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 전, EA 다이스는 배틀필드 2042를 발표하면서 "더 자세한 정보는 7월 22일에 발표하겠다"고 덧붙였다. 사실 이미 나올 만한 정보는 거의 다 나온 상황이었고, 남은 건 하나. 존재는 하는데 뭔지 모를 세 번째 모드가 도대체 뭐냐는 것이었다.

추측이야 많았다. 대부분의 관계자들은 "그럴싸한 배틀로얄 모드겠구먼?"이라 생각했지만, 이쯤은 다이스도 쉽게 예상했는지 "절대 배틀로얄은 아니다"라고 못박았다. 그럼 나올 만한 모드가 뭐가 있을까? 4인 코옵 캠페인? 오픈월드 슈터 RPG? 가능성 있는 모드야 많지만, 가능성만큼이나 현실감이 떨어진다. 기본 게임만 해도 용량이 터져나갈듯 거대할 텐데, 굳이 서브 모드 하나에 그만큼의 개발력을 투자했을 리가 없다.

하지만, 그것이 현실로 일어났다. 아니 조금은 다르다. 일반 게임 모드와 '해저드 존'에 이은 배틀필드 2042의 세 번째 모드. '배틀필드 포탈'은 4인 코옵 캠페인도 아니고, 오픈월드 슈터 RPG도 아니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을 합친 만큼이나 충격적인 모습으로 다가왔다.




1. '배틀필드' 다 모여라!


'배틀필드 포탈'은 그간 등장한 '배틀필드 시리즈'를 모두 아우르는 초대형 에디터이자, 창작 마당이다. 스타크래프트2의 '아케이드'를 생각하면 비교적 쉽게 이해될 것이다. 그래봐야 총기 제한이나 탈것 제한 정도 아닐까? 라고 생각했다면 오산. '배틀필드 포탈'에 지원되는 어셋은 단순히 배틀필드 2042의 그것만이 아니다.

배틀필드 1942, 배드 컴퍼니2, 배틀필드 3, 각 시대를 대표하는 배틀필드 시리즈의 대표작 내 어셋들이 전부 다 현세대 엔진에 맞춰져 새롭게 만들어졌다. 탈것, 무기, 가젯들까지 오직 이 '배틀필드 포탈'을 위해서 말이다. 당연히 본작인 '배틀필드 2042'의 어셋들도 활용 가능하니, 2차 대전, 냉전기, 현대전, 근미래전을 아우르는 전장이 만들어진다는 뜻이다.

예컨대, 이런게 가능하다는 거다. 제세동기기와 총검만 사용 가능한 64:64 규모의 초대형 백병전이라던가, 적당히 조절된 밸런스 상에서 벌어지는 티거와 에이브럼스의 전차전, 랩터와 스핏파이어의 공중전까지, 그간 굵직한 배틀필드 시리즈에 등장했던 모든 것들이 서로 얽힐 수 있다. '과거 VS 현대'라는 키워드의 테마 전투나 같은 시대 배경으로도 독일군 대 일본군이라는 기상천외한 전장 구성이 가능해진다.

▲ 2042 스페셜리스트 4인 VS 2차대전 독일군 32인의 대체역사소설급 전투

당연히, 이전 시리즈에서 유명하던 맵들도 다시 만들어졌다. 배틀필드 1942의 맵부터 배틀필드3의 맵들까지 현세대 사양에 걸맞는 4K 60FPS의 사양으로 다시 만들어졌다. 배틀필드 1942에 존재하던 '웨이크 아일랜드'가 배틀필드V에서 다시 만들어진 것과 같은 맥락이다. 새롭게 만들어진 6종의 맵들은 이전에 없던 지형 파괴 효과가 적용될 뿐더러 기반이 되는 게임이 배틀필드 2042인 만큼, 전장 투입 인원도 당시보다 두 배로 늘어난 128인이다.

▲ EOD 봇 20개체의 용접기 VS 탱크 1대의 기상천외한 싸움도 가능


'배틀필드 포탈'에 추가되는 리메이크 맵들은 다음과 같다.

배틀필드 1942 - '벌지 전투', '엘 알라메인'

배틀필드 배드 컴퍼니2 - '발파라이소', '아리카 항구'

배틀필드 3 - '카스피해 접경 지역', '노샤르 운하'

참고로, '배틀필드 포탈'에서 플레이하는 모든 게임은 일반 게임과 진행도를 공유한다. 즉, 배틀필드 포탈 플레이를 통해서도 경험치를 얻고 플레이어 랭크를 올릴 수 있다.

▲ 배틀필드3 유저라면 기억할 '노샤르 운하'



2. 로직 에디터, 게임을 내 마음대로 바꾸는 도구

'배틀필드 포탈'이 단순히 과거 작품들의 어셋을 가져다 이리저리 붙일 수 있는 모드인가 하면, 그건 또 아니다. '배틀필드 포탈'의 프로세스는 이렇다. 유저 개인이 모드를 만들어내 이를 포탈에 업로드하면, 해당 모드를 플레이하고자 하는 유저들이 모여 매치메이킹이 이뤄진다.

충분한 숫자의 모드가 만들어지지 않을 초기를 대비한 다이스의 공식 제작 모드도 존재하며, 모드 제작자는 봇을 투입해 업로드 이전에 직접 모드를 실험할 수도 있다. 문제는 단순히 각 작품에 나온 어셋들을 뒤섞는것만으로는 충분한 양의 모드가 나올 수 없다는 것이다. 그에 대한 대책으로 마련된 것이 '배틀필드 빌더'와 로직 에디터다.

'배틀필드 빌더'는 게임의 기본 규칙을 지정하는 툴이다. 가볍게는 아군 오사 유무부터, 팀 별 사용 가능한 무기와 부착물의 종류, 특정 무기를 휴대할 시의 행동 규칙과 피해량 배율 조정까지 가능하다. 예를 들면, 저격수 대 산탄총의 팀 대결을 만들고, 저격수는 헤드샷 배율이 극도로 높지만 이외의 부분에는 거의 피해를 주지 못하게 하는 반면 산탄총은 바디샷 배율을 높일 수 있다. 저격수 팀은 기어다닐 수 있지만 뛰지 못하게 설정하고, 산탄총 팀은 뛸 수 있지만 포복은 하지 못하게 설정할 수도 있다.

▲ '배틀필드 빌더'는 게임의 룰을 간편하고 빠르게 조정할 수 있다.

자동 재장전이나, 중간 재장전 허용 여부, 중간 재장전 시 잔탄은 버리는지, 혹은 남게 되는지의 여부, 날씨 효과의 적용 여부를 비롯해 특정 팀은 미니맵을 사용할 수 있지만 상대팀은 나침반만 사용 가능하게 만든다거나, UI의 허용을 어디까지 가능하게 설정한다거나, 팀 별로 이동 속도와 부활 간격의 설정도 가능하다. "2차 대전기 무기로 어떻게 근미래 무기를 이겨?" 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모드 제작자가 과거 무기를 사용할 시 체력과 이동속도 보너스를 주는 형태로 만들면 어느 정도 밸런싱이 가능해지는 식이다.

'로직 에디터'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간 형태다. 앞서 말한 '배틀필드 빌더'가 굉장히 쉬운 인터페이스로 구성되어 있어 누구나 쉽게 모드를 제작할 수 있는 범용적 툴이라면 로직 에디터는 보다 전문적인 모드 제작자를 위한 심화 툴에 가까운데, 이른바 '스크립팅'으로 취급되는 조건 설정과 특정 이벤트 실행 여부를 모두 설정할 수 있다. 전투 시간이 흐르거나, 특정 거점을 점령할 때마다 부대 규모가 늘어난다거나, 어떠한 상황에 처하게 되면 움직임이 극도로 제한된다거나 하는 식의 상세한 모딩이 가능해지는 것이다.

▲ 단순 모드 이상의 상세한 설정이 가능한 '로직 에디터'

이 '로직 에디터'는 별도의 툴로 여겨져 다른 이나 본인이 만든 모드에서 설정을 추출해내거나, 새로 만드는 모드에 덧붙일 수 있으며, 커뮤니티 내에서 설정을 자유롭게 공유할 수 있다. 이 '로직 에디터'로 인해 배틀필드는 사실상 '배틀필드 포탈'이라는 모드 하나의 추가를 넘어서 향후 수 년의 미래를 책임질 든든한 확장성을 지니게 되었다. 높은 완성도의 모드를 짜내는 건 분명 어려운 일이지만, 결코 불가능한 일은 아니니 말이다.

▲ 제작 실력에 따라 싱글 플레이 캠페인급 게임도 제작 가능



3. '배틀필드 포탈', 한계와 미래 예측은?

'배틀필드 포탈'의 발표는 분명 충격적이었다. 기껏해야 빌더를 통해 만들 수 있는 수많은 모드 중 하나 정도를 예상했던 상황에서, 아예 모드 제작 및 편집 툴을 발표할 줄이야. 이전부터 유저 제작 모드 지원을 활발히 해 온 게임사였다면 예측불가 정도는 아니었겠지만, 배틀필드 시리즈는 이제껏 단 한 번도 공식적으로 유저 모드를 지원한 바가 없지 않았던가.

하지만, 이 갑작스러운 발표가 일견 그럴싸하게 다가오는 장밋빛 미래를 꼭 보장하리란 법은 없다. 유저 제작 모드의 성공적인 정착에는 여러 가지 조건이 마련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먼저, 충분한 수의 게이머 수가 확보되어야 한다. '스타크래프트2'의 아케이드의 경우 전성기에 비하면 유저 수가 크게 줄어든 상태지만, 10년 전만 해도 굉장히 활성화된 공간이었다. 수많은 유저 제작 모드가 등장했고, 이 게임을 진지하게 즐기는 게이머도 많았다. 나만 해도 게임 기자로 일하기 이전 스타크래프트2의 유저 제작 모드를 파고들어 당시 블리자드 게임을 유통하던 총판에서 선물을 받아왔을 정도니 말이다.

▲ 많은 수의 활성 게임이 존재해야 '배틀필드 포탈'의 의미가 생긴다.

하지만, 이는 '스타크래프트2'라는 게임을 플레이하던 당시의 수많은 게이머와 한 게임에 그리 많은 수의 게이머가 필요하지 않다는 스타크래프트2의 기본적인 게임 시스템이 합쳐졌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배틀필드' 시리즈와는 다소 합치되지 않는 이야기다.

최신작인 '배틀필드V'의 최근 1년 간 최고 접속자수가 3만 명 가량이다. '배틀필드 2042'가 이보다 훨씬 나아 5만 가량의 상시 접속자 수를 유지한다 해도. 배틀필드 시리즈는 한 게임에 8명, 많아야 12명 들어가는 게임이 아닌 최대 128인이 참여하는 게임 구조 상 활성 게임 숫자는 동일 접속 인원 하에서 타 게임 대비 훨씬 적은 편이다.

결과적으로, 유저 제작 모드가 훨씬 활발하게 제작되고 유지되려면, 현재 배틀필드 시리즈가 유지하는 활성 유저 수보다 훨씬 많은 숫자의 게이머 수가 안정적으로 확보되어야 한다. 배틀필드 포탈의 기획은 놀랍고, 빌더와 로직 에디터의 활용도는 굉장히 높지만, 배틀필드 특유의 '대규모 멀티플레이'가 활성 게임 숫자를 줄여 발목을 잡는다. 오늘날 이 시간에도 수천 명 이상이 접속하는 '배틀필드 V'의 활성 게임 숫자는 시간대에 따라 차이가 있을지언정 눈으로 셀 수 있을 정도만이 유지된다.

이상적이지만, 이상이 실현되기엔 우려할 요소가 많은 상황. 아마 지금 '배틀필드 포탈'의 현 지점일 것이다. 기자로서의 시선은 그렇다. 팬으로서는 물론 다르다. 어떻게 되던 간에 제대로 되길 바라고 있다. 이왕이면 핵도 좀 잡아서 굳이 사설 서버를 찾을 필요 없게끔, 그리고 사후 지원도 좀 잘 해주고 괜히 게이머들과 대립각 세우지 않으면서 유저 수를 잘 유지해 주기만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