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무라이의 길4' 스팀 상점 페이지 공식 스크린샷

'사무라이의 길'은 지금으로부터 약 20년 전, 일본의 게임 개발사 어콰이어에서 발매한 PS2용 게임입니다. 한국어도 지원하지 않고, 게임 속 시대적 배경도 배경이기에 국내에서는 다소 생소한 시리즈였지만, 나름 팬층을 확보할 만큼 익살스러운 유머와 깊은 게임성을 가진 오픈월드 액션 RPG였습니다.

정식 넘버링 타이틀로는 4편까지 제작된 '사무라이의 길'의 공통점은 하나같이 일본의 시대극, '요짐보'나 '자토이치'를 떠오르게 하는 스토리로 전개된다는 점입니다. 시리즈마다 시대상이나, 배경이 다르지만 언제나 주인공은 떠돌이고, 어떤 마을에서 벌어지고 있는 암투에 휘말리게 되죠. 나름 자유도도 높아서 플레이어의 선택에 따라 마을의 구원자가 될 수도, 지금 악당보다 더 악독한 인물이 될 수도 있는 것이 '사무라이의 길'의 재미 요소였습니다.

안타깝게도 정식 시리즈는 2011년 출시된 '사무라이의 길4'에서 멈춰버렸지만, 개발사인 어콰이어는 2020년 돌연 새로운 게임을 출시했습니다. 오픈월드 형태였던 원작과 다르게 핵앤슬래시 방식의 게임플레이를 채택했고, 그만큼 자유도보다는 전투와 던전 탐험에 초점을 뒀습니다. '사무라이의 길 외전 KATANAKAMI(이하 사무라이의 길 외전)'는 그렇게 갑자기 찾아온 '사무라이의 길'이었습니다.

게임명: 사무라이의 길 외전 KATANAKAMI
장르명: 액션
출시일: 2022. 3. 31.
개발사: Acquire
서비스: 아크시스템웍스
플랫폼: PlayStation 4, Nintendo Switch




'사무라이의 길 외전'은 원작조차 잘 알려지지 않은 국내 게임 시장에, 첫 출시 이후 2년이 지난 뒤 정식 한국어화를 거쳐 출시된 게임입니다. '갑자기 왜?' 라는 생각이 먼저 들긴 했지만, '사무라이의 길' 시리즈를 한국어로 즐길 수 있는 뜻밖의 기회가 아닐 수 없었습니다.

게임의 스토리는 아주 간단합니다. 어느 날 길을 걷던 주인공은 대장간 주인의 딸이 사채업자에게 납치당하는 장면을 보고, 갑자기 대장간 주인에게 납치당한 딸을 되찾을 수 있도록 도와주겠다 합니다. 대장간 주인과 대화하는 선택지를 보면 딸을 되찾을 경우 결혼시켜달라고 요구할 수 있는데, 원래 이렇게 말도 안 되는 시리즈니 크게 신경쓰지 않아도 됩니다.

그렇게 대장간의 빚을 갚기 위해 일을 시작한 주인공은 낮에는 대장간 일을 돌보며, 밤에는 대장간 앞에 있는 큰 나무를 통해 죽은 자들의 세상인 '명계'로 탐험을 떠납니다. 밤에는 명계에서 칼을 제작하는 데 필요한 소재를 모으고, 낮에는 모아놓은 소재로 대장간 일을 도와 빚을 모두 갚는 게 게임의 목적인 셈입니다.

▲ 그냥 원래 이런 게임입니다

또, '사무라이의 길 외전'에는 원작에 등장했던 등장인물과 세력도 나옵니다. 역참 마을과 쿠로후 가문, 적옥당이라는 세력은 서로 견제하는 식으로 파벌을 형성하고 있는데, 대장간의 빚을 모두 갚기 위해서는 이 세력들을 잘 이용해 이윤을 창출해야 합니다.

그중에도 가장 간단한 것은 바로 '칼 쓰는 일이 많아지도록' 하는 것인데, 세력 사이의 긴장감이 조성될수록 싸움에 필요한 병장기인 칼의 수요가 늘어나게 되죠. 무턱대고 모든 세력의 의뢰를 잘 들어주는 대장간이 되는 것보다, 세력 사이를 이간질할 수 있는 약삭빠른 대장간이 될 필요가 있습니다.

한 세력의 편만 들어주거나, 의뢰의 만족도가 떨어지게 되면 밤을 틈타 다른 세력이 대장간을 습격하는 일도 생깁니다. 물론, 주인공의 힘이라면 어렵지 않게 물리칠 수 있지만, 거기서 기력을 써 버리면 자칫 명계 여정을 하지 못하고 하루를 소비해야 할 수도 있고, 또 머지않은 미래에 어떤 우환이 닥칠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이처럼, 대장간을 운영에 대한 자유도 측면에서는 원작의 느낌을 조금이나마 맛볼 수 있다는 점은 나름대로 의미를 갖습니다.

▲ 세력 사이의 긴장감을 유지해야 칼이 잘 팔립니다

▲ 균형을 못 맞추면 컴플레인이 들어오니 주의

대장간 운영도 물론 중요하지만, 사무라이의 길의 주요 콘텐츠는 바로 층으로 나뉘어진 던전을 계속 나아가며 소재를 확보하는 '명계 탐험'입니다. 입장할 때마다 그 구조가 계속 바뀌고, 탐험 도중 죽을 경우 가진 모든 것을 잃어버린다는 점에서 로그라이크 형태의 게임플레이를 갖췄다고 볼 수 있죠.

여느 던전 크롤러 형태의 게임들과 마찬가지로, 일정 이상의 층을 통과하면 탐험을 마칠지, 아니면 조금 더 용기를 내 밑으로 내려가볼 것인지 선택할 수 있고, 10층 단위에 도착할 때마다 보스 몬스터를 마주하게 됩니다. 보스 몬스터는 귀한 소재나 영약 등 게임플레이에 도움이 되는 아이템을 떨어뜨리며, 이런 식으로 탐험을 반복하면서 소재와 돈을 버는 것이 '사무라이의 길 외전'의 시작이자 끝입니다.

그저 던전 탐험이라고 하면 매우 단순하게 들리지만, 생각보다 신경 써야 할 것이 많습니다. 바로 소지품 창이 아주 제한적이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더 많이 내려가고 싶으면 칼과 음식을 넉넉히 챙겨가야 하는데, 그렇게 되면 던전에서 발견한 칼이나 소재를 넣을 공간이 부족해지죠. 쓸모 없어 보이는 칼도 분해하면 재료가 되기에 다 소중한데, 그렇다고 모조리 들고 나올 수도 없이 참 난감합니다.

물론 가끔가다 숨겨진 대장장이가 사는 층이나, 먼저 공격하지 않는 상냥한 괴물들이 모여 사는 마을에 가게 되면 소지품을 분해하거나, 던전 밖으로 소지품을 보낼 수 있는 배달 서비스를 이용해 정리할 수 있습니다. 이런 요행을 언제나 바랄 수는 없기 때문에 늘 소지품 관리를 염두에 두고 탐험하는 마음가짐이 필요하죠.


전투 시스템은 원작 '사무라이의 길'과 놀랄 만큼 유사한 모습을 갖추고 있습니다. 아마 등장 인물과 세력, 특유의 개그 요소를 제외하면 거의 유일하게 원작의 느낌을 살려낸 요소라고 할만합니다.

'사무라이의 길 외전'에는 약 100여 종이 넘는 도검이 등장하는데, 이 칼들은 모두 각각 다른 '자세'를 가지고 있습니다. 주인공이 자세를 바꾸는 게 아니라 장착하는 검에 따라 자세가 바뀌고, 그에 따라 공격하는 모션 또한 달라집니다. 또 모든 검은 쓰면 쓸수록 경험치가 늘어나는데, 이를 통해 각 검이 가진 고유한 동작들을 해금할 수 있습니다.

원작과 마찬가지로 주인공은 한번에 3개의 검을 장착하고, 전투 도중 언제든지 바꿔가며 적을 상대할 수 있습니다. 모든 검은 각자 내구도가 있는 만큼 탐험을 오래 하고 싶다면 내구도가 높은 검을 가지고 다니는 것이 좋겠죠. 물론, 탐험 도중 죽어버리면 가지고 있던 검도 전부 잃어버리니, 언제나 옷장에 여벌 검을 넣어두는 것도 중요합니다.

▲ 전투는 나름 원작 감성에 충실합니다

다시 봐도 '사무라이의 길 외전'은 2022년 3월 국내 출시된 신작이라고 하기에는 기대감보다 의문이 먼저 드는 게임입니다. 원작도 잘 알려지지 않은 게임의 외전이 한국어로 출시되었으니, 이러한 궁금증을 갖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죠.

이렇게 반복적인 게임들이 으레 그렇듯, 전반적인 볼륨이 너무 작게 느껴지는 것도 아쉬운 점 중 하나입니다. 취향이 맞는다면 모르겠지만, 매일 아침 대장간을 경영하고, 밤에는 던전을 탐험하는 일도 하다보면 지루해지기 마련입니다. 물론, 여러가지 의뢰나 돌발 상황이 그 지루함을 덜어내 주기는 하지만, 기본적인 게임플레이 구조가 제한되어 있기에 언젠가는 지루함이 찾아오게 되어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미 많은 이들에게서 잊힌 게임이 외전으로나마 정식 한국어화와 함께 출시된 것은 꽤 반가운 경험이었습니다. 반복적인 던전 탐험과 4편까지 이어진 시리즈로 검증받은 전투 시스템, 대장간 경영 요소에 관심이 있다면 한 번 도전해 보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