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C 2022 페스티벌이 한창 진행되는 동안, 2전시장에는 유독 화려한 자켓을 입은 친구들이 눈에 띄었습니다. 그 자켓 어디서 샀냐고 물어보고 싶었지만, 도무지 그럴 용기는 나지 않았지요. 그런데 그 친구들이 쭈뼛쭈뼛 서 있던 저를 발견했는지, 먼저 와서 게임 한 번 해보지 않겠냐고 물어보는 겁니다.

알고 보니, 이들은 프랑스 국립게임대학원의 학생들로, 학교 프로젝트를 전시하기 위해 부산을 방문한 개발자들이었습니다. 어떨결에 플레이해 본 이들의 게임 'ABEL'은 중간중간 공간이 뒤틀리며 나타나는 시각과 음향 효과가 상당히 인상적인 게임이었습니다. 마치 그들의 자켓처럼 말이죠.

문득, 게임 개발을 전문으로 가르치는 프랑스의 대학원의 교육은 어떤 식으로 진행되는지 궁금해졌습니다. 다행히, 흔쾌히 인터뷰를 수락한 게임 디자이너 조이 셈페(Zoe Sempe)로부터 프랑스 국립게임대학원과 교육과정, 그리고 학교 프로젝트로 ABEL을 개발하게 된 계기에 대해 다양한 것들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 왼쪽부터 루이 기요모(Louis Guillaumeau), 조이 셈페(Zoe Sempe)


■ "프랑스 학교에서 BIC는 엄청 유명한 행사, 여기 오려고 일부러 한국어 넣었어요"

Q. 먼저 자기 소개를 부탁합니다. 프랑스에서 온 학생들이라고 들었습니다.

= 프랑스 국립게임대학원(CNAM ENJMIN)에서 온 조이라고 합니다. 다섯 명이 한 팀이 되어 3개월간 개발한 프로젝트인 'ABEL'을 전시하기 위해 BIC 페스티벌 2022에 참가했습니다.


Q. 프랑스 국립게임대학원이라니! 혹시 학교 소개를 좀 해 주실 수 있나요?

= CNAM ENJMIN은 보르도 근처에 있는 앙굴렘이라는 도시에 위치한 게임 개발에 특화된 대학원입니다. 게임 개발과 관련해 프랑스에 있는 유일한 공립학교이기 때문에, 프랑스의 다른 대학교와 마찬가지로 많은 시험을 치러 소수의 학생만 입학할 수 있는 과정입니다.

학생들은 모두 저마다 특화된 분야를 갖게 되는데, 현재 게임 디자인 쪽으로 12명, 프로그래밍 12명, 아트 6명, 운영 6명, 사운드 디자인 6명과 인체공학 분야 등 소수의 인원들이 함께 게임 개발에 대한 공부를 하고 있습니다. 따로 경쟁하는 것은 없이, 서로를 도우면서 개발을 하고 있죠.

▲ 매년 세계적인 국제 만화 페스티벌이 열리는 도시 '앙굴렘'

Q. 앙굴렘이라는 도시는 처음 들어봐요. 보르도는 많이 들어본 도시인데, 와인이 그렇게 유명하다면서요.

= 하하. 맞아요. 앙굴렘은 코믹스(만화)로 유명한 도시예요. '아스테릭스와 오벨릭스' 같은 만화 혹시 아세요? 상당히 예술, 창의성과 관련된 도시로, 게임대학원 말고도 많은 예술 대학이 같이 있는 곳입니다.


Q. 들으면 들을수록 'ABEL'의 개발 과정이 궁금해 지네요. CNAM ENJMIN에서 게임 개발은 어떻게 이뤄지는 편인가요?

= 2년제 대학원으로, 매년 게임 개발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어요. 이번 프로젝트는 '10분짜리 게임'이어야 한다는 것 외에 아무런 조건 없이, 주제도 자유로웠고요. 기본적으로 어떤 게임이든 만들고 싶은 것을 만들 수 있죠.

프로젝트를 시작하는 단계에서는 학생마다 만들고 싶은 주제를 피칭하는 과정을 거쳐요. 그 중 교수님이 선택한 주제들에 대해서, 관심이 있는 학생들끼리 모여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형태죠. 모든 학생들이 아이디어를 제시하고, 서로 돕는 분위기가 자연스럽습니다.

'ABEL'을 개발한 프로젝트에 대해서는, 처음에 아티스트 (사운드 디자이너와 비주얼 담당) 두 명이 전반적인 분위기에 대해서만 피칭했던 것이었어요. '리미널 스페이스'를 소재로 하는 게임이 만들고 싶다면서 말이죠. 그저 분위기만 구상했을 뿐, 스토리는 어떻게 될지, 어떤 게임플레이를 가질지는 정해진 것이 없었어요.

그래서 제가 이 주제에 관심을 가졌고, 멤버들이 각자 어떤 게임을 만들고 싶은지 알기 위해 많은 대화를 나눴어요. 리미널 스페이스를 주제로 하지만 호러는 아닌, 그런 게임을 만들고 싶다고 하더라고요. 또 함께 작업한 테크 아티스트는 프로그래밍을 통해 게임의 애니메이션을 만들어보고 싶다는 의견을 냈는데, 이 모든 것들을 고안해서 비교적 게임플레이가 쉬운 형태로 개발을 구상해야 했습니다.

스토리 측면에서는 제가 개인적으로 경험했던 것들, 그리고 인상에 남았던 것들을 풀어내기로 했고, 모든 팀원들이 잘 도와준 덕분에 프로젝트를 완성할 수 있었습니다.


Q. 개인적인 경험을 토대로 스토리를 구상했다니, 혹시 게임 속의 비극적인 일들이 실제로 일어났던 것인가요?

= 아니요. 그렇지는 않아요. 실제 사건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제가 경험했던 죄책감이라든지, 누군가를 잃었을때의 감정, 그런 것들을 게임을 통해 전달하고 싶었다는 것이 맞을 거예요. 또, 자신의 진심을 대면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 그리고 자신을 용서하는 과정들을 게임플레이와 스토리에 녹여내고자 했습니다.

▲ 익숙하지만, 낯설고 불편한 느낌을 주는 것이 목적이었다는 'ABEL'

▲ 레미디의 '컨트롤' 같은 장품에서도 영감을 얻었다고 합니다

Q. 상당히 깊은 주제네요. 혹시 스토리를 구상하거나 게임플레이를 디자인할 때 영감을 얻은 작품이 있을까요?

= 인셉션을 정말 좋아해요. 언제나 저에게 영감을 주는 작품 중 하나고요. 게임플레이 쪽에서는 라이프 이즈 스트레인지와 곤 홈(Gone Home)에서 많은 영감을 얻었죠. 특히, 곤 홈과 게임플레이 메커니즘적으로는 많이 닮아 있어요. 그저 걸어다니면서 진행하고, 무서운 분위기지만 호러 요소는 없죠.

사운드 디자이너나 비주얼 아티스트는 '스탠리 패러블'과 '컨트롤', 그리고 수퍼리미널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하더라고요.


Q. 비록 10분 남짓한 게임플레이였지만, 심리적인 공포감을 조성하는 것이 수준급이었어요. 나중에 진짜 호러 게임을 만들어 볼 의향은 없나요?

= 사운드, 비주얼 아티스트와 많은 이야기를 나누면서 게임 속 공간과 리미널 스페이스에 대한 균형을 잡으려고 많이 노력했어요. 긴장감이 오르내리는 형태의 레벨을 디자인하고 싶었고, 주변 환경과 플레이어의 상호작용들도 이런 긴장감 조성에 영향을 줄 수 있도록 나름의 고민을 했습니다.

▲ 아 안 무섭다며...

'ABEL'의 궁극적인 목표 중에 하나가 플레이한 사람들에게 어딘지 모를 불편한 감정을 전하는 것이었어요. 호러 게임은 글쎄요. 언젠가 만들어볼 수도 있겠지만 모르겠네요.

그보다 저는 스토리를 이야기하는 것을 정말 좋아해요. 그래서 언젠가 내러티브 디자이너가 되고 싶다고 결심했죠. 게임의 몰입도를 높이는 데 스토리가 갖는 힘은 정말 강하다고 언제나 믿고 있습니다.


Q. 내러티브 디자이너로서의 꿈을 키우게 된 계기가 있었을 것 같아요. 아니면, 롤 모델로 삼고 있는 디자이너가 있을까요?

= 프랑스 비디오게임 회사 '돈노드 엔터테인먼트'로부터 많은 영감을 받았어요. 제가 처음 '라이프 이즈 스트레인지'를 플레이했을 때, 바로 게임업계에 가야겠다고 마음을 먹었거든요.

'라이프 이즈 스트레인지'는 눈물을 펑펑 쏟을 정도로 제게는 강렬한 게임이었고, 깊이 있는 스토리텔링과 게임플레이 메커니즘을 동시에 전달할 수 있는 게임이라는 콘텐츠의 잠재력을 깨닫게 된 순간이라고 할까,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죠.

▲ 그녀를 게임업계로 이끈 것은 돈노드의 '라이프 이즈 스트레인지'였다고

Q. 이번 작품과 함께 BIC 페스티벌 2022에 참가하게 된 계기가 있나요?

= 저희 학교에서 이 행사가 엄청 유명해요! 모두가 여기 참가하고 싶어하죠. 매년 하나 또는 그 이상의 팀 프로젝트가 BIC에 참가하고 있는데, 저희가 ABEL을 한국어로 번역한 이유도 BIC에 오고 싶었기 때문이에요.


Q. 실제로 와 보니 어떤가요? 게임을 플레이한 한국 게이머들의 소감 중에 기억에 남는 것이 있다면?

= 기억에 남는 게 너무 많아서 오히려 하나를 집어서 말할 수가 없을 정도예요.

정말 사람들이 친절한 것 같아요. 제가 인사하면 바로 다시 인사를 해주더라고요. 그냥 하는 소리가 아니라, 프랑스 사람들은 안 그래요. 시간을 내서 이야기를 들어주고, 게임을 플레이해보고, 소감을 말해주는 모든 게 다 친절하다고 느꼈어요.

심지어 몇몇 분들은 음료수를 가져다 주기도 했고, 저녁에는 처음 본 한국 사람들이랑 함께 부산을 투어하기도 했어요. 아마 이 곳에 있던 모든 순간이 기억에 남을 것 같아요.


Q. 마지막으로, 사람들이 ABEL을 플레이하고 난 뒤, 어떤 감정을 느꼈으면 좋겠는지 말씀 부탁드립니다.

= 아까도 말했듯이, 불편함을 느꼈으면 좋겠어요. 꼭 불편함이 아니더라도, 마음 한 곳에 있는 무언가를 건드리는 것이 저희의 목표였습니다. 게임을 플레이하고 무언가 느낌을 받았다면 저희의 임무를 달성한 셈이죠.

또, 'ABEL'은 itch.io에서 무료로 플레이할 수 있으니,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