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언가에 새로이 도전한다는 건 참 어려운 일입니다. 자기가 가진 위치를 포기해야 한다면 더더욱 망설여집니다. 하지만, 도전하기 위해선 변화가 필요하고, 변화하기 위해선 실천이 필요합니다.

제가 오늘 만난 신성걸 대표님은 변화를 위해 실천한 사람입니다. 안정적인 직장을 포기하고 자신의 꿈을 찾아 새로운 걸음을 내디뎠습니다. 자기가 만들고 싶은 걸 만들고, 하고 싶은 걸 하겠다는 기분 좋은 고집으로 똘똘 뭉친 신성걸 대표님. 그분이 내지른 기쁨의 아우성을 인벤에서 소개해드립니다.

▲ (주)그럼피 신성걸 대표

원동현 기자(이하 원동현) : 안녕하세요 신성걸 대표님! 약 1년여 만에 다시 인벤에서 뵙는 거 같습니다. 인벤 독자들을 위해 간단히 자기소개 부탁드릴게요.

신성걸 대표(이하 신성걸) : 안녕하세요 인벤 여러분. 작년에 ‘내가 영웅일 리 없어’로 인사드렸던 신성걸입니다. 그 당시 제 능력 부족으로 좋은 모습을 보여드리지 못해서 많은 분이 실망하신 거로 알고 있습니다. 게임 자체도 만족스러운 성과는 거두진 못해서... 그런 의미에서 정말 좋은 게임 만들어보고자 제 나름의 회사를 만들어 욕심 가득 담은 게임을 만들어봤습니다. 앞으로도 재밌고 독특한 게임 계속 만들 테니 많이 즐겨주셨으면 합니다(웃음).

원동현 : 회사 이름이 굉장히 독특합니다. 그럼피(Grumpy)라는 사명에 어떤 뜻을 담으셨나요?

신성걸 : 예전에는 게임을 만들어서 돈을 많이 벌자는 생각이었습니다. 단순히 돈이 갖고 싶은 게 아니라 아무래도 돈이 가장 대표적인 성적의 지표이다 보니 어쩔 수가 없더라고요. 하지만 작년 겨울부터 퇴직하고 쭉 쉬면서 정말 어마어마하게 게임을 많이 했어요. 정말 온갖 게임을 다 해봤습니다. 그리고 게임에 대한 생각이 참 많이 바뀌었습니다.

어느 날, 우연한 기회로 해외 개발자분들을 만나게 됐는데, 정말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중 북미 쪽 개발자분이 제게 이런 말씀을 하시더라고요.

"한국은 시나리오 베이스의 멋진 게임을 못 만들지 않냐? '언차티드', '라스트 오브 어스' 같은 게임들은 그래픽만 좋은 게 아니라 시나리오가 탄탄했기에 명작으로 취급을 받는 거다. 일본 게임 같은 경우 니어 오토마타 등을 통해 게임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주기도 했다. 하지만 한국은 뭐냐? MMO 빼고 뭐가 있냐?"

이런 말을 듣고 게임을 20년간 만들어온 사람으로서 너무 자존심이 상했습니다. 그래서 정말 시나리오가 탄탄한 멋진 게임을 만들어보자 생각했죠.

그럼피란 회사의 이름은 까칠하다는 뜻입니다. 항상 어른의 사정으로 자기가 원하는 게임을 못 만드는 게 싫었고 사방에서 들어오는 외압을 까칠한 태도로 거절하고 개발자의 욕심과 엣지를 보이겠다는 뜻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회사 로고를 주차금지 팻말로 만들어봤습니다(웃음).

▲ 외압을 거절하고 고집으로 게임을 만들겠다는 각오

원동현 : (주)그럼피의 첫 작품인 로넷(Ronet)에 대해서도 간단한 소개를 부탁드리겠습니다.

신성걸 : 제가 생긴 거와는 다르게 예술을 사랑하는 순수한 사람입니다. 이전에 만든 작품들이 다 피 튀기고 치열한 느낌이었는데 이번엔 좀 '전투'를 벗어나서 깨끗하고 순수한 게임을 만들어보고자 했습니다. 그래서 고민하던 이슈들이 정치, 사회, 환경 분야였는데요. 그러던 중 우연히 환경 다큐멘터리를 접하고, ‘아 이거다!’ 싶어서 로넷을 만들게 됐습니다.

시나리오는 제가 정말 좋아하는 영화 '맨 인 블랙'을 오마쥬했습니다. 지구를 침략하는 외계인을 ‘죽이는 게’ 아니라 우주선으로 '추방'해서 지구의 환경을 지켜내는 거죠.

게임 구성 자체는 단순합니다. 로켓 발사에 방해가 되는 까마귀를 탭 해서 없애고, 주기적으로 로켓을 발사해 외계인을 실어 보내면 됩니다. 그리고 까마귀를 없애서 모인 돈으로 건물을 사서 외계인 수용 한계치를 늘리고, 로켓 업그레이드를 통해 한 번에 발사 가능한 외계인 수를 늘릴 수 있습니다.

그러다가 정말 아슬아슬할 때쯤 한 번씩 빙하기가 찾아와 외계인이 전멸하고 한숨 돌린 뒤 다음 난이도로 넘어가는 구성이죠.

원동현 : 저도 개인적으로 요즘 참 찾아보기 힘든 독특한 구성의 게임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게임 내의 스트레스 요인을 해소하는 과정에서 유혈사태가 발생하지 않기 때문이죠.

신성걸 : 제 주변 사람들이 게임을 잘 모릅니다. 아니 오히려 싫어하죠. 아마 많은 게이머 분들이 이런 상황을 겪고 계실 거로 생각합니다. 게임은 마약이고 사회에 악영향을 끼친다는 소리를 너무 많이 들었어요. 저는 게임을 너무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게임이 충분히 유익한 콘텐츠가 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굳이 피가 낭자하고 누군가를 죽고 죽이는 요소가 없어도 충분히 깊이 있고, 재미있을 수 있다는 걸 보여드리고 싶었습니다.

▲ 잡고, 날리고, 얼려라

원동현 : 로넷을 개발하게 된 비화 같은 게 있을까요?

신성걸 : 제가 회사를 나오고 기획자 한 분, 프로그래머 한 분 그리고 타 회사의 사운드 한 분, 총 세 분이 저를 선뜻 도와주셨습니다. 아직 자본도 없는 터라 돈을 못 드린다고 했는데도 정말 흔쾌히 도와주신다 하셔서 정말 감사했죠.

사실 원래 그분들하고 PS4 플랫폼으로 게임을 먼저 개발하려 했습니다. 이렇게 공개해도 될지 모르겠지만, '에볼루션'이라는 제목의 사랑 이야기를 다룬 작품입니다. 하지만 생각보다 비용이 너무 많이 들어서 동결시켰습니다. 제가 지금 자본이 없기 때문에 제 아내가 다 비용을 대주고 있었거든요.

당시에 이 게임을 너무 만들어보고 싶어서 시나리오를 제가 다 직접 쓰고 아내에게 허락을 맡으러 갔습니다. 그리고 아내가 천천히 읽어보더니 정말 재밌다고 꼭 만들어보라고 말해줬습니다. 그 한 마디가 제게 정말 큰 힘이 됐고, 너무나도 즐겁게 작업할 수 있었습니다. 비록 지금은 자금 사정 때문에 개발을 멈춘 상태지만 조만간 꼭 출시할 생각입니다. 우선 로넷으로 성과를 내는 게 먼저겠죠.

그리고 사실 '에볼루션'은 제 아내와의 이야기를 다룬 작품입니다. 대부분의 대화를 실제 제 아내와의 경험을 토대로 만들었죠. 다만, 작중인물과의 성별은 서로 뒤바뀌어 있습니다(웃음).

▲ 아내와의 러브스토리를 토대로 만든 '에볼루션'

원동현 : 이야 진정한 사랑꾼이시네요.

신성걸 : 사랑꾼이라기보단 전 제 아내를 존경합니다. 항상 제가 게임을 만들 수 있게 도와준 사람이고, 지금 제가 제 욕심을 부릴 수 있도록 지지해준 사람이죠.

원동현 : 게임 내 화풍이 굉장히 독특합니다. 따로 디자이너를 두신 건가요?

신성걸 : 아니요. 제가 다 직접 그렸습니다(웃음). 제가 올해로 경력이 약 20년이 됐는데, 어릴 적부터 무언가 새로 배우는 걸 워낙 좋아해서 안 배운 분야가 없습니다. 이번 로넷 같은 경우도 그간 제가 쌓아온 지식이 집대성된 결과물이라 할 수 있죠.

예전에 제가 대학을 서양화과를 들어갔었는데 1학년 1학기 다니고 바로 자퇴했습니다. 게임 만들고 싶어서요. 교수들이 참 별난 놈이라면서 약간 이단아 취급을 받았죠.

원동현 : 게임에 대한 열정이 정말 대단하십니다. 이 게임이 8주 만에 만들어졌다고 들었는데요. 정말 놀랍습니다. 어떤 제작 과정을 거치셨나요?

신성걸 : 아까 말씀드린 것처럼 환경 다큐멘터리를 보고 로넷을 만들어야겠다 결심했습니다. 그리고 바로 아까 말씀드린 친구들한테 전화를 해봤죠. 그러자 이렇게 묻더군요.

"어떤 게임 만들 거에요?"

가장 기초적이면서 가장 어려운 질문이라 생각했습니다. 저와 회사의 정체성이자 가치 그 자체니까요. 그때 전 남들과 똑같은 수집형 RPG가 아닌 콘트롤 위주, 실력 위주로 승부를 볼 수 있는 게임을 만들자고 결심했습니다. 옛날 오락실이 유행하던 시절, 그 시절 게임들도 항상 매번 비슷한 경험을 제공하는 게임이었습니다. 실제로 워낙 많이 하면 질리기도 했지만, 그 특유의 손맛을 잊지 못해 결국 돌아오곤 했습니다. 저희는 그 시절의 손맛과 재미를 재현하고 싶었습니다.

어찌됐든 이렇게 의기투합해서 모이자마자 제작 과정은 그야말로 일사천리였습니다. 워낙 다들 실력이 좋은 친구들이기도 하고, 게임의 전반적인 구성은 이미 머리에 들어와있었기에 막힐 게 없었습니다.

원동현 : 캐쥬얼 게임의 경우, 단순하고 반복적인 플레이가 장점이자 단점으로 작용합니다. 이 점을 극복하시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셨나요?

신성걸 : 일단 이 게임은 어렵고 리드미컬합니다. 게임의 전반적인 난이도를 제 실력을 기준으로 구성했거든요. 사실 제가 게임을 좀 잘하는 편이라 대부분의 유저분들에게 꽤 어렵게 느껴질 거 같습니다.

그리고 아까 말씀드린 대로 '손맛'을 살리는 데 집중했습니다. 끊임없이 날라오는 '까마귀'를 탭 해서 없애고, '외계인'을 로켓에 태워 보내는 게 생각보다 찰진 손맛을 줍니다.

원동현 : 저도 로넷을 플레이해보니 특유의 손맛도 좋고 재밌었는데 은근히 어렵긴 했습니다. 그게 다 대표님 실력이셨군요…그나저나 대전 모드가 구비돼있던데 싱글 모드와 어떤 차이가 있을까요?

신성걸 : 대전 모드의 경우, 유저 간 실시간 대전으로 이루어집니다. 승패에서 얻어지는 데이터로 랭킹이 추산되고, 싱글에 비해 보다 많은 골드를 얻을 수 있습니다. 또한, 서로가 서로에게 외계인을 떠넘기는 방식이기 때문에, 좋은 콤보를 보여줄수록 상대방에게 막대한 부담을 안겨줄 수 있습니다.

▲ 서로에게 외계인을 떠넘기는 실시간 대전

원동현 : 정말 공들여 만드신 느낌이 물씬 듭니다. 출시 일정은 어떻게 될까요?

신성걸 : 출시 일정은 7월 말로 잡고 있습니다. 다만, IOS가 언제 승낙을 줄지 몰라서 대기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원동현 : 앞으로 계획 중이신 콘텐츠나 업데이트 방향은 어떻게 되시나요?

신성걸 : 아직 모든 건 미정인 상태입니다. 유저 분들의 플레이 동향과 피드백을 보고 바로바로 업데이트를 계획할 생각입니다. 아무래도 게임 자체가 복잡하진 않아서 대응이 어려울 거 같진 않습니다.

예전에는 회사에 설정한 목표가 있고, 방향성이 있어서 유저들의 의견을 100% 반영하진 못했습니다. 하지만, 이젠 그럴 필요가 없으니 유저가 짜증 내는 부분들은 바로바로 고치려고요(웃음).

원동현 : 목표치는 어떻게 되나요?

신성걸 : 매출은 거의 생각하고 있지 않습니다. 돈이야 여러 가지 방향으로 벌 수 있으니까요. '내가 영웅일 리 없어' 초기 유입 유저의 반 정도인 10만 명 정도가 찾아주신다면 정말 큰 성공일 거 같습니다.

원동현 : 해외 시장도 생각 중이신가요?

신성걸 : 글로벌 원빌드 형태로 출시 예정입니다. 영어는 직접 준비했고, 중국어는 아내가 도와주는 중입니다.

원동현 : 마지막으로 인벤 독자분들께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신성걸 : 참 뭐라 말씀드려야 될지 모르겠는데…일단 꼭 드리고 싶은 말씀은 이거 하나로 끝내지 않겠다는 겁니다. 전 무조건 5개는 만들 생각으로 시작했습니다. 물론 첫 작품인 만큼 부족할 수도 있습니다. 꼭 돈 쓰실 필요 없고, 이 게임을 플레이만 해주셔도 제겐 정말 큰 힘이 될 거 같습니다. 편하게 게임 해보시고 과연 다음엔 어떤 이상한 게임을 낼지 기대해보시는 것도 또 다른 재미일 거라 생각합니다.

다음 게임으로 '전격 퇴근왕'이라는 칼퇴근 게임을 준비 중입니다. 제목 그대로 칼퇴근을 하는 게 목적인 게임이죠. 저희는 앞으로 이렇게 계속 독특하고 색깔있는 게임을 만들 생각입니다. 그리고 매번 새로운 게임을 출시할 때마다 ‘아 얘네 이번에 발전했네’라는 생각 드실 수 있게 노력하겠습니다. 앞으로도 저희 성장기를 계속 지켜봐 주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