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세기 프랑스에서 타짜가 되어 살아남기



중세 유럽의 왕이 되어 자신의 나라를 통솔하는 과정을 좌우 양자택일 형태로 풀어낸 인디 어드벤처 게임 '레인즈'의 개발사 Nerial이 신작을 출시했습니다. 모바일 게임인 레인즈 시리즈를 통해 그간 볼 수 없었던 새로운 방식의 재미를 선사해준 개발사였기에, 그들이 PC와 닌텐도 스위치 플랫폼을 통해 선보이는 신작 '카드 샤크'에도 자연스레 기대감을 품게 됐습니다.

게임의 타이틀인 '카드 샤크(Card Shark)'는 카드 게임에서 이기기 위해 속임수를 쓰는 사람을 일컫는 말입니다. 플레이어는 18세기의 프랑스를 배경으로 이제 갓 '밑장빼기' 기술을 배운 초보 타짜가 되어 다양한 속임수 기술을 연마하고, 점점 더 크고 위험한 도박판으로 뛰어들게 됩니다.

국내에서 특히 흥행한 범죄 스릴러 영화 '타짜'를 인상 깊게 봤던 기억 때문일까요. 영화에서나 볼 수 있었던 카드 게임 속 속임수 기술들을 직접 사용해볼 수 있다는 사실에 게임 출시 전부터 마음이 동했습니다. 카드 샤크가 정식으로 출시됐다는 소식에 서둘러 게임을 플레이해보았고, 약 4시간 분량의 1회차 플레이를 완료한 뒤의 소감을 이야기해보려 합니다.

게임명: 카드 샤크 (Card Shark)
장르명: 어드벤처
출시일: 2022. 6. 3.
리뷰판: V1.0
개발사: Nerial
서비스: Devolver Digital
플랫폼: 스팀, 닌텐도 스위치
플레이: PC

관련 링크: 'Card Shark' 메타크리틱 페이지 / 오픈크리틱 페이지


카드 게임에서 승리하기 위한 28가지 속임수 전략


'카드 샤크'에서 가장 눈에 띄는 요소는 단연 플레이어가 게임을 통해 직접 사용하게 되는 여러 가지 카드게임 트릭에 있습니다. 상대방의 비어있는 잔에 와인을 채워주며 손 패를 훔쳐보는 간단한 기술부터 시작해서, 셔플 과정에서 원하는 패를 특정하고, 이를 교묘하게 섞어 필요한 사람에게 맞춰서 내어주는 고도의 손기술까지 다양한 전략이 등장합니다. 그 개수만 28개에 이르죠.

방송에 나와 자신의 마술을 피로하고, 끝에는 그 비법을 모두 밝히는 어떤 마술사의 공연을 보는 것처럼, 하나하나의 트릭을 배우는 과정은 즐겁고 신선합니다. 충분하다고 생각될 때까지 반복할 수 있는 연습을 통해 연마한 속임수 기술은 이후 방문하게 되는 도박장에서 활용할 수 있게 되는데요. 기술을 배우는 과정에서 그 구조를 확실히 익혔다면,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 양들에게서 어렵지 않게 거금을 뜯어낼 수 있습니다.

물론 기술을 사용할 때마다 상대방의 '의심 게이지'가 점점 차오르므로, 상대방이 속임수의 존재를 눈치채기 전에 그만두는 것이 중요합니다. 현실에서도 그렇듯, 지나친 욕심은 화를 부르게 되거든요. 스승에게 하사받은 사기 기술을 활용해서 돈을 따고, 상대에게 발각되기 전에 현장을 빠져나오는 긴장감을 만끽하는 게임 플레이, 이것이 '카드 샤크'의 주된 재미 포인트라고 할 수 있습니다.

▲ 뒤에서 상대의 패를 훔쳐보는 원시적인 기술부터

▲ 손거울을 활용하는 등, 다양한 기술이 등장합니다

다양한 전략을 하나씩 배워나가는 과정은 '카드 샤크' 게임 플레이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부분이지만, 습득한 트릭의 개수가 15개를 넘어갈 즈음부터는 왠지 모를 지루함이 느껴지기 시작합니다. 방식이 조금씩 다를지언정, 비슷한 방식의 트릭이 반복된다는 것을 어렴풋이 깨닫게 되기 때문이죠.

초반에 익히게 되는 전략이 단순하지만 치명적인 것들로 채워졌다면, 후반에 익히게 되는 기술은 초반에 익힌 기술 2~3개를 엮어 한 번에 사용하는 콤보 기술처럼 구성된 경우가 많습니다. 기초를 탄탄히 쌓았다는 가정 아래 여러 기술을 유연하게 사용해볼 기회가 되어주지만, 시험에서 응용문제를 푸는 것 같은 난이도와 긴장감이 더해졌을 뿐, 게임 초반에 느꼈던 '신선함'은 더이상 남아있지 않게 됩니다.

이외에도 단순히 타이밍에 맞춰 클릭하기만 하면 되는 트릭들이 다수 포함된 점, 그리고 특정 카드를 배분하기만 했을 뿐인데, '그래서 어떻게 게임에서 이기게 되는지' 정확히 소개해주지 않는 점도 다소 아쉽게 느껴질 수 있는 부분입니다. 게임 전반에서 주도적으로 판을 이끄는 것은 스승인 생제르맹 백작이고, 플레이어는 패를 나누거나 엿본 패를 귀띔해주는 '조력자' 수준에 머물러 있기 때문인데요. 각 트릭이 가지는 위력과 진정한 의미를 파악할 수 없다면, 게임 내에서 속임수를 사용하는 내내 단순한 미니게임 컬렉션을 플레이하듯 단조로운 감상밖에 느낄 수 없을지도 모릅니다.

▲ 타이밍에 맞춰 키를 입력해야 하는 류의 기술도 다수 등장합니다

▲ 향후 운명을 결정짓는 중요한 코인토스 역시 타이밍만 신경 쓰면 해결됩니다



촌구석 여관에서 왕의 궁전까지, '타짜'가 되어야만 했던 소년의 이야기


사실 카드 샤크의 핵심은 게임의 서사, 즉 스토리에 있습니다. 카드 게임에서 승리하기 위한 총 28개에 달하는 다양한 속임수 전략이 등장하지만, 이는 시골 출신의 평민 '유진'이 18세기 프랑스의 왕, 루이 15세의 앞에까지 이르기 위한 하나의 수단에 지나지 않습니다. 속임수 기술을 전혀 익히지 않더라도 모든 스토리를 볼 수 있게끔 쉬움 난이도인 '호사가'를 마련해둔 것도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입니다.

카드 샤크는 18세기 프랑스를 배경으로 만들어진 대체 역사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루이 15세나 카사노바처럼 당시에 활동했던 여러 실존 인물들이 등장하므로, 한 편의 잘 짜인 시대극을 보는 것 같은 기분을 맛볼 수 있습니다.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꾸며진 시대극을 좋아하는 이들에겐 더 없이 흥미로운 이야기가 될 것으로 보입니다.

당시에 쓰인 문학 작품이나 시대상 등 역사적인 사실을 알고 보면 더 많은 것들이 보이겠지만, 사실 이러한 배경을 일절 모르더라도 '18세기의 프랑스'를 엿볼 수 있다는 점에서 이 작품은 나름의 의미를 갖습니다. 당시의 사람들이 입었던 의복, 식사, 주거를 포함한 생활 환경, 문화 등을 확인할 수 있는 장면들이 게임 곳곳에 그려지고 있거든요.

그중에서도 가장 인상적이었던 장면은 주인공이 죽음의 위기를 벗어나기 위해 장갑을 던져 결투를 신청하고, 이에 화답하는 귀족의 모습이 그려지는 부분이었습니다. 실제로 18세기 유럽에서는 각자의 명예를 지키기 위한 수단으로서 결투가 자주 벌어지곤 했거든요. 칼을 이용한 결투 외에도 서로 우선권을 정하고 한 발씩 사격하는, 총을 활용한 결투도 자주 벌어지곤 했는데요. 이런 독특한 결투 방식 역시 게임 속에서 모두 확인할 수 있습니다.

▲ 한 편의 예술작품처럼 그려진 18세기 프랑스가 배경이 됩니다

▲ 명예를 지키기 위해 벌어지는 '결투', 여기서도 타이밍과 기억력이 중요합니다.

대부분의 시대극이 그렇듯 '카드 샤크'에서도 다양한 인물들의 관계가 얽히고설켜 복잡한 스토리가 이어지는데, 저마다 다른 작위를 가진 이들이 여럿 등장하다 보니 그 관계성을 따라가지 못하고 중간에 흐름을 놓치게 되는 경우가 적지 않을 것으로 보입니다. 스토리를 돌아볼 수 있는 것은 주인공 '유진'이 작성하는 낙서와 메모뿐인데, 여기서는 대략적인 스토리의 줄기만 파악할 수 있을 뿐, 꼬이고 꼬인 인물들 간의 관계까지 보여주진 않습니다. 스토리를 중요시하는 게임 흐름에도 불구하고, 대사나 인과관계를 되돌아볼 수 있는 시스템이 갖춰져 있지 않다는 점은 조금 아쉽게 느껴졌습니다.

물론 스토리의 완성도나 복잡성과는 별개로, 역사적인 사실이나 스토리에는 크게 관심이 없고 그저 다양한 속임수 전략을 사용해볼 수 있는 '타짜 시뮬레이터'를 기대했던 이들에게는 별다른 가산점이 되어주지 못하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 속임수는 거들 뿐, 게임의 핵심은 스토리에 있습니다

▲ 생소한 인물들의 이름, 작위, 용어가 더해져 스토리 흐름이 어렵게 느껴지기 쉽습니다




지난 2020년에 처음 공개된 카드 샤크는 '18세기 프랑스에서 활약하는 타짜'라는 독특한 테마로 많은 게이머들의 관심을 샀습니다. 데모 빌드가 공개됐을 때도 게임 전반에 잔잔하게 깔리는 아름다운 오케스트라 연주와 회화를 감상하는 것 같은 아름다운 배경 비주얼로 팬들의 기대를 키운 바 있죠.

정식 출시 후에도 게임은 그간 강조해왔던 음악이나 비주얼 부분에서 합격점을 주기에 충분한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게임을 클리어하기까지 약 4시간의 플레이 타임 동안, 한 편의 잘 만들어진 오페라를 감상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거든요. 이처럼 높은 만족감을 선사하는 작품이 분명하지만, 게임 구매를 고려하고 있다면 그 속에 호불호가 갈릴 수 있는 포인트가 분명히 존재한다는 점은 꼭 염두에 두는 것이 좋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호불호 포인트는 게임의 메인 요소라고 생각했던 속임수 전략이 실은 단편적으로만 활용되고 있다는 점입니다. 게임 속에는 총 28가지의 속임수 전략이 등장하지만, 이 전략들을 실제로 활용할 기회는 한 번에서 많아도 두 번에 그칩니다.

▲ 아직도 무슨 이야기인지 이해가 안되는 전략이 있을 정도지만,

▲ 섞기와 인조깅 같은 몇 가지 주요 기술 외엔 '1회용 트릭'이 더 많습니다

한 번 사용한 속임수는 후반 트릭 속 '응용 요소'로 포함되지 않는 한 다시 등장하지 않습니다. 마지막 28번째 속임수의 경우 엔딩 바로 직전에 배우게 되며, 마지막 게임에서만 쓰이고 끝입니다. 게임 전체 분량이 커다란 하나의 '튜토리얼'로 이루어져 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닐 정도죠. 2회차를 즐기지 않는다면 배우고도 두 번 써먹을 일 없는 튜토리얼인 셈이고요. 다양한 속임수 기술을 배우고, 이를 활용하며 전국에 이름을 날리는 '타짜'가 되는 방향의 게임 플레이를 기대했다면 아쉬움이 남을 수 밖에 없는 부분입니다.

물론 이러한 구성은 플레이어가 스토리 자체에 집중할 수 있도록 개발자가 의도한 부분인 것으로 보입니다. 트릭을 10개 이상 배우고 난 뒤에는 처음에 배웠던 기술이 제대로 기억나지 않을 수 있는데, 계속해서 다양한 트릭을 활용하는 구조라면 모든 기술을 외우려고 골머리를 썩이느라 스토리에 집중할 수 없게 될 것이 분명하기 때문입니다. 중요하게 생각하는 포인트가 어디에 있느냐에 따라 호불호가 나뉠 수 있는 포인트이므로, 자신의 성향이 어느 쪽에 가까운지 미리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 머리가 아팠던 '투명 스택', 한 번만 쓰여서 오히려 좋았다고 생각했던 트릭입니다

▲ 루이 15세와의 독대가 이루어지기까지, 숱한 역경을 이겨낸 주인공의 서사가 궁금하다면 추천!

호불호가 갈릴 수 있는 포인트가 분명히 존재하지만, 카드 샤크는 게임을 통해 '타짜의 삶'을 그려낸 독특하고도 신선한 게임이 분명합니다. 잘못된 선택이 이어져 죽음에 이르게 됐을 때 '죽음'과의 도박으로 두 번째 삶의 기회를 따내는 설정도 흥미로웠고, 눈이 즐거운 배경 비주얼과 아름다운 음악, 선택에 따라 조금씩 달라지는 스토리는 2회차를 고려하게 하기에 충분했습니다.

모바일 게임 '레인즈' 시리즈를 계기로 개발사 Nerial의 신작을 체험해보고 싶은 이라면, 영화 '타짜' 속 현란한 속임수 기술에 깊은 감명을 받은 이라면, 중세 유럽을 배경으로 풀어지는 잘 짜여진 가상의 시대극이 궁금하다면 꼭 '카드 샤크'를 직접 플레이해보시기 바랍니다.

▲ 요동치는 배 위에서, 해적 선장을 빈털터리로 만들 때의 쫄깃한 긴장감을 느껴보세요