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가 바이오쇼크를 극찬하는 이유


몇 일전 술김에 밸브가 새롭게 출시한 오렌지박스를 밸브의 온라인 포털 스팀을 통해 구입했다. 오렌지박스 각 게임들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인벤 웹진에서 소개하고 있는 인디 게임 리뷰 블로그 Pig-Min을 참고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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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거나 옛 기억을 되살려 하프라이프2 오리지날 패키지부터 틈틈이 플레이하고 있는데, 다시금 밸브의 탁월한 스토리텔링 능력에 감복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밸브가 손대면 모건 프리맨은 캐릭터가 아닌 바로 나 자신이 되어 버린다!



[ ▲ 밸브가 출시한 오렌지박스 패키지 ]




오랜지 박스 출시 이전에는 최근 바이오쇼크(Bioshock)라는 게임이 등장해서 화제가 되었었다. 해외 웹진에서 출시와 동시에 거의 만점에 가까운 점수를 주었고, 하마터면 지금까지 부동의 1위 자리를 지키고 있는 ‘젤다의 전설: 시간의 오카리나’를 앞설 뻔 했다.


최근 PC와 콘솔 등 온라인을 지원하지 않는 플랫폼이 거의 없음에도 불구하고, 멀티플레이를 배제한 바이오쇼크가 오직 싱글플레이만으로 높은 평가를 이유는 무엇일까?


개인적으로는 하프라이프 시리즈에서 본 것과 같은 독보적인 스토리텔링과 몰입도에 바이오쇼크 특유의 공포감을 적절하게 조화시켰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사실 게임을 진행하다 보면 권위 있는 심리학자가 기획한 것은 아닌지 의심이 들 정도니까 말이다.



[ ▲ 바이오쇼크의 한 장면 ]




치를 떨게 하는 바이오쇼크의 무서움은 B급 공포영화에 등장하는 특별히 징그럽거나 흉측하게 생긴 괴물들이 급습하기 때문만은 아니다. 땅에 떨어진 작은 종이 조각, 벽에 있는 포스터, 예사롭지 않은 조각상, 게임 건물의 인테리어 등등, 게임 속 소소한 곳에서도 일관성 있는 스토리텔링을 위한 장치들을 배치시켰기 때문이다.


또한, 캐릭터가 한 손에서 전기에너지를 방출시키고, 화염방사기를 능가하는 화력의 불꽃을 발사하는 초능력을 지니게 되지만, 캐릭터 능력과 무기의 제한과 용도가 마치 자로 잰 듯 튜닝되어 있어 람보플레이는 상상도 할 수 없으며, 실제를 능가하는 괴기스런 긴장감을 제공한다.


플레이를 해나갈수록 점차 밝혀지는 장편영화와도 맞먹는 탄탄한 배경 스토리는 게임이라는 사실을 잊어버리고 게이머가 바이오쇼크 속으로 완벽하게 몰입하게 되는 강한 동기를 부여한다.


사실 FPS 싱글 캠페인 플레이에 환장하는 기자가 아직까지도 엔딩을 보지 못하는 이유도 바이오쇼크의 분위기 자체가 생산하는 공포와 스트레스를 견디지 못해 쉬어가는 시간이 잦았기 때문이다.







최근 전성기를 거듭하고 있는 북미 FPS는?


멀티플레이를 지원하지 않는 바이오쇼크가 이처럼 전 세계적인 흥행과 평단의 호평, 둘 다를 거머쥘 수 있었던 것은 최근 북미 FPS 게임들의 경향을 반영한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강력한 싱글플레이를 통해 게이머의 영혼을 뒤흔들고 그 후 자연스럽게 멀티플레이로 유도하는 방법일 것이다.


곧, 신규 컨텐츠와 함께 PC버전으로 재출시 되는 XBOX360 킬러 타이틀 기어즈오브워(Gears of War) 또한 멀티플레이 보다는 엄폐를 활용한 NPC 전우들과의 팀플레이를 강조했던 싱글플레이에서 위력을 제대로 발휘했던 게임이다.



[ ▲ 에픽의 FPS 기어즈오브워 ]




현재 천문학적인 흥행기록을 세우며 게이머들의 인기를 한 몸에 받고 있는 번지소프트의 헤일로3 또한 XBOX라이브를 통한 멀티플레이가 궁극적인 목표가 되지만, 마스터치프를 주인공으로 방대한 배경스토리의 싱글플레이를 완성하지 못했다면, 지금과 같은 헤일로 프랜차이즈 효과를 이뤄낼 수 있었을지는 의문이 든다.


싱글플레이가 만들어낸 헤일로 프랜차이즈는 비단 게임 뿐 아니라 영화 ‘반지의제왕’ 시리즈의 명감독 ‘피터 잭슨’에 의해 영화로도 만들어지게 됐으며, 각종 캐릭터 상품을 비롯해서 앞으로도 다양한 장르의 헤일로 차기작을 기대할 수 있게 한다.


서두에서 언급한 밸브의 오렌지박스도 마찬가지다. '하프라이프2, 하프라이프 에피소드1, 하프라이프 에피소드2, 포탈, 팀 포트리스'2가 하나의 패키지 가격으로 즐길 수 있도록 구성된 오렌지박스가 북미 웹진들에게 평균 9점 이상의 점수를 획득하며 “유례없는 빅 딜(Big Deal)”이라는 좋은 평가를 받는 이유도,


하프라이프가 선사하는 탄탄한 싱글플레이와 퍼즐과 포탈에서 볼 수 있는 FPS에 퍼즐을 도입한 신선함, 그리고 카툰 렌더링으로 제작된 팀 포트리스2가 발산하는 팀웍 멀티플레이의 진수, 이 모두를 오렌지박스 하나를 통해 한번에 즐길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즉, 싱글와 멀티에 대한 게이머의 욕구를 하나의 패키지 안에서 각기 다른 게임을 통해 충족시켜주는 색다른 방법이다.



[ ▲ 번지소프트가 개발한 대작 FPS 헤일로3 ]





그러나, 국내 FPS의 현재 모습은..


이 자리에서 다시 이야기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올해 국내 신작 FPS 성과는 너무나 미비했다. ‘게임사라면 FPS 게임 하나쯤은 가지고 있어야’ 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수많은 FPS 게임이 찾아왔으나 어느 하나 기존 양대 산맥인 ‘서든어택’과 ‘스페셜포스’의 아성을 무너뜨리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멀티플레이에 특화된 FPS게임, 다시 말하자면 ‘북미 패키지 FPS에서 멀티플레이 부분만 가위로 싹둑 오려낸 듯한 반토막의 ‘온라인 (거의) 밀리터리 FPS’가 올해 출시된 국내 FPS의 초상화였다.


물론, 네트워크 인프라가 탁월한 우리나라의 특성에 그것이 더 어울린다는 점에서는 큰 이견이 없지만, 이러한 접근방식이 반복되는 것은 몇 가지 아쉬움을 남긴다. 우선, 최근 북미 FPS 게임들을 언급하며 설명했던 싱글플레이에서 멀티플레이로의 자연스러운 동기부여가 부재한다는 점이다.



[ ▲ 결국 서든어택의 벽을 넘지 못하고... ]




공식홈페이지의 설명 몇 줄을 읽고서 (물론 대부분은 읽지도 않겠지만) 적과의 살벌한 전투에 대한 근본적인 이유를 찾을 수 있을까? 기어즈오브워 처럼 화려하고 탄탄한 싱글플레이를 끝낸 후 아쉬운 마음이 들어서라거나 혹은 싱글플레이로 체득한 스킬을 다른 게이머들과 한번 겨뤄보고 싶다는 게이머의 지극히 자연스러운 동기가 아니라, 아무 이유 없이 제한된 설정의 싸움판을 제공한다고 해서 게이머들이 온 힘을 다해 싸우리라고 생각하는 것은 다소 무리가 있다는 말이다. 게다가, 그것이 몇 년간 반복되어 온 상황이라면?


국내 FPS 게임 대부분이 ‘계급’이라는 RPG의 성장 요소와 온라인 커뮤니티를 강화한 특징을 보여주지만, 텅 빈 공간이나 다름없는 이제 막 출시된 신작에서 그런 메리트를 가져가기란 결코 쉽지 않은 일일 것이다.


또, 한가지 지적하고 싶은 것은 ‘온라인 밀리터리 FPS’로 스스로가 한정 짓게 되면서, 경쟁의 구도를 극한의 상황까지 몰고 왔다는 점이다. 전체적인 기획의 폭은 더욱 좁아져서, 총기 밸런스와 이펙트의 정교함, 게임을 감싸는 그래픽과 사운드 효과, 온라인 커뮤니티의 극대화 등등 결과물 자체가 기존 흥행작의 테두리 안에서 조금 더 나은 수준으로 굳어졌다.


이러한 경향은 2007년 상반기 언리얼(Unreal), 소스(Source) 엔진과 같은 값비싼 유명 게임엔진의 수입 경쟁을 부추겼고, 멀리 외국으로 원정을 떠나 실제 총소리를 녹음하는 등 게이머의 입장에서는 어쨌거나 환영할 일이지만, 그로 인해 만들어진 게임성은 너무나도 부실한 전혀 불필요한 없는 경쟁구도까지 만들어냈다.


올해 출시된 밀리터리 FPS 중에 그래픽과 전체적인 완성도에서 가장 좋은 평가를 받았던 아바(A.V.A.)가 나름 선전하고 있지만, 지금의 상황은 아바 이후 출시작들에게 다른 중요한 요소들은 모두 제쳐두고 ‘아바 보다 뛰어난 그래픽과 외형적인 완성도’를 만들어 내라는 굴레를 씌울 뿐이다.



[ ▲ 레드덕 스튜디오가 개발한 토종 FPS 아바 ]





결코 쉽지 않은 발상의 전환, 하지만...


모 카드회사의 CF처럼 ‘이렇게 밤을 새는데, 매일 새는데도’ 끝내 따라잡지 못했다면, 더군다나 내가 그 부서의 책임자라면 괴로워하기 보다는 당장 다른 방향으로 고개를 돌려볼 것이다.


99년 쉬리의 놀라운 대성공 이후 ‘한국판 블록버스터’라는 꿈이 만들어낸 영화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은 120억의 제작비를 투입했지만, 부실한 완성도를 보여주며 1/10의 수입을 올리는 흥행 대참패를 기록했고, 이후 한국 영화계는 살벌한 얼음판을 겪어야만 했다. 그 것이 ‘살인의추억’과 ‘올드보이’ 등의 작품성과 흥행성을 겸비한 작가주의 수작들이 태어날 수 있게 한 계기가 되기도 했지만.


분명, 게임 외적인 물량 공세는 곧 한계에 다다를 것이고, 끝이 보이지 않을 것 같은 한국 게임산업에 대한 막대한 투자도 앞으로 희망이 더 이상 보이지 않는다면 그 줄을 놓게 될 것이 뻔하다. 그것이 곧 자본주의 사회를 지금까지 이어온 절대적인 진리 아니었던가?


2007년 국내 FPS 게임들의 부진에 상반되는 해외 FPS 대작들의 전 세계적인 흥행. 더 큰 위기가 닥치기 전에 단순히 먼 나라의 축제를 관망하는 수동적인 자세에서 벗어나 새로운 해법을 모색해내야만 한다.


사실적인, 리얼한, 최고 수준’이라는 온라인 밀리터리 FPS의 울타리에서 벗어난 발상의 전환이 더없이 필요한 때다. 이러한 상황에서 답이 보이지 않은 길을 계속해서 파고 있는 대부분의 국내 FPS 게임들에게 바이오쇼크는 최고의 멘토가 될 수 있다고 자신있게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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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ven Vito - 오의덕 기자
(vito@inv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