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타2 디 인터내셔널6(이하 TI6)가 모두 마무리된지 며칠이 지났다. 국내 도타2 팬들의 기대를 한 몸에 받았던 MVP 피닉스의 성적은 5-6위. TI5의 7-8위를 이미 뛰어넘은 기록이다. 전 세계의 팀들과 경기를 치렀던 만큼 MVP 피닉스는 TI6에서 여러 장단점을 함께 보여줬다.

이번 TI에서 MVP 피닉스는 어떤 점에서 빛났고, 또 어떤 점에서 아쉬움을 남겼을까?


■ 나쁘지 않은 성적, 준비된 필살 카드까지


TI6에서 MVP 피닉스는 어떤 팀을 만나더라도 충분히 대적이 가능한 실력을 갖추고 있음을 보여줬다. 약한 팀들이 모였다고 평가받았지만 뚜껑을 열어보니 모두가 강팀이었던 그룹 스테이지 B조에서 6무 1패란 성적을 거둔 것은 어떤 팀을 상대로도 호각으로 싸울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하기도 한다.

특히 그룹 스테이지 단계에서는 멘탈 측면에서 큰 강점을 보였다. 대부분의 경기에서 1세트를 패배하고 2세트를 따내는 그림이 그려졌는데, 이는 1세트 패배 후 팀원 간에 균열이 생겼을 경우엔 나오기 힘든 상황이다. 게임 내에서의 의견 차이는 있었을지언정 그것이 게임 외적으로도 영향을 줄 정도는 아니었다는 것이다. 특히 그룹 스테이지 마지막 경기엔 뉴비전에서는 1세트 패배 때문에 패자전으로 내몰리기 직전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최선을 다한 경기를 펼친 끝에 2세트를 잡으면서 승자전에 올라가는 행운을 거머쥐었다.

또, 한 번 당했던 상대에게 또 당하지 않으면서 꾸준히 발전된 모습을 TI6에서도 증명했다. 상하이 메이저에서는 팀 리퀴드와 EG에게 패배했지만 이후 도타 핏리그 결승에서 EG를 3:0으로, 마닐라 메이저에서 팀 리퀴드를 2:1로 눌렀다. 마닐라 메이저에서 0:24 퍼펙트 패배를 안겨준 OG는 TI6 무대에서 꺾었다. 자신들의 패인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고, 상대에 대한 철저한 연구와 피드백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이룰 수 없는 승리들이다. MVP 피닉스는 그만큼 팀 차원에서도 훌륭한 성장을 이뤘다.


TI6를 위한 깜짝 카드 유령 자객도 굉장한 효과를 봤다. 절대 주류 픽이라고는 볼 수 없는 유령 자객을 메인으로 내세운 MVP 피닉스의 칼날은 날카로웠다. 크리티컬 한 방에 상대 서포터가 사라지는 일이 비일비재했고, 많은 팀들이 대처가 불가능한 유령 자객의 변수에 무너졌다.

메인 이벤트 승자전 1라운드 OG전 1세트에서는 '미라클'의 벌목꾼에게 중반까지 휩쓸리면서 그대로 밀리는 듯했지만 유령 자객을 꾸준히 키운 덕분에 후반을 도모할 수 있었다. MVP 피닉스는 로샨 앞 4인 진공을 시작으로 주특기인 한타로 상황을 바꾸기 시작했고, 그 결과 완전히 성장한 유령 자객의 힘으로 역전승을 따낼 수 있었다.

준비된 조커 카드가 있다면 MVP 피닉스는 넘지 못할 팀이 없다는 것을 이번 TI6에서 전 세계에 보여줬다. 앞으로 MVP 피닉스가 또다른 카드를 준비했을 때, 그것이 어떤 파괴력을 갖고 나타날지 팬들에게 더 기대를 갖게 만들었다.



■ 여전히 좁은 픽풀, 고착화된 운영은 최우선으로 해결해야

▲ 성적은 5-6위인데 승률이...?

아쉬웠던 점에 대해서는 조금 더 할 말이 많다.

MVP 피닉스의 TI6 성적 자체는 나쁘지 않았지만 많은 팬들은 그들이 거둔 기록에 대해서 아쉬움을 표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룹 스테이지와 메인 이벤트 매치를 모두 합했을 때 MVP 피닉스의 성적은 1승 6무 3패다. 승률이 절반이 채 되지 않는다. 이를 마냥 우스운 해프닝 정도로 치부하기엔 힘들다. 그룹 스테이지 마지막 순간, 팀 시크릿의 '아티지'가 날뛰지 않았더라면 MVP 피닉스는 패자전으로 갈 수 있었다. 그나마 운이 좋아 승자전으로 간 덕분에 공식전 1승으로 5-6위를 한 것이지, 만약 출발선이 패자전이었는데 공식전 1승이었다면 MVP 피닉스의 성적은 9-12위가 될 수 있었다.

그룹 스테이지에서 이길 수 있는 경기들을 져서 '무재배'를 한 것에 대해서는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그중 하나는 고착화된 운영이라고 볼 수 있다. 그간 MVP 피닉스는 모든 문제를 전투로 해결해왔다. 후반지향형 픽에는 똑같은 방식으로 맞붙을 놓는 등의 모습이 아직까지는 부족했다. 물론 수준급의 교전 능력이 있기 때문에 굳이 후반형 픽을 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상대도 그에 밀리지 않는 교전 능력을 가지고 있거나, 아니면 아예 한타각 자체를 주지 않았을 때 여기에 대한 해법이 있었는가는 생각해봐야 할 문제다.

▲ 백도어 운영으로 MVP 피닉스를 잡은 디지털 카오스

그룹 스테이지 디지털 카오스전 1세트에서 디지털 카오스는 모플링을 골랐다. 절대 싸워주지 않으면서 후반을 노리는 전형적인 후반지향형 픽이다. 경기 내내 MVP 피닉스는 전투력에서 압도적 우위에 있었으나 모플링을 잡을 만한 픽이 하나도 없었고, 디지털 카오스는 4명이서 쉴 새 없이 죽어가는 와중에도 절대 모플링을 전장으로 부르지 않고 파밍만 시켰다. 그 결과, MVP 피닉스는 모플링의 백도어에 당해 순식간에 병영이 날아가면서 상황이 이상해졌고, 결국 메가 크립에 밀려 역전패를 당했다.

메인 이벤트 승자전 2라운드 윙즈 게이밍전 1세트에서는 필살기 유령 자객을 뽑았지만 윙즈 게이밍은 퍽과 고통의 여왕으로 맞불을 놨다. 둘 다 유령 자객에게 물려도 도망치기 쉽고, 칠흑왕의 지팡이를 뚫는 스킬도 갖고 있다. 노림수에 걸려든 MVP 피닉스는 특기인 한타에서 오히려 밀리면서 패배했다.

교전 위주의 운영이 나쁜 것은 아니다. 그러나 팀 색깔을 아예 거기에 고정시킨 채 그 틀 안에 스스로가 갇혀버리면 더 이상의 발전이 없어진다. 이미 MVP 피닉스의 교전 능력은 세계 탑 클래스임이 증명됐다. 이제 TI가 끝났으니 MVP 피닉스는 여러 대회에서 교전 외의 다른 운영도 사용할 필요가 있다. 아무리 큰 장점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그 외의 또다른 무기를 발굴하지 않으면 고인물이 되기 쉽다.

▲ 픽풀을 나타내는 우측 3번째 그래프. MVP 피닉스의 픽풀이 최하위다 (출처 : dotabuff.com)

또, 여전히 픽풀이 좁다는 사실이 여지없이 드러났다. MVP 피닉스는 40명의 영웅을 쓰면서 본선 진출 16개 팀 중 가장 좁은 픽풀을 기록했다. TI6 1위부터 4위를 차지한 윙즈 게이밍, 디지털 카오스, EG, 프나틱이 전부 픽풀 최상위 4팀이란 것은 우연이 아니다.

TI6 밴픽 최상위권에 위치한 1티어 영웅들 중 MVP 피닉스는 드로우 레인저를 아예 쓴 적이 없고, 미라나와 박쥐기수도 거의 쓰지 않았다. 1티어 영웅들보다 타 팀과의 픽풀 격차를 더 크게 벌리는 것은 조커 카드의 보유 여부다. MVP 피닉스는 유령 자객이란 조커를 보유했지만 그게 끝이었고, 유령 자객 특성상 MVP 피닉스의 교전 중심 운영의 틀에서 벗어나는 픽이 아니었다.

해외 강팀이 컨카, 모래제왕, 테러블레이드, 모플링, 레이저 등 다양한 조커를 보유한 것과 크게 차이가 난다. 프나틱은 MVP 피닉스를 만날 때 거미여왕을 자주 꺼내 랫도타로 승리를 따냈고, 윙즈 게이밍은 퍽으로 카운터를 치면서 MVP 피닉스를 무너뜨렸다. 반대로 MVP 피닉스가 자신들과 같은 성향의 팀을 만났을 때, 윙즈 게이밍이 보여준 것과 같은 운영을 펼칠 수 있느냐 하면 쉽게 확답을 내릴 수 없다. MVP 피닉스의 그간 모습을 보면 더 큰 힘으로 상대를 눌렀으면 눌렀지 상대 공격을 흘리면서 받아치지 않을 것이기 떄문이다. MVP 피닉스는 그토록 좁은 픽풀을 지니고도 5-6위라는 성적을 거두었지만, 더 높은 곳으로 가기 위해서는 대세인 1티어 영웅 외에 2, 3티어 영웅 발굴에 더 신경을 써야 한다.

▲ 이런 영웅들은 그간 MVP 피닉스 스타일에 맞지 않았다

일단 진입해서 싸우고 보는 MVP 피닉스의 성향에 비추어 볼 때, 드로우 레인저나 퍽, 컨카, 모플링 등의 영웅은 잘 맞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다룰 수 있어야 한다. 윙즈 게이밍이 보여줬듯이 말이다. 윙즈 게이밍은 MVP 피닉스의 완성형 모습을 보여줬다. 단지 그들이 TI6 우승을 했기 때문이 아니라, 팀 전체적으로 보여준 짜임새 있는 운영, 끝없이 넓은 픽풀 때문이다. "이 영웅은 팀 성향과 맞지 않으니 버린다"가 아니라 "이 영웅은 팀 성향과 맞지 않으니 우리가 거기에 맞춘다"가 되어야 한다.

상하이 메이저, 마닐라 메이저, 그리고 TI6라는 3개의 대규모 대회에서 MVP 피닉스는 항상 같은 지점에서 미끄러졌다. 이는 한 가지 스타일의 운영으로는 거기까지가 한계라는 것이다. 4위 이상의 자리를 노린다면 픽풀을 넓히고 교전 중심 운영 외에도 장기전 도모, 랫도타 등 다양한 스타일의 운영이 필요하다. 전 세계 그 어떤 팀도 MVP 피닉스가 퍽이나 모플링 등을 쓸 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MVP 피닉스가 이런 영웅들을 잘 다룰 수 있게 된다면 그 파괴력은 더 크게 다가올 수 있다.

다른 스타일의 운영을 하다보면 당분간 성적이 잘 나오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팀원들 간의 신뢰를 바탕으로 피드백을 꾸준히 주고받으며 장기적인 계획을 세운다면 그 결실은 반드시 온다. 지금의 MVP 피닉스가 이미 그 사실을 증명했다.



MVP 피닉스는 좋은 성적과 함께 한편으로는 아쉬움을 간직하고 TI6를 마쳤다. 게임 내 본인들의 문제점이 무엇이었는지는 스스로가 더 잘 알고 있을 것이고, 이에 대해서는 서로 열심히 피드백을 주고받고 있을 것이다. 이제는 인내심을 갖고 객관적인 지표로 확인된 약점 또한 보완해야 한다.

MVP 피닉스가 아무리 좋은 성적을 거둬도 늘 '언더독'이란 꼬리표가 따라붙고, 강팀과의 승자 예측 투표에서 항상 밀리는 것은 다양한 운영이 없기 때문이다. 앞으로 있을 메이저와 TI7이 왔을 때는 한 차원 더 진보된 MVP 피닉스로 등장하기를 많은 도타2 팬들이 기다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