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누군가가 우리를 인정해 준다는 건 기분 좋은 일이다. 더불어 우리의 현재를 돌아보게 하는 일이다. "세계 게임엔진 신기술 및 멀티플랫폼의 진화방향"이라는 주제로 열린 게임테크 2011 행사에서 키노트를 발표한 레드5 스튜디오의 마크 컨(Mark Kern) 대표는 '한국 게임시장은 서양의 미래'라고 말했다.


마크 컨이 누구던가. 블리자드에서 일하며 스타크래프트, 디아블로2, 월드오브워크래프트 등 화제의 인기작을 함께 개발했던 인물이다. 세계 최고의 게임, 세계 최고의 온라인 게임들을 개발한 블리자드 출신의 그가 '서양이 한국 게임 개발사에서 배워야만 하는 것(What the West must learn from Korean game development)'이라는 제목의 발표를 하게 된 이유는 대체 무엇일까.


그가 대표로 있는 레드5 스튜디오가 개발하고 있는 게임은 팀플레이 기반의 액션 슈팅 게임, 파이어폴(FireFall)이다. 마크 컨 대표는 처음에 파이어폴을 정액제 게임으로 계획하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무료로 게임을 즐길 수 있는 방향으로 선회했다고 한다.


이런 변화는 서양 게임 산업의 구조가 변화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패키지 게임 위주의 시장에서, 소셜게임, 모바일게임, 앱게임 등 다양한 플랫폼 시장이 성장하고 유통도 스팀 등 디지털 다운로드가 새롭게 떠오르고 있는 등 이런 변화는 최근 더욱 확산되고 있다는 것이다.



▲ 파이어폴의 한 장면



마크 컨 대표는 이런 변화의 원인으로 '경쟁'을 꼽았다. 과거에 존재하던 많은 게임사와 유통사들이 극심한 경쟁을 겪은 끝에 현재는 소수만 살아남았다는 것. 시장에서의 성공을 담보하기 위해 게임 하나에 들어가는 개발비용과 마케팅 비용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솟아 올랐지만, 게임 패키지 하나의 가격은 별반 변화가 없는 상태가 계속되었다.


패키지 유통망의 근간도 흔들리고 있었다. 해적판이 미치는 손실이 10억 달러 규모에 이르고, 거대해진 중고 게임시장은 개발사에는 어떤 이익도 공유하지 않았다.


게이머 층도 예전과는 달라졌다. 엑스박스 라이브의 회원은 2천 만 명. 하지만 팜빌 회원은 8천 만 명인 시대다. 캐주얼 게이머가 증가하고 있고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거대한 게이머 층이 형성되고 있다. 또 소셜네트워크나 온라인 쇼핑, 유튜브 등 새로운 미디어의 등장은 게임을 즐길 시간을 점차 빼앗아가고 있다.



▲ 개발비용의 상승에 비해 시장규모나 패키지 가격의 변화폭은 작은 편



마크 컨 대표는 '바로 지금이 바꿔야 할 때"라며 한국 온라인 게임 시장의 모델들을 주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패키지 박스를 버리고 디지털 다운로드로 유통하고, 설사 싱글플레이 게임이라도 클라우드를 이용한 서버를 활용해야 한다거나, 무료로 즐길 수 있는 게임으로 시작해서 아이템 기반의 수익모델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이 그의 이야기. 특히 아이템 기반의 부분유료 방식은, 게이머들에게는 다양한 게임을 쉽게 접해볼 수 있다는 장점이, 게임사에게는 다양한 시도를 통해 충성 고객을 확보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며 자세히 설명했다.


패키지 게임 시장의 한계와 현재 상황의 대안으로 한국 온라인 게임을 바라보고 있는 마크 컨 대표. 그가 블리자드에 재직할 당시 블리자드 내부에서 나눴다던 "이제 더이상 블리자드의 적수는 없다. 만약 있다면 그것은 한국 게임사가 될 것"이라는 대화는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마크 컨 대표는 "이제까지 내가 말한 내용들은 이미 한국 개발사의 여러분들에게는 익숙한 것들"이라면서 "여러분은 서양 게임 산업의 미래를 걸어가고 있다"는 말로 키노트 발표를 마쳤다. 온라인 게임의 한국형 모델이 서양 게임 산업의 '하나의 대안'이 아니라 피해갈 수 없는 생존의 법칙이 되었다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