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타2 1년 농사의 끝, 디 인터내셔널6(The International6, 이하 TI6)가 2개월도 남지 않았다.

지난 12일, 봄 대회인 마닐라 메이저가 끝나고 얼마 되지도 않아서 TI6 오픈 예선이 21일 시작된다. 전 세계 모든 도타2 팀의 최종 목적지가 TI인 만큼 목표는 모두 하나다. 그러나 TI 입성을 노리는 모든 팀의 기세가 같을 수는 없는 법.

어떤 팀은 TI 초청이 확실시되어 웃고 있는 반면, 어떤 팀들은 지옥의 오픈 예선부터 뚫어야 한다. TI6를 맞아 상승세, 하락세인 팀은 누가 있는지, 그리고 그들의 장단점은 무엇인지를 알아보자! 그렇게 하면 도타2 라운지의 성공률도 높아질지니...



■ 불멸의 아이기스도 우리 차지가 될 거다! TI 석권 노리는 상승세 팀들


상승세인 팀은 여럿이 있겠지만 최근 대회에서의 경기력이나 성적을 봤을 때 가장 주가를 크게 올리고 있는 팀은 유럽의 OG와 팀 리퀴드, 중국의 뉴비 정도로 압축할 수 있다. 세 팀은 최근 펼쳐진 마닐라 메이저가 시작되기 전부터 가장 강력한 우승후보들로 꼽히기도 했고, 그 예측에 걸맞게 나란히 1, 2, 3위를 차지했다.


OG는 세 번의 계절별 메이저 중 가을 프랑크푸르트, 봄 마닐라를 석권하면서 그 기세를 더하고 있다. TI5가 끝난 후 갈 곳 없는 이들이 모여 만든 팀이었지만 세계 최강의 도타2 플레이어인 '미라클'이 미드에서 태산같이 버티면서 OG의 평가는 상승하기 시작했다. '미라클'은 9,000대 MMR을 보유한 선수답게 레인전, 한타, 운영 설계 등 모든 면에서 상대보다 한 차원 위에 있는 듯한 플레이를 하고 있다.

특히 마닐라 메이저 승자전 2라운드 MVP 피닉스와의 경기에서 '미라클'은 상대의 연막 물약 타이밍과 동선, 모든 것을 예측하고 암살 기사로 전혀 예상이 되지 않는 위치에 숨어들기로 잠복해 있다가 상대를 농락하면서 유유히 도망쳤다. 그야말로 상대를 손바닥 위에서 데리고 노는 경지였다.

그간 OG의 가장 큰 약점은 캐리력이 부실한 '노테일', 플레이메이커 역할을 하지 못하는 '문민더'로 꼽혔지만 마닐라 메이저에서는 그런 약점마저 많이 보완됐다. '문민더'는 더 이상 의미 없이 죽는 역할이 아니었고, '노테일'은 비록 하드캐리 역할까지는 못하더라도 용기사와 같이 버티기에 좋은 캐리를 고르면서 팀에 안정성을 더해줬다.

부족한 캐리력과 플레이메이커 역할을 모두 '미라클'이 혼자 소화해낼 수 있는 역량을 지녔기에 성립할 수 있는 공식이었다. 도저히 '미라클'을 막을 만한 미드레이너가 보이질 않는 상황에서 OG의 폭발력이 TI6에서도 이어질지가 관건이다.


팀 리퀴드 역시 이견의 여지가 없는 최강팀 중 하나다. 팀 리퀴드는 OG의 '미라클'처럼 무시무시한 슈퍼플레이를 하는 선수를 찾기는 힘들지만 누구 하나 구멍도 없는 탄탄한 팀이다. '마툼바맨', '파타', '마인드컨트롤'이 기본적으로 1인분을 늘 해 주면서 버티고, 세계 최강의 서포터들인 '제락스'와 '쿠로키'가 전 맵을 휘저으면서 갱킹, 세이브를 완벽하게 해낸다.

특히 팀 리퀴드는 과거 MVP에서 활동했던 '힌' 이승곤이 코치로 부임한 후 더욱 기세를 올리고 있다. MVP 내에서도 브레인을 맡았던 이승곤이었던 만큼 상대를 분석하는 데는 일가견이 있고, 이승곤이 분석한 정보를 게임 내에서 실천할 수 있는 역량이 되는 선수들이 모이면서 팀 리퀴드는 오랫동안 랭킹 1위 자리를 놓치지 않고 있다.

뉴비는 상하이 메이저에서 중국 팀들이 대거 몰락한 후 새롭게 일어난 중국의 희망이다. TI4에서 우승을 차지했던 뉴비는 이후 급속도로 몰락하면서 '최단기간 퇴물'이란 불명예를 1년 넘게 떠안고 있었지만, 대대적인 팀 리빌딩을 단행하고 MVP 피닉스에서 활동했던 'kpii'를 오프레이너로 영입하면서 다시 살아났다. 'kpii'가 엄청나게 눈에 띄는 활약을 한 것은 아니지만 오프레인에서 안정감을 더해주자, '하오'의 폼까지 함께 올라오면서 뉴비는 중국 최강의 팀으로 거듭났다.


한국 팀 MVP 피닉스 역시 상승세를 타고 있는 팀이다. 가을 프랑크푸르트 메이저 당시 예선에서 탈락했던 MVP 피닉스는 게임쇼 글로벌 e스포츠컵에서 현재의 로스터를 꾸린 후 겨울 상하이 메이저에 참가했다. 상하이 메이저 전까지는 동남아 팀에게도 자주 패배했기 때문에 하위권에서 맴돌 것이란 얘기가 많았으나 MVP 피닉스는 각성한 경기력으로 상하이 메이저 이변의 핵이 되면서 4위라는 엄청난 성적을 거뒀다.

도타 핏리그에서 도타2 역사상 그 어떤 동남아 팀도 해내지 못한 글로벌 토너먼트 우승을 거머쥔 MVP 피닉스는 많은 대회에 초청 팀 자격으로 참가하게 됐고, 대타로 참가한 위플레이 시즌3에서도 우승을 해냈다. 비록 마닐라 메이저에서 OG와 LGD에게 연달아 패배해 공동 5위로 대회를 마감했지만 이것 역시 상당한 선전이었다.

극한의 하이리스크 하이리턴형 플레이어인 '큐오' 김선엽이 리스크를 조금씩 덜어냈고, 다소 캐리력이 부족하다고 평가받던 'MP' 표노아 역시 캐리력을 조금씩 더하면서 MVP 피닉스는 점차 완성되어가기 시작했다. 대단히 공격적인 운영을 펼치는 MVP 피닉스는 상대가 제대로 대처하기도 전에 이미 목을 노리는 팀이다. 그러나 앞선 OG, 팀 리퀴드, 뉴비 등에 비해 자신들의 공격적인 색채가 먹히지 않았을 때 다른 운영으로 우회하는 '플랜 B' 설계 능력이 상대적으로 떨어지기 때문에 패배하는 경기에서는 매우 무기력한 경우가 많다는 것이 단점이다. MVP 피닉스는 다가오는 TI6에서 더 높은 곳으로 가기 위해서는 초반 교전에서 패배하거나 갱킹이 실패로 돌아갔을 때 그 손해를 복구하는 법을 더 가다듬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EG의 시드권 상실로 인해 초청 팀에 추가 자리가 하나 더 생긴 만큼 MVP 피닉스는 이번 TI6에 초청을 받을 확률이 대단히 높다. 한국 팀의 TI 우승은 농담으로라도 꺼낼 수 있는 말이 아니었지만 이미 MVP 피닉스는 두 번의 해외 대회에서 우승을 하면서 그 가능성을 조금씩 더 높이고 있다. 남은 것은 마닐라 메이저에서 확연하게 드러난 본인들의 약점을 어떻게 보완하느냐다. 모든 한국 도타2 팬의 등대로써, 무엇보다도 본인들을 위해서 말이다.



■ 이게 아닌데... 불명예 벗는 것이 시급한 하락세 팀들


상승세인 팀이 있으면 하락세인 팀도 있는 법. 이번 마닐라 메이저가 진행되면서 기대치보다 훨씬 밑을 맴도는 팀들이 여럿 생겼는데, 그중 특히 EG와 팀 시크릿은 그간의 명성에 완전히 먹칠을 하고 말았다. 대회 최하위로 마닐라 메이저를 마감한 EG와 팀 시크릿은 대회가 끝나자마자 오픈 예선을 치러야 하는 리스크를 감수하고 로스터 변경을 했을 정도.


'TI에서 우승한 팀은 그 후 망가진다'는 TI의 저주에서 EG는 자유로워 보였다. TI5에서 우승을 거둔 EG는 이후 '아티지'를 데려오면서 계속해서 승승장구했으나, 도타 핏리그 결승에서 MVP 피닉스에게 충격의 0:3 패배를 당하면서 서서히 틀어졌다.

팀 시크릿에서 EG로 왔던 '아티지'는 다시 팀 시크릿으로 떠났고, EG 운영의 핵이던 '유니버스'도 팀 시크릿으로 이적했다. EG는 '벌바'와 '아우이2000'을 데려왔지만 둘은 '유니버스'와 '아티지'가 했던 만큼의 몫을 해내지 못했고, EG의 힘은 점점 약해졌다. 설상가상으로 DAC에서 화려하게 데뷔하고 TI5에서 정점을 찍었던 '수메일'도 폭풍령이 너프된 후에는 다른 미드레이너에 비해 특출난 점이 없다는 평가까지 받았다. EG는 마닐라 메이저에서 눈에 띄는 경기 한 번 없이 패자전으로 내려갔고, 패자전에서 VG리본에게 무난하게 패배해 탈락했다.

마닐라 메이저부터 TI6 종료 전까지는 로스터를 변경할 경우 지역 오픈 예선부터 치러야한다는 크나큰 페널티가 있었으나, EG는 결국 지난 시즌 우승팀으로서의 초청 자격까지 포기하고 다시 '유니버스'를 재영입한 뒤 예전 서포터로 활동했던 '자이'까지 복귀시켰다. '유니버스'와 '자이'의 클래스는 이미 수많은 대회에서 입증이 된 만큼 EG가 예전의 폼을 다시 되찾을 수 있을지가 관건이다.


팀 시크릿 역시 상황은 최악이다. '유니버스'가 떠나고 EG에서 '벌바'를 데려왔지만 멤버가 변경됐기에 EG와 마찬가지로 지역 오픈 예선부터 치러야 하는 입장이다. 주요 대회마다 만나 명승부를 펼쳐왔던 EG와 시크릿이 나란히 폼이 떨어지고 함께 오픈 예선부터 치러야 한다는 점에서 어찌보면 진정한 의미의 라이벌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팀 시크릿은 '이터널엔비', '아티지' 등 이름난 실력자들이 모였음에도 리빌딩 후 좋은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다. 마닐라 메이저 그룹스테이지에서 팀 시크릿은 대회 최약체가 될 것으로 평가받던 나비에게 충격의 0:2 패배를 당했고 패자전에서도 윙즈 게이밍에게 1:2로 지면서 메인 이벤트 패자전으로 내려갔다. 패자전 1라운드 상대인 엠파이어의 경기력이 좋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팀 시크릿의 경기력은 더 좋지 못했다. 팀원 간의 합이라고는 찾아볼 수가 없었고, 서로 제 할 일만 하다가 게임을 몇 번 던지고 그대로 패배했다.

'아티지'의 저주라는 농담도 있지만, 냉철하게 평가했을 때 '아티지'는 세계 최고의 도타2 플레이어 중 하나다. 그런 선수를 데리고도 대회 최하위라는 것은 팀 내부적으로 분열이 있거나 자만, 나태함으로 인한 연습 부족 둘 중 하나라고밖에 볼 수 없다. 팀 시크릿 역시 로스터를 바꾼 만큼 TI6를 통해 과거의 명성을 되찾기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