넥슨은 9일,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온라인 RPG '테일즈위버'의 서비스 20주년을 기념하여 첫 번째 단독 오케스트라 공연 '테일즈위버 디 오케스트라'를 개최했다. 이번 행사는 지금도 테일즈위버를 꾸준히 플레이 중인 유저들, 그리고 한때 테일즈위버를 플레이했던 기억을 추억하는 이들에게 큰 선물이 되어줄 공연으로 일찍이 팬들의 기대를 모은 바 있다.

이날로부터 딱 1년 전, '심포니 오브 메이플스토리' 공연을 관람한 뒤 오케스트라라는 다소 어렵고 딱딱하게 느껴지는 문화가 게임이라는 연결고리를 통해 더 쉽고, 편안하게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을 몸소 경험한 바 있다. 이미 메이플스토리 공연을 통해 한 차례 경험을 해봤던 것이기에 오케스트라라는 교양 있는 자리에 대한 심적 부담도 덜했고, 최근 이집트 미라전 관람을 위해 난생처음 예술의전당을 찾아갔던 경험이 본의 아니게 사전답사처럼 되어 괜스레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빨간 광역버스를 타고 예술의전당으로 향하는 길엔, 게임 음악 공연이 이제 게이머들이 향유할 수 있는 또 하나의 문화로 완전히 정착하게 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간 다양한 채널과 IP를 통해 계속해서 이어져온 여러 행사들이 차곡차곡 쌓여 뚜렷한 레퍼런스가 되어주었고, 실제로 공연을 관람한 유저들의 경험담과 여러 매체를 통해 노출된 공연의 이모저모가 더해져 '게임 음악 공연'에 대한 분명한 정의와 기틀이 세워졌다. 조금만 찾아보면 여러 사례들이 쏟아져 나올 정도이니, 이젠 '게임만 알고 오케스트라는 전혀 모르는데, 내가 과연 공연을 잘 즐기고 올 수 있을까?'라며 막연한 걱정을 할 필요가 없어졌다.

▲ '테일즈위버 디 오케스트라' 공연이 개최된 예술의전당

▲ 콘서트홀 내부는 테일즈위버 오케스트라를 위해 찾아온 이들로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공연이 개최되는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내부로 들어서자, 그간 '테일즈위버 디 오케스트라'를 고대해온 수많은 팬들의 열기가 고스란히 전해졌다. 게임을 잘 모르는 이들도 도입부만 들으면 누구나 느낌표를 띄울만한 명곡으로 가득한 테일즈위버가, 20주년이 다되어서야 드디어 첫 번째 단독 오케스트라를 개최하게 됐다는 사실이 새삼스레 놀랍게 느껴졌다. 테일즈위버 속 명곡들을 수백, 수천 번 반복해서 들어왔을 팬들에게 있어 이날의 공연은 다시 찾아오기 어려운 소중한 시간이 되어줄 것으로 보였다.

공연장에 일찍 도착한 팬들은 홀에 마련된 포토존에서 기념사진을 찍거나, 스티커 굿즈가 포함된 프로그램 북을 구매하면서 곧 시작될 공연을 준비하고 있었다. 나 역시 기념사진을 한 장 남겨볼 요량으로 길게 늘어선 대기 줄에 다가가 보았지만, 대기 공간 전체를 가득 메울 정도로 빽빽이 들어찬 인파에 밀려 아쉬움을 삼킬 수밖에 없었다. 나중에 찾아보니 전체 2,100석에 달하는 좌석이 전부 매진될 정도였다고 했고, 그도 그럴 수밖에 없었겠다는 생각에 고개가 끄덕여졌다.

▲ 스티커가 포함된 프로그램 북은 이날 행사 속 유일한 굿즈이기도 했다

▲ 전시장 곳곳에서 젤리삐 입간판을 찾아볼 수 있었다

▲ 기념사진을 찍으며 이날의 공연을 기념하려는 팬들도 많이 보였다

17시 정각에 맞춰 시작된 오케스트라 공연은 10분의 인터미션을 포함한 1부와 2부 구성으로 이뤄졌으며, ‘여정의 시작’, ‘모험’, ‘우리, 다시 여기’라는 세 개의 테마를 담아 약 100분간 진행됐다. 지난 '심포니 오브 메이플스토리' 공연에서도 지휘봉을 잡았던 안두현 지휘자가 공연을 이끌었고, 밴드 악기를 더해 60인조 편성을 갖춘 풀 오케스트라 '아르츠심포니오케스트라'가 연주를 담당했다. 여러 차례의 실전을 통해 게임 음악 공연의 경험을 쌓아온 전문가들의 조합이기에, 이번 공연 역시 믿고 들을 수 있는 시간이 되리라는 확신이 들었다.

이날 공연에서는 게임을 켠 순간 바로 들을 수 있는 로그인 배경음악 ‘Tales are about to be weaved’를 시작으로 Second Run, Good Evening, Narvik, Reminiscence 등 추억 속 배경음악부터 캐릭터 테마송까지, 그야말로 테일즈위버를 대표한다고 할 수 있는 25곡의 OST가 생생한 오케스트라 사운드로 연주됐다. 모든 연주에는 각 OST를 상징하는 이미지, 또는 애니메이션이 대형 스크린을 통해 비춰져 조금 생소한 곡이더라도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구성됐다. 게임 속에서나 들을 수 있었던 세컨드 런이나 레미니센스 같은 명곡을 오케스트라 연주로 듣는 경험은 역시 각별했으며, 총 25곡, 100분 동안 편성된 모든 프로그램은 마치 찰나의 순간처럼 흘러갔다.



프로그램에 포함된 모든 곡을 소화한 안두현 지휘자는 오케스트라 구성원 모두를 한 명씩 지목하며 청중들의 박수갈채를 유도했고, 이후 마이크를 잡고 이번 공연에 대한 소감을 전했다. 정말 많은 게이머들이 오랫동안 기다려온 공연이라는 소식에 큰 부담감을 느꼈고 그만큼 열심히 준비했으며, 꼭 테일즈위버 게임에도 관심을 가져보겠다는 솔직한 소감이었다.

끝으로 2부 프로그램 중 너무 반짝 지나가 버려 아쉽다고 느꼈던 Reminiscence, 그리고 공연 프로그램에는 포함되지 않았지만, 왜 없었나 싶을 정도로 반갑게 느껴졌던 나르비크의 배경음악 Motivity가 앙코르곡으로 연주됐다. 무언가 좋은 아이템을 주웠을 때면 마우스 커서 디딜 곳 없을 정도로 빽빽이 들어찬 유저들 사이에 빈공간을 찾아 노점을 펴고 앉았던 그때 그 시절이 떠올라, 집에 가면 테일즈위버를 다시 설치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인상적인 선곡이 아닐 수 없었다.



이번 공연이 오늘 단 하루로 끝나버린 공연이었다면, 몇몇 유저들은 "가보고 싶어도 표를 사지 못해서 가지 못했는데 이게 무슨 기만 글이냐"라며 분개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런 이들을 위해, 이날 공연에서는 한 번 뿐인 기회를 놓쳐 아쉬워할 팬들을 위한 낭보가 하나 공개됐다. 바로 테일즈위버 디 오케스트라의 앙코르 공연 소식이다. 다가오는 6월 6일, 잠실 롯데콘서트홀에서 두 차례의 앙코르 공연이 개최될 예정이니, 테일즈위버의 20주년을 맞이하여 특별히 준비된 추억여행'을 떠나고 싶은 이들은 미리 공연 정보를 확인해두길 바란다.

공연을 관람하고 돌아오는 길엔 게임 음악 공연에서 파생될 수 있는 앞으로의 가능성을 떠올려보았다. 단순한 오케스트라 공연을 넘어 현장에 모인 유저들이 함께 IP를 즐기고, 추억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부차적인 기획이 다양하게 더해진다면, 같은 게임을 즐기는 유저들이 화합할 수 있는 하나의 축제 같은 자리가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코로나 방역 완화로 더이상 마스크를 쓰지 않고도 많은 사람들이 한자리에 모일 수 있게 되었으니, 이 또한 막연한 상상에 그치지 않을 것이라는 기대감이 커지는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