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축구연맹(FIFA)과의 파트너십 종료로 인해, EA 스포츠의 축구 게임 FIFA 시리즈는 2023년부터 새로운 이름인 'EA 스포츠 FC'로 출시하게 되었습니다. 지난 9월 말 출시된 FIFA 23은 그간 이어져 온 FIFA의 이름을 건 마지막 타이틀이 되었고, 킬리언 음바페와 함께 커버를 장식한 여자 축구 선수 서맨사 커(Sam Kerr)는 FIFA 시리즈 사상 처음이자 마지막 여자축구 커버스타가 되었습니다.

물론 과거 FIFA16 시절 미국 여자축구 선수 알렉스 모건이나 캐나다 선수 크리스틴 싱클레어가 리오넬 메시와 함께 커버를 장식하는 등 여성 축구선수가 커버를 장식한 적은 몇 번 있습니다. 하지만, 이들의 모습이 담긴 패키지는 각각 미국과 캐나다 등 한정된 지역에 유통될 뿐이었죠. 글로벌 패키지의 표지를 장식한 선수로는 호주 국가대표팀 소속이자 첼시 FC 위민 공격수인 샘 커 선수가 유일합니다.

런던 웨스트엔드에서 개최한 FIFA23 여자축구 회담 이벤트를 통해, 인벤에서는 FIFA의 마지막 표지를 장식한 샘 커 선수와 짤막한 공동 인터뷰를 진행할 기회를 얻었습니다. '지메시'라 불리는 지소연 선수와 한솥밥을 먹었던 선수라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Do you Know 지소연?'이라고 묻는 것은 제 프로 정신이 용납하지 않았죠. 하지만, 한국에서 왔다고 제 소개를 하자 샘 커 선수가 먼저 제게 물어봤습니다. "Do you Know 소연?"

▲ 첼시 FC 위민 공격수 서맨사 커(Sam Kerr)


"남성, 여성 아닌 '축구선수'가 커버를 장식하는 것이 일상 되었으면"

Q. FIFA23에서 글로벌 패키지 타이틀을 장식한 첫 번째 여자 선수가 되었는데, 개인적으로 이것이 여자 축구 생태계 전체에 어떤 의미를 갖는다고 보는지 의견이 궁금합니다.

= 물론 믿을 수 없이 멋진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모두가 알다시피 FIFA 시리즈는 비단 축구 팬들 뿐 아니라, 게이머들, 어린 친구들에게까지 어마어마한 도달 범위를 가지고 있죠. 심지어 저도 어릴 때 즐겨 했으니까요.

개인적으로는 여성으로서 커버에 등장하게 되었다는 점도 기쁘지만, 이번 일을 시작으로 자라나는 어린 세대들이 이것을(여자 선수가 커버에 등장하는 것) 당연하게 받아들일 수 있기를 바랍니다. 패널 토크 당시에도 잠시 이야기했지만, 요즘 성장하고 있는 세대는 과거보다 성별로 무언가를 비교하는 경우가 점점 줄어들고 있습니다. 자연스러운 시대의 흐름이라고 생각하고, 그런 점에서 첫 번째 여성 커버 스타로 이름을 올릴 수 있다는 것은 정말 큰 영광입니다.


Q. 여자 축구 생태계 전반적으로 볼 때, 이번 경우처럼 여자 축구 선수 개인에 대한 대표성과 관심이 좀 더 (남자 축구와 비교해) 평등한 환경을 만드는 데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는지 궁금합니다.

= 그렇습니다. 무엇보다도 투자라든지, 관련 제반 요소들이 뒷받침되어야 경기를 부스트할 수 있고, 그렇게 되면 궁극적으로 임금 격차 문제를 해소하는 방향으로 되돌아 올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여자축구에 대한 미디어의 관심이 지난 몇 년 사이 급격하게 증가하면서 동시에 임금 격차라든지, 여러 문제에 대한 이야기가 공론화되었죠. 뿐만 아니라 늘어난 관심을 통해 TV 중계권같은 경제적인 요인들은 한 명의 선수로서 많은 변화가 있었다고 느끼게 해 주었습니다.

다시 말하면, 빌보드에 얼굴을 드러내는 멋진 여성 선수들이 많아질수록, 더욱 많은 사람들이 이런 선수들이나 그들이 소속한 팀에 투자를 더욱 적극적으로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정말 중요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Q. FIFA23의 커버 스타로 선정되었다는 소식을 처음 들었을 때 어떤 기분이 들었는지 궁금합니다.

= 처음에는 실제로 일어나고 있는지도 잘 몰랐다고 할 지, 얼떨떨한 마음이었죠. 이야기를 전해듣고 나서는 "제가요? 에이 설마 아니겠지" 라는 느낌이었지만 결정된 이후에는 모든 것이 빠르게 흘러갔어요. 어느 순간 눈을 떠 보니 파리에서 음바페 선수와 촬영을 하고 있었으니(웃음).

솔직하게 말하면 조금 걱정하긴 했지만 즐거운 경험이었고, 비밀을 지키기까지 꽤 오랜 시간을 참아야 했습니다. 제 인생에 중요한 단 세 명에게만 이야기했을 정도로요. 제가 커버 스타라는 사실이 공개되기 이전에 어떤 세미나에 참석할 일이 있었는데, 그 자리에서 FIFA 시리즈에도 여성 축구 선수가 커버 모델로 나와야 한다는 이야기를 나눈 적도 있어요. 저는 그 자리에서 모두에게 모르는 척 거짓말을 해야 했고요.

정신없이 지나갔지만 재미있는 시간이었고, 이 이야기가 얼마나 많이 퍼졌는지 알게 되었을 땐 정말 깜짝 놀랐습니다. 물론 FIFA 시리즈인 만큼 반응이 클 것이라 생각하긴 했지만, 이정도로 클 줄은 몰랐었죠.


Q. FIFA23과 관련해 EA 스포츠와의 협업 과정에서 느낀 첫인상은 어땠는지 궁금합니다.

= EA 스포츠의 모두가 여자 스포츠에 대한 굳건한 믿음을 가지고 있다는 인상을 가장 먼저 받았고, 개인적으로 그 점은 저에게 중요했습니다. 여자 축구가 지금 어디에 있고, 또 어디를 향해야 하는지에 대한 믿음을 모두가 공유하는 것처럼 보였죠.

서로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브랜드나 사람들과 하나가 되어 협업하는 것이 FIFA 시리즈의 과정이었다고 생각했고, 이들이 하고 있는 일들은 멋지다고 느꼈습니다. 특히, 개인적으로는 여자 축구 생태계의 성장을 진심으로 돕고자 하는 마음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Q. 프로 축구 선수 입장에서, 하이퍼모션2로 구현된 게임 속 자신의 모습을 본 소감은 어땠나요? 그리고, FIFA 23에서 받은 레이팅에는 만족하고 있나요?

= 레이팅이요? 저는 91이라 다른 몇몇과 함께 거의 두 번째로 좋은 여자 선수라 오히려 행복하네요. 물론, 페이스(Pace)가 조-금 낮은 것 같긴 하지만 그건 다음에 이야기하도록 하죠(웃음).

아무튼, 행복한 경험이고, 게임 속 제가 백플립을 하는 것을 처음 봤을 때 흥분했습니다. 요즘 한동안 (백플립을)안 했는데, 다시 보니 좋더라고요.

▲ FIFA 23에서 구현된 샘 커 선수의 트레이드마크, 백플립 세리머니

Q. FIFA 23의 커버 모델로 선정된 것이 샘 커 선수 개인적으로는 어떤 의미를 갖는지도 궁금합니다.

= 꿈이 이뤄졌다고 할까요. 이 게임을 어린 시절부터 즐겨오는 동안 단 한 순간도 게임 속에 내가 등장하리라고 생각하지 않았는데, 처음 게임에 등장했던 순간과 이번에는 커버까지 장식하게 되었으니, 남은 인생 동안 간직해야 할 추억이라고 생각합니다. 미래에 아이가 FIFA를 플레이한다면 (커버를)보여줄 수 있을 것 같네요.


Q. 샘 커 선수가 이미 영국에 도착했을 당시에는 스타 선수나 다름이 없었다고 생각합니다. 프로 축구를 시작한 이후 지금까지 인지도 측면에서 어떻게 변화해 온 것 같다고 느끼시는지 궁금합니다.

= 일종의 긴 여정이었다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제가 처음 축구를 시작했을 때는 제 오빠가 더 유명했고, 저는 항상 그의 동생으로만 소개되고는 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반대로 오빠가 '샘 커의 동생'으로 불리곤 하죠.

그 뒤로는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던 것이 사실입니다. 호주에서는 많은 인지도를 올렸지만, 이후 미국에서는 무명 선수에 가깝게 지내기도 했고요. 결과적으로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클럽인 첼시에서 뛰게 되면서 제 자신을 한 단계 드높일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물론, 여자 축구 시장 자체가 평탄함과는 거리가 멀기도 하지만요.


Q. FIFA 23의 커버 스타가 되는 것은 일종의 개인적인 성취인 반면, 축구는 팀이 힘을 모아 성취를 이루는 스포츠입니다. 이처럼 상반되는 두 환경에서의 자신의 균형은 어떻게 잡는지 개인적인 비결이 있나요?

= 다른 사람들에게는 어려운 일일지 모르겠지만, 저는 항상 어디를 가든 나 자신이라는 생각을 하고는 합니다. 물론 커버 스타로 선정된 것은 기쁘고, 영광스러운 일이었지만, 그것이 제가 축구 선수로서 또는 팀원으로서 좋은 역할을 하게 해 주지는 않습니다.

이런 성격은 항상 제가 자신있어 하는 부분이고, 어느 곳에서나, 또 어느 자리에서나, 어떤 사람이든 될 수 있는 원동력을 가져다준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제가 누군가보다는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그들 중 하나일 뿐이라고 생각하는 게 어렵지 않습니다. 무슨 일을 하든, 저는 저니까요.


Q. 2023 여자 월드컵이 내년 호주에서 개최를 예정하고 있는데, 정말 큰 경기이긴 하지만, 이번 유로 2022에서 동료 선수인 프랜 커비나, 밀리 브라이트 등이 소속된 잉글랜드 대표팀이 우승컵을 들어올리는 것을 보며 어떤 생각이 들었을지 궁금합니다. 내년 월드컵을 준비하며 전략이나 관점에 변화가 있었을까요?

= 오프시즌 휴가 도중이었어서 유로 당시에 이곳에 있었다면 더 많은 아이디어를 얻었겠지만, 결승전만 직접 볼 수 있었어요. 솔직히 말하면 (잉글랜드의 우승은) 좀 더 제게 동기를 부여줬고, 나도 유로에서 뛰고 싶다는 생각에 약간 질투도 느끼게 했죠.

하지만, 그룹 채팅을 통해 여러 가지 이야기를 나눴고, 전체적으로 팀 분위기를 고취하는 데 도움이 된 것 같습니다. (호주 대표팀으로서)유로에 나가지 못하는 것은 실망스럽긴 하지만, 그만큼 월드컵이 더욱 기대되고, 월드컵 첫 경기에 나서는 모습이 어떨지 상상도 안 안되네요. 어서 월드컵이 왔으면 좋겠습니다.


Q. 한 가지 궁금한 게 있어요. 최근에 첼시에서 프론트 플립 세리머니를 하는 선수(오바메양)를 영입했는데, 백플립 권위자(?)로서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궁금합니다(웃음).

= 한동안 그의 세리머니를 연습해서 따라하고, 사진으로 남기거나 비교하면 재미있을 것 같다는 이야기를 하곤 했어요. 프론트 플립을 해 보고 싶기는 한데, 그러기 위해서는 일단 골을 넣어야겠죠. 다음번에 (월드컵에서) 프론트 플립이 나온다면 엠마 감독님(엠마 헤이즈 첼시 FC 위민 감독)이 집에서 보다가 심장마비를 일으키실지도 모르겠지만요.


Q. 마지막으로, 지금으로부터 10년 뒤 여자축구 환경이 어떻게 바뀌었으면 좋겠는지 샘 커 선수의 이야기를 들려주실 수 있나요?

= 지금보다 더 큰 영향력을 가지고, 선수의 이름만 말하면 모든 이들이 아는 그런 날이 왔으면 하는 게 제 꿈입니다. 물론 이번 커버에 제가 나오는 것도 정말 흥분되는 일이었지만, 10년 뒤에는 여자 축구선수와 남자 축구선수가 함께 커버에 등장하는 것이 일상이 되었으면 하고 바랍니다. 더 나아가서, 여자 축구 선수 두 명이 커버를 장식하는 것도 '그럼 어때?' 하고 생각하게 되는 날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