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를 대표하는 게임이 있다는 건 참 좋은 일입니다. 그건, 기자에게도, 회사에도 마찬가지죠. '이거, 그 게임 만든 회사야'라는 말로 거의 모든 걸 설명할 수 있거든요. 레드 캔들 게임즈가 그렇습니다.

영화에, 넷플릭스 드라마로 성공적인 영상화를 이끈 첫 작품 '반교'는 장제스 치하의 대만 계엄 시기를 여러 인물과 호러 요소로 심도 있게 그려냈습니다. 3D로 보다 그래픽 퀄리티를 높인 '환원'은 민속 문화와 불교, 전통 신앙이 뒤섞인 1980년대 대만을 배경으로 수준 높은 공포와 그 속에 이야기를 담아 전달했습니다. 레드 캔들 게임즈는 그간 이야기에 강점을 둔 어드벤처로 팬들에게 이름을 알렸죠.

이렇게 특정 게임이 회사를 대표하기 시작하면 다음 게임에 대한 기대도 덩달아 높아집니다. 특히 어드벤처 게임으로 높은 평가를 받았던 레드 캔들 게임즈기에 신작 역시 여기에 맞춰 기대할 수밖에 없고요. 그런데 레드 캔들 게임즈는 다음 게임으로 사이드뷰 액션을 선택했습니다. 그것도 2D 기반에 타이밍과 반격을 중심으로 하는 꽤 하드코어한 액션으로 말이죠. 이럴 때는 그간 어드벤처 성향을 강조했던 회사의 특징이 색안경을 쓰게 만듭니다. 너희가 이런 게임도 잘 만들 수 있겠느냐는 거죠.

그래서 궁금했습니다. 그들의 새로운 이야기가 매력적으로 그려질 수 있을까 하는 부분에서요. 그리고 개발사를 통해 미리 받은 게임의 테스트 버전. 이제 겨우 크라우드 펀딩을 시작했고, 플레이 타임도 수십 분, 출시도 1년 정도가 남은 이 게임이 충분히 새로운 매력을 보여줄 수 있겠다 확신할 수 있었습니다.


게임의 큰 틀은 사이드 뷰로 펼쳐지는 플랫포머 액션입니다. 좀 더 정확히 보면 플랫폼 요소보다는 적과 합을 겨루는 액션 쪽에 좀 더 치우쳐져 있고요. 적을 제거한다는 느낌보다는 합을 겨룬다는 게 꽤 어울리는 표현인 게 적 하나하나의 공격이 꽤 위협적으로 그려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레드 캔들 게임즈는 이번 작품의 개발에 있어 2D 안에서의 '세키로' 구현을 큰 목표로 삼았습니다. 죽음에서 되살아나고 강력한 적의 공격에 쉽게 나자빠지는 종잇장 같은 내구력도 비슷하죠. 하지만 가장 큰 부분은 패링, 일명 튕겨내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적의 타이밍에 맞춰 방어키를 눌러 공격을 막아내면 반격으로 적에게 부적을 붙일 수 있는데요. 이 부적을 터트려 보다 큰 피해를 줄 수 있고요.

대개 이쪽 게임이 그렇듯 회피의 성능이 정말 좋아 구르기만 잘해도 공격 대부분은 흘려보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일반 공격보다는 저 부적 폭발 공격이 훨씬 큰 피해를 줄 수 있으니 이쪽을 더 선호하게 되고요. 또 한 명의 공격만 튕겨내도 다음 부적을 일직선 상으로 여럿의 적에게 붙일 수 있습니다. 구르기 자체는 효과적일지 몰라도 무적 판정이 끝난 이후에는 무방비일 수밖에 없는데 적 다수가 몰려있다면 구르기 이후에 너무 취약하거든요.

어쨌든 개발진이 말한 세키로식 플레이는 체간이나 기존 소울라이크보다 구체적이면서도 먹먹한 스토리 전개보다는 이 패링 액션 그 자체에 기준을 둔 것처럼 보입니다.


▲ 적 다수가 몰려든 상황이 많아 패링 반격에 익숙해져야 게임이 쉬워지는 편

회피와 패링으로 게임을 구성한 사이드뷰 게임은 더러 있었습니다. 메트로바니아 성향이 적은 게임을 기준으로 본다면 '블레스피모우스'나 '솔트 앤 생츄어리' 같은 게임도 당장 기억하실 테고요. 나인 솔즈가 이들 게임보다 더 훌륭한 맛을 낼 수 있는 가능성은 매끄러운 그래픽 연출에 있습니다.

굵직한 선에 배경과 확연히 구분되는 선명한 색으로 화사하게 표현된 캐릭터들의 움직임은 애니메이션을 보는 듯 구현됐습니다. 이게 일반적인 셀 애니메이션처럼 프레임이 뚝뚝 끊어지는 느낌 대신 프레임률을 높여 굉장히 매끄럽게 그려내고 있죠. 세키로와 함께 할로우 나이트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했는데 그쪽은 그래픽 연출에서 더 두드러진 느낌입니다.

덕분에 관절의 움직임이나 전체적인 모션도 여러 파츠가 따로따로 움직이는 식이 아니라 움직임에 맞춰 부드럽게 연출되죠. 아마 레드 캔들 게임즈의 첫 작품인 '반교'를 생각했다면 일취월장한 2D 그래픽에 같은 회사라는 걸 쉽게 믿지 못할 수 있을 정도로요.

그런데 이런 매끄러운 움직임은 NPC나 플레이어 캐릭터에게만 적용되어 있습니다. 적들 역시 분명 같은 방식의 캐릭터 구현이 이루어졌는데 연출상으로 모션이 크고 관절을 부각해 움직임을 크고, 둔탁하게 보이도록 하고 있거든요. 이건 플레이어를 배려한 듯한 부분인 것 같고요. 적들이 플레이어처럼 하나의 모션으로 공격을 이어나간다면 패링과 회피가 중심인 게임에서 그에 따른 반응을 하기 어려웠을 겁니다.

적의 둔탁한 움직임은 타격감이라는 부분에서도 꽤 효과를 드러내는데요. 천천히 들어 올렸다 한번에 쾅하고 내리치는 동작을 튕겨낸다면 그 무게감까지 반동으로 표현되거든요. 부드러운 모션은 플레이어 조작에 대한 빠른 반응으로, 적의 느린 움직임은 플레이어에게 대응할 판단 여지를 주는 동시에 타격감을 살린 겁니다.

개발진은 게임을 공개하기 전까지인 지난 2년 동안 이 액션과 전투 시스템에 많은 공을 들였다고 밝혔는데요. 지금 단계에서도 그 부분이 훌륭하게 구현된 셈입니다.




그래픽과 함께 게임의 만듦새를 더한 건 독특한 세계관입니다. 앞선 액션과 그래픽이 그간의 레드 캔들 게임즈와 다른 색을 냈다면 이쪽은 확실히 게임사 색이 나죠. 사이버펑크와 아시아 색이 강한 종교를 꽤 이색적으로 섞어냈거든요.

기계로 대체된 몸과 색감, 네온 빛이 번쩍이는 모습은 블레이드 러너 등으로 미디어를 통해 각인된 사이버펑크의 그것과 같습니다. 여기에 인간을 양식으로 삼는 외계 종족과 먹지 않은 인간의 머리를 뜯어내는 기계를 운영하는데요. 그 처리 과정을 마치 신의 부름이라도 받는다는 듯 떠받드는 인간은 기존 문명과 단절된 퇴행 문명으로 포스트 아포칼립스와 같은 모습을 보여줍니다.

포스트 아포칼립스나 사이버펑크 같은 부분이야 여러 게임에서 자주 모습을 볼 수 있는 부분입니다만, 게임 전체에 깃든 도교 문화는 아마 쉽게 만나기 어려웠던 내용일 겁니다. 외계 종족이 건설한 공간은 신선들이 살아 도교에서는 성산으로 불리는 곤륜산을 딴 신(新)곤륜으로 불리고 도(道)법에 따라 무위(無爲)를 지향하죠. 복수를 원동력으로 행동하는 주인공의 움직임과 그 내용과는 꽤 상충하는 부분이기도 하고요. 여기에 경락도나 신선의 꽃으로 불리는 연꽃 등을 다수 그려내기도 하는 등 여러 동양적 요소들이 산재해 있습니다.

데모 버전에는 이 부분이 상세하게 표현되지는 않았지만, 이것들이 미래 기술이 발달한 우주 기술과 어떤 식으로 엮이는가에 따라 게임의 분위기는 더 많이 달라질 겁니다. 개발진도 동양적 세계관에 무게를 둬 게임을 도교(Taoism)의 Tao를 따 타오펑크라고 부르기도 하고요.

▲ 미래 기술이 적용된 세계임과 동시에

▲ 도교적 요소가 더해진 독특한 세계관

다크 소울의 유행과 함께 소울라이크라는 말이 무분별하게 퍼져 나갈 적 그저 어려움을 소울류라고 착각하거나 상업적으로 이용하는 움직임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죽음과 그에 대한 마땅한 배경 설명이 없다면 그저 목숨 무한인 액션 게임과 다를 바 없을 겁니다. 직접 소울라이크를 표명하지는 않았음에도 죽음과 부활을 도교적 사상과 엮어 풀어낸 나인 솔즈는 그래서 더 돋보이고요.

앞서 설명한 인간 양식을 포함해 워낙 꿈도, 희망도 없는 이야기를 그리다 보니 그에 따른 잔혹도도 덩달아 높게 그려지고 있습니다. 그간 잔혹한 표현을 굉장히 에둘러 연출했던 걸 생각하면 이번에는 꽤 적나라한데요. 고기로 쓰이는 인간의 사체나 죽음을 기쁘게 받아들이는 인류 등 잔혹성을 덤덤하게 그려내서 더 섬뜩하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환원 이상의 공포를 기다렸던 팬이라면 조금 의외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지만, 레드 캔들 게임즈의 새로운 도전은 첫발을 잘 내디딘 모양새입니다. 2D 액션, 나아가 레드 캔들 게임즈의 작품을 즐겼던 이들이라면 2023년 기대작 리스트에 당당히 한 줄 적어 올릴만한 가능성도 보여줬고요. 부디 지금의 분위기대로 출시일까지 잘 개발되길 바랄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