의지'는 팀 단위 게임의 꽃과 같은 스킬이었습니다. 당시 롤챔스에서 스플릿 운영은 프로팀이라면 누구나 하는 기본 전략이었습니다. 쉔은 스플릿 푸시 도중에도, 여차하면 팀 파이트에 합류할 수 있기에 당시 메타에 가장 잘 어울리는 챔피언이었습니다. 아니, 쉔이 당시 메타에 잘 어울렸다기보단 쉔으로 인해 그런 메타가 만들어졌다는 표현이 더 적절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무리 먼곳에 있어도 함께 있는 것과 다름없는 쉔. 수준급 게임 운영을 하는 프로게이머에게 이런 쉔은 최고의 선택이었습니다. 똑똑한 플레이의 대가, '클라우드템플러(이하 클템)' 이현우 전 프로게이머는 이러한 쉔으로 멋진 모습을 수차례 보여주었습니다. 클템의 쉔은 유리한 상황에선 팀을 더 유리하게 만들었고 불리한 상황에서는 팀에게 역전의 발판이 되어주는 등, 최고의 플레이를 보여주었죠.


▲ 쉔을 활용한 클템의 멋진 운영! (영상 출처:온게임넷)


쉔의 눈부신 활약은 비단 롤챔스뿐만이 아니었습니다. 솔로 랭크에서도 쉔은 종횡무진 대활약을 펼쳤습니다. 높은 티어의 리그에서는 두말할 것 없었고, 흔히 '심해'라고 불리는 브론즈 하위티어에서도 쉔은 위엄있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쉔은 '심해 4대 신앙'이라고 불리는 전설적인(?) 챔피언들 속에 당당히 자신의 이름을 새겨 넣죠.


▲ 브론즈 4대 신앙, 닌자 전설 '갓 쉔' (팬아트 출처:사미리)



■ 영원히 떠있는 태양은 없다! 쉔, 고난을 맞이하다

리그오브레전드 전역에서 승승장구하는 쉔. 하지만 영원한 것은 없었습니다. 거칠 것 없었던 '갓 쉔'도 메타의 변화와 너프 철퇴는 막을 수 없었죠. 영원할 것 같았던 쉔의 제국은 무너지게 됩니다.

분명 쉔은 순식간에 소환사 협곡 전역으로 순간이동 할 수 있는 매력적인 챔피언입니다. 프로 선수들은 쉔에게 당하면서, 쉔의 약점을 파악하는 데 성공합니다. 쉔은 '이동'을 하는 거지, '분신'을 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된거죠. 이후 프로게이머들은 쉔이 자리를 비운 시간을 효과적으로 이용합니다. 쉔이 궁극기 활용으로 자리를 비우는 순간, 강력한 라인 푸시를 바탕으로 포탑을 먼저 철거해버립니다. 포탑을 빨리 밀어내는 것은 라인전 주도권은 물론 게임의 주도권까지 가져오는 효과를 만들어냈습니다. 이런 전략은 쉔에게 강력한 카운터 펀치로 작용합니다.


▲ 너무나 익숙한 이 친구들이 라인을 쭉쭉밀어 쉔을 물먹이는 데 성공합니다


여기에 쉔 한타 기여도의 중심이라고 할 수 있는 E스킬(그림자 돌진)이 큰 너프를 당하게 됩니다. 한타에서 다수의 상대 챔피언에게 가하는 광역 도발이야말로 쉔의 꽃이라고 할 수 있는 스킬이었습니다. 하지만 거듭된 패치로 쉔의 도발 범위 판정이 상당히 줄어들어, 예전과 같은 위용이 사라지게 되었습니다.

그 결과 2013 윈터 시즌엔 이게 과연 쉔의 밴픽률이 맞나 싶을 정도로 처참한 수치를 보여줍니다. 거기에 그나마 등장했던 경기도 모두 패합니다. 쉔이 OP의 자리에서 내려왔다는 것을 보여주는 국면이었습니다.


▲ 2013 윈터 시즌의 쉔은 눈물나는 성적표를 받습니다


이것으로 끝이 아니었습니다. 이미 꿈도 희망도 없을 정도로 모든 것을 잃어버린 쉔에게, 라이엇 게임즈는 마무리 일격을 가합니다. 2014 롤챔스 스프링 시즌 진행 도중 발견된 버그로, 쉔은 글로벌 밴을 당하고 맙니다. 성능의 높낮이는 이제 둘째 문제고, 롤챔스를 비롯한 프로들의 경기에선 쉔의 모습을 아예 찾아볼 수 없게 됩니다.

쉔은 이렇게 다시 쓸쓸히 예전의 자리로 돌아갑니다. 과거 이블린과 함께 했던 그 자리로 말이죠. 하지만 그때와 지금은 큰 차이가 있었습니다. 쉔의 친구였던 이블린은 이미 롤챔스에서 좋은 정글러로 한자리 잡은 상태였죠. 영원할 것 같던 친구마저 잃은 쉔은 전보다 더 쓸쓸한 나날을 보내게 됩니다.


▲ 이블린(좋은 정글러) : 저는 님 친구가 아닙니다



■ 드디어 해방된 쉔. 다시 한번 날아오를까?

롤챔스에서 오랫동안 그 모습을 드러내지 못했던 쉔. 쉔이 자리를 비운 사이 메타는 몇 번씩이나 변화했고, 대세 챔피언도 여러번 바뀌었습니다. 메타가 돌고 돌아 어쩌면 쉔의 차례가 됐을지도 모르는 일이었으나, 글로벌 밴에 의해 계속해서 벤치만 지킬 수밖에 없었죠.

그런 쉔이 롤챔스에서 드디어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그것도 환상적인 모습으로 말이죠.

SKT T1 S와 KT 애로우즈의 롤챔스 4강전. 1세트 시작부터 '하차니' 하승찬의 알리스타는 과거의 영광을 되찾겠다는 듯이 협곡 전역에서 엄청난 존재감을 보였습니다. 알리스타의 활약으로 1세트를 내준 SKT T1 S. 하지만 그들도 왕년의 히어로를 호출합니다. 그리고 그 히어로는 기대를 저버리지 않습니다.

SKT T1 S의 탑 라이너, '마린' 장경환은 쉔으로 멋진 모습을 보여줍니다. 우직한 스플릿 운영, 환상적인 궁극기 활용은 마치 쉔의 전성기를 다시 보는 듯한 느낌이었습니다. 여기에 든든하다 못해 딱딱하게 느껴지는 탱킹까지! 많은 팬은 다시 돌아온 쉔에 열광했습니다.


▲ 위기에 처한 아군을 구해내고, 상대를 무찌르는 쉔이 돌아왔다! (영상 출처:온게임넷)


그렇지만 이 정도 활약으로는 아직 갓 쉔의 귀환이라고 하기엔 무리가 있습니다. 워낙 오랫동안 등장하지 않았기에, '깜짝 전략'정도로 사용되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글로벌 밴으로 경기에 못 나오거나, 나와서 형편없는 모습을 보여준 것 보다는 훨씬 희망있는 복귀전이었습니다. 쉔은 다시 한번 '닌자전설 갓 쉔'으로 돌아올 수 있을까요?

영웅은 결정적인 순간에 등장하는 법. 혹시 모르죠, 섬머 시즌 결승에서 쉔이 어느 한쪽을 캐리할지!


▲ 쉔이 섬머 시즌 결승전의 슈퍼 히어로가 될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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