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mewhere, beyond the sea... (저 바다 어딘가에...) 당신의 점심 식사를 강탈하려는 괴물이 산다면 믿겠는가. USD 14.99. 오늘자 (9월 2일) 환율 기준으로 1만 5천 원이 조금 넘는 돈이다. 점심 두 끼 정도는 배불리 먹을 수 있는 돈이다.

단지 '바이오 쇼크'란 이름만으로 지출하기에는 조금 머뭇거려진다. 특히 모바일 게임 유저층이 캐주얼 게임으로 입문한 경우가 대부분이란 점과 2007년에 '바이오 쇼크'를 플레이해보지 않은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고려했을 때 함부로 추천하기 꺼려지는 게임이다.

하지만 1만 5천 원이란 돈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생각보다 많지 않다. 문화 콘텐츠로 국한했을 때 뮤지컬은 꿈도 못 꾸고 2시간짜리 영화나 연극이 고작이다. 2007년 당시 '게임을 뛰어넘은 예술'이란 찬사를 받은 게임을 1만 5천 원에 접할 수 있다면 상당히 싼 가격이 아닌가 싶다. 예술 작품을 감상하는데 고작 1만 5천원이면 된다는 이야기다.




'울펜슈타인 3D' 이래 FPS 장르는 던전을 헤매며 적을 무찌르는 문법에 충실했다. FPS의 아버지 존 카맥의 말을 빌리자면 FPS에서의 스토리는 포르노의 그것과 같아 스토리는 게임과 철저히 분리되어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새로운 패러다임을 개척한 게임이 그 유명한 '하프라이프'와 '콜 오브 듀티'다.

'하프라이프'와 '콜 오브 듀티'는 FPS의 패러다임을 변화시켰다. '메달 오브 아너'가 오마하 비치 상륙작전을 통해 전장의 체험과 전쟁 영화의 체험을 경험할 수 있게 섞어놓은 작품이었다면 '콜 오브 듀티'시리즈는 전쟁 영화를 체험할 수 있는 쪽으로 무게를 뒀다.

영화와 같은 요소에 신경을 쓰면서 (코지마 감독이 평가받고 있는 부분을 생각해보라.) 고전 FPS가 내세우던 전략성은 당신의 올챙이 마냥 제대로 사용되지 못하고 사장되고 말았다. 다시 말해 FPS는 자유도를 빼앗겼다. 시네마틱 전개가 나쁘다는 말이 아니다. 흐름이 그렇게 변화했다는 것이다

울펜슈타인3D와 둠으로부터 시작된 '조금 더 현실성 있게, 자신이 무기를 직접 사용하는 듯한 파괴나 살육의 미학'이 하프라이프를 통해 뛰어난 스토리 텔링과 레벨 디자인 그리고 연출력으로 인해 무너지고 있던 상황에서 '바이오 쇼크'는 둠과 같은 고전적인 던전을 부활시키고 미션 달성을 위해 보급품을 얻기 위해서 모험을 하게끔했다.

또한, 플라스미드 등을 이용한 퍼즐은 당시 유행하던 시네마틱 전개에 반하여 신선함을 주었으며 등장하는 적들이 랜덤하게 출현해 이동에 대한 두려움을 심어줬다. 때문에 '바이오 쇼크'를 한 마디로 표현하자면 FPS의 본질로 회귀라고 할 수 있겠다. 모바일 '바이오 쇼크'도 원작의 본질을 오롯이 모바일 하드웨어로 옮겨왔다.


▲ 7년을 거슬러 올라간듯한 그래픽


7년 만에 다시 마주한 랩쳐와 바이오 쇼크의 철학적인 스토리는 여전했다. 동시에 텍스쳐와 캐릭터의 움직임도 7년 전 그대로다. 아마 고등학교 시절 열렬히 짝사랑했던 그녀를 7년 후에 만났을 때의 실망감과 아련함과 비슷하지 않을까 싶다.

애플의 정책에 따른 2GB 용량 제한 때문에 그래픽을 다운그레이드한 모습이 무엇보다 시선을 끌기 때문이다. 그래도 음산한 특유의 분위기는 그대로 보존했다. 좀 더 평가하자면 바이오쇼크가 주는 분위기와 아주 잘 맞아 떨어진다.

출시 직후 해외 커뮤니티에서 다운그레이드된 그래픽 때문에 상당히 많은 비난을 받았다. 하지만 중요한 스토리와 여러 가지 얽혀있는 연결망을 모른 채 단순히 다운그레이드된 그래픽만 가지고 바이오쇼크를 평가한다는 것은 지나치게 섣부른 판단이다.

이는 스토리와 연출에서 바로 생각이 뒤집히게 되는데 역시나 명불허전이라고 할만하다. 영화와 같은 시놉시스는 게임에 뛰어들게 할 만한 동기부여를 충분히 부여하며 양파껍질처럼 서서히 밝혀지는 럽쳐에 대한 진실과 여러 가지 복선은 유저들로 하여금 게임에 몰입하게 한다.




특히 주인공의 독백 후 비행기 추락 소리가 들리며 떠오르는 바이오쇼크 로고. 그리고 잠수정을 타면 등장하는 라이언의 설명과 함께 랩처의 거대한 모습이 보이는 오프닝 장면은 7년이 지난 지금도 뛰어난 연출이라 평하기에 부족함이 없다.

'레트로 퓨처리즘' 혹은 '디젤 펑크'의 배경 컨셉을 지닌 무정부 상태의 해저도시라는 배경은 게임의 전체적인 분위기와 함께 던전 탐색이라는 컨셉과도 일맥상통한다. 일본식 RPG 같은 시네마틱 FPS가 가지지 못한 이동의 자유를 플레이어에게 허락한 것 역시 마찬가지. 때문에 컷신으로 스토리를 설명하지 않고 탐색을 통해 이곳저곳에 산재하는 테이프를 모아 게이머 스스로 스토리를 유추해야 한다.

'바이오 쇼크'는 주인공의 정체 등 테이프 기록들을 통해 복선을 알아채게끔 디자인했다. 게임이 단순히 오락 거리가 아니라 소설, 영화와 같은 주류 문화 산업으로 가기 위해 필수적인 요소로 스토리가 필요하다는 것을 생각했을 때 이는 대단히 중요하다. 괜히 자유지상주의와 포퓰리즘에 대한 토론에서 '바이오 쇼크'의 시놉시스가 차용되는 것이 아니다.


▲ 많은 생각을 하게하는 장면


말 그대로 토대가 되는 세계관을 게임 내에 정말 잘 녹여냈다. 플레이어가 하고자 하는 의지만 있다면 게임 내에 파고들 여지를 잔뜩 던져줘 랩쳐 구석구석 탐험할 수 있도록 유도했으며 오브젝트 하나하나까지 전부 세계관과 연동시켰다. 설정덕후를 지향하는 수많은 게임들이 표본으로 삼아야 될 부분이라고 생각할 정도로 설정의 짜임새가 매우 대단하다.

'바이오 쇼크'는 한글화되지 않은 상태로 출시됐다. 그러나 공교육을 충실히 받았다면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수준의 영어이므로 크게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다. 개인적으로 주인공이 충격을 받거나 주인공이 무슨 행동을 할 때, 또는 게임에서의 조력자가 무슨 말을 하거나 어떠한 사고를 당했을 때 주인공과 같은 분노와 충격을 받을 정도로 몰입할 수 있을 정도였다.


▲ 직관적이지만 생각보다 불편한 인터페이스


'바이오 쇼크'가 모바일 하드웨어로 이식되면서 컨트롤 부분이 많이 바뀌었다. 이 부분은 게임을 직접 하는 유저 입장에서는 제일 많이 체감하는 부분으로, 가상 패드로 구현된 조작은 쾌적하다고 표현하기엔 괴리감이 있다. 블루투스 패드를 기본적으로 지원한다고는 하나 블루투스 패드가 있는 사람이 전체 게이머 중에 얼마나 있겠는가. 물론 난 있다.

가상 패드로 이동하고 목표를 지정하는 것은 크게 어려움은 없으나 키보드와 마우스가 주던 컨트롤의 즐거움은 없다. 다만 아이콘이 항상 보이기 때문에 조금 더 직관적으로 변했다는 것은 칭찬할 만한 대목이다. 원작과 비교하여 점프가 사라졌으나 랩쳐를 탐험하고 아이템을 획득하는 것은 충분하다.

반면 버튼 배치 때문에 조준을 하다가 헬스 아이템을 먹어버리는 실수가 부지기수로 발생하기 때문에 캐릭터는 체력을 회복하지만, 플레이어의 멘탈은 하락하게 된다. 내 투박한 엄지손가락의 문제만이 아니다. 해외 매체와 플레이해본 유저들이 공통으로 제기하는 부분으로 차후 업데이트를 통해 개선되기를 기대해 본다.


▲ 사체는 좋은 수입원이죠


전투의 조작과 달리 전투 컨셉 자체는 크게 흠잡을 곳이 없다. 특히 자유로운 방법으로 적을 무찌를 수 있는 다양한 선택지를 제공한다. 특색 있는 화기들과 플라스미드의 존재, 그리고 해킹을 통한 로봇 지원 등은 플레이어로 하여금 다양한 전술을 짤 수 있게 한다.

물에 있는 적에게 전기 플라스미드로 감전을 시키거나, 터렛을 해킹하거나 혹은 오브젝트를 원거리에서 조종한다거나 다양한 방법을 제공하지만, 근본적인 문제 때문에 플레이어는 다양한 전술을 펼치기를 포기하게 된다. 바로 플라스미드가 지나치게 강력하기 때문이다.


▲빅대디의 위엄


총기류의 대미지가 낮고 탄약이 부족한 게임 초반에는 플라스미드로 마비시키고 렌치고 가격하는 플레이가 강요되다시피 한다. 업그레이드를 통해 총기를 강화해도 플라스미드 역시 강해진다. 총기가 산술급수적으로 강해진다면 플라스미드는 기하급수적으로 강해진다. 반면 적들의 강함은 크게 차이가 없다. 시쳇말로 밥이 돼버린다.

또한, 적이 아무리 다양하고 플레이 패턴이 다양하고 자유도가 충분해도 그것을 상쇄시키고도 남을 멍청한 인공지능엔 혀를 내두르게 된다. 더불어 점점 게임이 쉬워지는 와중에 미친 듯이 강력한 빅대디의 등장은 레벨 디자이너가 누구였는지 알아보게끔 하기도 한다. 그냥 모든 것이 2007년 그대로다.

사실상 이 게임에 실망한 부분으로 전투가 너무 쉬운 나머지 해킹, 플라스미드, 무기 강화 같은 각종 시스템을 활용할 필요가 없어졌다. 보급품을 구해야하는 이유가 거의 없다시피 하니 랩쳐를 탐험하며 보급품을 구하는 둠 형식의 본질은 게임 초반에만 반짝하게 되는 것이다. 그냥 일직선으로 진행만 하면 그만인 것이 되어버려 개발자들이 야심 차게 준비한 퍼즐들이 쓸모가 없어진 셈이다.


▲ 전투가 쉽다고 안 죽는건 아니다.


최악의 단점은 누가 뭐래도 '리틀시스터'의 대우다. 리틀시스터의 대우는 빅대디 제거에 대한 일종의 보상이다. 새 플라스미드를 구입하기 위한 방법이며 '아담'을 얻을 수 있어 빅대디 사냥과 리틀시스터 대우는 게임 플레이에 필수적인 요소로 꼽힌다. 문제는 리틀 시스터를 구원하거나 살해할 때의 보상 격차가 거의 없다는 것이다.

플레이어의 선택에 따라 '테네바움'이 주는 아담과 플라스미드 때문에 살해와 구원 사이의 밸런스가 완전히 무너진다. 다시 말해 살해와 구원은 엔딩에만 반영되지 플레이에는 별다른 영향을 끼치지 못하는 선택지라는 것이다.

'드래곤 퀘스트8'이 모바일 하드웨어로 넘어오면서 했던 숱한 고민을 '바이오 쇼크'에서는 찾아볼 수 없다. 가령 컨트롤의 편의성이라든지 콘텐츠의 변형이라든지가 없다. 좋은 말로는 원작에 충실한 이식이지만 나쁜 말로는 추억팔이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 이걸 귀엽다고 해야하나...


단점을 길게 늘어놓았으나 게임 자체는 무척 재미있다. 사실 철학이라고는 서울대 철학과에 원서를 지원했던 게 전부인 기자인지라 철학적인 스토리에 대해서 깊이 있게 파헤칠 지식이 부족했기 때문에 아쉬운 점들을 나열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식 작업을 하면서 원작의 미진한 부분을 조금이라도 수정하려는 의지만 있었다면 정말 뛰어난 게임이 될 수 있었으니 그저 눈감아 주기에는 너무나 심각한 결함들이 눈에 보이는 건 어쩔 수 없다.

7년이다. 그동안 수많은 게임이 출시됐고 게이머들의 눈높이는 더 올라갔다. 2007년 당시엔 철학과 심리와 도덕을 탐구할 전적으로 새로운 도구이자 문화 예술로서 '바이오 쇼크' 자체를 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고마운 게임이었으나 7년이 흐른 지금에서는 그저 단순한 이식, 소위 말하는 추억팔이가 된 셈이다.

'바이오 쇼크'가 가진 게임성이 워낙에 뛰어나기 때문에 즐기는 데 필요한 1만 5천 원은 전혀 아깝지 않으나 너무나 매력적인 장점들을 칭찬하지 못하게 하는 시스템의 아쉬움이 뼈아프게 한다. 이식과정에서 조금만 신경 썼다면 하는 생각이 머리를 떠나지 않는 이유다.

예전 랩쳐의 추억하며 플레이하기에는 iOS 버전은 나쁘지 않다. 자신이 성장함에 따라 점점 쉬워지는 난이도를 선호하거나, 주어진 모든 콘텐츠를 접하길 원하는 플레이어에겐 추천할만하다. 하지만 '바이오 쇼크'를 접해보지 못했거나 싼 게임을 원한다면 차라리 콘솔이나 PC로 '바이오 쇼크'를 컨트롤 걱정 없이 즐기는 편이 나을 것이다.

다만 기자 이전의 한 사람의 게이머로서 '바이오 쇼크'가 지루한 자동 전투와 강화, 진화와 같은 보편적인 시스템에서 잠시 떠날 수 있게 해줬다는 사실만으로도 쌍수를 들어 환영할 만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