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이나조이도 막을 내렸다. 첫날 현장을 방문할 때만 해도 끝이 보이지 않는 행사였건만, 결국 모든 것은 끝이 나기 마련인가 보다.

뜻밖에 차이나조이의 끝은 화려하지 않았다. 30일부터 B2B 부스가 철수를 시작했고, 31일에 이르러서는 일반 관객들도 반 이하로 줄어 굉장히 쾌적한(?) 취재를 할 수 있었다. 들불같이 번진 처음의 열기는 꺼질 때가 돼서 그다지 화려한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다.

차이나조이는 확실히 달랐다. 전 세계 게임쇼를 바닷속 생물에 빗대 표현해 보자. 6월에 미국에서 열리는 E3는 거대한 백상아리들이 관객이라는 먹이를 놓고 다루는 폭풍전야의 무대다. E3에서 주목받는 작품은 명실상부 그 해의 기대작으로 우뚝 선다. 이후 열리는 다른 게임쇼에서도 주목받게 되고, 그 해 크리스마스와 연말 시즌에 최고의 주가를 올리게 된다.

'게임스컴'은 거대한 고래들이 헤엄치는 대양의 모습이다. 딱히 경쟁하지는 않지만, 각자 나름의 방법으로 그 존재감을 드러내고, 전 세계에 모습을 어필한다.

'차이나조이'는 상어나 고래의 무대가 아니었다. 차이나조이는 마치 바닷속을 은빛으로 뒤덮는 수천 수만 마리의 정어리떼를 보는 느낌이었다. 하나하나의 작품들은 크게 주목되지 않는다.

아무래도 콘솔이나 최고급 PC를 플랫폼으로 삼는 게임보다 웹과 모바일을 기반으로 하는 게임들이 많은 탓도 있을 것이고, 최고급 그래픽과 연출보다 다른 면모로 승부를 겨루는 게임들이어서일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게임 하나하나의 존재감이 아니다. 정어리떼가 왜 멋진가? 바로 어마어마하게 많기 때문이다.

▲ 정말 어마어마한 게임들의 물결이랄까

게임의 수가 너무나도 많았다. 하지만 딱 이거다! 싶게 눈에 띄는 게임은 없었다. 그러다 보니 출장 전, 기대작을 꼽는 회의 시간에도 '도대체 뭐로 정해야 하는가'를 두고 갑론을박이 오갔다. 결국, 우리가 주목할 만한 관전 포인트는 한국 IP를 사용한 게임들로 굳어질 수밖에 없었다.

IP 게임은 현 업계를 이루는 거대한 트렌드다. 실제로 올 차이나조이엔 유독 기존 IP를 활용한 게임이 많이 보였다. 재미있는 건 반다이 남코의 전략이었는데, 반다이남코는 '세일러문', '은혼', '드래곤볼' 등 일본 애니메이션 IP를 활용한 다수 게임을 출품해 관객들의 주의를 끌었다. 반다이남코 외에도 '에반게리온'의 IP를 이용한 게임을 자체적으로 개발한 개발사도 있었다.

한국 IP 또한 굉장히 강력했다. 마비노기 영웅전과 리니지2 등 한국 게임의 IP를 사용한 게임을 발견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이처럼 강력한 IP는 마치 보증수표처럼 게임에 붙어 게임쇼 전체를 수놓고 있었다.

▲ '리니지2: 혈맹'은 트렌드의 중심이라 볼수 있었다

장르로서의 변화도 흥미로웠다. 올해 차이나조이에서는 액션 RPG와 MMORPG가 굉장히 주목받았다. 작년까지만 해도 상대적으로 캐주얼한 턴제 모바일이 주류를 이뤄온 것과는 상당히 대비되는 모습이었다. 재미있는 점은 몇 년 전 이미 중국 시장에 3D 액션 RPG와 MMORPG가 대세를 보인 적이 있었다는 점이다. 하지만 올해 등장한 게임들은 과거보다 훨씬 강력하고, 개선된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그래픽이나 네트워크 모든 측면에서 말이다. 확실히 중국의 개발력은 날이 갈수록 발전하고 있었다.

차이나조이의 마지막 날, 현장에서 만난 업계 관계자는 중국 게임시장을 두고 '무섭다'라고 표현했다. 그러고 보니 나조차도 기계로 찍어내듯 압도적인 물량으로 쏟아져 들어오는 중국 게임들을 보면서 '그래도 게임의 퀄리티는 우리가 더 낫다'라고 스스로 위로하곤 했었다. 물론 그 많은 게임 중에는 조잡한 배끼기에 BM을 끼얹은 게임이나, 얼굴에 철판 깔고 캐릭터를 모방한 게임들도 적지 않았다. 하지만 그 중에는 분명 한국 게임에 못지않은 작품성을 가진 게임들도 존재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더 나은 작품이 나올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차이나조이가 끝난 다음 날, 우리는 상하이에서 100킬로 미터 떨어진 '소주(쑤저우)' 안에 있는 '스네일 게임즈'의 본사를 방문할 기회를 잡았다. 한국에는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중국 내에서도 매우 크고 강력한 게임사다. 전 직원 수만 3천여 명에 이른다고 하더라. 그리고 이 곳에서, 난 왜 중국 게임업계가 '무섭다'라고 표현될 수 있는지 제대로 느낄 수 있었다.

충격적이었다. 기자 활동을 하면서 국내 개발사는 숱하게 방문했고, 가끔은 서구권 개발사도 방문할 기회가 오곤 했었다. 스네일게임즈의 모습은 그 어떤 나라의 어떤 개발사와 비교해도 모자람이 없었다. 광대한 사내 부지에는 농구 코트와 수영장이 있었고, 거대한 주 개발실은 마치 뉴욕 증권 거래소의 한 장면을 보는 듯했다.

그뿐이랴. 이런 개발 스튜디오가 소주 근처에만 세 곳이 존재했다. 아예 그중 한 곳은 완벽히 자연 친화적으로 만들어 두었는데 개발사 부지 안에서 공작을 키우고 있었다. 세상에 이런 일이. 모션 캡쳐 스튜디오 옆에서 공작이 돌아다니고 있다.

▲ 맙소사

국내 개발사가 중국에 따라잡히고 있다는 말이 이해가 갔다. 스네일 게임즈가 큰 회사라고는 해도 어디까지나 중국의 수많은 게임사 중 하나일 뿐이다. 그럼에도 이 정도였다. 개발력이 높아지지 않는 것이 이상할 정도였다. 한편으로는 두려웠다. 중국 게임업계가 치고 올라올수록 한국 게임업계의 위상은 점점 내려올 테니 말이다.

차이나조이의 마지막 일정을 마치면서, 현지 직원과 짧게 대화를 나눴다. 그리고 그의 말에서, 현재 중국 게임업계의 단면을 볼 수 있었다. "과거에는 게임업계의 이미지가 굉장히 좋지 않았어요. 부모님도 공부 안 하고 게임만 할 거로 생각하시면서 반대하곤 하셨죠. 하지만 지금은 많이 달라졌어요. 게임 쪽에서 일한다고 하시면 다들 좋아하시고, 오히려 응원을 해주시곤 해요."

▲ 이들이 우리보다 더 앞서 있는 것 같았다

솔직히 조금 부러웠다. 내 개인적인 경우이지만, 내 부모님은 나의 직업을 이해하는데 1년이 넘게 걸리셨다. 아무래도 중국은 그런 걱정은 없나 보다. 이들은 자신의 일에 자부심을 가진 채 게임을 만들고 있었고, 개발환경에 크게 만족하고 있었다. 결국 승리하는 이들은 잘 하는 이들이 아닌, 즐기는 이들이라고 했다. 그리고 내 눈앞의 이들은, 비록 모두는 아닐지언정 자신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 해 나가고 있었다. 이런 회사가 중국에 얼마나 더 있을 것이며, 이렇게 일하는 사람들은 몇 명이나 될까. 멋진 것을 뛰어넘어 살짝 소름이 돋았다.

출장 전, 중국을 잘 아는 기자가 말해줬다. "중국 사실 우리나라랑 별 차이 없어요. 좀 다른 거라면 사람들이 우리나라 90년대 같달까? 실내에서 담배 피워도 아무도 뭐라 안 하고 질서의식 좀 부족하고 그런 정도에요"

하지만 지금 와서 다시 보니 우리가 20년 더 앞선 것인지 의문이 든다. 적어도 게임에 대한 이미지와 관심, 그리고 의식만큼은 역으로 우리가 뒤처져 있는 것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