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쳐3'. 이 게임을 굳이 설명해야 되나 싶기도 하다. 2015년을 뜨겁게 달궜던 이 게임은 오픈 월드와 스토리 텔링이 잘 어울려져 많은 호평을 받은 바 있다.

오픈 월드게임들은 보통 이야기전개가 직관적이거나 무난한 경우가 많다. 그러나 '위쳐3'는 게롤트가 살아서 움직이는 역동적인 세계의 모든 것을 플레이어가 경험할 수 있도록 디자인됐다. 이를 구현하기 위해 캐릭터 간의 대화를 비롯해 스토리도 더 매력적으로 꾸몄다.

단순히 그래픽이 세세하게 표현되어있고, NPC와의 다양한 상호작용만이 게임을 역동적으로 만든 것이 아니다. 게롤트가 탐험하고 모험하는 모든 경험을 플레이어에게 전달하고자 여러 가지 요소를 고민했기 때문이다. CD Projekt RED 매튜 스테인키(Mattew Steinke) 시니어 게임 디자이너는 좀 더 역동적인 세계를 구현하고자 고민했던 내용을 공개했다.

▲ CD Projekt RED 매튜 스테인키(Mattew Steinke) 시니어 게임 디자이너


플레이어의 여정을 전달하는 오픈월드 디자인?

'위쳐3' 개발진은 오픈 월드라고 해서 스토리텔링을 타협하고 싶지 않아 했다. 단지, 오픈 월드인 만큼 더 큰 규모의 스토리를 촘촘하게 짜야 한다고 생각했을 뿐이다. 꼼꼼하게 만든 퀘스트를 진행하며 북부왕국을 자유롭게 탐험하며 새로운 경험을 하기를 원했다.

괴물 사냥꾼인 주인공 '게롤트'가 북부왕국을 여행하면서 겪는 이야기는 모험. 게임 기획의 측면에서 이를 뒷받침해줄 다양한 기법과 고민이 담겨있다.



- 탐험의 자유

개발팀은 탐험에 자유를 부여했다. 플레이어의 탐험을 막는 요소들은 최대한 제거해 설산, 사막, 늪지, 제도 등을 제약 없이 탐험할 수 있게 했다. 단순히 여러 장소를 경험할 수 있게 하는 것이 아니라 포인트 A와 포인트 B를 퀘스트를 통해 접할 수 있도록 했다. 또한, 장소마다 의미를 부여해 이야기를 장소에 덮어 더 가치 있는 경험을 제공한다.

일반적인 RPG는 성장하면서 기술이 늘어가고 장비를 수집하게 되는데 이러한 메커니즘에 게임에 동기를 유발한다. 이런 동기를 희열로 바꿔줄 수 있는 무엇이 자유로운 탐험이다.


- 위쳐3의 경제

위쳐3가 처음 출시됐을 때, 커뮤니티에서는 크라운(게임 내 재화)이 너무 모자란다는 이야기가 많이 등장했다. 이는 의도적으로 기획된 부분이다. 위쳐의 경제는 돈이 풍부하지 않다. 괴물 사냥꾼이라는 게롤트의 직업도 영향을 끼치지만, 전쟁에 신음하며 정치적으로 불안한 북부왕국의 모습을 간접적으로 전달하는 역할도 한다.

위쳐3의 기획자들은 플레이어가 끊임없는 선택의 갈림길에 서기를 바랬다. 경제는 돈을 뜻하기도 하지만 게임 내 모든 자원을 어떻게 다루느냐는 뜻이기도 하다. 크라운, 스태미너, 어빌리티 포인트가 이에 속한다.

기획자들은 이를 효과적으로 제어하기 위해 모든 것을 수치화했다. 그리고 이를 유형과 무형 자원으로 구분했다. 유형자원은 실제로 존재하는 것들로서 특정 위치에 존재하며 획득하거나 이동시킬 수 있는 자원이다. 무형자원은 실제 모습은 없으나 개념적으로 존재하며 월드 내에서 특정 위치에 구애받지 않는 자원을 뜻한다. 구분한 자원은 독립적인 자원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했다.

'위쳐3'에서 자원을 획득하는 방법은 네가지가 존재한다. 소스(SOURCE) 카테고리는 생성되는 새로운 물질을 뜻한다. 게임을 플레이하면서 자연적으로 습득하게 되는 자원으로 보물상자에서 장비나 음식을 얻게 되는 경우가 이에 속한다. 식물에서 채취하는 약초를 이용해 제품을 만드는 경우도 넓은 범주로 이에 포함된다.

▲ 보물 상자에서 아이템을 획득하는 것은 소스(SOURCE) 카테고리에 해당한다.

또 다른 카테고리로는 거래(Trade)가 존재한다. 거래는 자원을 교환하는 행위로 어떠한 자원을 다른 어떠한 자원으로 변화시키는 과정이다. 게롤트는 대장간에서 크라운으로 장비를 구매하거나 수리할 수 있고 반대로 대장장이에게 장비를 판매하여 일정한 금액으로 자원을 변형할 수 있다. 그래서 한 상인은 무한대의 물건을 소지하고 있지 않으며 소지 금액도 정해져 있다.

위쳐3는 싱글플레이 게임이지만 개발에 참여한 모든 이들은 경제활동이 좀 더 역동적인 방법으로 구현됐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완전히 고정된 가격으로 전 세계 상인들이 물건을 판매하고 매입한다면 '쿨하지' 못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들은 자원의 가치를 조절하는 반응기(REACTOR)를 만들기로 한다.

우선 가장 기본적이면서도 어려운 일은 아이템의 가치를 정하는 것과 이 가치가 어떻게 게임 플레이 도중 적절하게 조정될 수 있느냐였다. MMORPG처럼 수요와 공급이 있는 게임이 아니므로 이를 인위적으로 만들 필요가 있었다.

기획자들은 수백여가지의 모든 아이템을 종류별, 희귀도, 원산지, 지역, 할인율로 분류했다. 이러한 구분을 기반으로 실제 살아 움직이는 듯한 경제를 구현해 나가기 시작했다. 예를 들어 호전적인 스킬리게에서는 술이 북부 왕국보다 비싸게 팔리며 책은 더 싸게 책정한다든지 자신만의 문화적 자부심이 높은 닐프가드에서는 비-인간 원산지 물품이 매우 싸게 거래되는 형식으로 구현했다. 덕분에 위쳐3의 경제는 조금 더 역동적인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경제를 구현함에 또 다른 한 축을 맡은 것은 추출(Drain)이다. 위쳐의 세계에서는 대부분의 물품을 분해하여 새로운 재료로 변형할 수 있고 이러한 재료를 다른 물품의 제작 혹은 소모품으로 사용할 수 있다.

플레이어가 획득한 물품은 소모품으로 사용되거나 상점에 팔리거나 제작물품으로 변화하는데 이 과정에서 가격 변동은 끊임없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 플레이어가 하는 행동으로 가격이 수정되는 셈인데, 대단한 알고리즘이 아니라 선택의 결과물이 반응 공식을 통해 격렬하게 한 번 더 나타나는 것이다.

마지막 한 축을 담당하는 전환(COVERTERS)은 간단히 말하자면 제작 물품에 관련한 이야기다. 위쳐에는 몇 가지 교단의 위쳐 세트아이템과 유물 무기들을 제작도를 얻어 제작할 수 있는데 제작에 다양한 자원이 소모되어 게임 내 경제가 더 역동적으로 돌아갈 수 있게 한다. 이러한 축들이 모여 위쳐의 경제를 만든다.

한때 커뮤니티에서는 위치크래프트(WITCHCRAFT)라는 말이 유행했을 정도로 유저들은 제작 콘텐츠에 호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 핫토리는 전환의 좋은 예다.


- 위쳐3의 경제 구조 구현 과정

경제를 큰 축으로 나눈 후 기획자들은 경제 구조를 단단하게 만들기 위해 구조 형성 작업에 들어갔다. 우선 경제를 구성하는 모든 요소를 그래프화해 이 그래프가 어떤 형태를 가지는지 조사했다. 아울러 기획자들은 시간이 흐르면서 어떤 자원이 얼마만큼 증가하는 가와 어떤 자원이 계속해서 변화하는가에 대해 찾아봤다. 또한, 특정 자원이 진행을 가로막는지도 살폈다.

실제 경제와 마찬가지로 혼란스러워 보이는 사례들의 공통점을 연결하면 일정한 패턴이 있음을 찾아낼 수 있었다. 장비로 대변되는 역방향 그래프로 아이템의 가치를 산정했다.

▲ 게임 후반부 들어서 성장률이 둔화되는 형태.

▲ 후반부로 들어갈 수록 가치가 급격히 상승하는 형태



- 걷는 게임사 위에 나는 게이머, 그리고 게이머에게 전하는 신선한 경험.

실제 세계에 근접한 경제 체제를 구현했다고 믿고 있을 때쯤 기획자들은 그들이 간과한 한 가지 사실 덕에 생각지도 못했던 일에 휘말리게 된다. 그들은 실제 세계의 경제 움직임을 구현하려 노력했고 비슷하게나마 기획하는 데 성공했지만, 정말로 실제 세계에 사는 유저라는 변수를 고려하지 못했다.

요즘 플레이어들은 서로 플레이 장면을 공유한다. 정상적인 플레이뿐만 아니라 핵 플레이를 공유한다거나 일종의 '꼼수' 플레이도 공유한다. 동영상 공유는 파급력이 높아 순식간에 퍼지고 이는 게임 내 경제 디자인이 순식간에 폭파되는 데 일조했다.


백색과수원 근처의 소를 죽이면 고기를 얻을 수 있는데 고기는 극 초반에 얻는 아이템과 비교했을 때 상대적으로 높은 가치가 있는 아이템이다. 그래서 유저들은 자금난을 해소하기 위해 백색과수원의 소를 도축하고 명상을 통해 리스폰한다음에 또 도축하는 방법으로 빠르게 부를 축적할 수 있었다. 이는 기획자들이 원하지 않은 방향으로 경제를 이끌어 갔다.

처음에는 소가 고기를 아예 드랍하지 못하게 바꿔려다가 월드 전체에 영향이 미칠 수 있다는 위험성을 깨닫고는 다른 방식으로 이와 같은 '경제 파괴' 요소를 제거하기로 했다. 소를 도축 후 명상에 들어서면 해당 레벨로는 도저히 해치울 수 없는 몬스터가 등장하게 하는 방식으로 이 행위에 종지부를 찍었다.

그들은 정말로 이런 신선한 발상을 패치로 막는 게 아니라 더 재미있는 경험을 주고 싶어 했다. 그래서 보스 몬스터가 등장하게 했으며 지금도 재치있는 대응방법으로 회자하고 있다.


이와 비슷하게 확장팩인 '하츠 오브 스톤'에서 세금 징수원을 추가했다. 게임 출시 초기에 진주 무역을 통한 이익을 획득하는 꼼수가 성행했는데 이 역시 개발진이 원한 경제 구조는 아니었다. 꼼수를 패치를 하며 없애버리고 새로운 요소를 추가해 특별한 콘텐츠로 느끼게끔 했다. 세금 징수원의 질문은 강제성이 없으나 이를 하나의 콘텐츠로 만들어 재미를 더했다.


코어 유저, 라이트 유저 둘 다 즐기는 콘텐츠 디자인?

확장팩 '하츠 오브 스톤'에는 룬워드 콘텐츠가 추가됐다. 기획자들은 룬 조합을 통해 주문이 각인된 것 같은 비주얼을 플레이어에게 선사하는 것이 정말로 '쿨'한 일이라 생각했다. 또한, 기존에 인기가 없어 사용처가 딱히 없었던 룬의 사용처를 만들어 경제가 더욱 역동적으로 순환할 수 있게 할 생각이었다.

문제는 이 콘텐츠에 얼마만큼의 깊이를 구현하느냐였다. 플레이어의 종류는 크게 세 종류로 나눌 수 있다. 모든 콘텐츠를 즐기며 완벽한 수집에 성공하는 이들과 필수 퀘스트만 하면서 스토리라인을 즐기는 유저 그리고 이 두 유저 사이 중간에 있는 비교적 균형잡히 유저들이 존재한다. 필수 퀘스트만 진행하는 군은 통상 15% 정도의 콘텐츠만을 즐기는데 이들은 다양한 이유로 게임의 모든 콘텐츠를 접하지 않는다.

기획자들은 세 부류의 유저들 모두 재미있게 만들어줄 콘텐츠를 내놓고 싶어 했다. 캐주얼 플레이어에게 재미있는 새로운 요소로 입문하게 하면서 하드코어 플레이어를 만족하게 할 수 있도록 말이다.

그래서 생각해 낸 것이 차등 적용이다. 처음으로 룬워드를 각인할 때는 별다른 진입장벽 없이 새로운 콘텐츠를 접하게 된다. 상위 등급의 각인은 더 다양한 재료와 함께 연금대에 적지 않은 돈을 투자해야 얻을 수 있도록 디자인했다. 이를 통해 라이트 유저들은 새로운 콘텐츠를 접하게 됐고 하드코어 게이머들도 자기만족을 느낄 수 있게 했다.





게롤트의 여정을 매력적으로 바꿔줄 성장과 UI 개편?

또 다른 확장팩 '블러드 앤드 와인'은 지금까지 와는 다른 경험을 플레이어에게 전달하기를 원했다. 그중 하나는 다크 판타지에서 만나는 화사로운 색감이었다. 미스터리한 사건과 장소와 대비되는 분위기를 만들어 이미지를 대비시켰다.

확장팩을 개발할 때 기획자들은 명확한 목표를 설정했다. 우선 그동안 굳어지고 선택의 여지가 얼마 없던 캐릭터 성장 시스템을 개편하고 사용하지 않는 인벤토리를 개편했다. 또한, 커뮤니티의 요구인 UI 개선과 더 많은 제작도면을 확장팩에 추가하기로 했다.

기획자들은 이와 같은 소소한 개편외에도 '변이'라는 커다란 변화점을 게임에 넣는 데 성공한다. 변이 시스템은 그동안 고착화된 스킬 트리를 유연하게 바꿀 수 있었으며 고레벨로 갈수록 사용처가 마땅치 않았던 기술 포인트에 새로운 역할을 부여했다. 연속성을 유지하면서도 새로운 느낌을 주고 싶어 했다.

▲ 변이 재료를 내놓으시게

'변이'를 통해 위험도 높은 괴물을 찾아다니고 괴물을 처치하고 얻는 보상으로 변이할 수 있도록 유도해 자유로운 탐험과 함께 '강해진다는 것'에 대한 욕구를 자극했다. 또한, '변이'는 검술/연금/표식으로 나누어져 있던 스타일을 세분화하거나 융합하여 전투를 새로운 국면으로 끌고 갈 수 있게 했다. 플레이어에게 더 다양한 선택지를 주는 데 성공한 것이다.

지금까지 게롤트의 성장은 경험치 기반의 메커니즘으로 스킬 포인트를 분배하는 형식으로 고착되어 있었다. 그러다 보니 각 전문화에 따라 밸런스 문제가 발생했으며 너무 빨리 상한선에 도착하는 문제가 존재했다. 또한, 사용할 수 있는 슬롯이 크게 4개이다 보니 스킬 포인트를 조합하지 않고 주력 스킬트리를 그대로 찍어가는 형태가 되어 버렸다. 어차피 슬롯이 부족해 다른 종류의 스킬은 사용을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변이 유전자가 도입된 이후 변이 유전자를 지원해주는 동종의 유전자를 배치할 수 있어 선택의 폭이 다양해졌다. 새로운 빌드는 플레이어로 하여금 집중하게 하고 기존의 전투 양상을 바꾸어 새로운 경험을 가능토록 했다. 플레이어들이 꿈꾸는 몬스터 슬레이어라는 판타지에 조금 더 다가갈 수 있게 했다.

▲ 스킬트리 형태로 단방향으로 확장했던 과거.

▲ 변이를 통해 스킬 포인트의 사용처가 많이 늘어났다.

'블러드앤 와인'에서 새롭게 추가된 염색 시스템은 의외의 결과를 불러온 시스템이다. 플레이어에게 커스터마이징할 거리를 제공한 것이었는데 플레이어들은 서로의 커스터마이징을 공유하며 문자 그대로 놀고 있다. 정말 많은 조합이 등장했다. 확장팩 작업을 하면서 각종 방어구류의 텍스쳐 작업을 다시 하기도 했다.

이와 같은 여러 요소는 현실 세계에 있을 법한 수천가지의 조작 가능한 요소를 게임에 녹였다. 경제나 스킬 트리 개편은 한 단계 진화한 오픈 월드를 플레이어에게 전달하기 위함이다. 실제와 같은 마을 풍경과 사람들의 대사, 상호작용 역시 역동적인 세계를 구현하기 위한 노력의 산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