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낚시 게임은 힐링 게임이라는 고정 관념이 있다. 한적하고 조용한 곳에서 낚싯대를 드리우는 방식은 아무리 현란하게 포장해도 결국 정적인 구조를 벗어나기 어렵다. 애초에 낚시 게임을 즐기는 유저도 액션 게임 같은 현란함을 바라면서 하는 게 아니기도 하고 말이다.

드렛지는 힐링을 바라고 온 게이머에게 조금 다른 의미의 힐링을 제공해준다. 근심과 걱정을 낚싯대 끝에 걸어 날려버리는 게 아니라 돌연변이 물고기와 미스테리한 크툴루 신화를 파헤치는 짜릿한 힐링 말이다. 낚는 재미, 탐험하는 재미 모두를 만족시킨 드렛지는 낚시 게임의 고정 관념을 깨부수기 충분했다.


게임명: 드렛지(Dredge)
장르명: 낚시 어드벤처
출시일: 2023.3.31
리뷰판: 1.0.0
개발사: Black Salt Games
서비스: Team17
플랫폼: PC, PS, NSW
플레이: PC



크툴루 세계관 속 힐링(?) 어부 라이프

트롤선의 선장이자 마을을 먹여 살릴 어부인 주인공. 오늘도 바다로 나가 물고기를 낚고 이를 상점에 판매하는 과정을 반복한다. 다람쥐 쳇바퀴 돌듯 반복되는 일상에 변화가 찾아온 건 특별한 물고기를 낚은 직후의 일이다.

세상에, 눈알이 수십 개가 달린 고등어라니. 상식을 벗어나는 기괴하고 끔찍한 현상은 이윽고 어부의 평범했던 삶을 송두리째 바꿔버린다. 괴물 물고기의 배에서 나온 고풍스러운 손수건과 이를 원하는 수수께끼의 인물, 그리고 바다 곳곳에 잠겨 있는 미지의 골동품을 모으기 위한 여정은 이렇게 시작된다.

▲ 시작부터 밑밥을 까는 시장

일반적으로 낚시 게임에 스토리는 중요하지 않다. 대부분 주인공이 낚시를 떠나는 과정을 그리거나 혹은 아예 스토리가 존재하지 않기도 하다. 게임의 주된 목적은 다양한 물고기를 낚는 것에 있으며, 그 과정에서 월척을 낚거나 혹은 여러 희귀 물고기를 수집하는 즐거움에 집중한다.

낚시를 좋아하는 유저라면 당연히 이런 플레이에서 큰 즐거움을 느낄 것이다. 그러나 정적인 플레이의 극을 달리는 게임 플레이 방식인 만큼 호불호가 나뉘는 편이며, 대부분의 낚시 게임이 비주류로 분류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 항해 중에는 참 다양한 사람을 만나볼 수 있다

반면, 드렛지는 어드벤처 기반의 낚시 게임으로 스토리의 비중이 굉장히 높다. 스토리를 중심으로 플레이가 흘러가며, 낚시는 게임을 풀어가는 도구로 활용된다. 즉, 액션 게임에서 공주를 구하기 위해 용사가 칼을 휘두르듯 드렛지에선 골동품을 모으기 위해 낚싯대를 휘두른다. 활용하는 도구만 다를 뿐 게이머의 흥미를 자극하는 메커니즘은 동일한 셈이다.

또한, 크툴루 신화를 모티브로 한 탄탄한 세계관과 각종 시스템이 스토리의 즐거움을 뒷받침해준다. 단순히 최고의 어부가 되기 위해 떠난다는 식의 진부한 얘기가 아니라 미스테리한 바다의 수수께끼를 풀어가는 느낌을 줘 예측할 수 없는 상황을 만들어낸다. 이는 물고기를 찾아 낚시하고 판매하는 반복적인 플레이 속에서도 흥미를 잃지 않고 끝까지 나아갈 수 있게 해주는 비결이기도 하다.

▲ 이들은 세계관의 깊이를 더해주는 감초 역할을 톡톡히 한다



졸리면 자야 하는 이유

예전부터 바다는 미지의 공간으로 묘사되어 왔다. 햇빛조차 닿을 수 없는 심해 깊은 곳에 인류가 밝히지 못한 무언가 있을 것 같다는 상상은 다들 한 번 해보지 않았을까 싶다. 이러한 상상의 정점을 달리는 게 바로 크툴루 신화이다. 길게 설명하면 복잡할 수 있으니 짧게 축약하자면 바다에서 벌어지는 초자연적인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드렛지는 표면적으론 20세기 중후반을 배경으로 한다. 사람들의 행동 양식과 잡히는 물고기의 종류 역시 많이 익숙한 것들이다. 그러나 게임을 진행하다 보면 현실에서는 볼 수 없는 기묘하고 소름 돋는 비현실적인 일들을 마주치게 된다.

▲ 낮에는 분명 힐링되는 바다였는데

▲ 저게 뭐야, 무서워를 남발하게 만드는 밤바다

이를 가장 극명하게 체감할 수 있는 게 피로도 시스템이다.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낮에 일하고 밤에는 잠을 잔다. 그러나 어부인 주인공은 때론 밤에만 나타나는 물고기를 잡기 위해 밤 항해를 나서야 한다.

낮에 보는 바다와 밤에 보는 바다는 천지 차이라고 할 만큼 다른 모습으로 다가온다. 희미한 달빛만으로는 코 앞까지 다가온 바위조차도 제대로 파악할 수 없다. 불빛을 켜지 않는다면 암초에 걸려 배가 파손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위험천만한 상황보다 더욱 플레이어를 무섭게 만드는 것이 피로도에 따른 주변 상황의 변화이다.

▲ 어둠은 예상치 못한 위협을 안겨주기도 한다

밤에 잠을 자지 않고 항해하면 점점 피곤함을 느끼게 되는데 피로도가 일정 수준 이상으로 쌓이면 기이한 현상을 겪게 된다. 가령, 눈앞에 분명 선착장이 마련된 섬을 봤는데 가까이 가니 없어졌거나 혹은 알 수 없는 핏빛 오로라 혹은 회오리가 배를 잡아먹을 듯이 달려든다.

특히, 현실에서 절대 있을 수 없는 괴생물체가 배를 공격하는데 공격에 당하면 배가 파손되어 제 기능을 못 할 수 있다. 게임을 하면서 가장 소름 돋았던 순간 중 하나가 낮에는 주인공이 모는 배 외에는 바다 위에 아무것도 볼 수 없지만 밤 항해 중에는 간혹 항해하는 또 다른 배를 볼 수 있다. 신기한 마음에 경적을 울리며 그 배에 다가가니 배가 아닌 무언가였다.

그렇다고 해서 무섭다고 밤낚시를 포기하면 스토리 진행이 불가능하니 결국 이런 기괴한 경험을 이겨내면서 항해를 이어가야 한다. 밤에 쌓인 피로도는 낮이 된다고 해서 해소되지 않으니 이를 낮추기 위해선 무조건 선착장에 배를 두고 잠을 자야만 한다. 결과적으로 피로도 때문에 무언가 언제 어떤 식으로 나올지 알 수 없으니 항해에 긴장감을 놓지 않고 플레이해야 하며, 이는 게임의 리텐션을 장시간 유지해주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 미지의 존재라는 게 불안정한 정신 상태에서만 보인다는 것을 잘 표현한 셈이다



밋밋하지만 성취감을 주는 낚시와 선박 레벨 디자인

크툴루 신화와 스토리가 게임의 궁극적인 목표와 흥미를 자극한다면 낚시는 게임의 아이덴티티로서 과정 사이의 빈틈을 채워주는 역할을 맡는다. 사실 낚시에 중점을 두는 다른 낚시 게임과 비교하면 드렛지의 낚시 시스템은 조금 밋밋한 수준에 머물러 있다.

낚시는 기본적으로 모든 곳에서 할 수 없고 물고기가 몰려 있는 특수한 장소에서만 가능하다. 이러한 장소는 바다의 상태에 따라 연안, 얕은 물, 대양 등 몇 가지의 항목으로 분류되며, 여기에 부합하는 낚싯대를 보유하고 있어야만 물고기를 낚을 수 있다.

▲ 낚시보다 칸 맞춰서 물고기를 적재하는 게 더 재밌기도 하다

낚시 시스템은 위에 언급한 게 전부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로 단순한 편이다. 낚시 방식은 미니 게임처럼 타이밍에 맞춰서 버튼을 누르면 끝. 물고기를 낚기 위해 미끼를 선택하고 물고기와 힘겨루기를 하는 그런 것은 없다. 애초에, 낚시에 실패가 없다는 게 다른 낚시 게임과 큰 차별화 중 하나다.

엄연히 따지면 실패가 없는 것은 아니다. 엇나간 타이밍에 줄을 감으면 실패가 뜨면서 줄이 길어진다. 그러나 계속 실패해도 줄이 길어질 뿐 잡았던 물고기가 바늘을 뿌리치고 도망치는 일은 없다.

그렇다면 낚시 실패에 대한 페널티는 무엇일까. 드렛지는 한 가지 특별한 룰이 존재한다. 바로 움직일 때만 시간이 흐른다는 것이다. 바다 위에 둥둥 떠 있을 땐 시간이 멈추고 배를 움직이거나 낚시해야 시간이 움직인다. 그리고 시간이 흐르고 흘러서 밤이 되면 앞서 언급했던 미지의 공포가 찾아온다. 즉, 실패해서 낚시 시간이 길어지는 것 자체가 이미 페널티인 셈이다.

▲ 낚시의 관건은 타이밍

단시간 내에 물고기를 낚지 못하면 그만큼 밤이 더 빨리 찾아온다. 설령 낮에 낚시를 시작했더라도 밤이 되면 위험천만한 밤 항해를 해야 한다. 잠은 오직 항구에서만 할 수 있으므로 선택의 여지가 없다.

특히, 마음을 평온하게 해주는 낮 바다의 BGM을 듣다가 공포 분위기를 조정하는 밤바다의 BGM을 듣게 되면 실패할 때마다 단순히 물고기를 놓쳐서 아쉬워하는 감정 이상의 것을 느끼게 될 것이다.

▲ 편의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만큼 업그레이드의 성취감이 큰 편이다

낚시 장비 및 선박 업그레이드는 이런 실패의 페널티를 최소한으로 줄여주는 데 집중한다. 굳이 줄을 감지 않아도 빠르게 물고기를 낚을 수 있게 도와주는 낚싯대와 어두운 밤 항해 시 앞을 밝게 비춰주는 라이트, 그리고 빠르게 항구로 갈 수 있게 해주는 엔진 등 장비를 갖춰나갈수록 밤 항해의 두려움이 차츰 줄어든다.

한 단계씩 조금씩 성장하는 이러한 레벨 디자인은 플레이어에게 큰 성취감을 안겨준다. 선박 업그레이드를 할 때마다 보관할 수 있는 공간이 커지는 것 역시 성취감을 높여주는 데 한몫한다. 단순히 낚시를 잘해서 좋은 도구를 사는 것 이상의 편의와 플레이 방식에 변화를 주니 단순히 반복되는 낚시가 그리 지루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드렛지는 낚시를 좋아하는 게이머뿐만 아니라 어드벤처를 좋아하는 게이머라면 누구나 흥미롭게 즐길 수 있는 게임이라고 생각한다. 굳이 단점을 찾자면 후반으로 갈수록 쌓이는 돈을 쓸 곳이 적어져 돈을 벌기 위한 낚시 행위에 소홀해진다는 점 정도일까.

게임의 흥미를 자극하는 탐험 요소가 맵 곳곳에 퍼져 있어 메인 스토리 외에 서브 퀘스트를 찾아서 깨는 즐거움도 있고 125종의 물고기를 모두 낚기 위해 바다를 떠도는 즐거움도 느낄 수 있다.

낚시와 탐험 그리고 성장이라는 삼박자가 깔끔하게 조합되어 엔딩까지 몰입하게 만든다는 점에서 충분히 잘 만든 어드벤처 게임이다. 몰입해서 즐길 게임을 찾는다면 무조건 한번 해보라고 권해도 무방하니 힐링과 스릴을 둘 다 느끼고 싶은 자, 꼭 해보길 바란다.

▲ 드렛지에서 힐링과 스릴, 공포를 모두 느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