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리자드 WOW의 모든 시스템들이 독창적이고 상상력이 뛰어난 것은 아닙니다.


국내에서는 WOW의 성공이후 모든 게임에 퀘스트라는것이 들어갔기에 국내 퀘스트 유통의 선구자는 맞습니다만, WOW의 많은 시스템들이 에버퀘스트, 다크 에이지 오브 카멜롯, 워해머 같은 게임의 좋은 점을 차용했고, 스토리 창의성이라고 하기에는 그보다 더 탄탄한 스토리의 소설책이 서점에 즐비한데 말이지요.


WOW 이전 게임 개발자들은 분노가 치밀수도 있겠습니다. 좋은 시스템 많이 만들어놨더니 블리자드가 WOW라는 비빔밥을 출시해 대히트가 되었으니 말입니다. 특히 탱딜힐 개념이 휴대폰 시장처럼 특허 전쟁이 가능한 테마였다면, 에버퀘스트 개발자들이 포브스 갑부 순위에 들었을수도 있었겠군요.


아무튼 비빔밥의 판매량은 엄청났고, 매번 WOW의 업데이트 수준은 새로운 게임 하나 만들 정도의 엄청난 콘텐츠량을 보여주며 유저들을 열광시킵니다. 심지어 특성까지 다 바꿔버리는 바람에 기존 플레이어들조차 당황하게 만들어 버렸습니다.



▲ 2011년 블리즈컨, '판다리아의 안개' 확장팩 영상


블리자드는 7년전 수백개에 달하는 북미 개발 스튜디오중 하나였다가 WOW 출시 이후 세계적인 개발사로 우뚝 서게 되었는데요, 2010년 한 해 동안 총 44억 4천 7백만 달러(한화 약 5조 원)의 매출 중, 오직 WoW로만 기록한 매출이 전체의 30%인 14억 2천 7백만 달러로 한화로 약 1조 5800억 원에 달합니다.

WoW 대격변은 출시 첫 날 330만 장을, 1달 동안 총 470만 장을 판매한 것으로 발표되었는데, 부산광역시 인구가 350만명인 점을 감안하면, 부산 시민 전체가 첫날 WOW 대격변을 구매한 것과 같은 수치입니다.


MMORPG 장르의 창시자라 할수 있는 XL게임즈 송재경 대표님을 만났을때 저에게조차 WOW 를 할 당시에는 장르 종결자라며 어찌 이 수준 이상의 게임을 만들까 좌절했다고 하실 정도였으니까요.

그렇다면, 블리자드는 어떻게 전세계 유저들의 마음을 이토록 훔칠 수 있었을까요?




▷ 블리자드, 유저들의 마음을 훔치다.


사실 블리자드가 독창성보다는 잘 버무린 것에 능숙했던 것인데, 왜 유저들이 열광할까요?


인간은 본인이 예상하지 못한 일이 일어날때 기쁘거나 감동하는 등의 감정 변화가 발생합니다. 이제까지 블리자드가 내놓은 여러 소식들은 매번 유저들이 생각했던 예상치를 넘겨버렸으며, 그 이후 수많은 유저들의 상상력을 동원하게 만들었기 때문에 우린 그만 블리자드에게 마음을 홀라당 빼앗기고 만 것입니다. 이는 21세기 최고의 마케터이자 혁신가인 故 스티브 잡스님에게도 같은 이유였습니다.


유저들은 독창성, 창의성이 넘쳐난다고 해서 마음을 뺏기지는 않습니다. 어느 결혼정보회사 설문조사에 의하면, 여자들이 멋져보이는 남자의 발언 베스트 3위안에 드는 내용중에 하나가 몇 시간씩 연락 안되면 걱정했다며 화낼 때 라고 합니다. 남자가 화를 내는데 여자는 왜 감동을 받을까요? 그것은 걱정하는 남자의 진심이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독창적이거나 전세계에서 하나뿐인 시스템이 탄생했다고 감동하는것은 아닙니다. 개발자의 진심과 열정이 느껴져야 합니다.




▷ 게임이 발표될 때 유저들보다 더 즐거워 하는 블리자드를 보라.


블리자드나 애플 콘텐츠 발표자들의 공통점이 있다면, 장난끼 가득한 얼굴에 장난감 하나 소개하는 투의 천진난만한 모습입니다. 그런 모습에 우리는 함께 동화되어 함성을 지르고 상상하고 즐거워 하는것입니다. 이런 사람들에 대항하여 IT쪽에서는 OS를 국가에서 만든다니.. 참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게임에 부정적인 학부모들만 아니었더라면, 명텐도에 이어 국가에서 MMORPG 하나 만들 기세입니다.



▲ 2011년 블리즈컨, WOW 그래픽 디자이너 8인방의 표정들이 행복해 보입니다.


유저들이 기대한것에 못미치는 열정이라면 아마 “고생한 티는 난다. 하지만, 내마음에 들지 않는다”로 귀결될 것입니다. 블리자드에는 열광하는 유저들이 유독 국내 개발사 평가에는 냉정한지... 한국 개발자들은 그들의 마음을 훔칠수가 없을까요?




▷ 작품을 지휘하고 있는 리더들과 개발자의 현실...


MMORPG의 헐리우드는 바로 대한민국입니다. 그 역사를 만든 주역들인 개발사의 리더들은 대단한 성과를 이뤄낸 분들입니다. 아마 전세계 공통어가 하나고, 전세계 동시 출시가 되는 똑같은 경쟁구도였다면, 블리자드보다 더한 성과를 내었을 분들이었겠죠. 사실 누가 만들어주지도 않은 토양에서 이 정도 산업으로 자리잡은 것조차도 대단한 것입니다.


하지만, 몇몇 리더들이 막대한 액수의 돈과 함께 업계에서 떠난 케이스는 안타까운 일입니다. 한편으로는 게임 역시 사업의 일환이지만, 한결같이 장인정신을 지킬 수 있는 사람들이 큰 이득을 보고 그 이득이 다시 재투자되어 더 좋은 개발환경으로 이어지는 것이 더 좋은 게임을 만들 수 있는 기본 바탕이 되지 않을까 합니다. 그럴수록 업무 환경은 좋아져 새로운 인재들이 입문하겠지요.


한국 개발자는 창의성이 없을까요?


애플은 제록스에서 본 그래픽 방식의 사용자 환경을 매킨토시에 적용했고, 컴퓨터의 바탕화면은 이곳에 나왔습니다. 잡스는 "피카소가 좋은 예술가는 모방하고, 위대한 예술가는 훔친다고 했다는데 나는 훌륭한 아이디어를 훔치는 것을 부끄러워한 적이 없다" 며 합리화 했습니다.

잡스는 개발에 방해가 되는 모든 장애물들을 제거하며 개발자를 최우선시 해왔습니다. 창의적이라기보다 창의적인 분위기를 만들어준 것이 더 크죠. 모든 리더의 업무 자체가 결정을 하는 것이 주 업무며, 그 결정이 회사에 미치는 영향력은 어마어마합니다. 회사 하나 문 닫는것은 리더의 잘못된 결정 하나면 충분합니다.

아이폰 이전에도 휴대폰에서 인터넷도 되면 좋겠다고 생각한 사람들은 많습니다만, 최초로 내놓은 회사는 애플뿐이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제품이 아닌 작품으로 평가 되었죠.


국내 개발자들도 퀘스트를 재미있게 꾸미고, WOW 처럼 인기 게임 패러디나 흥행 애니메이션의 소재를 활용하여 다양한 엔터테인먼트로의 결합을 원하지 않겠습니까? 다만, 개발자들이 구현해 낼 능력도 중요하겠지만, 리더의 결단이 매우 중요합니다. 그리고, 고용된 경영자보다 진짜 주인이 나선다면 더 명확해지겠지요.



MMORPG 개발자는 평생에 만들수 있는 게임이 한정적입니다. 한 프로젝트에 4년 동안 매진한다고 가정하면, 5개의 프로젝트에 20년이라는 세월이 가게 됩니다. 27세에 입사하면 47세가 되는것이지요. 그때가 되면, 그리고 프로젝트 한두개 정도의 싸이클을 돌고 나면 사실 실무라기 보다 팀장이고 개발보다는 문서와 사람 관리에 치우치게 됩니다.


평생 오직 5개의 게임만 만들수 있다면 당연히 개발자들은 이기적으로 게임 프로젝트를 선택할 수 밖에 없습니다. 현재 당신이 몸담은 프로젝트가 지금 있다면 앞으로 3~4개의 게임이 남아 있겠군요. 국내 게임 업데이트는 WOW의 확장팩처럼 새로운 게임으로 탄생하는것도 아니고 몇몇 게임을 제외하고는 보람 찾긴 힘든 건 사실입니다. 27세에 입사하여 31세에 오픈베타라면 청춘을 바친 게임 아니겠습니까?




▷ 작품과 달리 제품은 감동을 줄수가 없습니다.


제품은 시장을 파악하고, 고객 원하는 수준에 맞추어 적당하게 대량 생산 만들어지는 것들입니다. 시장의 니즈를 파악해 적당하게 만들어 내는 방법이지요. 바로 대기업식 제품생산입니다. 반면 작품은 사람의 마음을 훔치고 감동시키는, 그야말로 안티 이용자들조차 끌리고 게임을 할 수 밖에 없게 만드는 것입니다. 게임을 해본적 없는 사람들조차 관심 갖고 빠져들게 하는 그 무언가는 작품만이 해낼수 있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완벽히 시장 상황을 예측한 제품이 있더라도, 누군가의 열정이 담긴 작품이 등장하는 순간 제품은 시장에서 환영받지 못합니다. 이것은 WOW, 디아3 그리고, 아이폰, 아이패드를 통해 우리는 확인해왔었고요, 사실 국내 아이패드 이용자들중 제품이라는 생각보다 애플의 작품이라는 생각에 구매한 사람들도 많습니다. 본인이 필요해 구입했다기보다 일단 사고나서 잘 활용해보자는 심리도 많았을 것입니다.



▲ 인벤팀 L모 기자도 사고 나면 쓸일이 있을꺼라는 기대 심리로 아이패드를 구매했습니다.
(이미지 출처 : 애플공식홈페이지)


일부 국내 게임 마케터들은 제조로 나온 제품으로 인식하여 어떻게 하면 잘 팔릴까, 제품 잘 포장해볼까 하며 생산적으로 생각합니다. 사실 마케터 입장에서 작품이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일부러 포장할 필요도 없을것 같고요. 그러고 보면 이해는 갑니다만, 그래도 게임만큼은 제품이 아닌 작품이 되어야 합니다.




▷ 작품을 꿈꿔야 유저들은 환호하고 열광합니다.


앞서 XL게임즈 송재경 대표님은 오리지널 WOW가 MMORPG 장르 종결자라 여기며 좌절했지만, 레이드라는 획일화된 플레이 패턴의 한계점을 인식하고 자유롭고 거대한 세계인 아키에이지를 개발하고 있습니다. 엔씨소프트는 블레이드 앤 소울처럼 대중이 무협을 선택하지 않는다면 무협이 대중을 이끌고 가겠다며 무협 장르 대중화에 도전하고 있고, 네오위즈는 블레스를 통해 포스트 WOW를 외치며 이미 엄청난 인원을 셋팅했고 개발중에 있습니다.



▲ 2011년 블리즈컨, 블리자드 마이크 모하임 대표 인터뷰


우리나라에서 반응이 좋은 게임, 기대하는 게임들은 높은 가격으로 해외에 수출되고 있습니다. 중국에서 만든 게임들도 한국 유저들의 반응이 좋으면 중국 개발자들은 그 어떤 나라의 반응보다 기뻐한곤 한답니다. 블리자드는 리즈 시절부터 한국에 대한 애정이 많았었고, 현재도 매출과 상관없이 한국 유저들의 반응을 가장 먼저 살피는 것 또한 많은 분들이 아실것입니다.


앞으로 게임 제작을 제품으로 보는 리더나 개발자는 이 산업에서 자연스레 퇴출될수 밖에 없습니다. 소설가가 책을 제품으로 보고 글을 써내려간다면 그 어떤 독자가 감동을 받고 마음을 열겠습니까? 현실의 결과물이 제품에 가까울지 모르겠으나 작품을 만들어야 한다라는 의지와 노력이 필요합니다. 개발자들이 먼저 꿈꾸고 즐기지 않는다면 그들이 만든 게임에 유저들이 꿈꾸고 즐길수는 없습니다.


성공한 사람들에게 한결같이 듣는 말은 형용사는 달라도, 나는 꿈을 꿨고 그래서 이곳에 있다. 라는 말입니다. 작품을 꿈꿔야 유저들은 환호하고 열광합니다.


게임 산업 리더들은 개발일정에 대한 적극적인 배려 및 사내 정치싸움 같은곳에 인재들이 희생되는 일이 없도록 노력을 해야 할 것입니다. 많은 작품을 만들어 낼수 없는 MMORPG 게임 개발자들은 끊임없는 자기 계발이 필요합니다. 여기에 수준 높은 한국 유저들의 냉철한 평가와 따뜻한 격려가 뒷받침 된다면, 세계적으로 수준높은 게임들이 우리나라에서 꾸준히 탄생할것으로 기대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