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0.11.2 업데이트로 추가된 이순신 장군(함장)과 거북선 위장(충무함 기반)

최근, 0.11.2 업데이트와 함께 '월드오브워쉽'엔 한국 사람이라면 호불호를 가리지 않고 좋아할 수밖에 없는 콘텐츠가 추가되었다. 이순신 장군, 그리고 동아시아 트리의 한국 함정인 '충무'함에 적용되는 거북선 위장까지. 솔직히 싫어할 수가 없다. 나라의 위인 중에도 평가가 갈리는 인물들이 없는 건 아니지만, 세종대왕과 이순신 장군까지는 논쟁의 여지가 없는 언터처블 아니던가.

꽤 이례적인 일이기도 하다. 대전 참전 당사국도 아니고, 개발사와는 지구 반대편이라 해도 좋을 만큼 멀리 떨어져 있으며, 심지어 한국 서버는 아시아 서버에 통폐합된 지 오래인 상황에서 한국의 전설적인 제독과 함선이 게임 내 콘텐츠로 등장한 것이다. 그간 워쉽이나 블리츠 등에서 역사적인 제독들이 등장한 적이 없지는 않지만, 솔직히 이순신이 등장할 거란 기대는 별로 하지 않았던 것이 사실이니까.

때문에, 서둘러 연락을 하고 약속을 잡았다. 월드오브워쉽의 한국 커뮤니티를 담당하는 전준용 매니저, 그리고 APAC의 프로덕트 총괄 프로듀서인 '호세리토 히메네스'와 이번 콘텐츠 개발 과정에 대해 대화를 나눠 보았다.



아닌 말로도 '쉽다'고 할 수 없었던 개발 과정

대화는 전준용 매니저의 원격 프레젠테이션으로 시작되었다. 약속 시간 직전 갑작스러운 COVID-19 감염으로 자칫 무산될 뻔 했지만, 투병 투혼을 발휘한 전준용 매니저가 자택에 카메라를 마련해 발표를 진행할 수 있었다.

예상대로, 이순신 장군과 거북선 위장의 개발 과정은 쉬울 수가 없었다. 다소 의아했던 인물 선정 사유는 의외로 간단했다. 지난해 6월 진행한 설문조사에서 이순신 장군은 64%의 득표율을 얻으며 한국 플레이어들이 가장 선호하는 역사적 제독으로 꼽혔다. 2위로는 손원일 제독, 윤영하 소령과 안희현 중령 등이 그 뒤를 이었다.

▲ 테미스토클레스...?

결과를 확인한 후 한국 오피스와 APAC 총괄 팀은 본사에 콘텐츠 개발 의사를 타진했고, 최초엔 거북선 위장과 백의종군 버전의 이순신 함장, 제독 버전의 이순신 함장까지 일반 등급과 전설 등급 함장을 모두 기획했으나 본사와의 의사 교환 과정에서 거북선 위장과 일반 함장 버전의 이순신 장군이 추가되는 것으로 결정이 이뤄졌다.

본격적인 개발이 시작된 이후엔 말 그대로 고난의 연속. 가장 큰 문제는 이순신 장군의 초상화와 거북선 모두 실제 존재했던 그대로를 묘사한 사료가 전혀 없다는 점이었다. 현재 대한민국에서도 널리 쓰이는 이순신 장군의 초상화는 모두 기록을 참고한 창작이며, 거북선 또한 기록이 존재할 뿐 실제 함선이 남아 있는 건 없다. 게다가 거북선을 그대로 만드는 것이 아닌, 충무함에 맞춘 위장으로 만들어내야 하니 더욱 제한적인 프로젝트가 될 수밖에 없다.

▲ 최초 기획은 두 종의 함장으로 기획되었으나 결국 하나로 압축되었다.

때문에, 이번에 만들어진 이순신 장군의 포트레이트(게임에 쓰인 초상)은 오로지 워게이밍의 창작으로 이뤄져 있으며, 충무함의 위장에 쓰인 거북선의 요소들 또한 가장 최근의 연구 결과를 재해석해 적용되었다. 이 과정에서 한국 오피스는 실제 개발을 담당하는 본사 측에 당시의 역사적 배경과 정서, 문화적 특징 등을 꾸준히 설명했어야 했다.

동유럽권에 위치한 워게이밍 본사 입장에서는 프로젝트 진행 이전까지 이순신이나 거북선에 대해 단편적인 지식 외에는 아는 바가 없었기에 한국인 입장에서 볼 때는 고증에 맞지 않다거나, 너무 중국색을 띄는 디자인 결과물이 나오기도 했기 때문이다. 한국 오피스는 이런 부분을 다듬기 위해 수많은 사료와 수정 사항, 그리고 수정을 해야 하는 이유를 전달해야 했다.


게임 상에 구현된 이순신 장군의 모습은 이 과정의 결과물이다. 기존 초상화를 참고하기 위해 법무팀까지 준비했지만, 끝내 창작으로 노선을 정한 이후 최대한 그럴싸한 얼굴을 만들어내기 위해 각 오피스가 연계해 프로젝트를 진행했으며, 복장인 두정갑의 경우 야스쿠니 신사에 보존되어 있는 (고종 황제의 것으로 추정되는)의장용 두정갑을 참고한 것으로 보이는데, 용 모양의 견철이나 투구의 모습 등에서 이를 확인할 수 있다.

▲ 두정갑의 견철 등은 사진으로도 찾아볼 수 있다.

'거북선 위장'의 제작은 또 하나의 난관이었다. 월드오브워쉽은 배의 모든 부분에 각각 다른 두께의 장갑과 피탄 여부가 적용되기 때문에 게임의 밸런스 유지를 위해 많은 부분이 제한되어야 했다. 대표적인 부분이 피격 판정과 물리엔진 연동 밸런싱에서 문제가 발생할 수 있었던 '노'의 삭제. 누각과 돛대의 표현은 기존 충무함의 배치를 따라가되, 여러 사료를 참고해 최대한 고증에 맞춰 표현되었다. 무기 체계 또한 거북선에 맞춰 조금씩 달라졌는데, 대공포의 경우 총통으로 표현되었고, 선미에서 투하하는 폭뢰 또한 시대적 배경에 맞춰 달라진 모양새를 띄고 있다.

▲ 대공포 대신 달려 있는 총통의 모습도 확인 가능



APAC 총괄 프로듀서와의 인터뷰

콘텐츠에 대한 소개가 끝난 후, APAC 지역의 총괄 프로덕트 프로듀서인 '호세리토 히메네스'와의 화상 인터뷰가 진행되었다.

▲ APAC 프로덕트 프로듀서 '호세리토 히메네스'


Q. 먼저 가볍게 본인과 맡은 일에 대해 소개해줄 수 있나?

- 만나서 반갑다. APAC(아시아태평양) 지역의 프로덕트 프로듀서인 호세리토 히메네스라고 한다. 현재 한국을 포함해 아태 지역에 위치한 14개국의 서비스를 담당하고 있고, 게임 서비스와 관련된 모든 사항을 일 단위로 관리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APAC에는 현재 세 개의 오피스가 존재하고, 이 모든 오피스의 업무를 총괄한다.


Q. 거북선 위장에 대해 말해보자. 그간 등장한 위장은 모두 가상이거나, 철제 함선을 배경으로 해 왔는데, 실존했지만 기록으로만 남은 목제 함선을 위장으로 만드는 과정에서 오는 어려움은 없었나?

- 거북선과 이순신 장군 모두 역사적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는 점이 대표적인 어려움이었다. 다른 콘텐츠 콜라보레이션의 경우 완벽한 표본이 존재하기에 우리가 따로 조사에 힘을 쏟을 필요가 적었지만, 이번 프로젝트의 경우 역사적 문헌이나 사료를 찾아내기 위해 여러 팀들이 힘을 모아야 했다.

한국 현지 팀은 물론 아트, 개발, 법무 팀까지 자료 조사에 최선을 다 했고, 여러 단계의 협의를 거쳐가며 개발을 하다 보니 아무래도 이전의 다른 콘텐츠를 개발할 때와는 파이프라인에서 다소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었다.

이순신 장군의 복식이나 거북선의 외양 표현에 있어서도 다른 콘텐츠 대비 더 심혈을 기울여야 했다. 한계 내에서 최대한의 디테일을 뽑아내고 싶었고, 역사적 인물과 함선이 가진 스토리텔링도 함께 담고자 했다. 거북선의 머리 부분을 보면 입에서 연기가 뿜어져 나오는 걸 볼 수 있는데 이런 부분들이 작업의 결과라 할 수 있다.


Q. 개발 과정에서 흥미롭게 느껴진 부분이나, 특별히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는가?

- 한국 사람이 아닌 내 입장에서는 참 특별한 경험이었다. 일단 거북선 자체가 신기하게 다가왔다. 내 나라의 역사에서 그런 배는 찾아볼 수 없기 때문이다. 또한 나를 포함한 주 개발진이 한국인이 아니다 보니 미디어를 통해 알려진 이미지가 아닌, 실제 사료를 기반으로 접근해야 한다는 점이 다르면서도 흥미로운 부분이었다.

아트 팀과 협의하는 과정도 즐거운 경험이었다. 그들 또한 한국인들이 아니다 보니 한국의 역사에 대해 설명해야 했고, 이순신 장군의 일대기와 업적에 대해 수업을 진행해야 했으며, 그간 그려진 다양한 초상화들을 모아 외모를 비교하고, 추측하는 과정을 가져야 했다.

▲ 한계 내에서 디테일을 짜내기 위해 노력해야 했다.


Q. 한 가지 아쉬운 점이라면, 이순신 장군이 전설적인 제독이 아닌 일반 함장으로 출시되었다는 점이다. 한국에서 이순신 장군이 가진 위상을 생각하면 한국인 입장에서는 다소 아쉬운 부분인데, 구체적인 결정 과정은 어떻게 이뤄진 것인가?

- 개발 과정에서의 한계 때문이라 말하고 싶다. 전설 제독 같은 경우 차별화된 기술을 가져야 하고, 이는 곧 그렇게 만들어진 기술이 게임 내 밸런스에 미칠 수 있는 영향을 모두 고려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검토 과정은 굉장히 오래 걸리는 작업이고, 이를 강행할 경우 개발 소요 시간이 너무 길어질 수밖에 없었다.


Q. APAC을 총괄하는 자리이니 질문하자면, 동아시아엔 대전기 참전 국가가 드물기에 이번 프로젝트와 같은 로컬 지향 콘텐츠의 기획이 쉽지 않으리라 생각한다. 이런 콘텐츠들의 기획 과정은 어떻게 이뤄지는가?

- 워게이밍 입장에서는 언제나 유저 서비스를 하면서 어떤 콘텐츠를 제공하느냐에 대해 깊이 고심한다. 월드오브워쉽은 오랜 기간 서비스를 해 오고 있고, 글로벌 서비스를 제공할 만한 기반이 마련되었기 때문에 서비스중인 어떤 국가의 콘텐츠라 해도 안정적으로 할 수 있다는 믿음은 있다. 우리는 여러 문화권을 포용하고 다양한 시선에서 이를 게임 내 콘텐츠로 녹여내고자 노력하고 있다.


Q. 알다시피 아시아권 국가들은 인접해 있으면서도 정서와 문화 등이 매우 상이한 편이다. APAC 지역에서의 서비스 과정에서 어려운 부분이나 다른 지역과의 차이점은 없는가?

- 운영 자체가 매우 도전적인 일이라 생각한다. 게임 내에서 게이머의 만족도를 끌어올리는게 가장 중요한 과제이기에 무엇이 이를 가능케 하는지 파악하는 것이 굉장히 중요하다. 최대한 많은 게이머들을 만족하게끔 노력하면서도 문제가 될 만한 부분이 없는지 사전에 검토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동아시아는 역사적으로 많은 문화적, 역사적 갈등이 존재해왔기에 이런 부분에서 생길 수 있는 문제 방지를 위해 긴 자료 조사 시간을 가져야 한다. 특정 문화권만 선호하거나, 반대로 싫어할 수 있는 콘텐츠를 막고, 민감한 부분들을 건드리지 않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Q. 앞으로 또 다시 한국 지역에 맞춘 콘텐츠가 등장한다면, 무엇이 될 수 있을까?

- 이전에 진행했던 설문 조사들이 기반이 되긴 할 것이다. 콘텐츠 구현에 있어 각 게이머의 만족도를 최대한 높이기 위한 방법을 고려하고 있으며, 한국의 역사적 인물들과 군함들이 아마 후보가 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 비교적 최근 추가된 범아시아 순양함 '세종'함


Q. 마지막으로, 한국에서 게임을 즐기고 있는 월드오브워쉽 게이머들에게 남기고 싶은 말이 있는가?

- 개인적으로 이번 프로젝트의 개발 과정이 무척 즐거웠다. 비록 나는 한국인이 아님에도 즐거운 경험이었고, 이와 같은 경험을 할 수 있게 기반이 되어 준 한국 게이머분들에게 감사의 말을 전하고 싶다. 한국 게이머들의 열정적인 피드백과 의견 제시는 언제나 우리에게 큰 영감과 힘이 된다. 이런 점에 대해 감사하다 말하고 싶고, 앞으로도 적극적인 참여를 부탁드리는 바다. 우리 또한 더 즐거운 게임을 만들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