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시다 쇼인은 일본에서는 소크라테스에 비견되는 인물"

안그래도 국내 정식 출시를 할 예정은 없었다고 한 '라이즈 오브 더 로닌'을 글로벌 출시일 전부터 뜨겁게 달군 디렉터의 발언은 국내 커뮤니티를 떠들썩하게 했습니다. 거기에 이토 히로부미가 동료로 참가한다는 소식이 출시 직전 더해지며, 발표 시점부터 기대를 받아 온 팀 닌자의 신작은 국내에서 환영받을 가능성이 거의 0에 수렴했죠.

그렇지만, 한 편으로는 이런 생각도 들었습니다. 국내에서만 발매가 되지 않을 뿐, 이미 만들어진 게임이라면 칭찬이든, 비판이든 하기 전에 직접 해 볼 기회가 주어지는 것이 어떨까 하고 말입니다. 모두의 우려처럼 여러 주변 국가에 상처를 준 그의 사상이 '미화'되었다면, 이를 직접 눈으로 확인하고 알리는 것이 옳다는 생각이었죠.

마침, 게임이 출시된 3월 22일은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게임 개발자 회의(GDC 2024)가 진행되는 도중이었습니다. 출시 전부터 국내 게이머들에게 우려를 한가득 안긴 게임을 직접 경험해 보기 위해, 인적 드문 샌프란시스코의 한 게임스탑에서 '라이즈 오브 더 로닌'을 구했습니다. 직접 해 보고, 스스로 판단하고, 그리고 이토 히로부미를 죽일 수 있나 알아보기 위해서.

▲ GDC 취재가 끝나고, 비행기 시간이 되기 전에 사왔습니다

게임명: 라이즈 오브 더 로닌
장르명: 오픈월드 액션 RPG
출시일: 2024.3.22
리뷰판: 1.002.000
개발사: 코에이 테크모, 팀 닌자
서비스: SIE
플랫폼: PS5
플레이: PS5

※ 본 리뷰는 북미 버전을 기준으로 작성되었습니다

오픈월드와 인왕이 만나서... '사무라이 크리드'?


일단, 가장 민감할 등장인물과 스토리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에 앞서, '라이즈 오브 로닌'의 게임플레이를 알아봅시다. 이 게임은 팀 닌자가 처음 도전하는 정통적인 '오픈월드 액션 RPG"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픽이 전작들보다 실망스럽다는 평가가 많긴 하지만, 드넓은 필드를 다니며 구경하는 풍경은 꽤나 인상적인 편이었습니다. 완전히 고증에 맞지는 않지만, 몇몇 건축물은 현실의 랜드마크를 구현한 모습을 보여주기도 하고요.

메이지 유신 직전을 배경으로 하는 스토리에 걸맞게, 게임은 페리 제독의 흑선이 내항한 요코하마를 비롯해 에도, 교토와 같이 역사적인 사건들이 일어났던 지역을 필드로 구현했습니다. 각 지역은 챕터별로 나뉘며, 메인 스토리 외에도 유대를 쌓는 등장인물과 진행하는 서브 퀘스트, 그보다 더 작은 규모의 지역 내 퀘스트 등도 마련됐고요. 엔딩을 보는 데까지 약 120여 개 내외의 퀘스트를 진행할 수 있었기에 어느 정도 볼륨도 갖추고 있습니다.

퀘스트 형태의 활동 외에도, 오픈월드에서 기대할 수 있는 여러 부가 활동도 존재합니다. 글라이더를 활용한 비행술이나, 마상 궁술, 사격술을 연마할 수 있는 수련장이 존재하고, 게임 내에서 인연을 쌓은 NPC들과 대련하는 도장, 이 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영화에 어김없이 등장하는 홀짝 도박장 등이 그것이죠. 다른 오픈월드 게임과 비교해 맵의 규모가 크다고는 할 수 없지만, 첫 도전임에도 콘텐츠를 나름 알차게 넣어두고자 한 노력은 엿볼 수 있었습니다.

▲ 교토 청수사(기요미즈데라) 가면 꼭 떠먹는다는 샘물도 만들어 놓음

그러나, 위에서 언급한 요소들을 제외하면 기존 오픈월드 게임들이 꾸준히 지적받고 있는 점에서 크게 나아지지 않았다는 것을 게임 초반부터 느낄 수 있습니다. 퀘스트를 진행하는 것을 제외하고, 플레이 타임 대부분은 그저 지도 상에 아무렇게나 흩어져 있는 물건 찾기가 되버리기 때문입니다.

특히, 고양이 찾기나 죄인 처형을 비롯한 오픈 월드 콘텐츠는 그 수가 상상을 초월해, 초반에 아무리 즐거운 마음으로 임한다고 해도 결국 언젠가는 지루함을 느끼게 됩니다. 엔딩에 이를 때까지 약 70마리의 고양이를 찾아 유곽에 있는 게이샤에게 보내줬는데, 아직도 몇 마리나 더 찾아야 하는지 모릅니다. 범죄자는 80명 정도를 저승으로 보냈지만, 역시 아직도 맵 진척도 100%를 찍으려면 멀었더군요.

후술할 팀닌자 특유의 액션이 재미의 주축을 맡고 있지만, 이처럼 반복적인 오픈월드 활동은 금방 흥미를 떨어뜨리고 맙니다. 개발진도 이를 의식해서인지 각 활동을 누적할 때마다 보상을 제공하는 NPC를 마련해 두고 있긴 하지만, 역시나 캐릭터의 내실을 다지기 위해 재미도 없는 고양이 찾기를 계속 하고 있다는 느낌은 버릴 수 없었죠.

이 오픈월드 탐험에 역효과를 일으키는 것은 게임 특유의 장비 파밍 시스템도 연결되어 있습니다. 전투에 대해 언급할 때 더욱 자세하게 이야기할테지만, 개발사의 전작인 '인왕' 시리즈에서 너무 많은 많은 것을 가져온 느낌입니다. 몇몇 요소는 오픈 월드와 좋은 시너지를 일으키지만, 모두가 다 그럴 수는 없으니까요.

▲ 풍경 보는 재미도

▲ 지붕 뛰어다니는 재미도 있긴 한데, 뭔가 다른 '하나'가 부족한 느낌?

프롬 소프트웨어가 '엘든 링'을 통해 소울 시리즈의 문법 일부를 대입한 오픈 월드를 보여준 것처럼, 팀 닌자는 이 게임을 통해 '인왕'의 문법을 차용한 오픈 월드를 보여주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공통점이 있다면, 오픈월드가 붙으면서 훨씬 접근하기 쉬운 게임이 되었다는 것이겠죠. 특히나 '라이즈 오브 더 로닌'의 경우 레벨을 올리는 데 필요한 경험치와 죽으면 없어지는 '카르마'라는 요소를 완전히 분리해, 죽음에 대한 패널티도 상대적으로 미미한 편입니다.

그 덕분에, '인왕'의 전투 시스템이 즐거웠던 이들에게는 전반적인 게임플레이 자체는 꽤나 흥미롭게 느껴질 여지가 있습니다. 오픈월드를 탐험하며 여러 활동을 하는 도중에도, 매 전투는 상당한 집중력을 요구합니다. 초반에는 생각 없이 도적 야영지를 기웃거리다 두 명 이상의 적에게 끔찍하게 살해당할 수도 있기 때문이죠.

▲ 고양이 제발 그만!!!!!!


장점도, 단점도 다 가져온 전투 시스템


앞서 이야기했듯 '라이즈 오브 더 로닌'의 재미 대부분은 '인왕'을 통해 검증된 전투 시스템이 이끌어가고 있습니다. 여러 종류의 무기가 있고, 여러 종류의 유파와 자세가 있으며, 스테미나 게이지의 일종인 '기'를 바탕으로 하는 공방의 묘미를 살렸습니다. 그만큼 팀 닌자의 전작들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전작들처럼 '기'는 공격과 방어, 회피에 모두 사용되는 게이지고, 기가 소진된 상태에서 적에게 공격을 당하면 치명상을 입을 수 있는 빈틈이 생깁니다. 적도 마찬가지이기 때문에 이 '기'를 소진시켜 빈틈을 노리는 전투가 핵심이 됩니다.

역시나 전작과 마찬가지로 '패링'과 타이밍이 중요한 전투 시스템을 가졌지만, 적들의 공격을 쳐낸다고 해서 곧장 빈틈이 생기는 것이 아닙니다. 적이 연속 공격을 하고 있을 때 패링을 하면, 오히려 후속타를 맞게 되는 불쌍사가 생길 수도 있죠. 정확한 시점에 적의 공격을 파훼하고, 기를 소진시켜 큰 공격을 만드는 것이 핵심이지만, 이 때문에 전반적인 난이도 상당한 편이었습니다.

▲ 퀘스트 미션은 인왕처럼 진행하다가도

▲ 오픈월드에서 하는 칼싸움의 맛이 또 신선합니 아니 좀 한 놈씩 덤벼

이 전투 시스템은 오픈 월드 형식에 맞아들어가며 신선한 재미를 줍니다. 바로 시너지를 일으키는 부분이죠. 하지만, '라이즈 오브 더 로닌'은 전투 뿐 아니라 장비 파밍, 육성 또한 전작과 같은 형식을 취했습니다. 그리고 여기서 일어나는 잡음은 생각보다 심각한 수준입니다.

예를 들면, '인왕' 시리즈는 자신만의 빌드를 완성할 때까지 시리즈를 반복적으로 플레이하는 형식의 게임이었습니다. 수많은 장비에서 뜨는 무작위 옵션 중, 쓸만한 게 하나 나올 때의 쾌감은 '인왕'을 '디아블로'에 비교하는 사람도 생겨날 정도였죠. 하지만, 이런 파밍 시스템이 오픈월드와 접목하니, 그냥 숨만 쉬면서 돌아다녀도 어느새 인벤토리가 쓰레기로 넘쳐나는 모습을 연출할 뿐이었습니다.

개중에 쓸만한 장비나, 옵션이 눈에 띄는 것도 아닙니다. 게임 속 장비 옵션의 1순위는 기본 성능(공격력과 방어력)이고, 그 뒤로 붙는 몇 줄의 옵션들은 아주 부가적입니다. 각종 수치를 몇 퍼센트 정도 올려주는 것이 전부죠. 물론 엔딩 이후 상위 난이도에서는 변별력을 가질 수 있겠지만, 상위 난이도에서는 완전히 새로운 고등급 장비가 떨어지기 때문에 엔딩 이전에 인벤토리에 쌓이는 수많은 장비들은 말 그대로 쓰레기에 불과하게 되는 셈입니다.

거기다 무기 종류가 적나요? 일본도, 이도류, 창, 나기나타, 중국식 도, 대검, 노다치, 총검, 세이버에 장총, 활, 권총까지. 시시각각 인벤토리를 위협하는 쓰레기 더미에서 내가 선호하는 무기를 얻게 될 확률도 매우 희박합니다. 거점 장식을 통해 원하는 무기 획득 확률을 0.2% 올릴 수는 있지만, 역시나 다른 장비 옵션들처럼 크게 체감되는 편도 아니었습니다.

▲ 숨만 쉬어도 쓰레기통이 되어버리는 인벤토리는 정말 비호감

때문에, '인왕' 스타일의 장비 파밍을 기대하는 플레이어라면 '라이즈 오브 더 로닌'에서는 크게 실망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하지만, 반대로 말하면 파밍이나 빌드에 별다른 고민을 하지 않아도 충분히 액션을 즐길 수 있다는 뜻도 될 수 있겠습니다.

개인적으로는 '라이즈 오브 더 로닌'의 전투 시스템은 엔딩 이후 해금되는 '암야(영문판 기준 midnight)' 난이도에서 그 빛을 발합니다. 이 게임은 별도의 뉴 게임+를 지원하지 않으며, 일반 난이도 기준으로 50레벨 내외에서 엔딩을 마주하게 됩니다. 그 이후로는 암야 난이도를 통해, 더욱 어려워진 기존 미션과 퀘스트를 진행하며 캐릭터의 레벨을 올릴 수 있게 설계되어 있습니다.

암야에서는 적들의 체력과 대미지가 월등이 높아지고, 패링 타이밍도 더욱 빡빡해집니다. 한 번의 실수만으로 바로 시뻘개진 화면을 마주하게 됩니다. 거기에 필드에는 게임에서 만난 네임드 인물들이 야영지를 지키고 있는데, 한 번은 사카모토 료마에게 잘못 걸렸다가 열 번을 내리 끔찍하게 살해당한 적도 있을 정도죠.

이렇게 팀 닌자 특유의, 고난도 액션을 즐기는 사람들을 위한 콘텐츠는 엔딩 이후에 마련된 점은 인상깊은 점 중 하나였습니다. 부담 없이 스토리만을 즐길 사람들도, 또 험난한 여정을 선호하는 이들 모두에게도 만족스러운 경험을 전달할 것으로 보입니다.

▲ 잡몹이라고 방심하다간 바로 죽는 박진감 넘치는 액션(?)


그래서 이 게임, 스토리가 어떻게 됩니까

▲ 직접 커마한 두 명의 낭인 파트너가 이 게임의 주인공

▲ 역사의 흐름 속에서, 둘 사이의 갈등도 끝을 향해 치닿습니다

물론, '라이즈 오브 더 로닌'이 위에서 설명한 만큼의 게임이었다면 출시 전부터 구설수에 오를 일은 없었겠죠? 저 또한 수상할 정도로 벽에 낙서가 많은 샌프란시스코 게임스탑에서 굳이 이 게임을 구입해 올 필요도 없었을 것입니다. 문제는 메이지 유신 직전을 다루고 있는 게임의 스토리, 그리고 거기 등장하는 등장인물들이 국내에서는 너무나도 민감한 주제였다는 점입니다.

출시 직전, 커뮤니티에서 가장 화제가 된 것은 팀 닌자의 야스다 후미히코 디렉터가 요시다 쇼인이라는 인물을 "일본의 소크라테스"라고 이야기한 것이 메이킹 영상을 통해 공개된 사건이었습니다. 요시다 쇼인은 러시아와 미국에게서 잃은 것을 조선, 만주, 중국을 통해 충당하자는 이른바 '정한론'을 주장한 사람으로 국내에서는 악명이 높습니다. 또한 일본의 우익 인사들이 지금까지도 정신적 지주로 생각하는 인물이라는 점에서 논란의 소지가 분명한 발언이었던 것은 사실입니다.

디렉터가 게임이 출시되기도 전부터, 또 메이킹 영상에서부터 그런 인물의 삶의 방식을, 남긴 말들을 게임 속에서 그려내고 싶다고 하니, 국내 게이머 입장에서는 좋게 봐줄 리가 만무했습니다. 거기에 해외 매체 엠바고가 풀리면서 이토 히로부미가 동료로 등장한다는 소식이 우리나라에 전해졌을 때는, 더 이상 게임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되돌릴 길은 사라진 것이나 다름이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이 게임을 리뷰하기로 결심한 것은, 모른 채 넘어가기엔 개인적으로 너무 충격적인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평생 이토 히로부미가 등장하는 게임을 상상해 본 적도 없지만, 그것이 실제로 일어난 이상 똑바로 마주하고, 비판할 점이 있다면 해야 한다는 생각이었죠. 일본의 근대화 과정을 다루는 작품에서 이후 제국주의의 토대를 닦은 이들이 등장하는 것은 어쩔 수 없다고 해도, 그들을 미화하는 것은 또 다른 이야기가 될 테니까요.

▲ 스토리의 흐름의 가장 주축이 되는 것은 사카모토 료마

결론부터 말하자면, '라이즈 오브 더 로닌'의 스토리는 출시 전부터 우려했던 것 보다는 다소 평이했습니다. 요코하마에 흑선이 내항한 시점부터 쇼군의 세력인 막부가 황실의 신정부군에게 정권을 이양하는 보신 전쟁 막바지까지, 약 15년에 달하는 일본의 역사를 다루는, 일종의 대하 드라마 정도로 그 느낌을 정리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주인공은 게임 제목에 걸맞게, 어떤 세력에도 소속되지 않은 낭인으로 변화의 바람에 몸을 싣게 됩니다. 좀 더 정확하게는 멸망해 버린 번(막부 시대 영주가 다스리던 영지)의 암살자 같은 존재인데, 모종의 이유로 동료와 스승을 잃은 뒤 복수의 꿈을 안고 요코하마에 도착합니다. 거기서 일본 근대화의 상징과도 같은 인물인 사카모토 료마를 만나게 되죠.

게임이 그리는 시대 상황상 여러 세력이 등장하지만, 사카모토 료마와 주인공은 '일본의 새 시대'를 열겠다는 마음으로 모든 세력을 들락거리며 여러 사건에 휘말립니다. 이름 없는 무사로, 도키치로(도요토미 히데요시)와 함께 요괴가 득실대는 전국 시대를 누비던 '인왕2'와 여러모로 닮아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플레이어는 스토리를 따라가며 영화나 드라마, 만화 등 각종 매체로 익히 알려진 다채로운 일본 근대 사건을 마주하게 됩니다.

그 과정에서, 깨알같이 역사를 따라가는 느낌과 함께 영화 속 오마쥬도 더러 확인할 수 있습니다. 영화로도 제작된 '사쿠라다 문 밖의 변(다이로 이이 나오스케가 암살당하는 사건)'이나, 테라다야에서 사카모토 료마가 습격당할 때, 목욕을 하다 말고 뛰쳐나와 위급함을 알렸다는 나라사키 료의 일화같은 내용도 꼼꼼히 담았습니다. 그 외에도 오픈월드라는 게임의 속성을 활용해 콜레라로 고통받는 백성들과 이를 치료하기 위해 노력하는 구스모토 이네(일본인 최초의 여의사), 현대 유도의 창시자로 알려진 가노 지고로 등 메인 스토리 외적으로도 당시 일본의 모습을 알리려는 노력을 엿볼 수 있었습니다.

▲ 요시다 쇼인 사후, 그의 제자들은 '가르침'을 각자 해석하며

▲ 가끔 눈이 돌아버리기도 합니다

그래서 문제의 요시다 쇼인은 어떻게 묘사되었는가 하면, 게임의 초반인 첫 번째 챕터에서 참수당하는 것으로 끝입니다. 그 이후에도 '쇼인의 가르침'이라는 것은 남아있는 제자들이 양이 운동을 하는 기폭제로서 기능을 할 뿐, 무슨 거창한 사상을 내비친다는 느낌은 딱히 없었습니다. 조슈 번으로 대표되는 양이지사들, 카츠라 코고로(기도 타카요시)나 쿠사카 겐즈이, 타카스기 신사쿠나 이토 히로부미, 야마가타 아리토모 등은 "쇼인 선생님의 뜻을 따라!"라고 외치지만, 오히려 그들의 왜곡된 해석 때문에 실망한 사카모토 료마가 조슈 번을 떠나게 되는 연출도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물론, 요시다 쇼인의 죽음을 장렬하고, 의미심장하게 연출하거나, 이후 그의 제자들이 그의 가르침에 따라 저마다 다른 '새로운 일본'에 대한 뜻을 펼치는 것을 보고 누군가는 그의 업적과 사상을 '미화'시키고 있다고 판단할 소지는 있습니다. 그러나, 이 게임이 다루는 역사는 생각보다 길고, 요시다 쇼인은 그 초반부에만 이름을 올리는 정도로 봐도 무방할 것입니다. 개인적으로는 출시 전부터 우리나라 커뮤니티를 떠들썩하게 했던 '요시다 쇼인의 가르침'이 표면적인 장치 정도로만 사용된다는 느낌이 오히려 다행스러웠습니다.

▲ 그보다 심각한 건 줏대 없는 주인공이 만드는 정처 없는 이야기 전개일지도?

그런데, 게임 스토리로서 '라이즈 오브 더 로닌'의 문제는 그게 아닙니다. 오갈데 없는 낭인 출신 주인공처럼, 제대로 갈피를 잡지 못한다는 점이 더 심각합니다. 출시 전부터 내세운 세력 간 선택지는 전체 스토리에 큰 영향을 미치지 못하고, 그렇기에 플레이어의 체험은 그저 일본의 굵직한 역사를 잠깐 맛본 것에서 끝나기 때문입니다.

초반부터 게임은 플레이어에게 조슈 번을 도와 쇼군 세력을 타도할 것인지, 아니면 쇼군 세력을 도와 양이지사들을 처단할 것인지 묻는 지점을 여러 차례 제공합니다. 무언가 결과가 달라질 것이란 생각에 고민 끝에 결단을 내리지만, 그때마다 사카모토 료마가 나서서 이렇게 말합니다. "네가 선택을 하긴 했지만, 우리는 완전히 세력을 정한 건 아니야. 우리는 새 시대를 향해 가야 하니까!"

이렇게 애매한 선택에 따른 결과는, 결국 주인공의 처지를 애매한 상황에 놓이는 결과를 불러옵니다. 신선조에 가입해 이케다야 사건을 통해 조슈 번 사람들을 몰살시켜 놓고, 그 다음에는 조슈편에 붙을 수도 있다는 얘깁니다. 거기다 주인공이 무슨 선택을 했든, 커다란 역사의 흐름은 막을 수 없습니다. 신선조에 대항한다고 이케다야 사건이 일어나지 않는 것도 아니고, 쇼군 편에 선다고 보신 전쟁을 승리로 이끌 수도 없고 말이죠.

그렇기에 실제로 플레이어의 선택에 따른 결과로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아주 미미한 편입니다. 주로 특정 캐릭터를 죽이거나, 아니면 살리거나죠. 그마저도 이 시대 상에서 '죽지 않은 인물'을 죽이는 것은 또 불가능합니다. 결핵으로 죽는 것이 역사적으로 밝혀진 다카스기 신사쿠와 오키타 소지, 그리고 오미야 여관에서 죽음을 맞이하는 사카모토 료마를 어떻게든 살릴 수 있는 선택지가 존재한다는 것 정도가 다입니다.

이토 히로부미 죽여보려고 별 짓을 다 했는데, 결국 안 되더라구요.

▲ 죽이지는 못 해도, 두들겨 팰 수 있다는 것에 의의를 두기로 했습니다

결국 '라이즈 오브 더 로닌'의 스토리, 그리고 게임 자체의 의의는 메이지 유신 직전, 외세의 등장으로 위태로워진 기존 체제와 변화의 바람 속에서 등장한 인물들의 행보를 구경하는 것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또 한가지 어필할 점이 있다면, 이 시대 일본을 좋아하는 이용자 층에게는 꽤나 반가운 요소들을 많이 넣어두었다는 것이겠죠.

거장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요짐보'부터 비롯된 보디가드 사무라이의 로망, 수 많은 고류 유파 검술을 이용해 전투를 풀어나가고, 홀짝 도박을 하다 속임수를 눈치채고 일당을 처단하는 것들. 바람의 검심으로 유명해진 신선조 사이토 하지메에게서 '아돌'을 배운다거나 하는. 그런 점들을 좋아하는 게이머라면 충분한 재미를 느낄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도저히 사라지지 않던 불편함

▲ 네게 선물을 준건 발도술을 위해서야, 다른 뜻은 없어

일반적인 게임의 리뷰라면 게임플레이, 그리고 스토리에 대한 이야기를 정리하는 선에서 마무리하는 경우가 대다수지만, 이 게임은 플레이하면서 느낀 '감정'에 대한 이야기를 빼놓기가 어렵습니다. 게임을 플레이하기 전까지는 '일단 해 보고 생각할 수 있는 권리를 소비자에게 줘야 하는 것 아니야?'라는 생각이 컸다면, 엔딩을 보고 나니 사전에 국내 정식 발매를 취소한 SIEK 결정이 맞았을 수 있겠다는 쪽으로 기울 정도였기 때문입니다.

백 번 양보해 일본 근대화 과정에서 역할을 한 역사적인 인물들이 등장한다는 것으로 이해하려고 했지만, 이 게임에는 정말 '올스타' 급으로 많은 사람들이 등장합니다. 이토 히로부미처럼 국내에서는 절대로 좋게 보기 힘든 인물이 있는가 하면, 야마가타 아리토모처럼 대놓고 일본 군국주의의 초석을 다진 이들도 등장하죠. 근현대사에 관심이 없는 게이머라도, 이들이 동료로 등장하는 게임을 플레이하며 게임을 게임으로만 보기는 쉽지 않을 것입니다.

거기에 또 다른 문제는, 그저 동료에서 그치지 않고 플레이하는 동안 '유대 관계'를 끊임없이 개선해야 한다는 점이 커다란 진입 장벽으로 다가옵니다. 플레이어는 자택이나 길거리에서 이들과 만나 선물도 주고 대련도 하며 호감도를 높일 수 있고, 그렇게 높인 호감도는 주인공의 능력을 강화하거나 유파의 기술을 전수받는 보상이 되어 돌아오도록 설계되어 있습니다.

예를 들어, 발도술이 너무 쓰고 싶어 참을 수 없는 플레이어는 후쿠자와 유키치에게 선물 공세를 해 타츠미 류 검술을 익혀야만 합니다. 일본의 만엔 권에 그려진 초상화로도 유명한 사람이지만, 갑신정변을 지원해 준 김옥균의 스승으로도 알려진 인물이죠. 이 당시에 아시아의 패자가 되겠다며 주변국을 업신여기지 않았던 사람을 찾기가 더 힘들기 때문에, 누구 하나를 피해간다고 되는 일이 아니었습니다. 하물며 내 손으로 선물을 가져다 줘야 한다니!

▲ 유곽에 있을 때 가장 마음이 편한 게임

이런 종류의 '불편함', 그리고 근대 이후 일본의 변화가 결국 아시아에 어떤 일들을 초래했는지 알고 있는 데서 오는 왠지 모를 언짢음 등을 이 게임을 손에 쥐게 된 모두가 느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스토리를 진행하면서도, 그리고 유파 검술을 배우기 위해 등장인물들과 '유대'를 쌓는 과정에서도 느껴질 소지는 충분합니다.

바로 이것이 게임을 리뷰하면서 느꼈던 솔직한 감상입니다. '게임을 게임으로만 보기'위해 마음을 다잡다가도, 가끔씩 머리 속에 떠오르는 의문 부호를 지울 수가 없습니다. 실존 인물들이 게임 속에 총출동하는 이상, 게임에서 시종일관 이야기하는 '새로운 시대의 일본'이 이후 주변 나라에 끼친 악영향까지 생각이 미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기도 할 것입니다.



'라이즈 오브 더 로닌'은 결국 정리하자면, 게임의 재미나 완성도와 무관하게 국내에서는 민감하게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작품입니다. 당시 일본의 시대상을 다룬 문화 콘텐츠가 세계적으로 얼마나 인기를 끌고 있든지와 관계 없이, 이처럼 복잡한 이해관계로 얽혀 있는 문화권에서는 앞으로도 민감한 주제로 남아 있을 가능성이 큽니다.

그럼에도 한 가지 인상에 깊이 남았던 점이 있다면, 팀 닌자가 처음 시도한 오픈 월드는 군데군데 엉성한 틈이 있긴 했지만 전반적으로는 만족스러운 완성도를 갖췄다는 것이며, 이들이 다음에 어떤 시대와 주제로 차기작을 계획하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액션을 바탕으로 한 자신들만의 입지는 확고히 하고 있기에 기대를 가져볼 만 하다는 것입니다.

지금으로서는 꽤 먼 옛날의 이야기가 됐지만, 유비소프트의 '어쌔신 크리드' 시리즈의 몸값이 한창 높았을 당시 국내 커뮤니티에서는 우리나라를 배경으로 하는 오픈월드 게임이 나왔으면 좋겠다는 소망을 이야기하던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일제 강점기를 배경으로 암살자들이 범 세계적인 권력에 맞서 활약하는 이야기라니, 듣기만 해도 재미있을 것 같아 아직도 기억에 남아 있습니다.

그 뒤로 한참 많은 시간이 흐르긴 했지만, 이제 국내 개발사들은 서서히 콘솔 게임 시장에서 세계적인 성과를 쌓아가는 데 첫 발걸음을 뗐습니다. 개인적인 소망이 살짝 담겨 있긴 하지만, 시간을 갖고 천천히 기다리다 보면 언젠가 국내 게이머들이 상상만 했던 일이 현실로 일어날 수 있지 않을까요? 이토 히로부미도 옆 동네 게임에서 동료로 만나는 시대가 됐는걸요 뭐.

▲ 히든 보스로 인왕 주인공 윌리엄도 나오지만... 무슨 큰 의미가 있겠습니까 허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